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 않은 좋은 책들이 집에 

천 권 쯤 있을 듯. 그 중 이것 뽑아 보았다. 

<플로베르와 마담 보바리: 이중의 초상>. 저자는 플로베르의 편지들, 모던 라이브러리판 <마담 보바리>를 

영역했고 장 콕토의 전기로 전미도서상을 받았던 Francis Steegmuller. 


"인트로덕션"이 이런 문장들로 시작한다: 


"프랜시스 스티그물러와 구스타브 플로베르는 친구가 될 운명이었다. 

우선 스티그물러의 문장 감각이, 문학적 탁월함과 예술 전반에 대한 그의 헌신과 함께, 플로베르를 즐겁게 했을 것이다. 두 사람이 공유하는 건 이외에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어떤 품위 지향(a certain high-mindedness), 글쓰기의 존엄성에 대한 믿음, 위대한 예술 작품 앞에서의 진정한 겸손이 있다. 두 사람 다 엄격함과 단련을 중시했고 허세 혹은 범용함을, 이 둘이 공존하는 경우엔 더더욱, 견디지 못했다. 


하지만 두 사람을 가르는 차이도 많다. 

플로베르는 과하고 무례한 사람일 수 있었다. 그에게 똑같은 농담을 백 번 반복하고 할 때마다 어김없이 폭소하는 능력이 있었다. 달리 말하면, 때로 그는 같이 있기 고역인 지루한 사람이었는데 스티그물러는 결코 그렇지 않았다. 플로베르의 불같은 성격, 분노의 폭발, 호전적 태도, 고집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가 하면 프랜시스 스티그물러의 길었던 생애 동안 그를 알았던 누구든, 그의 분별과 섬세함을, 그가 하는 모든 일에서 그가 보여주었던 우아함을 기억할 것이다." 




(*프랜시스 스티그물러, 오른쪽은 그의 아내 셜리 해저드. Shirley Hazzard. 

작년 타계했다고 하고 그녀 자신의 말로 "우리에게 그 증거가 있는 내세는 예술 뿐 art is the only afterlife of which we have evidence" 이런 문장을 인용하는 부고기사가 검색된다). 


플로베르에게는 없었고 스티그물러에겐 있었던 것. 

분별 (discretion). 

섬세함 (refinement). 

우아함 (elegance). 


한국은 이런 것들에 얼마나 적대적인 곳인가 (......) 

이런 것들 가진 사람이 얼마나 드문 곳인가. 왜 그런질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가?; 우리가 아는 게 정답일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이런 착잡한 생각에 순간 빠져 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