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여행의 도중
호시노 미치오 지음, 박재영 옮김 / 엘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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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여행의 도중
 


매일매일의 생활 속에서 '지금, 이순간'이란 무엇일까? 문득 생각해보니
내 경우에는 그것이 '자연'이라는 말에 도달한다. 눈에 보이는 세계만이 아니다. '
내면의 자연'과의 만남이다.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낸다기보다 그저 흘러가는 시간을 되찾는 것이다.  -p 16


알래스카 설원에 생을 바친 사진작가의 에세이라는 말에 한번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땅에 대한 호기심으로 무심코 읽게 된 <긴 여행의 도중>은 진실되고 단정하고 편안한 문장들로 알래스카의 다채롭고 생명력 넘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알래스카는 나에게 단지 미지의 광활한 얼음의 땅, 사람이 살기 힘든 척박한 땅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알래스카는 나에게 척박한 땅이지만 꿋꿋히 생명력을 불어넣어 살아가는 생동감 넘치는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 되었다. 추운 것을 싫어하는 나에게 겨울은 항상 피하고 싶은 계절이다. 그래서 여행을 가도 추운 나라들은 피해 여행을 간다. 그래서 한번도 알래스카를 가보지 않았고 가보겠다는 생각조차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알래스카 여행을 꿈꾸게 되었다.  알래스카의 광활한 자연과 해가 지지 않는 여름의 백야와 암흑으로 뒤덮이는 겨울의 긴 밤, 장대한 브룩스 산맥 골짜기를 완만하게 흐르는 신제크 강,  극북의 끝없는 벌판,  숲과 빙하라는 상반된 모습이 함께 있는 땅, 피오르 지형으로 둘러싸인 다도해, 그리고 그 곳에 찾아오는 혹등고래를 꿈꾸게 되었다.

 


알래스카의 아름다운 자연은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기에 더욱 깊은 빛을 감추고 있다.

분명 사람은, 언제나 각자의 빛을 찾아다니는 긴 여행의 도중일 것이다. -p 45


마음에 와 닿았던 문장들. 이 문장들을 읽으며 단지 종이에 인쇄되어 있는 검은 잉크가 아니라 정말로 마음에 와닿고 위로를 받았다. 때로는 긴 위로보다 짧은 풍경이 더 깊은 울림을 주는 것 같다. '각자의 빛'을 찾아다니는 긴 여행 속에서 방황하고 있는 나에게 이 책의 알래스카의 풍경들은 춥지만 눈처럼 포근하게 느껴졌다.
 


제인 구달과의 아프리카 탄자니아 여행기도 이 책에 담겨있다. 저자가 그녀와 함께 탕가니카 호반의 곰베 숲을 찾아간 기록들을 보며 누군가와의 만남은 더 넓은 세계를 보게하고 그 풍경을 깊이있게 볼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여행기였지만 아프리카의 자연은 뜻밖의 근사한 저녁식사처럼 알래스카의 풍경과는 또다른 설렘과 호기심을 가져다주었다. 알래스카 여행기만을 기대했던 책 속에서 뜻밖의 선물을 받은 느낌이다.
 


혹등고래가 긴 잠수와 바다 표면 밖으로 힘차게 물을 내뿜는 모습을 직접 내 눈으로 보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게 만들었던 문장, 영상으로만 봤던 고래가 나에겐 전부이란게 너무 속상하게 느껴졌던 문장이었다. 모든 고래에게 고유의 모양과 무늬가 있다는데 날카로운 톱니 모양과 선명한 흰무늬의 꼬리지느러미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이 책에서는 혹등고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혹등고래가 정확히 뭔지 몰라 직접 찾아보았다. 이 책에 호시노 미치오의 사진들도 실려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드는 대목이었다.



이 밖에도 나의 조잡한 문장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정말 경이롭고 황홀한 풍경들을 알려주었던 <긴 여행의 도중>은 읽으면 읽을 수록 호기심과 기대감을 갖게하는 에세이였다. 이 책의 저자 호시노 미치오는 43살의 나이에 불곰에게 습격당하는 사고로 생을 마감했다는데 그의 열정과 알래스카의 숭고한 풍경들을 좀 더 많은 사진집과 에세이로 만날 수 있다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절실하게 느껴졌다. 이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사람의 말에 감동과 위로를 받는 것보다 사진조차 실려있지 않은 풍경에 위로를 받았다. 비록 저자의 설명뿐인 알래스카의 풍경이었지만 문장너머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풍경이 마음을 설레게 했다. 알래스카의 자연 만큼이나 알래스카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오랫동안 잔잔한 여운을 남긴 이 책을 읽으며 사람과 자연과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자연 속의 풍경을 어쩌면 당연하게 느낄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이 책 덕분에 알래스카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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