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튀세르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재론)








엘리엇의 ꡔ이론의 우회ꡕ(1987, 국역: 새길, 1992)는 반(反)-반(反)-알튀세르주의라는 입장에서 알튀세르주의의 지속불가능성을 주장한다. 그는 재판(2007년 예정) 서문에서 반-반-알튀세르주의의 모호성을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알튀세르주의의 지속불가능성을 고집하고 있다. 그의 입장은 결국 마오주의로 인한 트로츠키주의의 ‘무시’ 또는 ‘곡해’라는 쟁점을 제기하려는 것인데, 이것은 사실 캘리니코스의 입장과 거의 동일한 것이다.

캘리니코스는 반-알튀세르주의로 특징지어지는 클리프 그룹의 일반적인 경향에 반대하여 반-반-알튀세르주의를 주장한다(캘리니코스와 리즈 사이의 논쟁은 ꡔ현대 프랑스 철학의 성격 논쟁ꡕ, 갈무리, 1995를 참조하시오). 참고로, 만델 그룹도 반-알튀세르주의로 특징지어진다는 데서는 마찬가지다(그러나 만델 그룹의 초자유주의적 경향으로 인해 뱅상은 네그리와 연대하여 ꡔ전미래ꡕ를 창간하기도 한다).  

캘리니코스가 주장하는 ‘알튀세르 효과’는 다음과 같다. 우선 긍정적 효과는 헤겔주의 비판이다. 그러나 헤겔주의 비판(특히 루카치와 프랑크푸르트학파 비판)을 구체화하는 경제학 비판이나 이데올로기 비판은 무시하고 있다. 그리고 물론 헤겔주의 비판의 동기로서 스탈린주의 비판도 무시하고 있다. 반면 부정적 효과로는 특이하게도 알튀세르에 대한 니체와 하이데거의 영향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알튀세르의 철학을 모종의 ‘차이의 철학’(또는 다원주의 또는 포스트구조주의)으로 간주한다.

그런 평가를 근거로 해서 캘리니코스는 알튀세르의 자기비판을 부정하고 인식론과 최종심(특히 생산력)의 복권을 주장한다. 전자를 위해서는 바슐라르와 스피노자 대신 라카토스에게 주목하고, 후자를 위해서는 마오주의 대신 코언이 주창하는 분석 마르크스주의에 주목한다. 참고로, 또 다른 트로츠키주의자 브레너는 분석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하면서 이른바 ‘정치적 마르크스주의’를 제시한다(그러나 그가 말하는 정치 또는 계급투쟁의 의미는 아주 모호할 따름이다).

엘리엇과 캘리니코스의 입장에 대해서는 알튀세르적인 스탈린주의 비판이라는 맥락에서 이미 자세하게 비판한 바 있다(윤소영, 「알튀세르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ꡔ문학과 사회ꡕ, 1988년 겨울 참조). 여기서는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라는 맥락에서 알튀세르의 자기비판의 유효성에 대해 좀더 자세하게 설명하면서 그들의 반-반-알튀세르주의에 대해 다시 한번 비판해보려고 한다.


        

ꡔ마르크스를 위하여ꡕ(1960-65), ꡔ‘자본’을 읽자ꡕ(1965)


알튀세르의 ꡔ마르크스를 위하여ꡕ에 붙인 서문(1996)에서 발리바르는 알튀세르의 철학을 절단과 토픽, 구조인과성과 과잉결정성, 이데올로기라는 세 가지 개념 또는 질문을 중심으로 정리하고 있는데, 이것은 사실 「철학에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인가? (아미앵의 주장)」(1975)에서 알튀세르 자신이 인식과정, 최종심, 이론적 인간주의 비판에 대한 테제를 강조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초기 알튀세르가 강조하는 인식과정(또는 ‘이론적 실천’)의 이론은 넓은 의미에서 경험주의로 특징지어지는 인식론(인식을 ‘법적으로’ 보증하는 전통적 철학)에 대한 비판을 시도한다. 알튀세르는 전자와 후자를 ‘épistémologie’와 ‘théorie de la connaissance’라고 부르기도 한다. 알튀세르의 이런 시도는 마르크스를 (뉴튼이나 다윈이 아니라) 갈릴레이와 동일시함으로써 결국 실증주의적 방법론으로 회귀하는 델라 볼페의 시도와도 구별되는 것이다.

알튀세르의 인식론 비판은 바슐라르의 ‘역사인식론’에서 출발한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는 ‘과학의 역사’에 대한 ‘과학의 철학’의 우위로 특징지어지는 역사인식론을 변형시킨다. 발리바르가 바슐라르의 인식론적 ‘단절’(rupture)과 알튀세르의 인식론적 ‘절단’(coupure)의 구별을 강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From Bachelard to Althusser: The Concept of 'Epistemological Break'"(1977), Economy and Society, August 1978, 국역: ꡔ이론ꡕ, 1995년 겨울 참조).

참고로, 바슐라르는 과학활동의 중심을 연구로 설정하고, 실험(기술)과 교육은 그 응용일 따름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캉기옘이 지적하듯이 과학적 연구 이전에 이미 실험(기술)과 교육이 존재하는 의학의 경우에는 응용이 아니라 융합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실제로는 바슐라르가 준거하는 물리학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물론 알튀세르가 지적하듯이 마르크스주의와 노동자운동의 관계도 응용이 아니라 융합으로 특징짓는 것이 옳다.

바슐라르의 역사인식론과 구별되는 인식론 비판을 위해서 알튀세르는 스피노자(「인식개선론」)의 방법에 주목한다. 즉, 먼저 도구(개념)를 갖고 있어야 그것으로 새로운 도구(개념)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알기 위해서 안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안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즉 먼저 진리적 관념을 갖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Habemus enim ideam veram)].” 따라서 진리적 관념에서 그 자신[동시에 오류적 관념]에 대한 관념이 발생한다. 즉 “진리는 그 자신[동시에 오류]의 지표(index sui)다”.  

게다가 알튀세르는 바슐라르와 스피노자의 인식과정론을 마르크스(1857년 「서론」)의 방법과 결합한다. 즉, 추상에서 구체로 상승하는 개념의 전개(즉 이론)에 의해 사고구체물은 현실구체물을 영유 또는 재생산한다는 것이다. 그런 결합의 결과가 바로 G I(인식의 대상)과 G II(수단)와 G III(생산물)로 구성되는 인식과정에 대한 셰마다. G I은 스피노자의 가상 또는 마르크스의 표상(예: 상품 일반 또는 단순상품생산), G II는 개념(특수 상품으로서 화폐와 노동력), G III는 새로운 개념(자본 또는 자본주의적 생산)을 가리킨다.

G I과 G III 사이에서 인식론적 절단이 발생하는데, 이런 절단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G II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G II가 G III와 마찬가지로 개념이라는 사실인데, 이미 지적한 대로 이것은 스피노자의 방법에 충실한 것이다. 알튀세르는 G II를 ‘문제설정’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 경우에는 개념의 현존이 아니라 부재를 강조한다. 그가 ‘징후적 독해’를 통한 문제설정의 이행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은 마르크스의 문제설정에 대한 징후적 독해의 결과이고, 발리바르의 이데올로기론은 알튀세르의 문제설정에 대한 징후적 독해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알튀세르의 인식과정론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알튀세르는 G I, G II, G III를 스피노자(ꡔ윤리학ꡕ)가 말하는 1종, 2종, 3종의 인식과 동일시한다. 그는 특히 3종의 인식을 (이성과 가상의 결합이 아니라) 보편과 특수의 결합으로 해석하면서 G III와 동일시하지만, G II도 보편과 특수의 결합이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이런 해석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스피노자를 따라 인식(‘이론적 실천’)을 생산적 노동으로 이해하는 데 있다(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인식과정론과 방법론의 차이가 모호하게 된다). 알튀세르의 자기비판이 인식과정론으로서 철학이라는 정의를 투쟁과 봉사로서 철학이라는 정의로 정정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알튀세르의 인식과정론의 짝이 되는 것이 바로 구조인과론이다(‘인식 효과’와 짝이 되는 ‘사회 효과’). 그는 경제라는 최종심을 갖는 생산양식이라는 구조에 주목한다(사실 이런 용어법은 약간 혼란스러운데, 생산양식 대신 사회구성체, 경제 대신 생산양식이라고 부르는 것이 좀더 분명할 것이다). 그러나 구조에는 지배심도 있는데, 착취에 경제외적 강제가 필요한 경우 정치(노예제) 또는 이데올로기(봉건제)가 지배심이 된다. 그리고 착취에 경제적 강제만 필요한 경우에는 경제(자본주의)가 지배심이 된다. 즉 알튀세르에게서 구조는 ‘지배심을 갖는 구조’(structure à dominante)다.

구조인과론은 데카르트적인 기계적 인과론과 라이프니츠적인 표출적 인과론 또는 헤겔적인 유기체적 인과론을 비판하려는 것이다. 우선 기계론은 부분(예: 경제)을 원인으로 간주하는데, 그러나 원인은 전체(사회구성체)다. 반면 유기체론은 전체를 원인일 뿐만 아니라 본질(‘총체성’(totalité)으로서 전체)로 간주하는데, 그러나 전체와 부분의 관계는 본질과 현상이 아니라 오히려 스피노자(ꡔ윤리학ꡕ)처럼 실체(신=자연)와 속성(연장과 사고) 또는 양태(물체와 관념 또는 육체와 정신)의 관계라고 해야 한다(따라서 전체는 부분에 내재하는 원인이다). 이렇게 해서 구조인과론은 기계적 인과론과 유기체적 인과론의 단순성(또는 선형성)을 비판할 수 있다. 즉 구조인과론의 특징은 복잡성(또는 비선형성)이다.

구조인과론은 카우츠키와 스탈린의 경제주의(또는 생산력주의 또는 진화주의)는 물론이고 포이어바흐와 청년 마르크스의 인간주의(또는 의지주의)를 비판하는 것이기도 하다. 경제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스탈린주의(즉 카우츠키주의의 ‘사후 복수’로서 스탈린주의)와 그것에 대한 우익적 비판으로서 인간주의(또는 ‘인간의 얼굴을 한’ 스탈린주의)를 동시에 비판하기 위해서 알튀세르는 레닌과 마오를 매개로 하는 스탈린주의에 대한 좌익적 비판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그 핵심이 바로 헤겔 변증법에 대한 비판인데, 경제주의와 인간주의는 헤겔 변증법의 역사주의(즉 절대정신의 역사철학)를 전도할 따름이기 때문이다(‘빈자의 헤겔주의’로서 경제주의와 ‘부자의 경제주의’로서 인간주의).

구조인과론의 가장 큰 문제는 과잉결정론을 상대화한다는 데 있다. 즉 과잉결정론은 구조인과론의 복잡성을 의미할 따름이다(인과론과 결정론 사이의 관계는 일단 논외로 하자). 이런 문제는 특히 재생산과 이행의 관계에서 드러난다. 정세에 따른 모순들의 전위(또는 발산 또는 분리)와 응축(또는 수렴 또는 결합)으로 특징지어지는 과잉결정성으로서 구조인과성에 따라 재생산과 이행을 설명하려는 시도에는 고유한 난점이 있기 때문이다.

재생산과 이행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시도한 것은 사실 발리바르다. 그는 먼저 ‘역사의 동력’으로서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1859년   「서문」)과 계급투쟁(1848년 ꡔ공산주의자 선언ꡕ) 사이의 긴장에 주목한다. 나아가 그는 공시성과 통시성이라는 구조주의적 개념을 이용하여 재생산과 이행을 설명한다. 그는 공시성과 재생산을 정역학으로 특징짓는 레비-스트로스와 달리 동역학, 즉 구조적 경향으로 특징짓는다. 또 통시성과 이행을 사건의 연속이 아니라 구조의 변혁으로 특징짓는다. 그런데 공시성‧재생산과 달리 통시성‧이행에 대한 설명은 이중적이다.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비조응으로 특징지어지는 이행적 생산양식론(예: 매뉴팩처)과 (필연적) 발생이 아니라 (우연한) 출현으로 특징지어지는 계보학(본원적 축적)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설명의 난점은 우선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비조응으로 특징지어지는 매뉴팩처에서 조응으로 특징지어지는 기계제대공업으로의 이행에 대한 설명이 목적론적이라는 것이다(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비조응이 헤겔 변증법처럼 내용과 형태의 모순일 따름이라고 비판하면서 알튀세르가 새로이 제안하는 생산양식의 접합론에도 난점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게다가 본원적 축적, 즉 조응으로 특징지어지는 봉건제에서 비조응으로 특징지어지는 매뉴팩처로의 이행에 대한 설명에서는 재생산과 이행이 분리된다(이것은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과 유비되기 때문에 더욱 곤란한 문제다). 특히 ‘구조 그 자체라는 한계’(Schranke)가 아니라 ‘구조 내부에서의 변화의 한계’(Grenze)를 분석하는 동역학(예: 이윤율 또는 지대율 하락이라는 구조적 경향)에서 구조의 변혁으로서 이행의 조건을 도출할 수는 없다. 



ꡔ철학과 과학자의 자생적 철학ꡕ(1967), ꡔ레닌과 철학ꡕ(1968),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들 (연구노트)」(1969)


알튀세르의 자기비판의 필연성을 인식하기 위해서 먼저 ꡔ마르크스를 위하여ꡕ, ꡔ‘자본’을 읽자ꡕ 이후의 연구 계획을 살펴보자. 1965년에 ꡔ마르크스를 위하여ꡕ, ꡔ‘자본’을 읽자ꡕ를 출판한 다음 알튀세르는 마슈레, 바디우, 마트롱과 함께 스피노자를 주제로 하는 1966-67년 연례세미나를 계획한다. 동시에 발리바르(가능하다면 에스타블레)와 함께 ‘절단의 저작’으로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에 대한 저서의 집필도 계획한다.

그러나 1966년 가로디와의 인간주의 논쟁에 프랑스공산당 중앙위원회가 개입하면서 세브(그리고 보카라)가 새로운 이론가로 부상하자, 트로츠키주의와 마오주의(스탈린주의적 분당파)에 대항하여 1964년에 창간된 ꡔ마르크스-레닌주의 잡지ꡕ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랑시에르, 랭아르, 르쿠르 같은 마오주의적 경향의 제자들이 탈당한다.

이런 상황에서 연례세미나 및 집필 계획은 무산되지만, 그러나 알튀세르는 1967년 봄에 ‘스피노자 그룹’이라는 비공개 연구회를 결성한다(또 1963년부터 구상해오던 ꡔ이론ꡕ의 창간도 계획한다). 1969년까지 존속한 이 연구회에는 알튀세르, 발리바르, 마슈레, 에스타블레, 뒤루와 함께 바디우, 토르, 베틀렘, 그리고 알튀세르의 죽마고우인 고드마 등이 참여한다. 또 알튀세르는 1967년 가을부터 1968년 5월 직전까지 발리바르, 마슈레, 바디우를 필두로 해서 페쇠, 레노, 피샹과 함께 ‘과학자를 위한 철학 강의’라는 제목으로 공개강좌를 개최한다.

스피노자 그룹의 연구성과가 바로 알튀세르 자신의 재생산 및 이데올로기론, 에스타블레의 학교 비판, 베틀렘의 사회주의 비판이다. 알튀세르가 발리바르, 마슈레, 뒤루, 바디우와 함께 집필하려던 ꡔ변증법적 유물론의 요소들ꡕ(‘우리의 ꡔ윤리학ꡕ’)은 완성되지 못하지만, 그러나 토론 과정에서 철학의 정의에 대한 정정, 철학의 대상으로서 토픽에 대한 최초의 소묘가 제시된다("Notes sur la philosophie"(1967-68), in Ecrits philosophiques et politiques, Tome II, Stock/IMEC, 1995 참조).

참고로, 1968년 5월 이후 알튀세르와 분리되는 랑시에르, 랭아르, 르쿠르는 나중에 ‘신철학’을 제창하는 글뤽스만과 함께 사르트르 및 푸코와 연대하여 ‘프롤레타리아 좌파’라는 새로운 초자유주의 정파를 결성한다. 또 사회당(분당파) 소속이던 바디우는 1970년 이후 알튀세르와 분리되어 독자적인 마오주의 정파를 구성한다. 랑시에르나 바디우와 달리 랭아르와 르쿠르는 1970년대 초반 알튀세르에게 복귀한다. 마슈레는 1975년 이후 아카데미즘에 몰두하면서 알튀세르에 대해서는 ‘유보’와 ‘침묵’을 고수한다.

알튀세르의 최초의 자기비판은 1966년 문화혁명과 1968년 5월 사이에 시도된다. 우선 ‘과학자를 위한 철학 강의’의 서론인 ꡔ철학과 과학자의 자생적 철학ꡕ에서는 과학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철학을 다시 정의한다. 즉 철학은 더 이상 인식과정론이 아니라 유심론 및 관념론의 과학에 대한 착취에 반대하는 투쟁이라는 의미에서 과학에 대한 봉사로 특징지어진다(나중에 이런 시도를 발전시킨 것이 바스카의 ‘과학적 현실주의’이다). 즉 과학에 대한(de) 철학에서 과학을 위한(pour) 철학으로의 이행이 시도되는 것이다(철학을 ‘이론의 이론’으로 정의하는 스탈린주의의 원천에는 플라톤주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알튀세르의 이런 자기비판은 ꡔ레닌과 철학ꡕ에서 계속되는데, 특히 정치(la politique, 계급투쟁)와의 관계가 추가된다. 즉 과학과의 관계에만 주목하는 ‘일방적’ 정의가 과학과 동시에 정치와의 관계에 주목하는 ‘쌍방적’ 정의로 정정되는 것이다. “철학은 이론에서 정치를 대표하고 정치에서 과학을 대표한다.” 즉 철학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와의 투쟁을 통해 정치에도 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스피노자의 인식과정론 대신 ‘주체 없는 과정’이라는 의미에서의 헤겔 변증법이 마르크스의 ‘비판적인 동시에 혁명적인’ 방법에 적합한 것으로 복권된다.

캘리니코스와 엘리엇은 알튀세르의 자기비판을 (마오주의를 매개로 하는) ‘이론주의’에서 ‘정치주의’로의 후퇴로 특징짓는다. 그러나 발리바르는 알튀세르의 철학적 대상에서 절단의 우위가 토픽의 우위로 이행한다는 데 주목한다. 이는 마르크스주의의 이중적 지위를 인식하려는 새로운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에서 토픽이란 경제와 정치(le politique, 국가)와 이데올로기로 구성되는 사회구성체의 인과율 셰마를 가리킨다. 이런 의미에서 마르크스주의는 헤겔주의와 달리 ‘토픽을 갖는 과학’(science à topique)이다. 그런데 마르크스주의의 유효성의 조건은 노동자운동과의 융합이다. 이런 의미에서 마르크스주의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동시에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와 결합하는 과학이기도 하다.

따라서 알튀세르의 자기비판의 핵심은 1968년 5월에 대한 비판적 평가 속에서 제시되는 재생산 및 이데올로기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초기 알튀세르는 스피노자와 라캉을 따라서 이데올로기 일반의 메커니즘을 ‘현실에 대한 가상화’로 정의한다. 이제 알튀세르는 상징의 문제를 고려하는데, 이데올로기 일반의 메커니즘은 큰 주체가 작은 주체를 호명하는 ‘[현실에 대한] 상징의 가상화’이기 때문이다. 발리바르 식으로 말하자면, 이것은 라캉의 ‘현실(R)-상징(S)-가상(I)’이라는 셰마를 전도시키려는 시도다.

참고로, 경제(또는 생산양식)가 생산수단을 매개로 하는 생산관계로 특징지어진다면, 이데올로기(또는 주체화양식)는 상징을 매개로 하는 교환관계 또는 오히려 교통관계로 특징지어진다. 이데올로기적 실천 속에서 주체는 감정을 교통한다. 따라서 스피노자(ꡔ윤리학ꡕ)가 지적하는 대로 이데올로기(가상과 감정)에 대한 과학적 비판(현실에 대한 지식)은 무력할 수밖에 없고, 이 때문에 이데올로기에 대한 또 다른 비판이 필요한 것이다. 알튀세르가 이데올로기에 대한 문학‧예술적 비판, 특히 브레히트의 소격 효과에 주목하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다만 남는 문제는 브레히트의 소격 효과만으로는 감정을 치료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문학‧예술적 비판으로도 감정을 소멸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윤소영, 「베토벤에 관한 11개의 테제」(1997) 참조).

그러나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에서 더 중요한 것은 이데올로기적 실천이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에 의해서 지지된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이데올로기 일반과 구별되는 역사적 이데올로기에도 주목할 수 있다. 부르주아적인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는 학교와 가족(여기서 민족주의가 유래한다)을 핵심으로 해서 미디어와 문화(여기서 상업화된 오락으로서 대중문화가 유래한다)를 포괄한다. 반면 억압적 국가장치는 군대와 경찰과 관료제를 핵심으로 하는 행정부를 가리킨다. 정당제도를 핵심으로 하는 입법부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에 속하고, 사법부는 억압적 국가장치에 속한다. 

엘리엇이나 캘리니코스처럼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을 기능주의라고 비판하는 것은 경제와 정치와 이데올로기로 구성되는 사회구성체라는 전통적인 토픽이 재생산이라는 새로운 토픽으로 대체된다는 사실, 게다가 이제 생산력에 대한 생산관계의 우위 때문에 재생산은 이행과 분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것이다("Appendice: Du primat des rapports de production sur les forces productives",  in Sur la repro-

duction (1969), PUF, 1995 참조). 요컨대 재생산 및 이데올로기론에 의해 구조인과론의 우위는 과잉결정론의 우위로 변화된다(발리바르, 「이행의 아포리아들와 맑스의 모순들」(1987), ꡔ맑스주의의 역사ꡕ, 민맥, 1991). 또 이행은 경제적 모순과 이데올로기적 모순의 과잉결정 또는 해후(우연한 결합)로 인식된다(「비동시대성」(1988), ꡔ알튀세르와 마르크스주의의 전화ꡕ, 이론, 1993 참조).

참고로, 정치(계급투쟁)가 자율성을 상실하면서 이데올로기(주체화양식)가 경제(생산양식)와 함께 그것의 또 다른 원인(또는 제약이라는 의미에서의 보편상수)이 된다. 경제와 이데올로기는 서로 존재조건이 되는 동시에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사회구성체는 최종심과 지배심을 갖는 구조가 아니다. 따라서 사회구성체는 스피노자적 실체가 아니고, 경제와 이데올로기는 (이른바 ‘평행론’으로 특징지어지는) 속성 또는 양태가 아니다.



재생산과 이행

                       

생산관계의 우위 아래 생산력의 발전으로서 자본에 의한 노동의 포섭 생산관계의 재생산으로서 소유법칙의 영유법칙으로의 반전

생산양식의 동역학으로서 이윤율의 하락과 고정자본의 로지스틱 성장

(선제공격에 대한 방어, 즉 이행의 계기로서 경제적 모순)

↓↑

생산력 발전‧생산관계 재생산‧생산양식 동역학의 조건으로서 주체화양식 또는 인권의 정치

(선제공격에 대한 방어, 즉 이행의 계기로서 이데올로기적 모순)


알튀세르는 1968년 5월을 학생운동과 노동자운동, 즉 이데올로기적 모순과 경제적 모순의 해후로 특징짓는다. 그리고 이런 해후가 이행(응축)이 아니라 재생산(전위)으로 귀결된 이유를 프랑스공산당과 노총이 학생운동의 급진주의(레닌이 말하는 ‘좌익소아병’)에 대해서 잘못 평가한 데서 발견한다. 이것은 오페라이스모의 급진주의를 평의회노조주의로 수용하고 동시에 레닌주의와 평의회주의의 모순을 지양하는 이탈리아공산당과 노총의 경험과 대조되는 것이다. 참고로, 엘리엇은 이 시기의 알튀세르에게 마오주의와 유로공산주의가 공존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아마 1968년 이후 문화혁명이 쇠퇴하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알튀세르가 이데올로기적 반역의 메커니즘을 완전하게 설명하는 것은 아닌데, 이는 인권의 정치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을 아직 지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상징적이고 가상적인 보편성으로서 인권의 정치는 지배자가 아니라 피지배자의 상징과 가상을 보편화한다. 이 때문에 인권의 정치에 모순이 있고 또 자유주의 및 민족주의적 공화주의에 대한 사회주의 및 국제주의적 노동자연합의 반역이 가능한 것이다(이렇게 볼 때 1968년 5월의 이데올로기적 반역이 갖는 초자유주의적 한계를 지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ꡔ존 루이스에 대한 답변ꡕ(1972), ꡔ자기비판의 요소들ꡕ(1972),

「아미앵의 주장」(1975)


1968년 5월 이후에도 알튀세르는 자기비판을 계속한다. 그러나 동시에 스탈린주의와 마오주의의 이중적 공격에 대한 방어를 위해서 ‘가상적’ 정통(스탈린주의와 구별되는 ‘마르크스-레닌주의’ 또는 오히려 ‘마르크스주의적이고 레닌주의적인 전통’)의 재구성에도 몰두하게 된다. 그가 불가결한 역사적 사례 또는 준거로서 현실사회주의와 공산당을 명시적으로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 시기다(이 때문에 그는 트로츠키주의의 유효성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알튀세르를 따라 발리바르가 스탈린주의에 대한 좌익적 비판을 구체화하는 것도 바로 이 시기다. 예를 들어 그는 생산력에 대한 생산관계의 우위라는 관점에서 경제학 비판과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통일성을 복원시키고, 사회주의적 생산양식(국유화 및 계획화)과 그 논거로서 국독자(보카라)를 비판한다. 1980년대 후반 피디(PD)가 알튀세르와 발리바르에게 주목한 것은 특히 이런 맥락에서다(「알튀세르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앞의 글 참조).

현실사회주의와 공산당에 준거해서 가상적 정통성을 재구성하려는 이 시기를 ‘외화내빈’으로 평가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 시기의 자기비판이 모두 무효인 것은 아니다. 우선 알튀세르는 계급투쟁을 더욱 부각시키고 철학을 ‘최종심에서 이론적 계급투쟁’(또는 ‘비철학적 철학’)이라고 정의하면서 절단에 대한 토픽의 우위를 더욱 강조한다.

동시에 ꡔ마르크스를 위하여ꡕ 서문에서 발리바르가 지적하듯이, 알튀세르는 인과성의 ‘임계’이자 이행의 ‘유산’으로서 과소결정에 주목한다. 그는 응축(이행)과 구별되는 전위(재생산)를 과잉결정과 구별되는 과소결정으로 부각시킨다. 게다가 그는 마키아벨리에 대한 비공개강의에서 운(fortuna, 우연)과 덕(virtus, 원인 또는 결정)의 해후를 강조하면서 우연 속에서 필연의 생성이라는 의미에서 ‘우연의 필연’(또는 ‘불가능성의 가능성’)이라는 질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위기의 저작’(1977-78)


그러나 알튀세르는 곧 자기비판을 중단하고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론’을 제시한다(따라서 이제 스탈린주의 비판이나 트로츠키주의와의 논쟁도 무의미해진다). 그는 현실사회주의라는 준거를 기각하고 가상적 정통의 재구성을 포기한다. 게다가 그는 공산당을 ‘계급투쟁의 잠정적 조직형태’로 상대화한다. 그러나 그가 탈당을 고려하는 것은 아닌데, 대신 ‘두 개의 중심의 분리’라는 엥겔스의 테제에 근거하여 마르크스의 마르크스주의에 내재하는 모순, 즉 마르크스의 곤란(경제학 비판)과 공백(이데올로기 비판)에 주목하면서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를 그 쇄신의 기회로 활용하자고 제안한다.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론을 알튀세르의 자기파괴로 인식할 수도 있겠지만(발리바르, 「알튀세르의 침묵」(1988), ꡔ루이 알튀세르, 1918-1990ꡕ, 민맥, 1991), 그러나 알튀세르의 현재성을 확인하는 계기로 인식할 수도 있다(「알튀세르의 대상」(1991), ꡔ알튀세르와 마르크스주의의 전화ꡕ, 앞의 책; "Structural Causality, Overdetermination, and Antagonism"(1990), in Postmodern Materialism and the Future of Marxist Theory: Essays in the Althusserian Tradition, Wesleyan University Press, 1996). 그리고 이를 위해서 절단에 대한 토픽의 우위와 구조인과론에 대한 과잉결정론 및 과소결정론의 우위로 귀결되는 자기비판의 유효성을 강조해야 하는 것이다. 이데올로기 개념의 개조(상징의 가상화, 그러나 동시에 반역의 가능성)와 주체(인간학, 그러나 동시에 인간학 비판으로서 인권의 정치)의 복권을 위한 1980-90년대 발리바르 자신의 작업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The Infinite Contradiction"(1993), Yale French Studies, No. 88, 1995).

참고로, ‘해후의 유물론’은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론과는 조금 다른 문제를 제기한다(윤소영, 「알튀세르의 철학적 유산」의 부록 「알튀세르를 위한 강연」(1994), ꡔ마르크스주의의 전화와 ‘인권의 정치’: 알튀세르를 위하여ꡕ, 문화과학사, 1995 참조). ꡔ마르크스를 위하여ꡕ 서문에서 발리바르가 지적하듯이, 해후의 유물론을 과잉결정(‘우연의 필연’)에 대한 과소결정(‘우연의 우연’)의 우위로 해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해후의 유물론은 인과론과 결정론을 상대화하는 ‘우연의 유물론’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발리바르를 비롯한 알튀세르의 제자들은 대체로 자서전 ꡔ미래는 오래 지속된다ꡕ와 함께 우연의 유물론을 엘렌의 파괴에 뒤이은 자기 자신의 파괴로 해석한다. 그러나 네그리는 이것을 (포스트구조주의로의) ‘방향전환’(Kehre)이라고 해석한다. 또 불연속성뿐만 아니라 연속성도 강조하는 모피노(투르케토 계열)와 라티넨의 해석에 찬성하는 엘리엇은 ‘굴절’(또는 ‘변곡’, 말하자면 1계 도함수가 아니라 2계 도함수의 부호 변화)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2006. 4.




보론: 인과론과 결정론








인과론(causalism)과 결정론(determinism)을 둘러싼 논쟁사를 정리하기 위해서는 붕헤(Mario Bunge, Causality and Modern Science (1959), 3rd ed., Dover, 1979)가 참고할 만하다. 그의 설명은 고전적인 지위를 인정받고 있는데, 그렇지만 물론 한두 가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용어법


먼저 인과론의 용어법을 정리해두자. 인과작용(causation)이나 인과관계(causal relation)가 현실의 대상을 가리킨다면, 인과성(causality)과 인과율(principle of causality)은 사고의 대상을 가리킨다. 좀더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인과관계‧인과작용은 존재론적 개념이고 인과성‧인과율은 인식론적 개념이다.

결정론의 용어법도 마찬가지다. 결정작용(determination)과 결정관계(determinate relation)는 현실의 대상을 가리키는 존재론적 개념이고, 결정성(determinacy)과 결정률(principle of determinacy)은 사고의 대상을 가리키는 인식론적 개념이다.

붕헤는 원인(cause)이 효과(effect)를 생산하는 메커니즘의 상이한 양상을 통해 인과성과 결정성을 구별한다. 인과성은 항상적(constant)이고 유일한(unique), 즉 좁은 의미에서 필연적(necessary)인 메커니즘을 의미하고, 결정성은 유일하지는 않지만 항상적인 메커니즘을 의미한다. 즉 인과성은 결정성의 특수한 형태라는 것이다.1)     

그러나 붕헤와 반대로 결정성을 인과성의 특수한 형태로 이해하는 사람도 많고, 또 알튀세르처럼 인과성과 결정성을 구별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따라서 여기서도 결정성과 인과성을 구별하지 않기로 한다.2)


인과작용의 존재 → 인과성‧결정성‧법칙성‧필연성

인과작용의 부재 → 비결정성‧우연성



논쟁사


인과론을 둘러싼 논쟁의 출발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인론이다. 그는 존재의 원인으로서 형상인(formal cause)과 질료인(material cause), 생성의 원인으로서 목적인(teleological cause)과 작용인(efficient cause)을 구별한다. 의학‧의술에 유비하자면, 육체의 형상으로서 건강이 형상인, 건강의 회복이 목적인이고, 질료인은 육체가 영유하는 질료로서 약, 작용인은 약의 처방이라는 것이다.

이런 설명에 따르면, 질료인에 대해서 형상인, 작용인에 대해서 목적인이 우위를 갖는다. 또 생성에 대한 존재의 우위에 따라 형상인‧질료인이 목적인‧작용인에 대해서 우위를 갖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4원소 중 땅과 물 같이 무거운 것이 하강하는 운동이나 공기와 불 같이 가벼운 것이 상승하는 운동의 원인은 형상의 완성과 목적의 달성에 있다.3)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과론은 중세 가톨릭신학의 이론적 기초로서 스콜라철학에서 전성기를 맞는다. 스콜라학파의 모토가 ‘원인에 의한 지식’(scientia per causas)인 것은 이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스콜라학파의 인과론에 대한 최초의 비판이 바로 갈릴레이의 운동학(kinematics)이다. 갈릴레이는 목적인을 폐기하고 작용인만 인정한다. 또 그는 존재에 대한 생성 또는 운동의 우위에 따라 형상인과 질료인도 폐기한다.4) 그러나 갈릴레이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전통에 따라 작용인을 외재적 힘으로 이해한다. 또 그는 데모크리토스 이래 원자론적 전통에 따라 관성력을 내재적 힘으로 이해한다.

데카르트의 기계론은 갈릴레이의 운동학을 철학적으로 체계화하기 위해서 충격이라는 작용인을 특권화한다. 그런데 이런 시도는 또한 데모크리토스적 전통에 따라 접촉작용(action by contact)을 특권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중력이라는 작용인의 효과로서 운동, 즉 중력의 작용에 의해서 운동이 생산되는 메커니즘을 분석하는 것은 물론 뉴튼의 동역학(dynamics)이다. 그러나 중력의 원격작용(action at a distance)을 둘러싸고 라이프니츠를 포함하는 데카르트주의자와 논쟁이 전개된다.5)

로크의 현실주의는 뉴튼의 동역학을 철학적으로 체계화한다. 로크는 ‘원인=근거‧이성’(causa sive ratio)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전통에 따라 인과성을 인식론적 개념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로크에게서 인과성이라는 인식론적 개념은 인과작용이라는 존재론적 개념을 전제하는 것이기도 하다. 붕헤는 로크의 현실주의를 ‘주체도 기원(또는 목적)도 없는 과정’으로 특징짓는다. 즉 창조자에 의한 무로부터의 생성(또는 무로의 소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6)  

로크 이후 인과론을 둘러싼 현대적 논쟁은 경험주의와 실증주의에 의해 개시된다.7) 흄과 칸트의 경험주의는 존재론적 개념으로서 인과작용을 기각하고 인식론적 개념으로서 인과성만 수용한다. 또 데카르트를 계승하는 라이프니츠의 합리주의도 결국 인과율을 근거율(principle of sufficient reason)로 대체한다.8)

반면 콩트와 마흐의 실증주의는 존재론적 개념으로서 인과작용과 인식론적 개념으로서 인과성을 모두 기각한다. 게다가 비엔나학파의 논리‧실증주의는 근거율을 논리학, 심지어 수학으로 환원한다. 이로써 과학은 현실의 원인(인과작용‧인과관계)에 대한 지식(인과성‧인과율)으로서 근거‧이성을 추구하는 설명(why)이 아니라, 실용주의적‧조작주의적 지식으로서 수학적‧통계학적 모형(기능주의‧상관관계)을 특권화하는 묘사(how)로 환원되고 만다.



구조인과론과 과잉결정론9)

 

알튀세르의 구조인과론은 데카르트의 기계론에 대한 스피노자의 비판에서 유래한다. 스피노자는 양태와 양태 사이의 외재적(타동적) 인과성과 달리 실체와 양태 사이의 인과성은 내재적(구조적)이라고 주장한다. 구조인과성은 관계, 나아가 모순을 원인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스피노자의 인과론이 뉴튼의 동역학과 로크의 현실주의에 선행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스피노자의 내재적 힘은 갈릴레이의 관성력과 홉즈의 코나투스에서 유래하기 때문이다.10)

반면 과잉결정론은 프로이트 또는 마키아벨리에게서 차용되는 것이다. 다수의 원인의 단일한 효과를 의미하는 과잉결정성을 다음과 같은 셰마로 표현할 수 있다.



라는 두 개의 독립변수(원인)에 라는 하나의 종속변수(효과)가 대응하는 함수(메커니즘) 가 존재한다는 것이다.11)

예를 들어 기본모순(생산 내부의 모순, 즉 생산관계와 생산력 사이의 모순)과 파생모순(생산과 실현‧분배 사이의 모순)처럼가 독립적이 아닐 때, 이차적 원인은 상대적 자율성에도 불구하고 일차적 원인으로 환원될 수 있다.



알튀세르가 ‘최종심의 결정’(일차적 원인으로서 경제과 이차적 원인으로서 이데올로기)이나 ‘사회구성체’(경제과 이데올로기 사이의 구조)라는 개념을 지양하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반면 경제적 모순(이윤율의 하락으로 표현되는 생산관계와 생산력 사이의 모순)과 이데올로기적 모순(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반역으로서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처럼가 독립적일 때, 진정한 의미에서 과잉결정이 존재한다. 또 두 모순의 작용이 수렴할 때 혁명(공산주의적 이행), 발산할 때 반혁명(자본주의적 이행)이 발생한다. 이제 과잉결정성의 셰마를 다음과 같이 좀더 구체화해볼 수 있다.


    


두 모순의 수렴(+)과 발산(-)은 우연일 따름이라는 데 주의해야 한다.12)

다수의 원인의 우연한 결합, 즉 해후(encounter) 때문에 해방‧변혁‧시빌리테라는 삼중적 의미에서 혁명이 가능하다.13) 필연적인 동시에 우연적인 조건으로서 운명(destiny)과의 대결, 그러나 승리에 대한 보장이 존재할 수 없는 대결로서 혁명은 비극적일 수밖에 없다.  

참고로, 숙명론(fatalism)과 우연론(fortuitism)은 혁명을 배제한다. 초월적 원인으로서 숙명(fate)과 초월적 우연으로서 행운(fortune)은 무조건적이기 때문이다. 숙명론과 우연론은 라이프니츠의 변신론(theodicy) 또는 그것과 친화성을 갖는 헤겔의 목적론(teleology)과 양자에 반대하는 벤야민의 종말론(eschatology)으로 귀결될 따름이다.

   

2006. 6.



베토벤에 관한 11개의 테제






            

1. 온갖 키치 예술과 포스트 증후군으로 특징지어지는 ‘문명의 질병’(Unbehagen in der Kultur)은 마르크스주의의 일반화에 적합한 윤리와 그것을 형상화하는 문학과 음악이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지난 세기 초 ꡔ장 크리스토프ꡕ(특히 5장 「광장의 시장」)에서 로맹 롤랑의 시도가 그 선례라고 할 수 있는데, 그에게서 현대의 이념‧이상과 ‘감정의 치료’에 적합한 베토벤의 음악적 언어에 대한 해석을 배울 수 있다.

2. 그렇지만 불레즈가 지적했듯이, 베토벤을 ‘착취’했던 음악사의 사례들에 대해서도 주의해야만 한다. 슈만‧멘델스존‧브람스의 낭만주의 음악이나 그들과 친화성을 갖는 리츨러‧셴커‧레티의 베토벤 비평은 ꡔ합창ꡕ 교향곡으로 히틀러의 생일을 축하한 푸르트뱅글러의 ‘비극’으로 이어지고, ‘현존 사회주의’의 붕괴를 기념한 번스틴의 ‘소극’으로 되풀이된 바 있다.

3. 이에 대해 베를리오즈‧리스트‧바그너‧슈트라우스‧말러의 낭만주의 음악, 베커‧아도르노‧부쿠르슐리에브의 베토벤 비평이나 클렘페러‧뵘‧레보위츠‧바렌보임의 ꡔ합창ꡕ 교향곡 연주는 쇤베르크‧베르크‧베베른‧불레즈의 포스트바그너주의적 모더니즘 음악과 친화성을 갖는다. 그렇지만 여기에도 분명한 해답이 없다는 것은 쇤베르크와 스트라빈스키, 또는 오히려 쇤베르크와 아이슬러 사이의 불화에 의해 반증된다.

4. 따라서 (후기) 베토벤 자신에게서 (베토벤) 음악의 ‘전화’ 가능성을 찾는 것이 더 나은데, 이를 위해 솔로몬이 시도하는 베토벤의 양식적 시기구분을 ‘전회’(Kehre) 또는 ‘절단’, 나아가 ‘해체’라는 두 가지 계기에 주목하면서 재구성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절단’의 물질적 토대로서 낡은 ‘음악의 경제학’에 대한 비판과 새로운 후원 양식의 추구(아카데미(collegia musicae)와 종신연금), 급진 민주주의적 또는 유토피아 공산주의적 이데올로기(‘예술 창고’(Magazin der Kunst)), 나아가 결혼(‘영원의 여성’) 대 독신주의(‘자유결합’) 사이의 정신적 갈등이라는 음악외적 요인들은 베토벤 음악의 ‘토픽’을 구성하는 주요한 심급들이다. ‘무상(無償)의 포이에시스’ 또는 ‘자유로운 테크네’로서 예술을 상징하는 베토벤의 음악은 플루타르크의 스토아주의나 쉴러의 칸트주의의 한계를 넘어서는 동시에 ꡔ빌헬름 마이스터ꡕ에서 괴테가 추구했던 ‘정신의 교육’(Bildung)이라는 이상을 실현하면서 ꡔ정치론ꡕ에서 스피노자가 당면했던 민주주의와 에로스 사이의 아포리아를 투쟁으로써 해결한다(ausfechten).

5. 나아가 베토벤의 ‘토픽’은 음악적 위기와 창조력의 전개를 추동하는 모순들과 그것들의 과잉결정을 분석할 수 있게 해준다. 베토벤은 포스트계몽주의적 반동기의 ‘피상적‧외양적 기쁨’(surface of gaiety)과 ‘자포자기적 경박함’(desparing frivolity)에 대응하는 후기 모차르트‧후기 하이든의 ‘전성기’ 비엔나 고전주의 양식에서 출발한다. 그렇지만 베토벤의 ‘후기’ 고전주의 양식을 특징짓는 ‘영웅적 양식’(ꡔ에로이카ꡕ 교향곡)은 비극으로서 ‘소나타 형식’에 의해 프랑스 혁명 음악의 ‘장엄 양식’을 영유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모차르트‧하이든과 베토벤 사이에는 음악사적 ‘전회’ 또는 ‘절단’이 있다. 그렇지만 동시에 아돌프 마르크스의 에두아르드 한슬릭 비판이 시사하듯이 베토벤의 음악에는 낭만주의 미학 또는 비평에 대한 비판도 함축되어 있다.

6. 포스트나폴레옹적 반동기에 ‘비극적 장엄함’이라는 아우라를 상실한 ‘영웅적 양식’(교향곡 ꡔ웰링턴의 승리ꡕ)은 하나의 ‘풍자’(parody)와 ‘소극’(farce) 또는 ‘냉소주의’(cynicism)로서 스스로 종언을 예고한다. 결국 고전주의를 해체하는 후기 베토벤의 ‘포스트고전주의’ 양식은 소나타 형식을 해체하는 푸가와 변주에 의해 ‘영웅 없는 영웅주의’, ‘영웅주의 없는 영웅성’으로서 계몽주의적 이상의 비(非)동시대적 ‘부활’ 또는 오히려 ‘현성화’(顯聖化, transfiguration)를 실현한다. 로맹 롤랑이 주목했듯이 베토벤의 ‘윤리적 미’ 또는 ‘승화된 에로스’는 낭만주의나 바로크주의(또는 그것들의 모더니즘적 변형)의 ‘미학적 종말론’에 대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피카로적‧디오니소스적’이 아닌 ‘프로메테우스적’인 베토벤의 주체화양식).

7. 19세기 내내 ꡔ함머클라비어ꡕ 소나타나 ꡔ합창ꡕ 교향곡은 아주 난해한 작품으로 간주되었다. 그 잠재력을 이해한 리스트나 바그너는 오히려 규칙을 반증하는 예외였던 셈이고, 바로 이 작품들 때문에 베토벤의 후기 음악 전체는 낭만주의 음악이나 미학, 비평에 의해 제대로 수용될 수 없었다. 그러한 ‘몰인식’(méconnaissance)은 결국 ꡔ합창ꡕ 교향곡의 피날레인 「기쁨의 노래」에 대한 아도르노의 ‘부정적 긍정’(dénégation)으로 이어졌다(‘공동체 음악’ 또는 오히려 ‘초개인성의 음악’이라는 이상을 포기한 음악의 사회에 대한 ‘평행성’ 또는 ‘미학적 자율성’).

8. 솔로몬과 커먼‧타이슨에 따르면 ꡔ함머클라비어ꡕ 소나타의 ‘불가사의함’은 단지 ‘연주의 불가능함’에 있는 것이 아니다. 라르고로 시작하는 피날레의 푸가는 거의 즉흥적으로 삽입된 이 단 하나의 악상에 의지해 ‘소나타의 정신으로부터 푸가의 재탄생’, ‘푸가의 시(詩)로의 생성’을 실현한다는 점에서 베토벤이 바흐의 ‘푸가의 기법’을 헨델식으로 지양한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더구나 전개부를 대체하는 푸가에 의해 해체된 소나타 형식은 ꡔ디아벨리 변주곡ꡕ에서는 ‘일반성과 특이성의 비(非)동시대적 접합’을, 나아가 「기쁨의 노래」에서는 ‘에로스의 승화’를 실현한다. 리트 ꡔ멀리 있는 연인에게ꡕ에서 시도된 서정적인 ‘민요양식’(Volksweise), ꡔ장엄미사ꡕ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그랜드 오라토리오’는 이렇게 포스트민족적 국제주의를 위한 ‘인류의 라 마르세예즈’로서 「기쁨의 노래」에서 ‘윤리적 미’로 완성되는 것이다.

9. ꡔ함머클라비어ꡕ 소나타와 ꡔ합창ꡕ 교향곡으로 상징되는 베토벤의 후기 음악 또는 오히려 그의 ‘한계양식’(로젠)을 스피노자나 마르크스와의 유비에 따라 해석해볼 수 있을 것이다. 후기 베토벤의 ‘지혜‧지식’(Witz)은 칸트를 전도하는 괴테(ꡔ파우스트ꡕ)의 그것이 아니라 오히려 헤겔을 전도하는 마르크스(ꡔ자본ꡕ) 또는 스피노자(ꡔ윤리학ꡕ)의 그것과 친화성을 갖기 때문이다.

10. 음악을 손쉬운 오락이 아니라 연구해야 마땅한 고귀하고 승화된 예술이라고 생각했던 베토벤은 칸트나 헤겔의 딜레탕트적인 예술관에 반대하여 아주 스피노자적인 예술관을 갖고 있었던 셈이다. 청년 베토벤은 어떤 작품을 난해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실은 최상의 칭찬인 셈이라고 하면서, 난해한 것은 또한 미적인 것, 선한 것, 위대한 것 등등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말년의 베토벤은 예술과 과학만이 인간을 신의 수준으로 승화시킬 수 있고, 이는 그것들만이 우리에게 더 높은 삶에 대한 암시와 희망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1. 아도르노가 말했듯이, 베토벤 대신 재즈와 로큰롤을 수용하라고 권고하는 것은 부르주아 문화의 긍정적 기만을 폭로하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 예술적 승화에 대한 원한에 찬 거부는 문화산업의 더 많은 이윤 추구와 야만 행위에 대한 고의적이고 분별 없는 변명거리를 제공할 뿐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아이슬러가 말했듯이, 건강한 주거, 훌륭한 식사, 2세의 교육, 노후의 보장 등이 그런 것처럼, 베토벤 역시 투쟁해서 획득해야 하는 것이다. 음악에서 가장 긴급한 임무는 전문가 운동으로, 음악의 문맹을 절멸시켜 고전 음악가의 가장 복잡한 음악까지도 인민의 것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1997. 6. 10.                      



‘음악의 프로메테우스’ 베토벤


메이너드 솔로몬의 ꡔ베토벤ꡕ(공감, 1997)은 베토벤에게서 음악의 전화 가능성을 모색한다. 현대의 이상과 감정의 치료에 적합한 베토벤의 음악적 언어에 대한 이런 해석은 지난 세기초 ꡔ장 크리스토프ꡕ에서 로맹 롤랑의 시도를 선례로 한다. 이 점을 부연하기 위해 ‘절단’과 ‘해체’라는 두 계기에 주목하면서 베토벤 음악의 양식적 시기구분을 베토벤 음악의 ‘토픽’으로 재구성해볼 수 있다.

절단의 물질적 토대로서 새로운 후원 양식의 추구(아카데미와 종신연금), 급진 민주주의적 또는 유토피아 공산주의적 이데올로기(‘음악의 경제학’에 대한 비판으로서 ‘예술 창고’), 나아가 결혼 대 독신주의(‘영원의 여성’ 대 ‘자유결합’) 사이의 정신적 갈등이라는 음악외적 요인들은 베토벤 음악의 토픽을 구성하는 주요한 심급들이다. ‘무상(無償)의 포이에시스’ 또는 ‘자유로운 테크네’로서 예술을 상징하는 베토벤의 음악은 플루타르크의 스토아주의나 쉴러의 칸트주의의 한계를 넘어선다. 동시에 베토벤은 괴테가 ꡔ빌헬름 마이스터ꡕ에서 추구했던 ‘정신의 교육’(Bildung)이라는 이상을 실현하고, 스피노자가 ꡔ정치론ꡕ에서 당면했던 ‘민주주의와 에로스’ 사이의 아포리아를 투쟁으로써 해결한다.

베토벤의 토픽은 음악적 위기와 창조력의 전개를 추동하는 모순들과 그것들의 과잉결정을 분석할 수 있게 해준다. 베토벤은 포스트계몽주의적 반동기의 피상적 기쁨과 자포자기적 경박함에 대응하는 후기 모차르트와 후기 하이든의 전성기 고전주의 양식에서 출발한다. 그렇지만 베토벤을 특징짓는 후기 고전주의적인 ‘영웅적 양식’(ꡔ에로이카ꡕ 교향곡)은 ‘비극으로서 소나타 형식’에 의해 프랑스 혁명 음악의 ‘장엄 양식’을 영유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모차르트‧하이든과 베토벤 사이에는 음악사적 절단이 있다. 동시에 에두아르드 한슬릭에 대한 아돌프 마르크스의 비판이 시사하듯이 베토벤의 음악에는 낭만주의 미학 또는 비평에 대한 비판도 함축되어 있다.

포스트나폴레옹적 반동기의 영웅적 양식은 비극적 장엄함이라는 아우라를 상실한 일종의 냉소주의적 풍자(교향곡 ꡔ웰링턴의 승리ꡕ)에 의해 스스로 종언을 예고한다. 결국 고전주의 자체를 해체하는 포스트고전주의 양식(ꡔ합창ꡕ 교향곡)은 소나타 형식과 푸가, 변주, 특히 ‘민요 양식’(Volksweise)의 결합에 의해 ‘영웅 없는 영웅주의’, ‘영웅주의 없는 영웅성’으로서 계몽주의적 이상의 비(非)동시대적 부활 또는 오히려 현성화(顯聖化)를 실현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베토벤의 ‘승화된 에로스의 윤리적 미’는 낭만주의 또는 그것의 모더니즘적 변형의 ‘미학적 종말론’에 대한 비판을 예상하고 있다. 즉 베토벤의 주체화양식은 ‘피카로’나 ‘파우스트’도 아니고 ‘디오니소스’나 ‘자라투스트라’도 아닌 ‘프로메테우스’ 또는 ‘그리스도’로 상징되는 셈이다.


인터뷰


―  마르크스주의자가 갑자기 베토벤을 들고 나온 이유는 무엇입니까?

  80년대 후반 ‘한국사회성격 논쟁’에 대한 회고를 통해 약간 우회해 보겠습니다. 당시 논쟁에 개입하면서 제가 제시했던 ‘피디’라는 입장은 알튀세르적인 마르크스주의를 이론적 근거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롤랑이나 솔로몬의 베토벤 해석을 재구성하면서도 저는 알튀세르의 마르크스 해석에 특징적인 ‘토픽’이나 ‘절단’ 같은 개념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마르크스와 베토벤 사이의 철학적 친화성에 주목하면서 일체의 반동에 반역하여 현대의 이상을 포기하지 않았던 프로메테우스적 베토벤 상(像)을 부각시킬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80년대 문예운동의 주류였던 인민주의적 ‘민족음악’이나 90년대 들어와 운동권 출신 포스트주의 평론가들에 의해 복권된 록이나 재즈 같은 ‘대중문화’에 대한 발본적 대안을 모색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베토벤과 마르크스, 또는 선생이 강조하시는 스피노자-마르크스주의의 관계는 무엇입니까?

  저로서는 온갖 포스트주의 증후군으로 특징지어지는 ‘문명(Kultur)의 불안’이라는 세기말적 상황과 대결하기 위해서는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을 스피노자의 이데올로기 비판과 결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베토벤 음악을 이러한 스피노자-마르크스주의에 적합한 감정의 치료, 즉 이성으로서 ‘로고스’와 접합되는 정념으로서 ‘미토스’로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베토벤은 칸트나 헤겔의 딜레탕트적 예술관에 반대하여 예술과 과학만이 더 높은 삶에 대한 암시와 희망을 줌으로써 인간을 신의 수준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베토벤의 ‘지혜‧지식’(Witz)은 칸트를 전도하는 괴테(ꡔ파우스트ꡕ)가 아니라 오히려 헤겔을 전도하는 마르크스(ꡔ자본ꡕ)나 스피노자(ꡔ윤리학ꡕ)의 그것과 비교될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주의자 가운데 베토벤에게 주목한 사람이 있었습니까?

  누구보다도 아도르노를 꼽아야 하겠지요. 그렇지만 먼저 ‘레닌과 베토벤’이라는 화두를 숙고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크룹스카야의 회고에 의하면, 일찍부터 베토벤의 열렬한 애호가였던 레닌은 1913년 어느 음악회에서 현악 4중주를 듣고 나서 아주 깊은 파토스에 빠졌다고 합니다. 스토아주의적 금욕과 칸트주의적 숭고에 철저했던 그는 이후 베토벤을 더 이상 듣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만일 포스트나폴레옹적 반동에 대한 반역을 상징하는 ꡔ함머클라비어ꡕ 소나타나 ꡔ합창ꡕ 교향곡을 듣고 감정의 치료를 경험할 수 있었다면, 레닌은 과연 무어라고 말했을까요. 솔직히 「인터내셔널」보다는 흔히 「환희의 송가」로 불리는 ꡔ합창ꡕ 교향곡의 피날레 「기쁨의 노래」가 ‘인류의 라 마르세예즈’라고 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ꡔ함머클라비어ꡕ 소나타나 ꡔ합창ꡕ 교향곡을 그렇게 강조하시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베토벤의 후기 음악을 대표하는 이 작품들은 로젠이 말하듯이 그의 ‘한계양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포스트민족적 국제주의를 상징하는 「기쁨의 노래」는 클림트가 「기쁨이라는 신들의 아름다운 불꽃, 온 세상에 보내는 이 키스」라는 그림에서 잘 표현하고 있듯이 ‘승화된 에로스의 윤리적 미’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들은 19세기 내내 아주 난해한 음악으로 간주되었다고 합니다. 그 잠재력을 이해한 리스트나 바그너는 오히려 규칙을 반증하는 예외였던 셈이지요. 이러한 몰인식은 결국 「기쁨의 노래」에 대한 아도르노의 고통스러운 부정으로 이어졌습니다. 그가 말하는 음악의 미학적 자율성 또는 고유성이란 ‘초개인성의 음악’이라는 이상을 포기한 대가라고 하겠습니다.

  베토벤은 역시 베토벤입니다. 그를 음악사 속에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요?

  맞습니다. 그렇지만 베토벤은 스피노자나 마르크스와 마찬가지로 ‘야만의 이례성’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동시에 불레즈가 지적했듯이, 베토벤을 착취했던 사례들에 대해서도 주의해야만 합니다. 특히 베토벤을 자신들의 ‘순수음악’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한 슈만‧브람스의 낭만주의 음악이라든지 그것과 친화성을 갖는 리츨러의 베토벤 비평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그들의 아전인수식 해석은 세계전쟁 와중에 히틀러의 생일을 축하하며 ꡔ합창ꡕ 교향곡을 연주한 푸르트뱅글러의 비극으로 이어지고, 베를린 장벽에서 ꡔ합창ꡕ 교향곡으로 ‘현존 사회주의’의 붕괴를 기념한 번스틴의 소극으로 되풀이된 바 있습니다.

  그런 베토벤 해석에 반대한 조류는 없었습니까?

  물론 있었습니다. 리스트‧바그너‧슈트라우스‧말러의 낭만주의 음악, 베커‧아도르노의 베토벤 비평, 클렘페러‧뵘‧레보위츠‧바렌보임의 ꡔ합창ꡕ 교향곡 연주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들의 해석은 베토벤 음악에서 쇤베르크의 포스트바그너주의적 음악을 예상하는 것이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이 경우에도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아도르노 미학의 결함에 대해서는 방금 말씀드린 대로지만, 게다가 쇤베르크의 모더니즘 음악과 스트라빈스키의 신고전주의 음악 사이의 대결이 있었고, 음악의 사회적 유용성을 거부하는 쇤베르크에 대한 그의 제자 아이슬러의 이의 제기가 있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라도 우선 베토벤 자신에게서 음악의 전화 가능성을 모색해야 하는 것입니다.

  베토벤 음악의 한국적 수용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시지요.

  이번에 제가 번역한 솔로몬의 평전을 읽고 베토벤을 마르크스주의적으로 해석한 점에 대해 항의한 어떤 음악 애호가가 생각납니다. 베토벤의 경우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특히 그의 음악은 딜레탕트적 ‘취미판단’을 넘어 현대정치사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음악을 손쉬운 오락이 아니라 연구해야 마땅한 고귀하고 승화된 예술이라고 생각했던 베토벤이 자신의 음악에 내포된 반역적 사상에는 전혀 무관심한 채 오히려 유명 연주자나 희귀 음반에만 열광하는 음악 애호가들을 본다면 무어라고 말했을까요. 마르크스나 스피노자가 갈파한 대로 ‘무지’가 역사에 도움이 된 적은 결코 없었습니다.


(ꡔ한겨레 21ꡕ, 1997. 7. 24.)



마르크스주의자가 생각하는 베토벤

                                        

얼마 전에 ‘6‧10 시민항쟁’ 10주년을 기념하는 범국민적인 의례가 있었다. 여기에는 물론 약간의 후일담이나 무용담도 곁들여 있었다. 그렇지만 이것이 오늘의 현실에서 80년대의 죽음과 투쟁을 기억하고 애도하는 올바른 방식일 수는 없을 것이다. 온갖 키치(Kitsch) 예술로 드러나는 포스트주의적인 ‘허약한 사고’ 또는 ‘미학적 종말론’이 논쟁의 지반을 변경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세기말적인 ‘니힐리즘’(니체) 또는 ‘문명의 질병’(프로이트)에 반대하여 마르크스주의를 일반화하고 또 그것에 적합한 문학과 음악이라는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우선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을 일반화하기 위해 스피노자의 이데올로기 비판과 결합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베토벤의 음악을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에 적합한 ‘감정의 치료’, 즉 이성으로서 로고스와 접합되는 정념으로서 미토스로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메이너드 솔로몬의 ꡔ베토벤ꡕ(공감, 1997)은 지난 세기 초 ꡔ장 크리스토프ꡕ(특히 5장 「광장의 시장」)에서 로맹 롤랑의 시도를 계승한다. 우리는 롤랑과 솔로몬에게서 현대의 이상에 적합한 베토벤의 음악적 언어에 대한 해석을 배울 수 있다. 그의 경우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특히 베토벤의 음악은 주관주의적 ‘취미 판단’을 넘어 현대정치사 속에서 이해해야만 한다.

음악을 손쉬운 오락이 아니라 연구해야 마땅한 고귀하고 승화된 예술이라고 생각했던 베토벤이 자신의 반역적 사상에는 전혀 무관심한 채 오히려 유명 연주자나 희귀 음반에만 열광하는 음악 애호가들을 본다면 무어라고 말했을까. 베토벤은 칸트나 헤겔에게서 비롯되는 딜레탕트적 예술관에 반대하여 예술과 과학만이 더 높은 삶에 대한 암시와 희망을 줌으로써 인간을 신의 수준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베토벤의 지혜 또는 지식은 칸트를 전도하는 괴테(ꡔ파우스트ꡕ)가 아니라 오히려 헤겔을 전도하는 마르크스(ꡔ자본ꡕ)나 스피노자(ꡔ윤리학ꡕ)의 그것과 비교될 수 있다.

이제 80년대 후반 ‘한국사회성격 논쟁’에 대한 약간의 회고가 가능할 것이다. 당시 내가 제시했던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일반적 위기’라는 입장은 알튀세르적인 마르크스주의를 이론적 근거로 하는 것이었다. 롤랑이나 솔로몬의 베토벤 해석을 재구성하면서도 나는 알튀세르의 마르크스 해석에 특징적인 개념들(특히 이데올로기 문제와 관련되는 ‘토픽’이나 ‘절단’ 같은 개념들)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스피노자나 마르크스와 베토벤 사이의 철학적 친화성에 주목하면서 일체의 반동에 저항하면서 현대의 이상을 포기하지 않았던 프로메테우스적 베토벤 상(像)이 부각될 수 있을 것이다. 또 이렇게 해서 80년대 문예운동의 주류였던 인민주의적 ‘민족음악’이나 90년대 들어와 운동권 출신 포스트주의 평론가들에 의해 복권된 로큰롤이나 재즈 같은 ‘대중문화’에 대한 발본적인 대안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ꡔ중앙일보ꡕ, 1997. 9. 23.)


1) 붕헤는 원인이 효과를 생산하는 메커니즘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까지 결정성 개념을 확대한다. 즉 우발적(accidental)이고 불확실(uncertain)하지만 계산과 예측이 가능한 경우를 확률적‧통계적 결정성이라고 부른다. 반면 우발적이고 불확실하면서 계산과 예측이 불가능한 경우, 즉 좁은 의미에서 우연적(contingent)인 경우를 비결정성이라고 부른다. 결정성과 비결정성은 계산‧예측가능성이라는 의미에서 ‘법칙성’(lawfulness)의 존재 여부에 따라 구별된다는 것이다.


2) 인과성‧결정성‧법칙성‧필연성과 비결정성‧우연성의 경계를 가리키는 확률적‧통계적 결정성도 여기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3) 참고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연성을 인정하면서도 지식의 대상으로 간주하지는 않는다.


4)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가능성(potentiality, dynamis, potentia)과 현실성(actuality, energeia, actus)은 각각 질료인과 형상인을 특징짓는다. 그러나 물론 갈릴레이와 뉴튼의 과학혁명 이후 가능성과 현실성은 전혀 다르게 인식해야만 한다. 예를 들어 마르크스에게서 경제위기의 가능성을 현실성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이윤율의 하락이라는 작용인이다. 참고로, 독어에는 현실성을 의미하는 단어로 ‘Realität’(reality) 외에도 ‘Wirklichkeit’(actuality)가 있는데, 그것은 작용을 의미하는 ‘Wirkung’(action)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5) 이런 논쟁은 질료 또는 오히려 물질에 대한 분석을 통해 해결된다. 패러디와 맥스웰은 물질 개념을 확장하는 역선(line of force) 또는 장(field)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질량과 관련되는) 중력과 (전하와 관련되는) 전자기력을 구별하는데, 뉴튼의 동역학과 호이겐즈의 광학을 통합하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론은 여기서 출발한다. 특수상대성론은 시간과 공간을 통합하는 시공간 개념에 의해 절대시간과 절대공간을 상대화하는데, 이것이 바로 운동에 의한 ‘시간의 지연’과 ‘길이의 단축’이라는 효과다. 그러나 특수상대성론은 상대주의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데, 이 이론은 광속이라는 아인슈타인 보편상수 c를 고려하여 뉴튼의 ‘운동의 법칙’을 일반화하는 것이다. 반면 뉴튼의 ‘힘의 법칙’을 일반화하는 일반상대성론은 운동의 원인으로서 중력장을 질량에 의한 시공간의 형성과 변형, 즉 시공간의 곡률(curvature)로 인식함으로써 원격작용의 난점을 해결한다. 붕헤가 지적하는 것처럼, 관성력과 마찬가지로 중력도 외재적 힘이 아니라 내재적 힘으로 인식되는데, 내재적 원인 또는 오히려 제약(constraint)으로서 중력을 표상하는 것은 물론 뉴튼 보편상수 G다.


6) 사실 예술에서의 창조라는 것도 작가나 비평가의 가상일 따름이다.


7) 데카르트의 기계론에 반대하는 생기론으로 특징지어지는 셸링과 베르크손의 반(反)과학적 낭만주의는 논외로 하자.


8) 원인이 존재론적인 동시에 인식론적인 개념이라면, 근거(reason)는 인식론적인 개념일 따름이다. 또 원인의 결과가 효과라면, 근거의 결과는 결론(consequence)이다.


9) 마르크스주의적 인과론과 결정론에 대한 붕헤의 설명은 문제가 있는데, 그러나 과잉결정론에 대한 설명은 참고할 만하다.


10) 참고로, 스피노자의 인간학은 고전경제학에 선행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의 인간학이 전제하는 효용가치론은 로크의 노동의 인간학을 계승하는 스미스의 노동가치론에 미달한다. 스피노자의 인간학이 개인성(individuality)보다는 특이성(singularity)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11) 단일한 원인의 단일한 효과(붕헤의 인과성)는 , 단일한 원인의 다수의 효과(결정성)는 로 표현할 수 있다.


12) 알튀세르의 ‘해후의 유물론’이 인과론과 결정론을 부정하는 것은 그가 원용하는 데모크리토스적 전통에는 관성력만 존재하고, 게다가 에피쿠로스와 루크레티우스는 관성력에 대한 클리나멘(clinamen, 偏倚)의 우위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인과론과 결정론을 부정하면서 역사과학의 ‘임상적’ 지식을 물리과학의 ‘실험적’ 지식과 달리 일반법칙이 아니라 보편상수로 특징지으려는 알튀세르의 시도도 별로 근거가 없다. 역사과학의 보편상수로서 계급적 착취는 이윤율의 하락이라는 일반법칙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13) 물론 ꡔ공산주의자 선언ꡕ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지적하는 대로 ‘투쟁하는 두 계급의 공멸’이라는 파국의 가능성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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