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의 슬픔
에리크 뷔야르 지음, 이재룡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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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적인 역사도 사건도 하나의 스펙터클로 만들어버리는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볼거리에 미쳐 눈을 소유하려 애쓴 눈송이 이야기가 상징적이다. 아무리 잡아보려한들 잡히지 않는 눈송이처럼 스펙터클은 실체 없이 휘발되고 만다. 건조한 서술이 이 작가 특징인 듯한데 읽는 재미는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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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엄마 맞아? (반양장) - 웃기는 연극 움직씨 만화방 1
앨리슨 벡델 지음, 송섬별 옮김 / 움직씨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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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 홈>에서 어쩌면 가장 안타깝고 연민이 가던 인물이 앨리슨의 엄마였다. 게이인 남편과 살며 세 아이를 키우며 살아간다는 건 어떤 심정일까. 여기서 그 이야기가 펼쳐진다. 엄마에 대한 이야기이면서도 앨리슨 그녀의 자아찾기. 딸과 엄마 그 애증의 관계에 대한 치열한 정신분석학적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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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1-11-07 18: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이 전작 ‘펀홈‘ 보다 더 좋았어요. 이토록 처절하게 자신과 어머니 관계를 다른 여러 책들을 바탕으로 분석하려 하다니!

잠자냥 2021-11-08 00:59   좋아요 1 | URL
엄마를 참 한 인간으로 이해하려고 부단히 애쓴 느낌인데 그게 참 좋았습니다.
 
[eBook] 방황 - 문예 세계문학선 101 문예 세계문학선 101
루쉰 지음, 정석원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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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건과 근대, 계몽과 반계몽, 민중과 지식인 그 사이에서 방황하는 루쉰의 고뇌를 엿볼 수 있는 단편 모음집. 당찬 여성이었던 ‘쯔쥔‘이 이상만 드높은 나약한 지식인과 함께 살면서 차츰 생활 속에서 허물어져 가는 이야기인 <죽음을 슬퍼함>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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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반란 - 갈라 드레스/ 뉴잉글랜드 수녀/ 엇나간 선행 얼리퍼플오키드 3
메리 E. 윌킨스 프리먼 지음, 이리나 옮김 / 책읽는고양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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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잉글랜드 수녀’ 한편만으로 홀딱 반했던 메리 E. 윌킨스 프리먼-드디어 그이만의 작품집이 출간됐다. 여기 실린 네 작품 모두 여성들은 꿋꿋하다. 시대 제약이 있음에도 자기에게 주어진 삶에 그대로 순응하지 않고 제 나름으로 자신을 위해 작은 투쟁을 벌이고 마침내 원하는 것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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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 (리커버 에디션) 옥타비아 버틀러 리커버 컬렉션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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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이라는 설정은 이제 더는 새롭지 않다. 영화나 문학에서 익숙하게 접해온 풍경이다. 시공간을 초월해 어디론가 뚝 떨어질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진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나 또한 이런 설정으로 만들어진 책이나 영화를 보면 한번쯤은 그런 상상을 해 보기도 한다. 어디로 갈까? 하지만 왠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굳이 과거로 가고 싶지는 않다. 게다가 그 과거가 우리나라의 조선시대나 그 이전 시대라면 생각만으로도 숨이 턱 막혀온다.

 

대부분의 나라는 과거에 신분제가 엄격히 존재했다. 조선시대 또한 엄연히 노비와 양반으로 나누어진다. 어느 날 갑자기 과거로 돌아가 내가 어느 양반집 종 신분이 된다면 어떨까?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게다가 돌아가 보니, 그 양반집에 내 조상이 있다. 남자 조상은 양반집 자제인데, 여자 조상은 그 집 노비이다. 이런 설정이라면 앞으로 벌어질 일이 눈앞에 훤히 그려진다. 양반집 자제가 강제로 그 여종을 취할 것이며 그렇게 내 조상의 핏줄은 이어져서 오늘날의 내가 되기에 이르는 것이다. 그런데 그 옳지 못한 일을 내가 현대에서 과거로 돌아갔기 때문에 이미 다 알고 있고, 그 과정을 묵묵히 지켜봐야 한다면 어떤 심정일까? 이런 이야기가 바로 옥타비아 버틀러의 <>에서 펼쳐진다.

 

배경은 물론 내 상상과는 다르다. 주인공 다나가 사는 세계는 노예제가 사라진 1976년의 미국이고, 그 다나가 어느 날 갑자기 시간여행을 하게 되는 곳은 노예제가 존재하는 1819년의 미국 남부이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여행에서 팔 하나를 잃었다. 왼팔이었다. 그리고 일 년에 가까운 인생과 사라지기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귀한 줄 몰랐던 편안함과 안전의 많은 부분을 잃었다.’ 이 작품은 이렇게 시작한다. 대체 어떤 여행을 떠났기에 왼팔을 잃은 처참한 모습으로 돌아와서, 다나의 남편인 케빈이 폭행을 가한 당사자가 아닐까 의심받게 되는 상황에 처한 것일까 궁금해진다. 그런데 알고 보니 참 느닷없게도 다나는 한 세기를 넘고 5천 킬로미터를 지나 죽은 조상들을 만나고 온 것이다. 1819년의 루퍼스앨리스가 다나의 조상이다.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이 여행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루퍼스, 그러니까 다나에게는 남자 조상에 속하는 그 아이에게 있다는 점이다. 처음 다나가 과거로 돌아갔을 때 소년 루퍼스는 죽음의 위기에 처해 있다. 강물에 빠져죽을 위기에서 다나가 갑자기 나타나 루퍼스를 살려주고 그 인연으로 루퍼스의 집에서 노예이지만 조금 색다른 존재로 머물게 되는 것이다. 흑인인 다나는 1976년에는 자유인이지만, 1819년에는 자유인이라는 신분증명서도, 누군가 자기 소유라고 말할 수 있는 백인이 함께 있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당연히 도망 노예 취급을 받고, 그렇기에 루퍼스의 집에 기거하게 된다. 그때 다나는 루퍼스의 집에서 소녀 앨리스를 보게 된다. 루퍼스는 백인 농장주의 하나뿐인 아들이고, 앨리스는 그들이 소유한 노예이다. 다나가 태어나려면 앨리스와 루퍼스 사이에 성적 결합이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들은 주인과 노예 사이이자, 백인과 흑인이다. 이 둘 사이에 일어날 일은 독자는 물론 다나도 예상할 수 있다. 설마 루퍼스가 앨리스를 사랑할까, 설마 앨리스가 백인 주인인 루퍼스를 사랑할까. 그 시대는 이 작품에서도 언급하듯이 흑인 여자를 강간한다고 부끄러울 것은 없어도 흑인 여자를 사랑한다면 부끄러울 수 있는 시대’(236)이다. 그런데 둘 사이에서 다나의 조상들이 태어나고 그 핏줄이 1976년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다나는 한 번의 시간여행으로 내내 1819년의 세계에서 살아야 하나? 여자 흑인 노예로 목숨을 부지하기 쉬울까 무척 걱정스러운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주 위험에 처할 때면, 즉 다나의 목숨이 위험해지면 그 죽음의 공포는 다나를 1976년 그녀의 집으로 다시 데리고 온다. 그러니까 루퍼스가 느끼는 죽음의 공포가 다나를 과거로 불러가고, 반대로 다나가 느끼는 죽음의 공포는 1976년의 현재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그 사이 시간은 점차 흐른다. 과거의 시간은 더 빨리 흐른다. 다나가 1819년에서 며칠, 몇 달을 머무르다 현재로 돌아와도 고작 몇 초, 또는 몇 시간, 하루 이틀이 지났을 뿐이다. 그러나 과거에 입은 육체적 상처는 현재로도 이어지기에 루퍼스 와일린, 즉 와일린 농장에서 다나가 채찍으로 맞거나 구타당하면 현재로 돌아와도 그 채찍자국이나 맞은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은 이런 설정을 통해 당연하게도 노예문제와 인종차별 문제를 지적한다. 노예가 아닌 현대 여성이 과거로 돌아가 노예인 조상과 그 노예의 주인인 또 다른 조상을 만나지만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노예 취급을 받는다는 설정은 깊이 고민하지 않아도 인종차별과 노예문제를 지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이 작품에서 더 관심이 가는 부분은 젠더문제이다. 다나가 처음 만났을 때 어린 소년이었던 루퍼스는 어쩌면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을, 단지 피부가 하얀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실제로 루퍼스가 성장하면서도 흑인 노예에게 무고한 존재로 자랄 수 있을까? 혹시 흑인 노예인 앨리스를 사랑하는 마음에 자애로운 농장주가 되어 노예들을 모두 풀어주고 더 나아가 노예 탈출을 돕는 백인이 되는 걸까 상상해 볼 수도 있지만 실제 루퍼스는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도리어 자기 아버지와 똑같은 평범한 그 시대 백인 농장주가 되어간다. 아버지가 여자 노예를 여럿 강간했듯이 앨리스를 강간하는 점까지 똑 닮아가면서 말이다.


자기 아버지처럼 변해가는 루퍼스. 나는 루퍼스에게 최악의 수호자였다. 흑인을 열등한 인간으로 보는 사회에서 흑인으로서 그를 지켜야 했고, 여자를 영원히 자라지 못하는 어린아이로 여기는 사회에서 여자로서 그를 지켜야 했다. 내 몸 하나 지키기도 벅찬 곳에서 말이다.(124)

 

다나의 딜레마는 여기에 있다. 그녀는 루퍼스를 교화할 수 없다. 앨리스를 향한 루퍼스의 집착-루퍼스는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이것을 과연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을 알면서도 묵인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일차적으로 다나의 뿌리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루퍼스와 앨리스가 성적으로 접촉하지 않는다면 현재의 다나는 존재할 수 없다. 그리고 두 번째는 여러 번이나 죽음의 위기에 처하는 루퍼스를 다나가 돕지 않는다면, 와일린 농장의 수많은 노예들은(특히 가족을 이루고 살고 있는 노예들은) 농장주의 죽음으로 인해 가족 모두가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다나는 자신의 뿌리는 물론, 이 농장의 노예 가족들이 흩어지는 것을 막고자 루퍼스의 목숨을 구하는 일에 계속 가담하거나 루퍼스가 앨리스를 강간하는 일도 묵인할 수밖에 없다. 이 작품의 제목이 <kindred>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렇게 가족또는 친족이 이어지기 위해 한 남자의 파괴적인 행동을 묵인하거나 방조하는 일은 용인되어도 괜찮은가? 거기에 어떤 식으로든 동조하는, 아니 그럴 수밖에 없는 다나의 모습을 지켜보는 독자의 마음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다나가 루퍼스를 두 번째로 구하게 되는 순간은 앨리스에게 지옥이 열리는 순간이나 마찬가지이다. 루퍼스는 앨리스를 강간하려다 앨리스의 남편에게 심하게 구타당하고 죽음의 위기에 처한다. 그러나 그때 다나가 나타나 이 청년의 목숨을 구하게 되고, 목숨을 건진 루퍼스는 앨리스의 남편은 다른 곳으로 팔아버린다. 루퍼스는 그 후 앨리스를 강제로 취하게 된다. 앨리스는 루퍼스가 끔찍하기만 하다. 그의 손이 닿을 때마다 차라리 죽고 싶다. 그러나 그 둘 사이에 아이가 생기고 아이들 때문에 앨리스는 달아나지도 죽지도 못한다. 그리고 그걸 알기 때문에 아이를 빌미로 루퍼스는 앨리스를 조종한다.

 

한편 루퍼스는 다나에게도 다른 방식으로 집착한다. 루퍼스에게 다나는 말이 통하고 정신적으로 기댈 수 있는 존재다. 다나를 강간하는 일만큼은 하지 못하는데, 그렇게 하면 자기 목숨이 위태로워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다나가 떠나지 못하도록 온갖 술수는 쓴다. 루퍼스는 자기 통제를 벗어나면 다나에게도 가차 없이 매질을 가한다. 그러고는 자신이 다나를 상처 입히거나 화나게 했다는 것을 알면 선물을 주곤 한다. 그러나 절대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루퍼스가 앨리스나 다나를 대하는 태도는 많이 보아온 익숙한 모습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는 소유하고 강간하고 아이를 빌미로 떠나지 못하게 종용하고, 말을 듣지 않으면 구타하고 그러면서 잘 대해주는 척하고……. 다나의 모범적인 남편 케빈도 한계를 보인다. 다나를 향한 루퍼스의 감정이 예사롭지 않음을 알고는 다나가 끔찍한 일을 당하고 현재로 돌아왔을 때 고작 의심하는 일이 루퍼스가 강간하지는 않았을까이다. 노예가 아닌 오늘날의 여성들 중에서도 남편이나 연인에게 이런 대우를 받는 일은 너무나 많지 않은가?

 

옥타비아 버틀러는 다른 시대를 살아가도 똑같이 흑인 여성인 다나와 앨리스 두 사람의 삶을 보여줌으로써 흑인이어서, 여성이어서 노예와 같은 처지에 놓인 여성의 삶을 극명하게 고발한다. 그것이 작가의 의도였다면 이 작품은 아주 성공적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루퍼스를 살리는 일에 계속 애를 쓰는 다나의 선택에 큰 아쉬움이 남는다. 자신의 뿌리가 끊이지 않기 위해, 다른 흑인 가족들이 흩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한 여성, 앨리스의 고통은 눈감아도 되는 것일까? 어차피 개인의 역사가, 한 집안의 역사가 그렇게 이어졌기 때문에 거기에 동조하는 것밖에는 할 수 없는 것이었을까? 가족이 해체되더라도, 자신의 뿌리가 뒤흔들리더라도 루퍼스라는 악의 씨앗을 잘라버리는 일을 시도했더라면 어떠했을까? 그래서 앨리스에게 새로운 삶을 시작되는 일이 일어났더라면 어떠했을까. 아쉬움과 답답함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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