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르 사전 열린책들 세계문학 183
밀로라드 파비치 지음, 신현철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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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 우리 집 책꽂이에는 부모님께서 사주신 -지금은 그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백과사전 전집이 쭈~욱 진열되어있었다. 심심할 때마다 그냥 꺼내서 아무페이지나 펼쳐서 느낌가는대로 읽으면 되는 것인데, 그 당시에는 책을 보는 것이 왜 그렇게 싫었는지… 특히나 ‘가나다’순으로 되어있는 백과사전은 그저 숨 막히는 것으로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랬던 내가 ‘사전’이라는 이름이 들어가 있는 책을 직접(!) 구매하게 될 줄 알았을까?! 뭐, 물론 사전 형식을 빌린 소설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사전이라는 이름에 숨막혀했던 내가 『하자르 사전』을 만나게 된 것은 순전히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이 책에 대한 수많은 찬사 덕분이었다. 적어도 이 책에 실망을 할 일은 없지 않을까, 행여 있다고 하더라도 극히 일부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고, 또한 좀 더 시간이 지나게 된다면 그 생각에 좀 더 확신이 들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 좀 더 시간이 지나게 된다면 더더욱…

 

 『하자르 사전』을 단순하게-사실은 완전 복잡하다!- 말하자면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하자르’민족의 이야기를 사전 형식으로 써내려 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린 하자르 민족. 그들은 어떤 사건으로 인해 그렇게 되었는데, 그 사건이 바로 하자르 논쟁이라는 것이다. 이 논쟁은 하자르 민족이 가지고 있던 고유의 신앙을 버리고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중 하나로 개종을 하게 되면서 시작하게 되었는데, 『하자르 사전』은 바로 그 하자르 개종 사건에 대한 세 종교 각각의 시점으로 된 세 권의 책-레드 북, 그린 북, 옐로 북-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 나름의(?!) 해석으로 써내려간 각각의 책들을 통해서 우리는 하자르 민족의 모습들을 그려낼 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하자르 민족이 세 가지 종교 중 어느 것을 선택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하자르 민족과 그들의 나라는 개종을 하고 곧바로 붕괴했다는 사실이다. 이 외에도-혹은 그 속에 담겨있다고 해도 상관없을…- 많은 이야기들이 이 책 속에 담겨져 있다.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하자르 논쟁부터 시작해, 아테 공주 이야기나 타인의 꿈을 자유자재로 드나드는 꿈 사냥꾼들의 이야기, 그리고 영원의 삶을 사는 악마들의 이야기 등… 단순히 그냥 이런 이야기다, 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부족한 설명이 될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이 책을 가득 채운다.

 

 음… 대충 책의 내용을 말했으니 이제 더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사실 내가 이 책의 내용이 이렇다 저렇다고 말하기에는 상당히 많은 어려움이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이 책은 사전 형식이다. 고로 어느 페이지를 펼치든지,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에서 끝을 맺든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작가 스스로도 그렇게 밝히고 있고 말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이 책은 진짜 독자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책 속에서 이야기되는 ‘사실’들은 중심이 되어 같을 지라도, 그 사실들이 어떻게 시작되고 연결되어 마무리 되는지는 독자들의 손에 달려있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이 책의 내용이 어떻다고 말하는 것이 어렵다는 이유를 어느 정도는 짐작했으리라…

 

 책을 읽다가 이런 문구를 발견했다. ‘이 세상의 모든 꿈은 이미 다 오래전에 누군가 꾸어 본 것들이다.’ 라는… 여전히 꿈꾸어 보지 못한 꿈도 많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기는 하지만 뭐, 어느 정도는 공감가는 말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미 오래전에 누군가가 꾼 꿈이라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그 꿈의 실현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책을 쓰는 사람, 혹은 책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생각을, 이런 꿈을 꾸어 보지 않았을까!? 나만의 방식으로 나만이 쓸 수 있는 책을 쓰겠다고 말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밀로라드 파비치’는 누구나 꿀 수 있는 꿈을 꾸었고, 그것을 실현 시킨 사람이 아닐까!? 바로 『하자르 사전』이라는 놀랍고도 신기한 책을 통해서 말이다.

 

 이제 겨우 『하자르 사전』의 맛만 본 나에게 있어, 앞으로도 이 책은 매번 새로움을 안겨주는 책이 아닐까 생각된다. 수학으로 따지자면 정답은 하나인데 그 과정에 수많은 방식이 있는, 아니 어쩌면 사회과학과 같이 그 정답조차도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뭐, 그 역시 생각하기 나름이 아닐까?! 내가 생각하는 만큼만, 내가 원하는 만큼만 보이는 것이 세상이고, 또 이 책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자르 사전』이 당신에게는 어떤 내용의 어떤 책으로 다가갈까?! 또 나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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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 측 증인
고이즈미 기미코 지음, 권영주 옮김 / 검은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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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나만 간직하고픈 것들이 한두 가지는 있으리라 생각한다. 가령 히트치지 않은 좋은 음악을 우연히 듣게 되었을 경우라든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책, 혹은 전혀 유명하지 않은 작가의 책이지만 기대이상의 즐거움을 맛보았을 때와 같은 경우 말이다. 『변호 측 증인』이 ‘미치오 슈스케’라는 작가에게 그런 것들 중 하나였다. ‘그 누구와도 공유하고 싶지 않은 전설의 걸작’이라고 표현하면서 말이다. 그 자신도 좋은 작품들을 만들어 많은 이들에게 알리기 위해 정신없을 법한 작가가, 다른 누군가의 작품을 보면서 그 누구와도 공유하고 싶지 않다니… 도대체 어떤 작품이기에 그런 것일까?!

 

 스트립 댄서였던 ‘미미 로이’는 어느 재벌가의 외동아들과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게 된다. 지금까지 그녀의 삶과는 전혀 다른 환경 속에서, 비록 남편의 가족들-심지어 그 집에서 일하는 이들에게까지…-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그녀였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잘 적응하며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시아버지가 살해된다. 시아버지에게 그런 행동을 할 사람은 자신의 남편밖에 없었을 거라는 생각과 동시에, 남편을 지켜야 겠다는 생각으로 그녀는 살해 현장을 훼손하고 급기야 경찰에게는 거짓을 말하게 된다. 그리고 등장하는 변호사와 변호 측 증인… 범인은 과연 누구이고, 변호 측 증인은 과연 누굴까!?

 

 검은숲의 책에는 ‘성분 함량표’라는 것이 있다. ‘고전의 반열, 대반전, 속도감, 캐릭터, 논리정연, 선정성’ 이라는 항목을 두고 작품마다 각 항목에 점수를 부여한다. 『변호 측 증인』 역시 이 성분 함량표가 존재하는데, 고전의 반열과 대반전에서 최고의 점수를 받고 있다. 고전의 반열이란 역사적 의의와 수상경력을 이야기하는데, 그거야 뭐 직접 읽어보면 판단할 수 있을 것이고… 문제는(?!) 대반전이다. 이런 장르의 소설을 접할 때면 항상 작가와의 싸움(!?)에 결코 지지 말아야겠다는 굳은 다짐과 같은 것이 생기곤 한다. 특히나 『변호 측 증인』과 같이 대반전이 있다는 작품을 만날 때면 더더욱 신경 쓰기 마련이다. 결코 날 속일 수는 없을 것이란 자신감 혹은 오기랄까?! 그런데 항상 당하고 만다. 항상… 이번에도 어김없이…

 

 보통은 알면서도 당한다는 것이 기분 나쁘기 마련인데, 이런 작품들을 통해서 당하면(?!) 그런 마음은 아주 순간일 뿐이다. 기분이 나쁘다는 생각보다도,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작가의 능력에 찬사를 보내게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고이즈미 기미코’라는 이 작가에서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는 그 어떤 복잡한 트릭도 없이, 독자 스스로 글을 읽으며 생각하게 하고 그것을 머릿속에서 그림으로 그리게 하면서 결국에는 독자 스스로가 만든 생각과 그림이라는 늪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든다. 내가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 허우적거리게 된 것인지-아니 어쩌면 어느 순간까지도 나 자신이 허우적거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얼만큼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인지도…- 전혀 눈치 챌 수 없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나를 비롯한 많은 독자들은 다시 이 책의 처음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내용을 알고 본다면 또 다른 책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것이다. 그러면서 깨닫게 될 것이다. 생각이라는 것이 얼마나 단순하게 굳어져만 가는지, 또 그것이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들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고받고 있는지를…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놀랍게도 단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는 것을… 세상을 살면서 가져야할 유연성이라는 것에 대한 많은 생각들을 안겨주는 책이 아닐까 싶다.

 

 앞서 언급했던 ‘미치오 슈스케’는 『변호 측 증인』을 그 누구와도 공유하고 싶지 않은 작품이라고 말했지만, 기왕 나온 책이니 만큼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누군가가 소중하게 간직했던 비밀스러운 작품이 지금에 와서는 어쩔 수 없이(?!) 비밀스럽지 않은 작품으로 되어버렸지만, 그가 간직했던 소중함에는 전혀 변동이 없으리라 생각된다. 도대체 어떤 작품이기에 자신만의 비밀 장소라고 붙여질 만큼 소중하게 간직해왔던 것일까?! 그 궁금증을 직접 확인해볼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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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호형사
쓰쓰이 야스타카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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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차는 캐딜락, 값비싼 시가는 반도 피우지 않고 버리고,
10만 엔은 더 되는 라이터를 매번 잃어버리고,
영국제 맞춤 양복을 입고 빗속을 태연하게 걸어 다니는 형사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없을 것 같지만 분명히 있다. 그의 이름은 ‘간베 다이스케’! 그를 설명하자면, 흠… 위의 설명 그대로이다. 캐딜락을 몰고 다니며, 아바나에서 공수해온 8,500엔짜리 시가를 피우고, 10만 엔이나 하는 라이터는 매번 잃어버리고… 에휴, 말하면 뭐하나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세상의 이야기이고, 말하면 할수록 괜히 알 수 없는 짜증만 날뿐인데… 뭐, 어쨌든 그런 사람이 있단다. 적어도 이 소설, 『부호형사』 속에서는 말이다. 돈이 많다는 설정이 살짝 짜증은 나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사실은 -이미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직업이 형사라는 사실이다. 엄청난 대부호의 외동아들이 그 많은 직업 중에서, 아니 어쩌면 직업 따위는 필요도 없는 그런 사람이 하필이면 형사란다. 그것도 사건을 해결하는데 있어서는 꽤 탁월한 능력을 지닌… 물론 그런 능력이 엄청난 돈에서 시작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부호형사』는 제목그대로, 부호 형사인 ‘간베 다이스케’의 이야기이다. 앞서 말했듯이 그가 가진 돈을 바탕으로 한 탁월한 활약으로 ‘미궁’으로 빠질법한 사건들을 해결한다는 뭐 그런 스토리이다. 이 책에서는 네 개의 에피소드가 들어있다. 은행 강도를 찾기 위해 미끼를 사용한다거나, 밀실 살인 사건을 다이스케 만의 방식으로 재연한다든가, 유괴 사건 해결을 역시 돈으로 해결한다든가, 하는 등등의 내용이다. 어쩌면 너무 흔해빠진 이야기에 당연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물론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생각 외로 그 과정이 신선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 사건 해결을 위해서 평범하게 생각한다면 결코 내놓지 못할 아이디어를 내놓는 우리의 주인공, 다이스케. 그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한 생각이 보통의 사람들-비싼 시가를 피우고, 비싼 라이터를 매번 잃어버려도 신경도 안 쓸 정도의 사람들이 아니라면 이곳 보통 사람들의 범주에 속할 것이다-에게는 발상의 전환으로 다가오는 꽤 매력적인 작품이다.

 

 이 출간되기 전부터 『부호형사』는, IQ 178의 천재 작가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니는 ‘쓰쓰이 야스타카’ 때문에 기대하고 있던 작품이지만, 사실 조금 걱정을 했던 것-실제로 그렇기도 했고…-이 사실이다. 앞서 언급하기도 했지만, 책을 만나기도 전에 『부호형사』라는 제목이 벌써부터 나에게 위화감을 안겨줬기 때문이랄까!? 불가능을, 갑부만이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시작으로 돈으로 사건을 해결한다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하지만 그것도 잠시 했던 생각이고, 괜히 심술궂게 갑부가 어쩌고저쩌고, 짜증이 어쩌고저쩌고 했지만, 형사가 돈이 많든 적든, 나에게는 그의 이야기가 재미있기만 하면 괜찮은 것 아닌가?!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 소설은 아주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부호형사』는 ‘쓰쓰이 야스타카’가 처음으로 도전하는 미스터리라고 한다. 특히나 이 책에 담긴 네 편의 이야기를 구상하는데 2년 반이 걸렸을 만큼 그의 미스터리에 대한 첫 도전은 쉽지 않았다고 하는데… 막상 읽어보면 그렇게 느껴지지만은 않는 것 같다. 미스터리라고 힘들게 낑낑 거리며 써내려 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처음임에도 불구하고 이 장르를 통해서 독자들을 가지고 논다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평범한 듯, 부담 없이 이야기가 시작되지만, 뜬금없이 캐릭터 중 누군가가 독자들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사건 해결 과정에 있어서 시간의 흐름도 이리저리 나눠서 요령껏-그것이 혼란을 주려는 것인지, 혹은 그만의 자신감을 나타내는 표시인지 모르겠지만- 사용하기도 한다.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감춰진 사연이 많은 듯 슬쩍 이야기를 했다가도 생략하고 넘어간다면서 독자들을 약 올리며 결국에는 조금씩 조금씩 독자들을 마음껏 주무르고 있다는 느낌까지 들게 한다. 뭐, 그렇다고 그런 것이 결코 기분 나쁘거나 화가 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은 웃음으로 즐거움을 준다고 해야 할 것이다. 결국에는 이런 것들이, 또 다른 이야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게 만드는 ‘쓰쓰이 야스타카’만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부호형사』는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많은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그 설정에 있어서는 주인공의 성별이 바뀌고 전체적인 시대적 분위기도 달라졌다고 하는데… 어떤 모습일지, 기회가 된다면 드라마로 만나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더군다나 ‘쓰쓰이 야스타카’가 매회 엔딩 장면에 출연하기도 했다니, 또 다른 즐거움까지 안겨줄 것만 같아 더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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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총사 1
알렉상드르 뒤마 지음, 김석희 옮김 / 시공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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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던 만화를 시작으로 영화로, 그리고 뮤지컬로도 만났던 『삼총사』! 그 삼총사를 이제야 제대로 된(!!) 책, 완역본으로 만나게 되었다. 정말 기대했던 순간이었고, 실제로 그 기대만큼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다양한 모습으로 만나왔던 『삼총사』를 ‘알렉상드르 뒤마’가 그렸던 원래의 모습 그대로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지금까지 만나왔던 다양한 모습들도 항상 즐겁고 신나게 느껴진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까지의 그런 모습들이 원작의 내용보다 상당히 평면적인 모습으로 표현되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완역본을 통해서 비로소 『삼총사』의 참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고 이야기해야 할까?!

 

 그 누구나 어릴 적부터 다양한 모습으로 만나왔던 삼총사이기에 그 내용에 있어서는 대부분 친숙하리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래의 모습 그대로 살짝 간추려보자면… 『삼총사』는 돈키호테를 떠올리게 하는-겉모습만이 아니라 내면까지…- 모습의 한 젊은이가, 그것도 혈기왕성하고 당당하게만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조랑말을 타고 등장하면서 시작된다. 당연하게도(?!) 그가 바로 가스코뉴 출신의 시골 귀족이자, 우리의 주인공 ‘다르타냥’이다. 그는 총사가 되기 위해서 파리에 있는 총사대장 트레빌을 찾아간다. 시작부터 작은 시련-뭐 맞아서 정신을 잃고, 소개장을 도둑맞는 정도?!-을 겪으며 결국에는 트레빌을 만나 도움을 얻게 되는 동시에, ‘아토스’의 어깨, ‘포르토스’의 어깨띠, ‘아라미스’의 손수건과 묘하게 얽히면서 그들 각자와 결투를 약속하게 된다. 하지만 삼총사로 표현되는 아토스, 포르토스, 아라미스와의 결투를 시작하기도 전에 뜻하지 않은 사건-추기경 친위대와의 충돌-으로 인하여 그들은 오히려 한마음으로 뭉치게 되고, 그때부터 그들은 본격적으로 모험을 시작하게 된다.

 

“하나는 모두를 위하여, 모두는 하나를 위하여.”

 

 뜻하지 않은 사건이 만들어낸 그들의 우정은 나의 생각이상으로-혹은 내가 할 수 있는 이해의 범위를 넘어서…- 끈끈하고 단합된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 신나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도록… 사실 그들의 우정뿐만이 아니라 이 소설 속에서 만나는 많은 것들이 나의 이해 범위 이상이었다. 그 첫 번째가 내가 어릴 적 봐왔고 생각했던 다르타냥과 삼총사의 모습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어릴 적에는 그들 모두가 그토록 용기 있고, 훌륭하며, 단정한(이것이 중요하다!) 모습이었는데, 이미 내가 소설 속 그들의 나이를 뛰어넘었기 때문일까, 지금에 만나는 그들은 왜 그리 철딱서니가 없게만 보이는지… 뭐 그럼에도 “All for One, One for All”을 외치는 그들은 여전히 멋있다. 그리고 이 멋있다는 것에 내가 말하고픈 두 번째가 있다. 소설 속 시대에서는 그 무엇보다도 사람들-특히 귀족을 비롯한 상류층에 주로 적용되겠지만…-의 명예와 신의가 상당한 수준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상대가 적임에도 그 어떤 증거나 증인에 상관없이 그의 명예를 건다면 의심 없이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모습은 굉장히 놀라우면서도 부럽게만 느껴져서, 오늘날 우리 사회와 비교해서 결코 이해 할 수 없는 놀라운 힘으로까지 느껴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투박함 속에 담겨있는 아름다운 사랑의 모습이다. 사랑에 대해서만큼은 그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뜨거운 용기와 아름다운 말들을 모든 이가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이미 충분히 세상에 때 묻어-이렇게라도 뭔가 변명을 하고 싶어진다…- 순수함과는 거리가 먼 나와 비교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것들은 나의 이해 범위 이상이라기보다는 당연한 것이며, 그래야만 하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그저 신나거나 때로는 황당하게만 보일 수 있는 이야기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간의 본능이나 본성에 더없이 충실한 모습으로 그려낸다고 생각되는 경우가 있다. 나에게는 『삼총사』가 그런 모습으로 보였다. 단순하게 그냥 웃으며 즐길 수 있는 이야기들 속에 인간의 본질을 제대로 담아내며, 그를 통해서 독자들에게-조금 크게 봐서는 인간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음… 이런저런 생각들로 괜히 있어보이게끔 이야기하려고 복잡하게만 이야기한 것 같기도 하다. 사실은, 『삼총사』는 상당히 신나게 달릴 수 있으면서도 그 속에서 나름의 의미 또한 찾을 수 있는 소설이라는, 뭐 그런 말이 하고 싶었던 거다.


1868년 뒤마의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하루는 아들이 만나러 와서 보니 그는 독서삼매에 빠져 있었다.
아들이 무슨 책이냐고 묻자 뒤마가 대답했다.
“《삼총사》야. 아는 늘 나 자신에게 약속했단다.
내가 늙으면, 이 책이 과연 가치가 있는지 내가 결정하겠다고.”
“그래서 어디까지 읽으셨어요?” / “끝까지.”
“어떻게 생각하세요?” / “좋구나.”

- 해설 中에서…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낸 예술가들에게 많은 이들이 던지는 질문이 있다. 지금까지 자신이 만들어낸 작품 중 가장 애착이가는 작품이 무엇이냐고…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어디 있겠는가 마는, 그래도 항상 궁금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알렉상드르 뒤마’는 그에 대한 대답으로 『삼총사』를 이야기한다. 그것도 하나의 작품을 탄생시키자마자가 아니라, 삶의 마지막 즈음에 자신의 책을 스스로 평가해서 내린 결론으로 말이다. 그가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하는 만큼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작품이 바로 『삼총사』인 것이다.

 

 『삼총사』는 그 맛을 알면 알수록, 어릴 적의 기억만으로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고 넘어갈 그런 작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직접 경험해왔던 즐거움에, 지금까지 전혀 느낄 수 없었던 즐거움까지 더해져서 완전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완역본의 『삼총사』.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로 한국번역상 대상을 수상한 김석희 님의 번역이라 그에 있어서만큼은 더없이 믿을만하다고 생각된다. 또한 이 책에서는 1894년 판본에 실렸던 ‘모리스 르루아르’의 일러스트까지 복원하여 본문에 수록해 그를 통해서 보다 구체적으로 상황을 상상할 수 있는 즐거움까지 더했으며, 그 내용뿐만 아니라 겉모습까지 신경 써서 진짜 고전이라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 장정으로 소장의 가치까지 높였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원래의 모습 그대로에 충실한 『삼총사』와의 만남! 그 만남에 결코 후회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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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에 부는 서늘한 바람 밀리언셀러 클럽 120
돈 윈슬로 지음, 전행선 옮김 / 황금가지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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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력한 민주당 대선 후보의 러닝메이트를 노리는 상원의원 체이스. 그에게 문제가 하나있다면 바로 그의 딸, 앨리이다. 열일곱 살의 이 여자아이는 집을 나가 석 달 동안이나 종적을 감춘 상태이다. 안타깝게도(?) 체이스 의원은 그의 명성을 해치게 될까봐 이 사실을 경찰에 알리고 싶은 생각은 결코 없다. 하지만 그는 전당대회가 열리는 8월까지는 딸이 돌아오길 바란다. 이런 상황에서 사건을 은밀하게 처리해줄 사람이 필요한데… 그 사람이 바로 ‘가문의 친구들’ 이라는 에이전시에서 -가끔(!?)- 활동하는,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이기도 한 ‘닐 캐리’이다.

 

 우선 ‘가문의 친구들’ 에 대해서 살짝 이야기하고 넘어가야겠다. ‘가문의 친구들’ 은 키터리지 가문이 경영하는 은행에서 공공의 법 제도나 언론의 더러운 손으로 해결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사적인 문제들로 곤란에 처한 고객들을 위해 만든 에이전시이다. 은밀하게 처리해야 할 일들을 대신해주는 비밀 조직이랄까?! 이런 모습의 ‘가문의 친구들’이 뉴욕에 지점을 하나 열면서 고용한 사설탐정이 ‘조 그레이엄’인데, 그는 우리의 주인공 ‘닐 캐리’의 스승이며, 친구이자, 아버지가 되는 인물이다.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내던 ‘닐 캐리’가 소매치기 상대로 그레이엄을 선택하게 -그와 동시에 그에게 붙잡히게-되면서, 그들의 인연은 시작된다. 불행했지만 똑똑했던 닐은 그레이엄으로부터 탐정에게 필요한 다양한 기술들을 전수받게 되고, 그레이엄과 같은 탐정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물론 그는 학자의 길을 걷고 싶어 하고, 탐정은 단기 알바 같은 것으로 생각하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닐 캐리 시리즈의 첫 번째이니 만큼 어릴 적 이야기부터 시작해 그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나온다. 『지하에 부는 서늘한 바람』은 3부로 구성되어있는데, 그 첫 번째가 바로 이런 ‘닐 캐리’의 지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닐에 대한 대충의 이야기를 했으니 다시 사건으로 돌아가 볼까?! 런던으로 수학여행을 갔다가 앨리를 만났다는 한 친구의 제보를 바탕으로 닐은 사건을 본격적으로 파고든다. 일단은 그 역시 런던으로 떠나게 되고, 정말이지 아주 사소한 단서만으로 앨리를 찾아 나서게 된다. 그러던 중 우연히 앨리를 발견하게 되고, 그는 조금씩 그녀에게 다가간다. 그렇게 이야기는, -전체 3부 중- 2부에서 앨리는 찾는 과정을, 그리고 마지막 3부에서는 그녀와 함께 다시 돌아가기 위해 애쓰는 장면들을 담아낸다. 닐은 과연 앨리를 무사히 되돌려 놓을 수 있을까?!

 

 … 닐은 과연 앨리를 무사히 되돌려 놓을 수 있을까, 라는 의문 뒤에는 전혀 생각도 못했던 놀라운 사건이 나타나줬으면 좋겠다는 기대감도 있었고, 마지막쯤에 이르러서는 깜짝 놀라서 말문이 막혀버릴 정도의 반전이 튀어나왔으면 좋겠다는 또 다른 기대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이 책에서는 내가 기대했던 만큼의 특별함을 찾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아니 기대이상의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놀랍지 않은가, 나를 그리 심각하게 자극시키지도 않았는데 기대이상의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니 말이다. 놀랍지만 사실이다. 지금 이글을 쓰면서도 뭔지모를 뿌듯함(?!)에 다시 한 번 즐겁게 만족감을 느끼게 될 정도니…

 

 『지하에 부는 서늘한 바람』은 ‘돈 윈슬로’가 1991년 처음 발표한 추리 소설이라고 한다. 사실 별다른 기대나 생각 없이 이 책을 읽기 시작했고, 심지어 이 책의 작가가 누구인지 그의 소개도 제대로 살피지 않고 책을 읽었다. 책을 덮고 만족감에 허우적 거리고 나서야 ‘돈 윈슬로’를 찾아보게 되었다. ‘데니스 루헤인 등과 함께 2011년 딜리스 상 후보로 선정된, 주목받는 미스터리 작가 돈 윈슬로’, ‘에드거 상과 셰이머스 상에 동시에 노미네이트 되어 좋은 평가를 받은 작가 돈 윈슬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단 한 권의 책이지만, 직접 경험해 봤으니까 말이다. 장르는 분명 추리인데 생각보다 훨씬 밝다는 느낌이랄까?! 진짜 살아있는, 정말이지 생생하면서도 인간미가 그대로 느껴지는 ‘닐 캐리’라는 멋진 캐릭터부터, 그에 못지않은 색다른 매력을 보여주는 ‘그레이엄’과 ‘레빈’이라는 캐릭터. 그리고 그들과 함께 다양한 상황들을 맛있고도 신나게 버무려놓은 ‘돈 윈슬로’의 놀라운 글솜씨는 이것이 과연 그의 첫 소설이 맞나 싶을 정도이다. 특히나 어린 닐 캐리가 탐정 업무를 배우는 장면들의 묘사는 놀라울 정도였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뉴욕과 런던에서 사립 탐정으로 일했던 ‘돈 윈슬로’의 경험이 바탕되었다고 하니… 도대체 이 친구(사실 친구라고 하기에 그의 나이가… 흠…) 진짜 뭔가, 싶을 정도였다.

 

 이야기의 중심에 서있는 닐 캐리와 앞으로 계속해서 찾게 될 것만 같은 작가 ‘돈 윈슬로’와의 즐거운 시간이었다. 아, 그렇다고 단순히 즐거움만을 주는 책이라는 오해는 마시길… 장르 소설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수준급의 문학적인 표현력까지 제대로 갖추고 있으니 말이다. 예상과 전혀 다른 모습의 작품이지만, 기대하지 못했던 놀라운 만족감을 느끼게 하는 소설 『지하에 부는 서늘한 바람』이었다. 앞으로 계속될 닐 캐리의 활약, 그리고 그 이상의 능력을 보여줄 ‘돈 윈슬로’의 활약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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