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랜드


리뷰어: 박여영 편집자




벨린다 바우어의 『블랙랜드』는 특별한 반전이나 장치가 많지 않은 평이한 구조 속에서 심리묘사와 인물을 둘러싼 배경이 주는 정서적 효과를 통해 서서히 긴장을 끌어올리는 이 소설은 황량한 엑스무어 지역에 사는 12살 소년 스티븐 램의 성장기이다. 


19년 전, 스티븐의 삼촌 빌리는 11살의 나이에 아동성애자의 손에 끌려가 살해당했고, 엑스무어 황야 어딘가에 묻혀 있다. 할머니, 어머니, 남동생으로 구성된 스티븐의 가족은 경제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끝없이 암울하다. 스티븐은 삼촌이 살해당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 황야에 묻힌 삼촌의 시체를 발견하기 위해 가족 몰래 끝도 없이 땅을 판다. 시신이 묻힌 정확한 장소를 알고 싶었던 소년은 결국 종신형을 받고 형무소에 갇힌 범인 에이버리에게 암호와도 같은 편지를 쓴다. “저는 WP를 찾고 있습니다. 도와주실 수 있나요?” 그리하여 스티븐은 교활한 연쇄살인마이자 아동성애자 에이버리와 위험한 서신교환을 시작하고, 주변 사람들-친구 루이스, 엄마, 할머니-은 서서히 그 파장에 영향을 받기 시작한다. 


『블랙랜드』는 영국인의 정신과 문학에 흐르는 황야(무어)에 대한 사랑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석탄질이 섞인 검은 흙, 한 삽만 퍼도 금세 물이 고이는 진 땅, 아름다움과 으스스함을 동시에 주는 식물과 바위, 해가 빛나다가도 금세 안개에 휩싸여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무어 지역의 자연은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드넓은 황야의 진창을 삽 한 자루 들고 파헤치면서 자신과 거의 같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삼촌의 시신, 어디 묻혀 있는지도 알 수 없는 그 시신을 찾는 소년에게 이 환경은 놀이터이자 적이고, 마지막엔 살인자와 독대하는 숙명의 무대가 된다. 


주인공 스티븐은 우리가 보는 실제 12살 소년이 그러하듯이 어수룩함과 총명함을 동시에 지녔다. 오로지 친구와 뛰노는 것밖에 모르던 남자아이가 책을 통해 살인자의 심리를 공부하고, 연쇄살인범의 마음을 움직이는 편지를 성공적으로 써나가는 과정은 일반 스릴러 소설의 형사-범인 간 심리싸움을 효과적으로 대신한다. 마음 약하지만 주관이 있고, 피폐해진 가족의 애정에 목말라하고, 아직 어린아이다운 생각?프랑켄슈타인 게임-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주인공의 입체적인 모습과 그가 벌이는 싸움은 노동계급 소년의 성장기로서도, 그리고 가족의 결합을 그린 극복기라는 측면에서도 과장 없는 단단한 감동을 준다. 


다만 화려한 반전과 서술에 단련된 현대 스릴러 독자가 읽기엔 다소 심심한 측면이 없지 않다. 일단 스티븐의 적수로 설정된 연쇄살인마 에이버리의 배경이나 심리가 아무런 장치 없이 너무나 스트레이트하게 기술되면서 그의 악마적 범죄에 대한 공포나 깊이가 조성되지 못한 탓이다. 에이버리의 마지막 편지를 스티븐이 받지 못한다는 정도의 소소한 설정을 제외하면, 극의 흐름을 틀어줄 장치 역시 거의 부재한다. 따라서 『블랙랜드』의 마지막 책장을 덮은 독자에게, 잘 쓴 스릴러 소설을 읽고 난 후의 빠른 심박수와 긴장감보다는 여운은 있으나 뭔지 모를 애매함이 남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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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로라>

비라 캐스퍼리 지음


리뷰어: 김용언 (미스테리아 편집장)






워런 처낵(Warren Chernaik)의 책 <아트 오브 디텍티브 픽션(The Art of Detective Fiction)>에 따르면, 1931년 미국 탐정 소설 독자들에게 행해진 설문에서, 소설 속에서 가장 싫은 타입의 인물로 “시끄러운 독신녀, (……) 이야기를 망쳐버리는 여자들, (……) 너무너무 여성적인 이야기, (……) 혼자 다락방을 배회하는 여주인공”이 꼽혔다고 한다. 사실상 1930년대 출간된 소설 속 여성들 거의 전부를 싫어한다고 고백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특히 이 시기는 미국의 미스터리 소설계에서 ‘하드보일드’라는 신천지를 발견한 무렵이기도 하다. 고독하고 터프한 남자들의 모험담, 여기서 여성들은 대개 팜파탈로서 주인공 남자의 강박이나 판타지가 과장되게 구현된 그림자 같은 인물로만 등장했다. 


그러나 비라 캐스퍼리는 1943년 하드보일드 누아르 <나의 로라>(이은선 옮김, 엘릭시르 펴냄)를 집필하며 수많은 남성 독자들의 편견을 산산조각냈다. 소설은 미모의 커리어우먼 로라가 뉴욕 한복판 호화로운 맨션에서 시체로 발견되면서 시작한다. 무뚝뚝하고 자부심 강한 형사 맥퍼슨은 ‘모두에게 사랑받았다’고 알려진 로라가 살해된 이유를 알기 위해선 피해자의 성격을 세심하게 파악해야 한다고 믿는다.


로라는 ‘남자 같은’ 여자였다. 겉모습은 아름답고 가냘픈 소녀 같지만, “자기가 얼마나 똑똑한지 알고 있었고, 자신의 재능을 증명해 보일 수만 있다면 수백 번이라도 퇴짜를 맞을 준비가 되어 있”던 여자였다.


“응접실 세트도 필요 없었고, 결혼이 지상 최고의 과제도 아니었단 말입니다. 직업도 있겠다, 돈도 많이 벌겠다, 떠받들며 찬양하는 남자들도 넘쳐 나겠다. 결혼을 해 봐야 채워지는 곳은 한군데뿐인데, 그건 결혼하지 않아도 채울 수 있었으니까. (……) 그녀는 남자처럼 일하고 남자처럼 걱정을 했던 여자올시다. 뜨개질에 재능이 있었던 여자가 아니었어요.”


한편 로라는 남자들의 ‘욕망의 모호한 대상’이기도 했다. 사랑에 빠진 남자는 로라를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적인 감정을 녹여 넣어 초상화 속에 로라를 박제하려 했다. 하지만 로라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을 둘러싼 그 이미지들의 휘황찬란함을 파괴했다. 로라는 돈을 많이 벌었지만, 또 그만큼 품위 있는 삶을 유지하고 그녀의 호의를 기대하며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응당 주어야 할 사랑과 우정을 베풀기 위해 그 돈을 다 써버렸다. 그녀는 사람들의 장식품이었고, 그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또한 그녀 자신의 위치를 위해 사람들을 이용했다. 그녀는 바흐의 정갈한 클래식만큼이나 베니 굿맨의 스윙을 사랑했고, 직장에선 똑 부러지게 일을 해냈지만, 자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기획서를 쓸 때만큼의 질서를 찾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는 모두에게 잘해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지만, 그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 때면 상류층의 예의범절을 미련 없이 내동댕이쳤다.


“화가 나서 좋았다. 증오할 수 있어서 기뻤다. 나는 복수를 위해 고함을 질렀다. 살기등등하게 덤볐다.”


이 모든 묘사는, 팜파탈들이 그러하듯 뭔가 다른 목적을 위해 남자들을 유혹하고 파멸하기 위함이 아니다. 로라는 겉보기엔 완벽에 가까운 여자였지만, 언제나 자신이 불완전하다고 느끼면서 “덩치만 큰 어린애 아니면 나이 든 할망구” 같은 남자들에게 결정적인 순간 약해지며 기꺼이 모성애를 베풀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고 있었다. 마치, ‘요즘 여자들’처럼 말이다.


자신이 “여자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듯한, 산뜻한 가면으로 포장된” 잘생긴 ‘신사’ 셸비를 결혼상대로 선택했던 이유에 대해 “수익률 좋은 새로운 품종을 탄생시키기 위해 선택된” 채소 같은 것이 아니었나 의심한다. 결국 로라는 남몰래 한탄했다. “우리가 얼마나 너그럽고 세련되고 우스꽝스럽고 한심했던가!” 그리하여 “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당신을 흠모해. 당신은 내 작품 속의 여주인공이 될 거야. 내가 만든 가장 위대한 작품이 될 거야”라고 유혹하는 남자의 목소리를 그녀는 용감하게 거절했다. 다시 말해 (남자의) 주인공이 되는 걸 포기했다. 대신 “한심하고 쓰잘머리 없는 일상을 유지하고, 습관을 내 스스로 조절”하는 쪽을 선택했다.


여성 작가가 하드보일드 누아르를 쓰면 이만큼 달라질 수 있는 걸까? 로라는 수많은 하드보일드 남성 작가들이 그려낸, 남성 탐정의 냉정한 눈에 비친 아름답지만 공허하고 사악한 여자가 아니다. 비라 캐스퍼리는 선언한다. 그런 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 이미지는 그 남자의 문제이며, 그중 아무도 여자 캐릭터의 내면을 들여다볼 용기가 없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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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이 깨어나는 마을


리뷰어: 유진(편집자)



《뱀이 깨어나는 마을》은 뱀과 개와 노인의 시체가 참혹한 모습으로 발견되는 충격적인 오프닝을 택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사실이 이 소설을 더 작게 만들지는 않는다. 사람과의 접촉을 피하며 사는 야생동물 전문 수의사 클래라 베닝은 내성적인 성격과 심한 콤플렉스의 소유자로 소개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독자들은 그녀의 경이로운 능력에 놀라게 된다. 자신의 두려움보다 언제나 더 강한 클래라는 박식하고, 목소리가 아름답고, 두뇌 회전이 빠르고, 쉼 없이 기민하게 반응하고 움직이고, 매력적인 두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심지어 육체를 이용한 행동이 필요한 장면(빈번하게 나온다)에서는 웬만한 남자보다 강한 액션을 연출하기도 한다. 


영국 미스터리계의 새로운 총아로 떠오른 샤론 볼턴은 고딕문학의 현대적 후계자를 표방한 이 작품에 자신의 로맨티시즘을 마음껏 녹여 넣었다. 바깥세상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조용한 시골 마을에 불타버린 교회가 있고, 가시덤불로 둘러싸인 음울한 저택이 있고, 비밀을 감춘 묘지가 있다. 수백 마리의 뱀들이 물결을 일으키며 밤의 들판을 질주하고, 사교(邪敎)의 그림자가 세월을 관통하며, 고대 로마의 형벌을 연상시키는 방법으로 사람들이 살해된다. 그리고 죽은 자가 살아 돌아온다. 


존 딕슨 카만이 해낼 수 있을 법한 곡예를, 볼턴은 영리하고 신비로운 주인공의 개성을 통해 그럴싸하게 소화해냈다. 강렬한 프롤로그를 통과하면 독자는 클래라가 살무사에게서 갓난아기를 구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긴장을 요하기는 하지만 목가풍 에피소드에 가까운 이 장면은 클래라의 과거가 밝혀지는 후반부에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갓난아기 때 참혹한 사고로 얼굴의 반을 잃고 원망과 체념의 연쇄에서 쳇바퀴를 굴려온 클래라는 아기를 구하면서 시작된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자신을 구원할 단초를 잡는다. 클래라의 사고에 개가 얽혀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뱀과 개가 자루에 함께 넣어져 ‘처형’된 프롤로그 또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사실, 이 작품 전체가 클래라 베닝이라는 주인공의 성장을 위한 상징의 직물로 읽히기도 한다. 모든 장치들이 그녀의 인생 궤적에서 작동하고 있다. 파충류의 껍질처럼 매끄럽고 얇은 실크로 피부를 덮는 것을 좋아하는 클래라는 뱀들이 저지르는 사건을 외면할 수가 없다. 클래라가 사랑과 원망으로 기꺼이 파괴하려 한 어머니의 장미 향기는 죽음에서 귀환한 노인의 정원에서 되살아나 그녀 곁을 맴돈다. 그녀를 키운 종교적 배경은 최후의 대결이 기다리는 사악한 신앙의 중심부로 돌진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그리고 로맨스가 있다. 살인은 클래라를 매력적인 경찰 맷 호어에게 이끌고, 치명적인 독사는 모험을 사랑하는 마초 숀 노스를 그녀 앞에 데려다놓는다. 그들이 얼굴의 반을 잃은 그녀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당신은 아름답다”고 말할 때 클래라가 자신의 감옥에서 한 걸음 나오는 장면은 진부하지만, 딱 필요한 만큼 로맨틱하다. 남성의 시선을 구원의 디딤돌로 삼는 것이 석연치 않을 수도 있지만, 클래라는 맹렬한 단독 액션으로 상대의 생명을 구함으로써 어쨌건 빚을 갚는다.


이처럼 모든 요소가 클래라의 생명력에 종속되어 있는 탓에, 미스터리를 위한 장치들은 다소 작위적으로 보인다. 살인자의 정체는 반전을 거듭하며 윤곽을 드러내는데, 저주받은 가계를 배배 꼬아놓은 매듭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반전이라 뒤로 갈수록 충격이 희박해진다. 과거에서 호출된 팜므 파탈은 짜증과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일 뿐이다. 한때 마을을 지배했던 잘못된 신앙의 그림자는 정신적 영향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큰 위협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이는 고딕문학의 도구들을 현대로 끌어올 때 불가피하게 생기는 충돌이기도 하다. (존 딕슨 카도 여기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설사 이 작품의 미스터리가 어느 여성의 통과의례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뱀이 깨어나는 마을》의 매력을 감소시키지는 않는다. 세상이 오직 그를 위해 움직이는 것처럼 만들 수 있는 주인공을 만나는 것은 늘 짜릿한 경험이다. 자신의 구속을 벗어던진 클래라의 미소를 보는 데 불과 600여 페이지밖에 들지 않는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내 말은, 앞으로 소개될 샤론 볼턴의 소설이 무엇이건 즐거운 마음으로 기대하게 되겠지만, 그 안에 클래라 베닝과 그녀의 두 추종자가 등장하는 속편이 포함되어 있었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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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해드립니다

by 로렌스 블록


리뷰어: 홍지로 (번역가)



『살인해드립니다』는 알코올중독 무면허 탐정 ‘매슈 스커더’ 시리즈로 널리 알려진(희망사항이다) 작가 로런스 블록의 또 다른 대표작, 살인 청부업자 ‘켈러’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집이다. 이 책에는 열 편의 단편이 실려 있으며, 그중 첫 번째부터 세 번째 작품에 해당하는 「솔저라고 부르면 대답함」, 「말을 탄 사나이 켈러」, 「켈러의 상담 치료」는 기존에 각각 다른 지면을 통해 시차를 두고 소개되어 미적지근한 반응을 얻은 바 있다. 본 글의 1차 목표는 앞서 소개된 세 단편을 읽고 별다른 인상을 받지 못했거나, 그중 한두 개는 마음에 들었으나 나머지는 별로였기에 이 시리즈를 믿어도 될까 망설이고 있거나, 셋 다 재미있게 읽기는 했지만 이런 이야기를 굳이 일곱 편이나 더 읽을 필요가 있을까 주저하는 독자 여러분의 손을 붙잡고 모쪼록 한 번 더 기회를 주십사 청하는 데에 있다. 이미 세 단편에 홀딱 반한 독자라면 설득이 필요하지 않을 테고, 애당초 이런 작품이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독자라면 이하 이어지는 호소를 통해 자연스럽게 어떤 책인지 아실 수 있으리라.


『살인해드립니다』는 각 단편마다 살인 청부업자 켈러가 매번 새로운 의뢰를 받아 사람을 죽이는 구조를 반복한다. 이래서야 기왕의 캐릭터나 구성에 동하지 않았던 독자의 마음을 새삼 움직일 방법이 있을까? 그런데 앞서 세 단편이 소개되는 과정에서 충분히 안내되지 못한 부분이 있다. 『살인해드립니다』는 실은 독립적인 단편 열 편을 한데 모아둔 옴니버스 단편집이라기보다는 서로 느슨히 연결된 단편들을 엮어 만든 장편에 가깝다. 이런 유형의 책이 흔히 그렇듯 순서에 구애받지 않고 아무 단편이나 발췌해 읽어도 표면상의 줄거리를 이해하는 데에 무리가 없긴 하지만, 열 개의 이야기가 순차적으로 축적되면서 생겨나는 큰 그림을 보지 못한다면 진가를 맛보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단편 간의 관계는 몇몇 인물이나 사건이 중첩되면서 세계를 확장하는 정도로 그치지 않는다. 여기는 반드시 열 편을 순서대로 읽어야만 드러나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숨어있다. 각각의 단편을 독립된 작품으로 읽느냐 전체의 부분으로 읽느냐에 따라 무게중심은 완전히 달라지며, 이 책의 정수는 전자보다는 후자에 있다.


그렇다면 숨어 있는 또 하나의 이야기란 무엇인가? 범죄소설 및 영화의 팬이라면 누구나 얼개를 짐작할 수 있는 이야기다. 여기 한 살인 청부업자가 있다. 프로인 그는 의뢰인과 만나는 일 없이 중개인을 통해 의뢰를 받으며, 도덕적 고뇌 없이 무심히 살인을 해치운다. 일의 성격상 그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고, 일이 없을 때도 특기할 만한 사생활이나 소중한 인간관계는 없다. 그러던 그가 업무 도중 어떤 사건 혹은 사람을 만나 마음을 쓰기 시작하면서 전문가다운 냉철함이 흔들리기 시작하는데…….


고개를 가로젓고 계신 분들은 조금만 더 참아주시길. 살인 청부업자가 제거 대상에게 반해 의뢰를 포기한 뒤 분노한 의뢰인에게 쫓기다 목숨을 버리는 결말 따위의 지긋지긋한 멜로드라마가 아님을 보증한다. 이곳은 하드보일드계의 심리상담가 로렌스 블록의 세계. 삶의 변화는 순간의 계기를 통해 갑작스레 찾아오기보다는 음으로 양으로 누적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일어난다. 중요한 것은 살인 청부업 자체가 아니라 업무를 수행하며 생기는 일견 ‘잉여로운’ 경험들이며, 그것이 켈러의 견고한 세계를 침식해 들어온다. 그는 낯선 ‘출장지’에 갔다가 동네가 마음에 들자 일은 잠시 제쳐놓고 부동산에 들러 집을 구경한다. 왜 실천하지도 않을 그런 몽상에 빠지는 걸까 싶어 심리 치료도 받아본다. 출장이 잦은데 개를 키울 수 있을까 고민하기도 하고, 사적인 인간관계에서 느낀 상실감을 업무 처리에 반영하기도 한다. 평생직장처럼 보이던 살인 청부업에 위기가 찾아오는 대목은 특히 포복절도할 만하다. 변화가 쌓일수록 그는 점점 더 평범하고 고민 많은 프리랜서처럼 보인다. 편의상 장르적인 것과 일상적인 것을 구분해도 된다면, 『살인해드립니다』는 빠르고 폭력적인 죽음으로 가득한 장르 세계가 느리고 사소한 골칫거리로 가득한 일상의 무게에 휘청거리는 광경을 음미하는 코미디에 가깝다.


참, 그리고 이 작품이 훌륭한 애견 소설이기도 하다는 이야기를 썼던가? 정말이다. 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치면 올해 이 분야에서 나온 소설 중 이나미 이쓰라의 『세인트메리의 리본』과 『사냥개 탐정』(모두 신정원 옮김, 손안의책 펴냄), 루이즈 페니의 『네 시체를 묻어라』(김연우 옮김, 피니스아프리카에 펴냄)에 뒤지지 않는다. 특히 개를 두고 외출하며 애달픈 마음을 표현하는 켈러의 모습은 반려동물이 없는 독자들의 심금마저 울릴 만하다. 세상에는 훌륭한 살인 기술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그렇게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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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즈키 린타로의 모험>


리뷰어: 홍지로 (번역가)




‘고뇌하는 작가’ 노리즈키 린타로는 일본 신본격 미스터리 작가 중에서도 창작과 평론 활동을 꾸준히 병행하면서, 미스터리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고 이를 자기 작품에도 반영하는 유형의 창작자다. 그는 본격 미스터리의 세계를 검토하고 재구축하는 데에 주력하는데, 특히 그 방면의 선배 엘러리 퀸을 어찌나 존경하는지 틈만 나면 작품 속에서 퀸의 작품을 인용하고 분석한다. 노리즈키 린타로라는 이름을 필명인 동시에 작품에 등장하는 탐정의 이름으로 정한 것부터가 엘러리 퀸의 사례를 따른 것. 


존재 자체가 메타적인 이 작가의 작품은 종종 미스터리라기보다는 미스터리에 관한 에세이나 콩트, 독후감을 읽는 듯한 기분마저 선사한다. 나쓰키 시즈코의 『그리고 누군가 없어졌다』(추지나 옮김, 엘릭시르 펴냄)처럼 선배 작가의 설정과 구조, 트릭을 자기 작품에서 차용하는 정도로 만족하지 않고 아예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미스터리에 관한 이론을 설파하는가 하면 ‘엘러리 퀸은 왜 국명 시리즈 중 『샴 쌍둥이 미스터리』(배지은 옮김, 검은숲 펴냄)에서만 독자에의 도전을 넣지 않았지?’ 같은 오타쿠다운 의문을 미스터리의 원천으로 삼아 이야기를 쌓아 올리는 식이다. 한국에 먼저 소개된 린타로의 단편집 『녹스 머신』(박재현 옮김, 반니 펴냄)이 그 가장 과격한 예로, 거기 실린 네 단편 중 세 편은 사실상 고전 미스터리에서 발견되는 규칙과 변화 및 허점의 원인을 규명하는 개그 에세이나 다름없다. 사전 지식이 없는 독자라면 머리만 긁적일 테고, 내용을 이해하며 즐긴 독자라고 해도 내심 ‘이건 미스터리는 아니잖아!’라며 배신감을 느낄 만하다.


제목에서부터 『엘러리 퀸의 모험』(엘러리 퀸 지음, 장백일 옮김, 동서문화사 펴냄)을 염두에 둔 노리자키 린타로의 첫 단편집 『노리즈키 린타로의 모험』 역시 작가의 태도는 뚜렷하지만, 『녹스 머신』 수준으로 연구가의 자세를 견지하며 독자에게 사전 지식을 요구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노리즈키 린타로 입문서로는 좀 더 나은 선택이다. 여전히 본격 미스터리에 관한 지식이 조금이나마 있는 편이 좋을 테지만, 평범한 ‘추리소설’을 기대하고 책장을 펴든 독자라도 망연자실할 염려는 없다. 「사형수 퍼즐」, 「상복의 집」, 「카니발리즘 소론」, 「녹색 문은 위험」처럼 미스터리의 매무새를 갖춘 작품들은 후더닛(누가 범인인가), 하우더닛(어떻게 범행을 저질렀나), 와이더닛(왜 범행을 저질렀나)을 고루 건드리고 있고, 「도서관의 잭 더 리퍼」나 「토요일의 책」처럼 미스터리 향유자로서 떠올림직한 콩트 혹은 메타 구조를 이용해 미스터리를 빙 둘러 피해가는 한가로운 작품들도 사전 지식 없이 무난하게 즐길 만하다. 


작가가 직접 쓴 30쪽에 달하는 후기가 압권인데, 각 작품에 얽힌 뒷이야기를 제공해주는 역할을 넘어서서 노리즈키 린타로의 성격을 말해준다는 점에서 간접적인 작가 소개로 읽힌다. 특히 문헌정보학 전공자인 독자에게서 도서관 묘사에 대한 지적을 받은 뒤, 해당 쟁점을 연구하여 기나긴 인용도 불사하며 도서관의 자유와 윤리에 관한 논의를 펼치는 대목을 읽고 있노라면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으면서도 이렇게까지 하고야 마는 진지함이 이 작가의 원동력임을 실감하게 된다.


한 편 한 편이 짧은 만큼 각 작품의 세부를 소개하는 일은 피하고 싶지만, 수록작 중 유일한 중편인 「사형수 퍼즐」은 가장 정석적이면서도 노리즈키의 관심사를 집약한 수작인 만큼 대표 삼아 강조해둬도 좋겠다. 사형수가 사형 직전에 살해당한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한 이 후더닛 미스터리는 작가 자신도 본문에서 암시하듯 엘러리 퀸의 『Z의 비극』을 다시 쓴 것이지만, 원전에 대한 지식이 없더라도 즐기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 범행의 동기를 비롯한 감정적인 요소를 일단 배제한 가운데 사건의 물리적 조건을 점검하고 소거해 나가는 탐정 노리즈키 린타로의 추론 과정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하며, 사형 집행에 관한 사법 절차를 주석까지 곁들여 가며 꼼꼼히 다룸으로써 사형장을 둘러싼 심리적 스트레스를 서서히 부각시키고 범행 동기로까지 연결해 내면서 어느새 와이더닛의 장으로 옮겨가는 대담함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신본격 미스터리에서는 종종 논리적 추론에만 지나치게 매달리느라 감정과 동기의 문제를 소홀히 하는 현상이 나타나곤 하는데, 그것을 사형장이라는 특수한 공간과 사형제도라는 절차, 다시 말해 추론의 기반이 되는 구체적 조건 속에 귀속시킨 셈이다. 심지어 환경과 심리의 밀도 덕분에 작가의 당부와는 달리 작품 전체를 사법제도의 딜레마에 관한 사회파 미스터리로 읽고 싶은 충동을 느낄지도 모른다. 일단 미스터리의 다양한 맛이 두루 담긴 이 한 편을 믿고 노리즈키 린타로의 과잉 고뇌 속으로 들어가보시는 것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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