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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 아이 ㅣ 그림이 있는 책방 1
카타지나 코토프스카 지음, 최성은 옮김 / 보림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 유명 연예인 부부가 아이를 입양하여 뉴스가 되었다. 그들 부부가 그간 보여온 반듯하고 행복한 이미지에 더하여 입양 사실은 미담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공개 입양이 미담이 되는 것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일 뿐더러 그들이 유명 연예인이기에 나올 수 있는 반응일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입양은 대부분 은밀하게 이루어진다. 입양아는 물론이거니와 주위 모든 사람들을 속이기도 한다. 그래서 주로 갓난아기의 입양으로 한정되고, 심한 경우 임신을 가장하였다가 아이를 낳은 것처럼 데려오기도 한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불임 가정에서 아이를 갖기 위한 온갖 노력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방법이 입양인 경우가 많고, 설사 양부모에게 그럴 의도가 전혀 없다 하더라도 주변의 편견과 냉대가 상당히 심각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드라마에서 그렇게나 많은 ‘출생의 비밀’이 등장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최근 들어 공개 입양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지만, 그때 문제가 되는 것은 주변의 손가락질과 따돌림이라고 한다. 데려다 키운 아이, 근본 없는 아이라고 백안시하며 자신의 아이들에게 입양아와 어울리지 말라고 주저 없이 가르치는 이 땅의 이웃들 때문에 공개 입양 가정이 도망치듯이 이사를 하는 일도 많단다. 어렵게 입양을 결심했을 양부모나 한번 버림받았다가 가정을 찾은 아이 모두에게 상처가 아닐 수 없다.
몇 년 전 나는 인생의 한가지 계획을 세웠다. 몇 년에 거쳐 몇 단계로 이루어질 그 계획의 마지막은 입양이다. 가급적 공개 입양을 생각한다. 결혼을 하든 하지 않든, 아이를 낳든 낳지 않든 관계없이 꼭 이루고 싶은 인생 계획이다. 우리 나라에서 비혼 여성의 입양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거나 공개 입양 가정이 주변의 몰이해와 냉대로 고통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 이후의 일이다. 사실을 고백하자면 아이를 키우는 것, 엄마가 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내 계획을 이루기 위한 과정에서 어떤 난관에 부딪치게 될지도 알지 못한다. 내 노력이란 것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상태이기도 하다. 그러나 결코 잊지는 않고 있다.
책 소개를 보자마자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실제 아이를 입양한 엄마가 그 아이에게 들려주기 위해 만들었다는 이 동화책은 일종의 준비 과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입양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였는지, 아이에게 입양 사실을 숨기지 않고 어떻게 설명했는지, 아이를 자기 자식으로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이에게 어떤 걸 기대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다. 많이 생각하고 많이 고민했을 엄마의 모습이 느껴진다. 종이를 오려 붙여 그림을 만들면서 자신의 아이를 떠올렸을, 세상의 수많은 엄마 중 한 사람의 모습이다.
혈연에 대한 집착이 강한 사회, ‘근본’을 따지고 드는 사회에서 입양은 여전히 어려운 문제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고 한다. 단지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만들어 가는 것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고 한다. 영화 <바람난 가족>에서 호정(문소리)은 아이에게 “다른 엄마들은 배 아파 아이를 낳았지만 엄마는 가슴 아파 널 낳았으니까, 넌 틀림없는 내 아들”이라고 말한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충 저런 얘기였다.) 배가 아프든 가슴이 아프든 서로를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사회도 그대로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작은 그림책이지만 그런 변화에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읽으면서 입양아와 입양 가정에 대한 몰이해와 편견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또한 서로를 배려하고 다른 사람의 인권을 존중하는 한 방법이 아니겠는가.
내게는 내 인생의 계획을 다시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제자리만 뱅뱅 돌며 다음 단계로 쉬이 발을 내딛지 못하고 있던 나를 슬쩍 밀어주는 부드럽고 따뜻한 바람이다.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