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비는 수행이 아닙니다. 행동하는 속에서, 또 마음속에서무의식적으로 자연히 발현하는 것입니다. 부처가 살고 있다는 자체가 자비의 상태로 사는 것이기 때문에 이 이외에 길은알 수 없습니다. ‘자‘는 타인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며,
‘비‘는 타인의 괴로움을 덜어주는 것을 말합니다. 이 행동은 부처의 자연스러운 행동이지 억지로 수행해서 되는 것이아닙니다. 말을 하고 손을 들고 법을 설하는 등, 모두 자비의행을 위한 것으로 이 경지에 도달한 분을 부처라 일컫고 우러러 신앙하는 것입니다."
자비는 부처의 본질입니다. 법화경의 핵심인 수량품의 맨뒷부분에 부처의 ‘영원한 일념‘ 과 ‘구원의 대원‘ 이 기록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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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GI회장 그렇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묘법연화‘ 라고 깨닫은 부처는 동시에 모든생명도 ‘묘법연화‘ 라고 깨달았습니다. 모든 중생은 본래 ‘묘법연화‘ 의 당체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는 모든 중생들에게 자기 자식을 대하듯이 ‘자비‘의 마음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자신이 ‘묘법연화‘ 라는 사실을 아직 모르는 중생들은 많은 고뇌를 느낍니다. 부처는 그 중생들의 고뇌도 자기 자식의 괴로움처럼 절실히 압니다. 중생의 괴로움을 슬퍼하며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킵니다. 부처는 ‘자비의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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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법화경 이전의 경전에서는 성불할 수 없다는 이승이나 악인, 여인도 법화경에서는 성불할 수 있다고설합니다. 이것은 불가능까지도 가능하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부처의 생명은 이런 묘법의 역용으로 열리는 최고의 인격적 가치인 것입니다.
사이토 다시 말해서, ‘묘법연화妙法蓮華‘로군요. 고대 인도에서는 연화를 가장 훌륭한 사람에 비유했다고 하더군요.
만물은 묘법에서 피어난 연화SGI회장 불법의 원점은 석존이 내적인 법에 눈뜨게 된 것입니다. 보리수 밑에서 내면에 대한 깊은 탐구를 하던 석존은법(法: 다르마)을 확실히 각지하였습니다.
부처라는 말의 원어는 산스크리트어로 ‘붓다‘ 입니다. 이것은 ‘진리에 눈뜬 사람‘ 이라는 뜻입니다. 당시에는 여러 종교에서 사용했지만 석존이 등장한 후에는 오로지 석존만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붓다‘ 라는 말은 ‘개화한다‘ 는 뜻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고매한 인격으로 향기로운 꽃을 활짝 피워, 복덕이라는과일을 가지가 휘어지도록 열리게 하는 사람이 붓다인 것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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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는 생명의 근본이 이 법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성불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부처가 되는 불종이 바로 이 묘리인것입니다. 그 굉장한 묘법은 모든 생명에 본래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것을 설한 것은 방대한 여러 경들 중에서도 유일하게법화경뿐입니다. 그리고 그 법화경의 정수가 ‘묘호렌게쿄‘ 입니다. 그 근본법인 묘호렌게쿄의 설명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러나 대성인께서는 묘호렌게쿄의 의의를 ‘모의 삶의로 알기 쉽게 말씀하셨습니다.
사이토 법화경제목초>에 대성인께서 말씀하신 ‘구족원만具足圓滿‘, ‘개開‘, ‘소생의 삶의를 말씀하시는군요.??
SGI회장 그렇습니다.
‘구족원만‘에 담긴 의미는 법화경의 제목은 만물의 근원이며, 이 우주에 나타나는 모든 가치와 모든 공덕을 완전히 갖추고 있다는 말입니다. ‘개: 연다)‘의 의미는 그 묘법이라는곳간에서 조건에 따라 실제로 새로운 가치를 연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곳간을 여는 열쇠는 바로 제목을 부르는 것입니다. 또 ‘소생‘에 담긴 의미는 그 공덕으로 길을 잃어 정체해 있는 사람을 되살아나게 한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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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선유포의 대원을 세우셨다는 말씀입니다.
그 각오를 이번에 강성한 보리심(心)을 일으켜 퇴 않겠다고 원했노라」(어서 200쪽)라는 말씀으로 표현하셨습니다. 이것은 마를 타파하고 입종선언을 하실 때의 서원을 표현하신 말씀입니다. 그런가 하면 <개목초>에서 말씀하신 나는 일본의 기둥이 되겠노라, 나는 일본의 안목(眼)이 되겠노라, 나는 일본의 대선(大船)이 되겠노라」(어서 232쪽)라는 일절은 입종시의 서원을 밝히시고, 동시에 실현하시고자 하는 서원 그 자체를 밝힌 것으로 생각됩니다. 대성인의 서원은 성수 32세 때부터 사도유죄를 거쳐 입멸하시는 그날까지 시종일관 지속됩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습니다.
서원은 관찰해야만 비로소 서원입니다. 끊임없이 싸우는것만이 진정한 살아 있는 불법입니다. 비유해서 말하면, 과녁을 향해 활을 쏘면 그 순간에 활은 일직선으로 과녁에 맞을때까지 궤도를 날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맨처음부터 궤도를벗어나거나, 쏘는 힘이 약하면 속력을 잃어 과녁을 맞출 수없습니다. 그 반대로 깊은 결의로 일어선 사람을 그 누구도멈추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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