내가 없던 어느 밤에 (스페셜 더블 커버 에디션) 우리학교 소설 읽는 시간
이꽃님 지음 / 우리학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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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돌아가지 않는 관람차가 있다.

녹슨 회전목마는 바람에 삐걱대고, 조명은 꺼졌으며,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사라진 지 오래다.


'판타지아'라는 이름의 놀이공원이 문을 닫자

그와 함께 동네의 시간도 멈춰 버렸다.

그리고 그곳에는 아홉 살의 모습으로 멈춰 버린 아이가 있다.




"어쩌면 자라지 못한 건 봄이 아니라,

아홉 살 그 시절에 머문 채 몸집만 자라 버린 아이들일지도 몰랐다."




열 살이 되기 전, 아동학대로 세상을 떠난 친구 '봄'을 남겨둔 채

가을, 유경, 균은 각자의 방식으로 어른이 되어 갔다.


하지만 몸만 자랐을 뿐,

세 아이의 시간은 여전히 그해 겨울, 아홉 살에 멈춰 있었다.






판타지아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그곳은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이며,

애도하지 못한 기억의 공간이다.


어른들은 판타지아를 두려워하며

굿이라도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필요한 건 굿이 아니라, 기억과 애도였다.




봄을 기억하기 위해 판타지아로 향하는 아이들.

그 여정을 위해 상가의 불을 하나둘 켜주는 어른들의 모습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이 소설은 아동학대라는 사회적 폭력 앞에서

무력했던 어른들과,

그 폭력을 이해할 수 없어

스스로를 탓하며 자란 아이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우리는 너무 쉽게 말한다.

잊으라고, 털어버리라고, 빨리 어른이 되라고.


하지만,

제대로 애도하지 못한 슬픔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몸 어딘가에 아홉 살의 시간으로 얼어붙은 채 남아

평생 우리를 부른다.




누군가를 제대로 보내지 못한 채 어른이 된 이들에게

차마 자라지 못한 이들에게

이 이야기는 뒤늦은 작별 인사이자

다시 시작할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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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심리학 카페 - 11주년 특별 개정판, 흔들리는 삶의 중심을 되찾는 29가지 마음 수업
모드 르안 지음, 김미정 옮김 / 클랩북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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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출판사의 도서 제공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혼자 있을 때조차 울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책은 '29가지 심리학 처방전'이라 소개되지만, 

사실 이 책이 주는 것은 처방이 아니라 위로다.


아파도 괜찮다는,

울어도 괜찮다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돌보는 것이 이기적인 일이 아니라는 것.




이 말을 건네는 사람은 심리학자 모드 르안이다.


스물세 살에 남편을 잃고

1년간 술에 의존하며 살았던 그녀는,

10년간의 정신분석 치료를 통해

남편의 죽음을 충분히 애도한 뒤에야 삶을 되찾았다.


상처를 치유한 그녀가

여전히 상처 속에 있는 이들에게 건네는 이야기다.

그래서 이 책은 특별하다.






1997년, 그녀는 파리의 한 지하 카페에서

심리학 카페를 시작했다.


차 한 잔 마시며 편안하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장소.

18년간 5만 명이 찾아온 그곳의 이야기는 낯설지 않다.




모든 일을 떠안으며 중심에 서려는 사람,


사소한 일에도 불같이 화를 내면서

정작 억울한 순간엔 말문이 막히는 사람,


사랑이 떠난 뒤에도

'내가 부족해서'라며 자신을 탓하는 사람.


이들은 모두

'나를 위해 울 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그녀가 건네는 말은 간단하다.


당신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 자신이라는 것.


그러니 한 번쯤은, 마음 놓고 울어도 괜찮다는 것.


이것이 이 책이 건네는 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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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 씽킹 -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의 사고 대전환 프로젝트
솔 펄머터 외 지음, 노승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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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출판사의 도서 제공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누군가 당신에게 물었다.

"이 사업이 성공할까요?"


대부분의 전문가는 단호하게 답한다.

"성공합니다." 또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진짜 전문가라면 이렇게 말해야 한다.

"현재 데이터로는 70% 확률로 성공하지만,

시장 변동성을 고려하면 불확실성이 30% 정도 더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전자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확신에 찬 목소리가 더 믿음직스럽게 들리니까.


하지만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솔 펄머터와

철학자, 심리학자가 10년 동안 UC버클리에서

가르친 진실은 정반대다.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사람이야말로 신뢰할 만하다.

이것이 바로 '세 번째 밀레니엄 사고법'의 출발점이다.






2001년부터 3000년까지,

저자들은 이 기간을 인류의 '세 번째 밀레니엄'이라 부른다.


정보 과잉의 시대.

문제는 정보가 많다는 게 아니라

그 정보를 다룰 도구가 없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크게 세 가지 도구를 설명한다.

과학적 사고 도구, 과학적 낙관주의, 신뢰 기반 연대.


흥미로운 것은 이 세 가지가 모두

이미 과학이 가지고 있었던 것이라는 점이다.






1️⃣ 과학적 사고 도구

"맞다, 틀리다"가 아니라 "70% 맞다"라고 말하는 법.

페르미 추정으로 문제를 쪼개고,

임계값을 설계해 언제 개입할지 정하는 것.


2️⃣ 과학적 낙관주의

해결책이 안 보여도 "할 수 있다"는 전제로 접근하기.

파이를 나누기보다 키우는 방향으로 사고하기.


3️⃣ 신뢰 기반 연대

협력은 감정이 아니라 설계의 문제다.

팃포탯(Tit for Tat) 전략처럼

배신에는 응징, 협력에는 즉시 용서하는 구조를 만들기.






"생각 도구를 다루는 일에 능숙해지는 것이야말로

앞으로 수년, 수백 년 뒤 인류와 지구의 안녕에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 시작은 의외로 간단하다.


오늘 당신이 "확실해"라고 말한 것 중에

진짜 100% 확실한 게 몇 개나 될까?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순간, 더 나은 결정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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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는 프랜시스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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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본 리뷰는 출판사의 도서 제공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형태가 정해져 있는 일. 그날그날 끝나는 일. 게이코가 도쿄를 떠나 안치나이로 온 이유는 명확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마주한 것은 정반대였다. 형태로 남지 않는 것들의 무게. 노인들의 목소리, 아버지와 낚시하던 시간, 천년만년 거슬러 올라가는 흑요석의 기억.


"사람이 형태로 만든 것은 남아도 사람 그 자체는 남지 않는다."


게이코가 정말 찾고 있던 것은 끝나는 일이 아니라, 형태 없이도 남을 수 있는 무언가였을지 모른다. 이 소설은 홋카이도의 작은 마을에서 펼쳐지는 짧고 깊은 어른의 연애 이야기다.




그곳에서 게이코는 가즈히코를 만났다. 세상의 소리를 수집하는 남자. 그의 집 침대 밑에서 마이크를 발견했을 때, 게이코의 체온이 갑자기 내려갔다. 그가 수집한 것은 알래스카 빙하의 굉음, 런던 기적 소리, 축제의 군중 소리. 순수한 전력으로 완벽한 음질을 재현하려던 남자의 집에, 가장 불순한 것이 숨겨져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짝꿍과 나눈 대화에서, 우리는 가즈히코의 아이러니를 발견했다. 혼자 읽었다면 지나쳤을 이 모순을 함께 이야기하며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수집하지만 정작 자신의 소리는 듣지 못하는 남자. 

우리는 무언가를 소유하거나 수집하거나 녹음해두면 그것이 영원히 남을 거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형태로 남긴 것들은 오히려 더 빨리 사라진다. 진짜 남는 것은 형태를 잃은 것들이다. 




안치나이는 누구에게도 목적지가 아니었다. 중계지점으로 삼을 생각이었는데 어느 틈엔가 정착해서 살게 된 곳. 게이코도, 가즈히코도, 이 마을에 온 사람들도. 두 사람은 서로에게 정착하지 못했다. 가즈히코에게는 이혼하지 않은 부인이 있었고, 에다루에서 찾아오는 유부녀가 있었고, 침대 밑에 숨긴 마이크가 있었다. 어두운 숲길을 혼자 걷는 게이코를 그는 끝내 데려다주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정착을 원했던 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흘러가는 중간, 잠시 서로에게 기댔을 뿐.




태풍이 왔다. 프랜시스가 물에 잠겼다. 반세기 넘게 마을 전체의 전기를 만들어내던 수차가 가라앉았다. 불빛이 모두 사라진 암흑 속에서, 게이코는 별을 보았다.


"별에는 음이 있다. 들리지 않는 음이 하나하나의 별에서 이쪽을 향해 내려온다. 그 음은 빛이었다."


가즈히코가 평생 찾아 헤맨 순수한 소리는, 어쩌면 이것이었을지 모른다. 우리는 무엇을 듣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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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는 법과 놓는 법 - 의존하거나 회피하고 싶은 내 마음을 이해하는 성격심리학
한경은 지음 / 수오서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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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출판사의 도서 제공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나를 미워할 때조차,

우리는 나를 완전히 놓은 적이 없다 ❞






자기 미움의 뿌리에는

자신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기대가 숨어 있다.


어떤 사람은 관계를 붙잡느라 자신을 놓고,

어떤 사람은 자신을 지키느라 관계를 놓는다.


저자는 의존과 회피를

대립이 아닌 하나의 연속선으로 본다.




누군가에게 집착하는 것도,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으려는 것도

결국 같은 불안에서 나온 다른 반응일 뿐이다.






책의 핵심은 균형이다.


저자는 융의 대극성 개념을 빌려,

빛과 그림자가 함께할 때

비로소 전체로서의 나에 가까워진다고 말한다.


잡는 것도 놓는 것도 각각 의미가 있다.


문제는 어느 한쪽에 치우칠 때 발생한다.

붙잡아야 할 것을 놓치거나,

놓아야 할 것을 움켜쥐거나.




하지만 의존과 회피는 적이 아니다.

둘 다 불안 속에서 나를 지키려는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


이것을 억누르거나 없애는 게 아니라

이해할 때, 비로소 다르게 반응할 수 있다고 말한다.


경계는 차단이 아니고,

회피는 실패가 아니며,

의존은 약함이 아니다.


이것들은 모두 나를 지키려는 방식이었다.


우리가 반복하는 패턴 안에는

언제나 이유가 있다.






친밀한 관계가 언젠가 변할 거라는 생각에

차라리 처음부터 거리를 두게 되었다.


지금도 가까워지는 게 두렵긴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두려움의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


나를 바꾸려 애쓰는 대신,

이해하려 했을 때 조금 편해졌다.


무엇을 붙잡아야 하고, 무엇을 놓아야 하는지.

그 균형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성숙은 완벽한 상태가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중심을 잡는 힘이다.


서툰 채로 살아가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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