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리뷰는 출판사의 도서 제공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리커버로 다시 읽는 박완서 작가의 유년의 시간.
⠀
⠀
⠀
세 살에 아버지를 잃고, 할아버지 품에서 자라며 또 한 번의 상실을 경험한다.
서울로 올라와 '신여성'을 꿈꾸는 엄마의 교육열, 낯선 도시의 고립감, 창씨개명 압박, 해방 이후의 혼란, 오빠의 선택과 전쟁으로 생긴 빈자리까지-
한 소녀의 시간은 가족사를 넘어 시대의 생활사로 이어진다.
⠀
이 책이 오래 남는 이유는 거창한 해석이 아니라 장면의 밀도 때문이다. 길바닥에 패대기쳐진 문패, 눈물보다 먼저 치밀던 모욕감, 변소 가는 일에도 눈치를 보던 셋방살이, 오후가 되면 공장으로 변하던 교실.
⠀
박완서 작가는 이 기록에서 자전적 기억을 통해 시대를 증언한다. 상실과 그리움, 모욕과 자존, 부끄러움과 분투는 당대 수많은 이들이 겪어야 했던 현실의 장면으로 남는다. 읽다 보면 개인의 체험과 공동의 현실이 경계 없이 맞물려 있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하게 된다.
⠀
어린 시절의 설움과 억울함, 심지어 부끄러움까지 놓치지 않은 이야기들은 뒤늦게라도 정면을 보게 만드는 힘이 된다. 개인의 목소리로 시작했지만, 그 안에는 해방과 전쟁, 식민과 분단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 한 세대를 넘어, 지금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 89p
나는 마치 상처 난 몸에 붙일 약초를 찾는 짐승처럼 조급하고도 간절하게 산속을 찾아 헤맸지만 싱아는 한 포기도 없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