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르 사전 열린책들 세계문학 183
밀로라드 파비치 지음, 신현철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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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 우리 집 책꽂이에는 부모님께서 사주신 -지금은 그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백과사전 전집이 쭈~욱 진열되어있었다. 심심할 때마다 그냥 꺼내서 아무페이지나 펼쳐서 느낌가는대로 읽으면 되는 것인데, 그 당시에는 책을 보는 것이 왜 그렇게 싫었는지… 특히나 ‘가나다’순으로 되어있는 백과사전은 그저 숨 막히는 것으로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랬던 내가 ‘사전’이라는 이름이 들어가 있는 책을 직접(!) 구매하게 될 줄 알았을까?! 뭐, 물론 사전 형식을 빌린 소설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사전이라는 이름에 숨막혀했던 내가 『하자르 사전』을 만나게 된 것은 순전히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이 책에 대한 수많은 찬사 덕분이었다. 적어도 이 책에 실망을 할 일은 없지 않을까, 행여 있다고 하더라도 극히 일부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고, 또한 좀 더 시간이 지나게 된다면 그 생각에 좀 더 확신이 들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 좀 더 시간이 지나게 된다면 더더욱…

 

 『하자르 사전』을 단순하게-사실은 완전 복잡하다!- 말하자면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하자르’민족의 이야기를 사전 형식으로 써내려 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린 하자르 민족. 그들은 어떤 사건으로 인해 그렇게 되었는데, 그 사건이 바로 하자르 논쟁이라는 것이다. 이 논쟁은 하자르 민족이 가지고 있던 고유의 신앙을 버리고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중 하나로 개종을 하게 되면서 시작하게 되었는데, 『하자르 사전』은 바로 그 하자르 개종 사건에 대한 세 종교 각각의 시점으로 된 세 권의 책-레드 북, 그린 북, 옐로 북-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 나름의(?!) 해석으로 써내려간 각각의 책들을 통해서 우리는 하자르 민족의 모습들을 그려낼 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하자르 민족이 세 가지 종교 중 어느 것을 선택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하자르 민족과 그들의 나라는 개종을 하고 곧바로 붕괴했다는 사실이다. 이 외에도-혹은 그 속에 담겨있다고 해도 상관없을…- 많은 이야기들이 이 책 속에 담겨져 있다.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하자르 논쟁부터 시작해, 아테 공주 이야기나 타인의 꿈을 자유자재로 드나드는 꿈 사냥꾼들의 이야기, 그리고 영원의 삶을 사는 악마들의 이야기 등… 단순히 그냥 이런 이야기다, 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부족한 설명이 될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이 책을 가득 채운다.

 

 음… 대충 책의 내용을 말했으니 이제 더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사실 내가 이 책의 내용이 이렇다 저렇다고 말하기에는 상당히 많은 어려움이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이 책은 사전 형식이다. 고로 어느 페이지를 펼치든지,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에서 끝을 맺든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작가 스스로도 그렇게 밝히고 있고 말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이 책은 진짜 독자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책 속에서 이야기되는 ‘사실’들은 중심이 되어 같을 지라도, 그 사실들이 어떻게 시작되고 연결되어 마무리 되는지는 독자들의 손에 달려있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이 책의 내용이 어떻다고 말하는 것이 어렵다는 이유를 어느 정도는 짐작했으리라…

 

 책을 읽다가 이런 문구를 발견했다. ‘이 세상의 모든 꿈은 이미 다 오래전에 누군가 꾸어 본 것들이다.’ 라는… 여전히 꿈꾸어 보지 못한 꿈도 많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기는 하지만 뭐, 어느 정도는 공감가는 말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미 오래전에 누군가가 꾼 꿈이라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그 꿈의 실현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책을 쓰는 사람, 혹은 책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생각을, 이런 꿈을 꾸어 보지 않았을까!? 나만의 방식으로 나만이 쓸 수 있는 책을 쓰겠다고 말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밀로라드 파비치’는 누구나 꿀 수 있는 꿈을 꾸었고, 그것을 실현 시킨 사람이 아닐까!? 바로 『하자르 사전』이라는 놀랍고도 신기한 책을 통해서 말이다.

 

 이제 겨우 『하자르 사전』의 맛만 본 나에게 있어, 앞으로도 이 책은 매번 새로움을 안겨주는 책이 아닐까 생각된다. 수학으로 따지자면 정답은 하나인데 그 과정에 수많은 방식이 있는, 아니 어쩌면 사회과학과 같이 그 정답조차도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뭐, 그 역시 생각하기 나름이 아닐까?! 내가 생각하는 만큼만, 내가 원하는 만큼만 보이는 것이 세상이고, 또 이 책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자르 사전』이 당신에게는 어떤 내용의 어떤 책으로 다가갈까?! 또 나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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