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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는 프랜시스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25년 8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본 리뷰는 출판사의 도서 제공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형태가 정해져 있는 일. 그날그날 끝나는 일. 게이코가 도쿄를 떠나 안치나이로 온 이유는 명확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마주한 것은 정반대였다. 형태로 남지 않는 것들의 무게. 노인들의 목소리, 아버지와 낚시하던 시간, 천년만년 거슬러 올라가는 흑요석의 기억.
"사람이 형태로 만든 것은 남아도 사람 그 자체는 남지 않는다."
게이코가 정말 찾고 있던 것은 끝나는 일이 아니라, 형태 없이도 남을 수 있는 무언가였을지 모른다. 이 소설은 홋카이도의 작은 마을에서 펼쳐지는 짧고 깊은 어른의 연애 이야기다.
그곳에서 게이코는 가즈히코를 만났다. 세상의 소리를 수집하는 남자. 그의 집 침대 밑에서 마이크를 발견했을 때, 게이코의 체온이 갑자기 내려갔다. 그가 수집한 것은 알래스카 빙하의 굉음, 런던 기적 소리, 축제의 군중 소리. 순수한 전력으로 완벽한 음질을 재현하려던 남자의 집에, 가장 불순한 것이 숨겨져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짝꿍과 나눈 대화에서, 우리는 가즈히코의 아이러니를 발견했다. 혼자 읽었다면 지나쳤을 이 모순을 함께 이야기하며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수집하지만 정작 자신의 소리는 듣지 못하는 남자.
우리는 무언가를 소유하거나 수집하거나 녹음해두면 그것이 영원히 남을 거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형태로 남긴 것들은 오히려 더 빨리 사라진다. 진짜 남는 것은 형태를 잃은 것들이다.
안치나이는 누구에게도 목적지가 아니었다. 중계지점으로 삼을 생각이었는데 어느 틈엔가 정착해서 살게 된 곳. 게이코도, 가즈히코도, 이 마을에 온 사람들도. 두 사람은 서로에게 정착하지 못했다. 가즈히코에게는 이혼하지 않은 부인이 있었고, 에다루에서 찾아오는 유부녀가 있었고, 침대 밑에 숨긴 마이크가 있었다. 어두운 숲길을 혼자 걷는 게이코를 그는 끝내 데려다주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정착을 원했던 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흘러가는 중간, 잠시 서로에게 기댔을 뿐.
태풍이 왔다. 프랜시스가 물에 잠겼다. 반세기 넘게 마을 전체의 전기를 만들어내던 수차가 가라앉았다. 불빛이 모두 사라진 암흑 속에서, 게이코는 별을 보았다.
"별에는 음이 있다. 들리지 않는 음이 하나하나의 별에서 이쪽을 향해 내려온다. 그 음은 빛이었다."
가즈히코가 평생 찾아 헤맨 순수한 소리는, 어쩌면 이것이었을지 모른다. 우리는 무엇을 듣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