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X 이옥토 리커버 특별판) - 유년의 기억 소설로 그린 자화상 (개정판) 1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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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출판사의 도서 제공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리커버로 다시 읽는 박완서 작가의 유년의 시간.

세 살에 아버지를 잃고, 할아버지 품에서 자라며 또 한 번의 상실을 경험한다.

서울로 올라와 '신여성'을 꿈꾸는 엄마의 교육열, 낯선 도시의 고립감, 창씨개명 압박, 해방 이후의 혼란, 오빠의 선택과 전쟁으로 생긴 빈자리까지-

한 소녀의 시간은 가족사를 넘어 시대의 생활사로 이어진다.

이 책이 오래 남는 이유는 거창한 해석이 아니라 장면의 밀도 때문이다. 길바닥에 패대기쳐진 문패, 눈물보다 먼저 치밀던 모욕감, 변소 가는 일에도 눈치를 보던 셋방살이, 오후가 되면 공장으로 변하던 교실.

박완서 작가는 이 기록에서 자전적 기억을 통해 시대를 증언한다. 상실과 그리움, 모욕과 자존, 부끄러움과 분투는 당대 수많은 이들이 겪어야 했던 현실의 장면으로 남는다. 읽다 보면 개인의 체험과 공동의 현실이 경계 없이 맞물려 있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하게 된다.

어린 시절의 설움과 억울함, 심지어 부끄러움까지 놓치지 않은 이야기들은 뒤늦게라도 정면을 보게 만드는 힘이 된다. 개인의 목소리로 시작했지만, 그 안에는 해방과 전쟁, 식민과 분단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 한 세대를 넘어, 지금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 89p

나는 마치 상처 난 몸에 붙일 약초를 찾는 짐승처럼 조급하고도 간절하게 산속을 찾아 헤맸지만 싱아는 한 포기도 없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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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의 땅 2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김희진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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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를 살리는 건 능력일까, 관계일까 ❞





제3차 세계대전 이후,
과학자 알리스 카메러는 '변신 프로젝트'를 통해
하늘·땅·바다에 특화된 신인류를 만든다.



공중을 나는 에어리얼
지하 어둠 속에서 사는 디거,
바닷속을 유영하는 노틱.
그들은 더 강하고, 더 잘 적응한다.





그러나 그 강함은 곧 서로를 경계하게 만들고,
능력은 생존의 무기가 아니라 갈등의 원인이 된다.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생존한 사피엔스 노부부가 동물원에 전시된 순간이다.
노틱 아이들이 그들을 보며 웃는다.
과거의 인간은 이제 구경거리에 불과하다.
종만 바뀌었을 뿐, 차별과 지배는 되풀이된다.





알리스는 창조자이자 동시에 실패자이다.
새로운 인류로 구원을 꿈꾸지만,
끝내 남긴 건 후회와 질문뿐이다.



날개를 달아도, 물속을 헤엄쳐도, 땅속을 파고들어도
공존하지 못한다면 멸망은 피할 수 없다.
능력은 생존을 가능하게 하지만,
관계만이 생존을 지속하게 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이번에도 질문을 남긴다.
기술이 인류를 구원할까, 아니면 서로 붙드는 힘이 구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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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고전이 좋았을까 - 오래된 문장이 건네는 따뜻한 위로
신은하 지음 / 더케이북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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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대개 줄거리나 명문장을 먼저 떠올린다.

이 책은 그 습관의 우선순위를 다시 세운다.

고전을 오래된 텍스트가 아니라, 하루를 점검하는 도구로 다룬다.




저자는 해설을 길게 늘어놓기보다

독자가 내일 바로 써볼 기준을 알려준다.




이해를 넓히는 대신 판단의 순서를 바꾸기,

감정의 온도에 기대기보다 지속 가능한 관계를 택하기,

성과의 언어에 갇히기 전 짧은 보류와 간격 두기.




마지막 장은 거창한 교훈보다

삶과 문장을 잇는 쓰기로 마무리된다.




출근 전 3분 정리,

말하기 전 10초 멈춤,

보고서 우선순위를 한 칸 고치기.

이런 작은 습관이 쌓이면,

독서는 취미를 넘어 일상이 된다.






🔖 어쩌면 고전이란 읽는 이에게만

조심스레 문을 열어주는

'비밀의 화원'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 고전 속 다정한 속삭임과

통찰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한 권의 고전을 펼친다.






준비가 덜 되어도,

지금의 나로 읽어도 된다.

거창한 해석이 없어도

작은 선택이 달라지면

그게 읽기의 결과라고 믿는다.




'지금의 나'로 고전을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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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을 여는 마음
안리타 지음 / 홀로씨의테이블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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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걷던 고요에서 시작해,

타인을 향해 창을 여는 산책 에세이.




그중 가장 오래 남은 챕터, 다정의 운명

그 장을 지나며, 배운 다정이 오늘은 나에게도 돌아온다.

부드러움이 아니라, 오래 버티게 하는 방식으로.






"말은 마음과 마음 사이를 맺는 약속"

약속이라면 속도보다 밀도.

빨리 퍼지는 말 대신, 늦게 피어나도 오래 남는 말을 택한다.






가족이 잠든 새벽 1시, 스탠드 아래.

"충분히 잘하고 있어."

그 한마디가 그 밤을 건너게 했다.

손난로 같은 말은 금방 뜨겁고 금방 식는다.

나는 내일도 모레도 찾아갈 수 있는, 돌아갈 주소가 되는 말을 원한다.






"말이 다정할 수 있는 것은 마음이 타인을 향해 있기 때문이다 "

그래서 나는 예쁜 말보다 버티는 말을 고른다. 




다정은 예쁨이 아니라 버팀의 방식.

그리고 그 버팀은 타인을 향하면서도

결국 나를 무너지지 않게 받쳐준다.



크기보다 깊이, 효과보다 지속.

누군가에게, 그리고 나에게-

정확히 닿는 한 줄을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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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여전히 빛난다 - 무력한 일상에서 찬란함을 발견하는 철학
로랑스 드빌레르 지음, 이주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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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드빌레르가 말하는, 일상 속 '아름다움'을 다시 보는 법

우리는 요즘 제대로 '본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진짜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아름다움을 경험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꾸며진 자기 자신을 내려놓는 일이다"(p.20).

내려놓아야 비로소 보인다.

퇴근 시간, 복도 끝 창문에 걸린 노을을 봤다. 수없이 본 하늘이었지만 그날은 달랐다. 계획도 필터도 없이, 그냥 만났기 때문이다. "찬란함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사건과 같다"(p.34). 그 순간 우리는 관람자가 아니라 당사자가 된다.

드빌레르는 '보는 일'을 감각의 총동원이라고 설명한다. 듣고, 맡고, 만지며, 생각이 뒤따를 때 장면은 오래 남는다. 더 많이 이루는 것보다, 무엇에 붙잡히는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단순함이 필요하다. 첨가제와 필터가 늘어날수록 본질은 멀어진다. 목적 없이 받아들일 때 세계는 스스로를 드러낸다.

침묵도 도움이 된다. 소음을 잠깐 꺼두고, 찰나를 프레임에 가두기 전에 먼저 온몸으로 받아들이자. '로그아웃'은 단절이 아니라 잠깐의 정지다. 연결을 늦추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되찾자. 그 빈 시간이 감각을 깨운다.

⠀⠀

이 책은 아름다움을 평화와 조화로만 그리지 않는다. 상처와 균열을 통해 더욱 빛나는 순간들도 있다. 그렇기에 보는 사람에게는 책임이 따른다. 이미 존재하는 찬란함을 알아보는 눈은 나와 타자의 존엄을 함께 비춘다.

결론은 단순하다. 잘 찍기보다 제대로 보기. 이름 붙이기보다 머물기. 예고 없이 도착한 장면 앞에서 한 번은 온몸으로 서 보기. 세계가 달라지지 않아도, 내가 보는 방식은 분명 달라진다. 그리고 그 변화만으로도, 오늘의 행복은 이미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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