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니카의 폐허 속에서 본지 특파원 마튜 코르망이 생존자들을 찾아보다 <스 스와르> 1937년 4월 29일자


빌바오. 4월 28일.


이 형언할 길 없는 공포의 범죄는 문명된 세계의 분노를 자아낼 것이다. 바스크의 민족과 자유의 역사적 요람인 게르니카는 이제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정기적인 장날인 월요일, 유난히도 많은 인파가 모여든 해안 도시 게르니카. 전선에서 27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하여 일체의 전략적·산업적 이해관계가 배제된 칠천 주민의 도시는 기푸즈코아에서 밀려든 사천 명의 피난민을 수용하고 있었다. 장터에 몰려든 인파는 약 삼천 명으로 추산되었다.


그 도시는 지금까지 한 번도 폭격을 당한 일이 없었다. 사람의 왕래가 가장 번잡한 오후 4시 30분에 첫번째 편대들이 나타나서 수류탄을 던졌다. 주민들은 들판으로 피신했으나 전투기들의 기총소사로 추격받았다. 다른 삼발전투기 편대들도 여러 개의 1,000킬로그램이나 되는 공뢰(空雷)들을 던져서 깊은 폭탄 자국을 파 놓았다. 폭격은 중간 정도 크기의 폭탄으로 계속되었다. 그 수는 천여 개를 헤아렸다. 결국 공포에 질린 그 도시는 삼천여 개로 추산되는 방화폭탄 세례를 받았다. 전투기들의 폭격과 기총소사는 8시 15분 전에 멈췄다. 도시는 거대한 불덩어리가 되어서 엄청난 불길이 하늘로 치솟아올랐고 구름을 핏빛으로 물들였다. 극도에 달한 열기로 인해 일체의 개입이 절대 불가능했다. 모든 주민들이 산 채로 불에 익는 듯했다. 오십여 명이나 되는 난민들의 발이 묶였다. 여자들과 아이들은 보는 이의 가슴을 에는 듯했다. 게르니카의 사망자 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보다 더 많았다. 화재는 자정이 지나자 더이상 탈 것이 없어져서 진정되었다. 살아 남은 사람들은 가족들의 시체를 찾아 거리를 뒤져보려고 했지만, 심한 열기로 좌절당했다. 나의 발 끝에 알루미늄제 방화폭탄의 불발탄이 차였다. 그 폭탄은 지금 내가 보관중이다. 그 위에는 118 Rhs 138.936이라는 표시와 함께 독일 국장(國章)인 독수리가 세 군데나 새겨져 있다. 그 무게는 860그램이다. 장터의 중심지에는 반경 16미터, 깊이 8미터의 폭탄 구덩이가 파여 있다. 그와 유사한 구덩이들이 유용한 모든 지점에 나 있다. 역사 속에 이보다 더 잔혹하고 야만적인 공습의 기록은 한번도 없었다. 바스크 민족의 요람을 완전히 파괴하겠다는 폭력적 목적은 명약관화하다.


옛날에 카사 데 훈타스 앞에서 훈테 데 비스케이가 자리했던 게르니카의 역사적인 떡갈나무 아래에도 앞에 말한 바와 같은 폭탄 구덩이가 나 있다. 이 나무는 바스크 국가(國歌)의 상징이며 주제이다. 역대의 스페인 국왕들이 푸에로스의 민주적 특권과 존중을 서약하고 그 대가로 다만 비스케이의 단순한 귀족 칭호를 받은 곳은 바로 이 나무 밑이다.


모든 주민들은 피난처를 상실한 채로 남았다. 그들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폐허 위로 2시경부터 헤매고 다니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사랑했던 이들을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다. 바스크의 주민들은 이 사건을 유즈카디 민족의 혼을 침해하려는 프랑코의 기도이며, 동시에 장차 다가올 다른 전쟁을 위한 독일과 이탈리아의 경험적 실습으로 간주하고 있다. 카사 데 훈타스와 '자유의 나무'만이 겨우 화를 면했다는 사실은 바스크 민족주의자들에게는 신비적인 큰 중요성을 띤다.


미친 듯한 파괴의 손길에 의해 오늘 초토가 된 다른 부락들중에는, 남아메리카 여러 민족들을 해방한 가문의 요람인 볼리바르도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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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12-06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 열화당 책을 대신 구입해주신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그때 저녁이나, 하다 못해 차라도 한 잔 대접했어야 하는데...

제 내면이 요즘 거의 폐허나 다름 없는 상태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용서하시길...

플레져 2004-12-06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 나 이거 퍼가요.

mira95 2004-12-07 0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관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예전에 읽었던 <25시>라는 소설이 생각나네요... 구원이 없는 시간을 25시라고 표현했다죠.. 내용은 전혀 기억이 안 나네요 ^^::

비연 2004-12-07 0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퍼감다...이 작품은 자주 볼 수 있는 거지만 볼 때마다 감흥이 새롭다는..

바람구두 2004-12-07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페인시민전쟁에서 독일 공군(콘도르군단)이 행한 여러 참혹한 학살극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사건이었지요. 이때 독일 공군은 마치 게르니카를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보이게 해서 마을 사람들이 방공호에서 나올 무렵 폭격을 가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공중폭격으로 한 마을, 한 도시를 날려버린 최초의 사건인 거지, 이것이 마지막 사건은 아니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