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몇분들께서 ID 얘기를 꺼내시니, 나도 오랜만에 페이퍼도 채워볼 겸 얘기 보따리를 풀어봐야겠다.

내 아이디는 ziririt 이다. '지리리'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지리리트'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의 의도는 '찌리릿'이었다. 이 ziririt이라는 아이디는 1995년부터 사용을 했다. 10년이 되었다. 아마 대한민국의 웬만한, 아니 웬만하지 않은 사이트에서도 ziririt이라는 아이디는 있을 것이고, 그 아이디는 모두 99.99% 나일 것이다.

지지난달 까지만해도 ziririt.com, ziririt.net 도메인도 몇년간 갖고 있었고, 한글도메인 찌리릿.com도 갖고 있었다. 그만큼 'ziririt 찌리릿'이라는 아이디에 대한 나의 애정은 뜨겁다. (몇년간 실제로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돈만 몇만원씩 내는 게 아까워.. 지지난달에 도메인이 만료되었음에도 참고 있따... )

이 ziririt은 군대 첫 휴가로 집에 오는 버스 안에서 생각을 해 낸 것이다. 군대 첫 휴가와 ID... 뭔가 어울리지 않지않은 이야기. ^^

3학년 중반에 군대를 갔었는데, 대학 2년반동안 난 PC통신에 미쳐있었다. 지금 인터넷서핑에 미쳐있는 것의 3배 정도는 미쳐있었는데... 당시 용어로 'PC통신광 중의 광'이었다. 당시는 전화와 모뎀으로 통신을 했었는데, 집에서는 전화세와 하루 온종일 통화중이라는 2대 악재로, 거의 집안의 원흉으로 지목하고 탄압을 하셨다.

다행히 2학년 때는 단대 학생회 집행부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학생회실 전화를 이용해서 PC통신을 실컫 해보자'는 못된 아이디어로 학생회의 원흉, 단대 행정실의 적이었다. 아침 8시에 학생회실에 와서, 수업도 안 들어가고, 밤11시반 막차를 타고 집에 갈 때까지 PC통신이나 하고 앉아있으니.. 그 전화세며, 그 통화중의 폐혜는 엄청나게 컸을 것이다.

그때 무엇을 하느라고 그렇게 정신이 팔렸는지, 지금은 생각이 잘 나질 않는다. 아마 학생회에 관심을 가진 이후로는 '찬우물'이나 '바통모(바른통신모임)'를 하면서, HWP자료를 다운받았겠지만... 1학년때는 무엇을 했는지 도통 기억이 없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포르노나 성인물도 없던 때라, 참으로 건전하게 통신을 했을거라고 추측한다.(제대하기 직전부터  PC통신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등에도 성인물 서비스를 했다. 당시 돈으로도 아주 이용료가 비쌌다. 제대하자 말자 여기에 정신이 잠깐 팔려서 한달 동안 몇만원을 날린 적이 있었다는 아주 아픈 기억이...)

검은색 바탕에, 직선 테이블 안에 빼꼭히 차있는 글씨들... 100KB HWP 파일 하나 받는데도 몇십분을 다운로드 화면만 바라봐야했었던 그 PC통신... ^^ 난 그게 너무 좋아서, '호롱불'이라는 사설 BBS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BBS도 만들어 운영을 했었다.

암튼... 이런 PC통신 중독자가 군대를 가게 되었는데.. 물론 군대를 가게 되어서 PC통신의 중독은 추억이 되었다. 손이 근질근질하고 눈앞에는 '이야기'라는 통신 프로그램이 아른거렸지만.. 군대기 떄문에 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첫 휴가(5박6일이었던 걸로 기억...)를 나오는 버스 안에서 난 '5박6일 내내 PC통신만 해야지'라는 다짐과 함께 그 짧은 시간을 멋지게 보낼 PC통신 아이디가 필요했다. 당시 나우누리나 천리안에 가입하려면 가입비 1만원 + 종량제 이용료가 필요했다.(짧은 휴가 5박6일 동안 무슨 영화를 누릴려고 이 막대한(군발이에게는 너무나도 막대한) 돈을 쏟아부을려고 했는지 지금은 기가 막히지만...)

아무도 쓰지 않는 전 세계 유일무이한 네이밍이어야하며, 뜻도 좋아야하며, 영원히 간직할만한 네이밍이 필요했다. 버스가 집에 다다를 무렵. 내 머리에선 "찌리릿~"한 단어가 떠올랐다. 바로 'ZIRIRIT'이었다. 첨에는 Z가 2개인 zziririt 이 '찌리릿'이 아닐까 혼란스러웠지만... 단어 하나라도 짧아야한다는 생각에 그냥 ziririt!으로 결정.

군대 가기 전에는 나우누리를 썼었는데... 버스 안에서 읽은 PCLINE이라는 잡지에서는 어느 멋진 천리안의 동호회를 안내하고 있어서 천리안으로 가입하기로 결정. 아! 그런데 이 못된 천리안은 사용자에게 Z로 시작하는 아이디를 제한하고 있었다. Z는 천리안 운영자들만 가질 수 있는 아이디라나. 윽~~

그래서, 나우누리로 가서 ZIRIRIT으로 가입을 했다. 그동안 못 갔던 찬우물에 가니, 수백개의 '문건'들이 있었다. '서사협(서울지역사범대학생협의회)'에 가니... 그렇게도 읽고 싶던 교육운동 자료가 수십개... 너무너무 행복했다. 다운로드 받아서 다 읽을 시간도 없었다. 대충 보고 또 다운받고, 또 다운받고...

역시 중독은 중독이었다. 자랑스런 아이디 ZIRIRIT도 생겼겠다, 나우누리 외에 내가 있던 다른 동호회는 어떨까 너무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당시에는 가입비 낸 회원이 아니면, 천리안 같은 서비스에 접근하는 것도 힘들고, GUEST로 로그인한다고 해도 동호회 게시판, 자료실에는 근접도 하지 못하던 폐쇄적인 문화였다) 그래서 천리안은 naziririt으로 (아.. na를 붙여야한다니... ㅠ.ㅠ 그래 '나 찌리릿'이야~), 하이텔은 ziririt으로 가입에 성공. 나의 휴가를 지탱해줄 용돈은 다 여기에 쏟아부었다.

이렇게 해서 나의 첫 휴가는 막을 내렸고, 난 겁대가리 없게도 찬우물이나 맑스연구회같은 동호회에서 다운만 받고 제대로 읽지 못한 문건을 프린트(당시엔 도트 프린터였죠. 정말 너무너무 시끄러웠어요. 밤새도록 몇 백장을 뽑아내느라 우리집에서는 또 하나의 원흉 ㅠ.ㅠ.)해서 군복 속에 평평하게 넣어서 부대에 복귀를 했다. 위병소에서 휴가갔다가 돌아온 사람들의 소지품이나 복장 검사를 하는데, 얼마나 진땀이 나던지...

(이 위험천만한 일은 이후 모든 특박과 휴가마다 베짱 좋게 이루어졌고, 급기야, 제대를 한달 남겨둔 어느날 기무사의 특별 보안감사 때 걸려버려... 남한산성에 끌려갈 뻔 했다. '이제 제대 1달 남은 사람 선처해달라'고 우리 대대장이 기무대장한테 싹싹 빌어서야 겨우 남한산성행은 피할 수 있었고, '군생활 동안 읽었던 책, 문서, 휴가 나와서 만난던 사람들, 장소'를 100페이지 가깝게 쓰고 풀려났다. 정말 너무너무 다행히도, 남한산성은 안 갔지만 그 벌로 제대하는 날까지 열외도 못하고, PX에서 빵과 커피를 팔았다. 말년병장이 빵돌이를 하다니.. ㅠ.ㅠ)(주: 항상 있어왔겠지만.. 95년~97년에는 유난히 군대 내의 좌경학생 색출과 조직연루사건이 심했던 것 같다. 난 정말이지 'PC통신의 읽을거리를 좋아했던 개념없는 군발이'였지  '좌경'도 아니었는데.. '실적을 중시'여기는 우리 부대 기무부대의 실적 희생양이 된 것이다. 우리 대대장 말이 "내가 너를 살렸다"이지, 사실 캐봐도 별게 없어서 살아났을 것이다. 내가 '좌경학생'이면.. 우리나라 3분의1은 다 최좌경국민일테니.. ^^)

이런 나의 PC통신에 대한 광적인 열정은 제대 후 복학해서도 이루어졌고, 학교 전체 BBS를 만들어 직접 운영하기에 이르렀고, 학교 삐딱이들의 홈페이지를 만들어운여하기에 이르렀다.  PC통신에 대한 열정이 홈페이지로 고스란히 이어졌다.(그리하여, 컴퓨터나 인터넷과는 전혀 무관한, 교사가 될 줄 알았던 사범대생이 웹노가다꾼-웹기획자가 되었다)

얘기가 길었는데.. 암튼.. 나에게는 20대를 광적으로 보낼 수 있는, 그리고 현재 직업으로까지 연결이 되는 운명과도 같은 사랑.. 바로 PC통신이 있었고, 그 정수가 아이디 ziririt 이다. 아직도 난 ziririt이고, 앞으로도 난 ziririt 일 것이다. 나의 꿈은(그냥 막연한 꿈) '찌리릿 커뮤니케이션 ziririt Communications'라는 커뮤니티 회사를 차리는 것이고.. ^^

하지만.. 이름 하나 쟁취하는게 뭐가 대수랴. 그 이름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는가가 훨씬 중요할 것이다. 아이덴티티... .... 존재를 증명할 무언가를 해야하는데... 그냥... 그럭저럭 이러고 있다. 찌리릿~하고 통하는 세상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나를 다시 한번 꿈꾸며...

p.s.)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한잔(맥주 + 어느어느 지방의 이상한 전통주 + 소주 + 집 구석에 몇년을 처박혀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었던 이름도 모를 불량 양주)을 한터라... 지금 쓰고 있는 이 페이퍼.. 내용 아주 이상할 것 같네요. 음주 페이퍼는 하지 않아야하는데... 이상하게도 '오늘 꼭 하나 쓰고 자자'는 불끈한 생각이 드네요. 거참.. 암튼.. 음주 페이퍼 이해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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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4-09-12 0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탐닉하던 분야를 직업으로 발전시키신 열정이 존경스럽습니다. 그 열정에 저 찌리릿~ 감전됬어요..@@;;

2004-09-12 0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굼 2004-09-12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전 통신시절엔 컴을 별로 접해보질 못해서^^;;
'Z는 천리안 운영자들만 가질 수 있는 아이디'...거참...특이하네요; 운영자들은 별로 자유가 없었던게로군요^^;;

로드무비 2004-09-12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름 참 좋아요.
처음엔 장난스럽게 여겨졌는데...
멋지네요, 인상적이고...^^

마태우스 2004-09-12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찌리릿이라는 아이디, 우리말로 하면 좋은데 영어로 하니까 좀 어려워 뵈네요^^

nutmeg 2004-09-13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는 지난 3년간 그대를 '좌경'이라 생각했었는데요 @_@

진/우맘 2004-09-20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그나저나 글 중간의 저 '단대'는, 단국대가 아니라 단과대를 뜻하는 거겠죠?
전 또, 혹시 제 선배님인가 해서...^^;

나답게 2004-09-24 0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우누리 '찬우물'에서 너를 처음 만났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줄도 모르고 정팅에서 같은 지역 사람을 만났을 때 얼마나 반가웠던지..
나도 갑자기 그때가 생각나면서 미소가 지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