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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그니티 플랜 - 우리는 어떻게 나쁜 세상과 싸우는가
양정훈 지음 / 수오서재 / 2025년 11월
평점 :
* 본 리뷰는 도서 제공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누군가 길 위에서 운다. 저 울음의 이유를 해결하는 일은 너무 멀고, 눈물을 직접 닦아주는 일도 멀게 느껴진다. 함께 울어주는 것조차 쉽지 않다면,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저자는 말한다. 싸움은 "저 이가 운다고 아는 일"에서 시작된다고.
"당신은 인권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막상 이렇게 질문을 받으면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책은 우리가 인권이라 부르던 많은 것들이 사실 인권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인권은 개인의 태도가 아니라, 국가가 시민의 존엄을 지키겠다고 한 약속이다. 책은 인권운동 이론과 사회심리학을 바탕으로, 인권의 본질부터 연대의 실천까지를 차근차근 짚어 나간다.
하지만 인권의 본질을 안다고 해서 자동으로 행동하게 되는 건 아니다. 왜 어떤 사람은 광장에 서고, 어떤 사람은 침묵할까. 저자는 나쁜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하나씩 보여준다. 혐오는 본능이 아니라 학습된다는 것, "약자의 미덕"이라는 말에 숨어 있는 폭력,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차별조차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 우리를 둘러싼 억압의 장치들은 생각보다 훨씬 정교하다.
그렇다면 그 장치에 맞서는 힘은 어디에서 올까. 시설에 갇혀 있던 장애인이 거리로 나오는 순간, 성소수자가 벽장을 열고 퍼레이드의 행렬에 서는 순간. 반인권에 맞서는 첫걸음은 '드러나는 것'이다. 저자는 이 과정을 자력화라고 부른다. 스스로 존엄을 느끼고, 내 삶을 내가 결정하며, 세상을 바꾸겠다고 마음먹는 힘이 자라나는 과정이다.
하지만 혼자만으로는 부족하다. 강한 정의감을 가지고 있어도 실제로 몸을 움직이는 사람은 소수다.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건 거창한 목표만이 아니다. 함께 보내는 시간 그 자체에서 오는 기쁨, 내가 아끼는 사람의 눈빛, 그리고 '우리'라는 감각, 내가 약자이자 소수자일 수 있다는 자각,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의 연결, 저 사람의 운명이 곧 내 운명과 이어져 있다는 느낌. 이런 것들이 사람을 일으켜 세운다.
우리 역시 약자와 소수자의 자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연약한 우리가 서로의 손을 잡는 일은 동정이 아니라, 우리 존재 자체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깨달음에서 출발한다. 이 책은 그 깨달음에서 행동에 이르기까지, 그 길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가장 정직하게 보여주는 존엄을 향한 우리 모두의 플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