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이희재 지음 / 청년사 / 2003년 3월
평점 :
절판


   이제 다섯살인 어린애가 '죽는 것'이 소원이라면, 그 아이의 삶은 어떤 것일까? 

   난 바스콘셀러스의 원작을 아직까지 읽어보지 않았다. 언젠간 꼭 원작을 찾아서 읽어볼 생각이지만 당분간은 없다. 왜냐하면 이희재가 그린 이 만화의 감흥이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희재의 만화는 항상 시대의 비루한 면을 그려왔다. 그를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한 『간판스타』는 물론이고, 명랑만화인 『악동이』조차 우리가 사는 시대를 배경으로 했다. 그의 만화는 다른 만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현실도피적인 요소가 하나도 없었다. 그는 그저 지금 우리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그렸다. 이런 것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에서도 마찬가지다. 

   겉보기에 제제는 대책없는 말성꾸러기일 뿐이지만, 그는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또 집안 구성원 그 누구보다도 사려깊은 존재다. 그저 어린애이기에 특별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장난질이 좀 심할 뿐이다. 그러나 집안에서는 툭하면 손찌검이다. 그것은 가난으로 비롯되는 집안 환경 때문만은 아니다. 제제의 식구들은 가족들간의 사랑이 거세되어 있다. 그들은 가족이라기 보다는 동거인에 가깝다. 

   그런 제제에게 두 명의 친구가 있다. 하나는 집 뒤뜰에 있는 라임오렌지나무이고, 다른 하나는 '뽀루뚜까 아저씨'다. 사랑을 받아야 할 가족들에게 폭력과 야유와 멸시를 받아 '죽음'을 생각하는 제제. 그런 가족의 자리를 대신해주는 라임오렌지나무와 뽀루뚜까는 제제가 계속 살아갈 힘이 된다. 제제만의 상상속 친구와 실재 친구인 그 둘이 있어, 제제는 이 지옥같은 삶을 살아갈 위안을 얻지만, 그 둘은 제제에게서 떠나간다. 

   뽀루뚜까의 죽음과 라임오렌지나무와의 (꿈속에서의) 작별로 제제의 유년기는 끝난다. 제제가 친구들과의 작별로 얻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결국 철이 든다는 것은 사랑이 가득찬 세상과 작별을 하고 비루한 현실로 들어온다는 것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참혹한 성장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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