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실격 외 세계문학의 숲 5
다자이 오사무 지음, 양윤옥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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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부터 관심 있게 지켜본-그렇다. 기회가 없다는 핑계로 오랜 시간 지켜만 봐왔다- 《인간 실격》을 이제야 만날 수 있었다. 무슨 내용인지도 제대로 모른 채 무작정 읽어야한다는 생각이 강했던 작품이었는데, 작품을 읽기도 전에 작가의 이력을 보게 되면서, ‘다자이 오사무’라는 작가에 대한 관심이 더 많이 가게 되었다. 특히나 그의 이력 중에서, 첫 번째 자살을 시도한 이유가 자신이 속한 계급과 자신의 정치적 지향의 불일치에 따른 괴로움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더더욱 말이다. 자신이 속한 계급이라면, 그의 아버지가 귀족원 의원과 중의원 의원에 오르기도 한, 그 지역 명사이자 그 지방의 대지주라는 사실에서 출발 하는 것이고,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이라면 사회주의 운동의 그것과 일치하는 것이었는데… 그 불일치에 대한 선택으로 결심한 것이 자살-그것도 그 많은 자살 시도 중 그 시작이란다-이라니, 솔직히 그리 곱게만 보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현실과 이상의 불일치에서 오는 고통이라고 느껴지기보다는 그저 무던히 이상적이기만한, 그래서 그저 현실로부터의 도피만을 생각한 나약하는 인간의 모습을 -다자이 오사무라는 한 인간의 모습으로- 그대로 나타내는 것만 같았기에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뭐, 사실 작가에 대해서 자세히 아는 것이 아니기에 이런 적당한(혹은 단순한) 생각을 뒤로하고, 원래의 목표였던 《인간실격》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인간실격》은 세상, 특히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그렇지만 그 사이에 속하기 위해 인간들을 속이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요조’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 흔히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그 실체를 찬찬히 살펴보라고 한다. 하지만 요조는 처음부터 이미 한걸음 물러난 상태, 그러니까 애당초 인간이라는 무리에는 끼어들 수 없는 존재로 태어났다. 그런 요조는 어릴 적부터 인간을 두려워했지만, 그럼에도 인간이라는 것이 뭔지 광대 짓을 해서라도 인간이 되고픈 인간이었다. 서로를 속고 속이면서도 즐겁게 살아가는 인간이 도무지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인간이 되기 위해 애쓰면서 살았다. 하지만 그것이 결국에는 그 자신을 고통 속으로 떨어지게 만든다. 도쿄의 고등학교로 가게 되면서, 요조는 그 자신을 점점 타락의 길로 밀어 넣어, 말 그대로 거의 폐인의 삶을 살게 된다. 자신의 고통에 대한 반전을 꾀하는 삶이 아닌, 고통을 더 고통스럽게 만드는, 혹은 그렇게 밖에 할 수없는 모습들의 반복을 통해서, 그는 그 스스로를 폐인으로 낙인찍게 된다. 그토록 인간이길 원했던 인간이, ‘인간실격’이라는 단어로 그 스스로를 인간이 아니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요조의 이런 모습들에 왜 눈물이 나려고 하는 걸까!? 나약하다면 한없이 나약하게만 느껴지는, 그래서 한없이 초라하고 볼품없게만 느껴지는 그런 요조의 삶에 내가 왜?, 가 아니라, 나이기에… 나도 인간이기에…, 라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일까?! 누구나 적어도 한 번 쯤 -그 시간이 아주 짧게 지나가버리든, 오랜 시간으로 남겨지든 상관없이-은 겪게 되는 고민을 그대로 드러내기에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로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큰 고통으로 스며들어 눈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실제로는 나약하지만, ‘난 절대 그렇지 않다’, 고 부정만 하며 살아가는 삶이, ‘그래 나 나약하다. 하지만 그만큼 고통을 받으며, 또 그것을 견디며-혹은, 더 깊은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 라고 하는 삶 앞에서 눈물 외에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일까…

 앞서 ‘다자이 오사무’라는 작가를 언급하면서 그의 나약함도 동시에 이야기했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이렇게 편하게 앉아 누군가를 향해 나약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그 자격을 논하기에 앞서서-도, 사실은 그 누군가가 그 나약함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상대의 나약함을 알지만, 나의 나약함도 알기에, 함부로 누군가-더군다나 감히 그의 삶을-를 대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비로소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오히려 그가 나타낸 나약함은 그가 가지고 있는 나약함을 통해서 오히려 더 강해보이기까지 한다. 다자이 오사무는, 자신만을 위해서 쓴 작품이자, 자신을 오롯이 드러내는 작품, 《인간실격》을 통해서 그런 나약하지만 강하기도 한 인간을, 그런 이들이 존재하는 세상을 보다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이랬고, 이런 식으로 세상을 살았다. 그러니 당신만은 그러지 않아야 한다, 는 식으로 말이다.

 누군가는, 다자이 오사무가 《인간실격》 한 편을 쓰기위해 태어난 문학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 한 편을 작품을 쓰기위해서라기보다는 이 한 편의 소설 같은 삶을 살다간 인간, 다자이 오사무로 더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

 아, 이 책 『인간실격』에는 《인간실격》을 비롯해, 《물고기비늘 옷》, 《로마네스크》, 《새잎 돋은 벚나무와 마술 휘파람》, 《개 이야기》, 《화폐》라는 작품도 함께 있다. 이를 통해서 15년이라는 그의 작품 활동을 한 눈에 볼 수 있다니, -《인간실격》으로 많은 이름이 알려진 다자이 오사무이기는 하지만- 그의 다른 작품들에서 또 다른 재미를 찾아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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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고릴라 - 우리의 일상과 인생을 바꾸는 비밀의 실체
크리스토퍼 차브리스.대니얼 사이먼스 지음, 김명철 옮김 / 김영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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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일단 이 동영상을 먼저 보자. 물론 그냥 보는 것은 아니다. 보기 전에 당신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할 것이다. 그것은, 다음 동영상에서 검은 셔츠를 입은 팀의 패스는 무시하고, 흰 셔츠를 입은 팀의 패스 횟수는 모두 몇 번인가?!, 라는 것이다. 공중으로 넘긴 패스 횟수와 바운드 패스 횟수 모두를 세는 것이다. 준비되었는가?! 그럼~ 고~!! (단, 40초 정도까지만 볼 것!!)


동영상은 이곳에서 확인할 것..!! ^^;;
http://www.theinvisiblegorilla.com/gorilla_experiment.html 》

 총 몇 번의 패스를 했는지 확인 해 봤는가?! 이미 40초를 넘어서까지 동영상을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패스의 횟수가 아니다. 중간에 등장한 고릴라를 의식할 수 있었느냐, 없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이미 한 번이라도 ‘투명 고릴라 실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면, 거의가 고릴라의 등장을 알아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는 이걸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이 과연 있겠냐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50퍼센트 정도는 고릴라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당신이 그 중의 한 사람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것을 ‘주의력 착각’이라고 한다. 이미 동영상에서 확인했겠지만, 뭔가를 보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 모든 것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음… 또 이런 질문을 어떨까?! 당신은 두뇌 용량의 10퍼센트만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는가?! 혹은 뒤에 있는 사람이 당신의 뒤통수를 째려보고 있다면, 그 사실을 감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만약 두 개의 질문에 모두 그렇다고 대답을 한다면, 당신은 이미 ‘잠재력 착각’에 빠져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경험 또한 있지 않은가?! 어린 아이들이 자주 던지는 “왜요?!”라는 질문에 머리가 멍~해지는 순간 말이다. 평소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혹은 너무나도 익숙해서 그런 인식조차 못하던 사실들인데 질문을 마주하면 말문이 막혀버리는 순간… 이것을 ‘지식 착각’이라고 한다. 시작부터 자꾸 무슨 ‘착각’타령이냐고 하겠지만, 이 책이 그렇다. 이 책, 『보이지 않는 고릴라』가 담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착각’들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뜬금없는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살다보면 답답함을 느낄 때가 정말 많다. 그중에서도 요즘 들어 정말 많이 답답하다고 느끼는 것은, 사람들이 너무 자신만의 세계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자기주장이 뚜렷하다는 것을 넘어서서, 무조건 자기가 옳다고 믿고 행동하는 것이다. 스스로 자꾸만 자신의 한계를 만드는 것만 같다. 자신만의 착각이라는 틀 속에서 말이다. 나 역시도 똑같을지도… 아니, 어쩌면 이런 생각자체가 이미 그런 것 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이들에게-그런 자신을 바꿀 생각이 있다면- 이 책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전에 -이 책을 읽고 난 후라면 더더욱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겠지만- 이 책을 읽기 전에 꼭 한 가지 해둬야 할 것이 있다. 세상 모든 일에도 그렇듯, 열린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무조건 내가 옳다, 가 아니라,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어떤 부분에서는 받아들여야 하는 것도 있다는 생각이 필요한 것이다. 만약, 아직도 여전히, 내 생각은 절대 틀리지 않았어, 그러니 난 누가 뭐라고 해도 내 생각을 바꿀 필요가 없어, 라는 생각을 한다면 그 생각의 위험성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보길 바란다. 하긴, 뭐 굳이 따로 생각해보지 않아도 이 책속에 ‘착각’으로 인한 다양한 위험성들을 만나보게 될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언젠가 우연히 ‘투명 고릴라 실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에는 ‘아, 그렇구나. 신기하네.’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이 책, 『보이지 않는 고릴라』를 접하게 되면서, 다시 떠올리고,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보게 되었다. 같은 것을 바라보고만 있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것을 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는 그런 사람들로 이루어진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이미 책을 보기 전부터 떠올렸던 생각들이었지만, 책 속에 제시된 다양한 사례들과 함께하면서 보다 깊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이 책은 ‘투명 고릴라 실험’으로 대표되는 ‘주의력 착각’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주의력 착각’을 비롯해, ‘기억력 착각’, ‘자신감 착각’, 앞서 언급했던 ‘지식 착각’, ‘원인 착각’, 그리고 ‘잠재력 착각’까지, 모두 여섯 가지의 우리 일상을 지배하는 착각을 이야기하고 있다. 오해라면 오해일 수 있고, 오류라면 오류일 수 있는, 각각의 착각들의 다양한 예시를 통해서 보다 재미있고 쉽게 알려준다. 재미있고 쉽게 들려주지만, 그 내용까지 마냥 재미있고, 쉬운 것만은 아니다. 이런 착각들이 심각해지면 엄청난 위험으로도 몰고 갈 수 있다는 사실까지 이야기하면서, 심리적 착각이라고 부르는 우리의 한계를 하나하나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게 그 속에서 드러나는 문제들을 통해서 나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돌아보고, 세상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자기 생각만 고수했던 태도에서 벗어나

‘바깥에서 살펴보기 outside view’ 선택하면

계획을 바라보는 방식이 극적으로 달라진다. -P189

 

 

 ‘지식 착각’편에서 나온 이야기이지만, 이 해결방법이 비단 이 ‘착각’의 문제에서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책에 실린 대부분의 착각, 아니, 우리 삶의 대부분에서 필요한 것이 이것이 아닐까?!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 그 한 번의 뒷걸음질이 지금은 상당히 견디기 힘들지 몰라도, 결국에는 두 세 걸음 더 나가기위한 도움닫기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행동하는 것 말이다. 결국,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임이 틀림없다는 사실을 재확인 한다. 하지만 그런 인간이 향하는 곳은 완전이라는 곳이다. 너무나도 많은 착각 속에 살아가지만, 그 틀을 깨고 나와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힘을 키우는 것이 그 완전을 향한 시작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재미있는 다양한 연구 성과들을 통해서 색다른 시선을 경험하고, 그 이상의 깨달음으로 완전을 향해 나갈 수 있게끔 하는 책, 『보이지 않는 고릴라』가 그 시작을 함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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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지대
쑤퉁 지음, 송하진 옮김 / 비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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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만히 표지를 한 번 들여다본다. 성북지대, 쑤퉁 장편소설, ‘기이한 상상으로 가득한 자유로는 나그네’쑤퉁, 그가 최초로 털어놓는 자전적 성장소설! 이라는 글귀들과, 허름한 모습의 집들, 우스꽝스럽게만 보이는 사람들의 그림, 그리고 연둣빛깔이 눈에 띈다. ‘누가 더 뛰어나다고 할 것도 없는 좌충우돌 천방지축의 청춘들의 이야기이지만, 결국에는 그 청춘이란 것 자체가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다.’라는 식의 뻔 하다면 뻔 하다고 할 수도 있는 그런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것도 아주 즐겁고, 신나게 펼쳐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표지로 추론해본 대충의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하지만 웬걸! 시작부터 한 사람의 죽음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각종 사건과 그들의 고난, 그리고 죽음들이 이어진다. 그렇다. 처음부터 끝까지…. 표지의 연둣빛은 찾으려야 찾을 수가 없었다. 

 

 『성북지대』는 성북지대의 변두리 ‘참죽나무길’에서 살아가는 소년들의 이야기이다. 이 소년들이 그 이름에 걸맞게 참 소년스러웠다면 좋았으련만, 그 반대의 아주 거침없는 청춘들이다. 이 청춘들 앞에는 짐작과는 항상 다른 일들, 아니 짐작조차 하지 못하는 일들이 펼쳐진다. 이 이야기들이 이렇게 암울하게 느껴질지는 차마 몰랐기에 그들의 삶을 하나씩 하나씩 마주하기에는 시간이 좀 필요했다. 그리고 힘겹게 그들의 삶을 하나하나 만난 후에는, 어떻게 이 어둠을 받아들여야 할까, 혹은 어떻게 이 어둠을 걷어낼 수 있을까, 오랜 시간을 생각했다.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아니 쉽게 나올 수가 없었다. 실제로 내가 받아들인 어둠이란 느낌이 생각보다는 옅게 다가왔기 때문에 말이다. 이거 정말 어이없다, 는 말이 먼저 나오는 상황들이 대부분이기에, 그래서 더 어둡게만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한없이 어둠으로 떨어질 만큼의 참담함이 느껴지지는 않았던 것이다. 왜일까?! 그래도 그들은 여전히 청춘이기에…?! 아니면, 청춘임에도 그 꽃 한 번 제대로 펴보지 못하고 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앞서기 때문에…?! 혹은 이것저것 다 제쳐놓고, 적어도 한 번쯤은 그 시절에 상상으로만 했던 일들을, 이야기 속 그들이 실제로 옮기는 거침없는 행동들을보며 시원함을 느끼고 있었던 탓인지도…. 어쩌면 이런 것들이 중요한 것은 아닐지 모른다. 그저 우리는 이런 삶에서 느껴지는 막막함과 그에 더해지는 애틋함을 있는 그대로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 아닐까?!
 


“아니, 동지에 눈이 오지 않았냐고?
근데 어떻게 또 설에는 비가 내릴 수가 있어?
하늘이 미친 거 아냐, 제길!” -P220

 


 어긋남이 거의 없었던 날씨 예측이 어긋나 버리는 상황이 나타나기도 한다. 오랜 시간 진짜 하늘이 미쳐서 참죽나무가 하나도 없는 참죽나무길을 그렇게 쓰레기 같은 동네로 만들었을까, 라는 질문 같지도 않은 질문을 괜히 던져본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 이 작품에는 쑤퉁의 세상을 향한 비웃음이 듬뿍 담겨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 세상의 참담함을 담담하게 이야기하지만, 오히려 그를 통해서 단순히 참담함에만 머물러 있지 않은 이야기를 한다. 또한, 그 속에서 성장을 이야기하지만, 성장을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성장을 원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성장인지 모르겠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만 같다. 은근히 누군가를 비웃으면서…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정상’적인 삶을 찾으려야 절대 찾을 수 없는 모습의 삶, 오히려 그런 모습이 더 ‘정상’에 가까운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게 『성북지대』에 담긴 삶을 통해서, 시커먼 하늘 아래에서, 탁한 물가에서, 쓰레기들이 판을 치는 땅위에서, 우리가 이루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이고,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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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행관람차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7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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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실히 《고백》의 파장이 크긴 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고백》은 ‘미나토 가나에’라는 이름을 확실히 알리며, 단번에 그녀를 인기 작가로 발돋움하게 한 작품이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것은 그녀의 다음에 나올 작품들에 대한 기대를 상당히 크게 만들기도 했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그녀에 대한 큰 기대는 그 이후에 나온 작품들에 대한 아쉬움도 클 수밖에 없었다. 이번 작품 『야행관람차』 도 혹시 이와 같은 기대와 아쉬움을 반복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행스럽게도 이번에는 아쉬움과는 거리 가 먼, 오히려 《고백》보다 내용면에서는-미스터리적 요소는 다소 밀리더라도…- 좀 더 깊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 작품이었다.

 『야행관람차』에서도 지난 《고백》과 비슷하게, 엔도 가족, 다카하시 가족 그리고 이웃에 사는 고지마 사토코를 통해서, 하나의 사건을 바라보는 여러 사람들의 각기 다른 시선들을 보여준다. 막말에, 제멋대로인 딸‘아야카’와 그것을 참고 받아내는 어머니‘마유미’, 그리고 그런 상황에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도, 하기도 싫어하는 우유부단한 아버지‘게이스케’로 이루어진 ‘엔도 가족’과 의사 아버지‘다카하시’와 아름다운 어머니‘준코’에 의대생 큰아들‘요시유키’, 유명 사립학교에 다니는 딸‘히나코’, 그리고 연예인을 닮은 막내아들‘신지’로 이루어진 ‘다카하시 가족’이 이야기의 중심이 된다. 그리고 그들의 곁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는 이웃집 여자, ‘고지마 사토코’가 있다. 딸의 거칠 것 없는 행동으로 조용한 날이 지속될 리 없는 엔도 가족과, 그와는 정반대로 화목하게만 보이는 다카하시 가족. 이 두 가족 중에 뭔가 일이 발생한다면 누구나 엔도 가족 쪽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뜻밖에도 다카하시 가족에게 어떤 일이 발생하게 된다. 그 어떤 일이란 것이 흔한 것도 아닌, 어머니가 가해자가 되고, 아버지가 피해자가 되는 살인사건인 것이다. 아버지는 죽고, 어머니는 자수하고, 막내아들은 행방불명까지 되어버리는 상황. 다카하시 가족에게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고, 앞으로 그들을 둘러싼 주위 모든 것들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라는 궁금증과 묘한 호기심을 안게 된다.

 단순한 미스터리 소설이 아닐까 하면서, 처음에는 이 ‘살인 사건’에만 초점을 맞추고 읽어 나갔다. 도대체 진짜 범인은 누구이며, 왜 그랬을까, 에만 온통 신경을 쓰면서 말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 작품은 《고백》보다 미스터리적 요소나 요즘 흔히 말하는 반전이라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 말은 즉, 충격적인 어떤 것을 원한다면 실망을 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이런 것이 없다고 실망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보다 더 깊은 어떤 것이 남아 있으니까 말이다.

 『야행관람차』는 답답하고, 짜증나며, 분노까지 일으키게 만든다. (물론 이 책이 재미없거나 형편없어서가 아니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모두 그렇게만 느껴졌고, 등장인물 하나하나 모두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옮긴이가 한 대 때려주고 싶다고 언급하는 ‘아야카’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물들을 한 대-때로는 그 이상- 때려주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으니까 말이다. (아, 그러고 보니 전부는 아니었다. 세상이 정말 형편없다고 느껴져도, 가끔씩 세상의 희망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은 등장하기 마련이다. 단지 실제 세상에서도, 이 이야기 속에서도 그 존재는 아주 소수에 불과할 뿐이지만 말이다.) 자기 일이 아니라고 자기 입맛에 맞게 모든 것을 정리하고 결론 내려버리고, 혹시 자신에게도 피해가 있을까 아주 잽싸게 등을 돌려버리고, 심지어는 상당히 날선 눈빛으로 상대를 아프게만 만드는 주변의 모습들… 어떻게 하나같이 그렇게 자기 중심적일수가 있는지, 어떻게 하나같이 그렇게 타인을 생각하지 않으며 살아갈 수가 있는지… 결국에는 답답함과 짜증, 그리고 분노를 넘어서, 그들 모두가 측은하게까지 느껴질 정도니,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이렇게 타인을 비방하는 사이에도
다음에는 자기가 가해자나 그 친척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어째서 생각하지 않는 걸까? -P319 



 순간 ‘이거다!’ 싶었다. 책을 읽으면서 내 가슴이 계속 답답해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래서 짜증나고, 또 누군가를 향해서는 주먹을 날려버리고 싶은 만큼의 분노까지 느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사람들이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아니, 어쩌면 생각은 하는데,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진실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 없다는 듯이, 혹은 진실 따위는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듯이, 오직 나만의 생각으로 다른 이들의 머릿속을 상상하고, 오직 나만의 기준으로 다른 이들을 정의 내리며, 결국에는 내가 가장 받아들이기 편한 것으로 어떤 사건을 결론 내려버리는 모습들을 보면 충분히 그런 생각이 든다. 왜 그들은 있을지도 모르는 반대의 상황을 생각하지 않는 걸까?!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문제가 무엇인지도 알고,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한 정답도 알게 된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가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 오랜 시간 동안 달라지는 것은 없었을까?! 실천의 차이?! 그렇다. 분명한 답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실천에 대한 생각조차, 아니 이 문제를 인식조차 못할 정도로 시작부터 별 관심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왜냐, 자신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써 이런 문제를 겪어본 적이 없으니까, 그래서 이것이 문제인지조차 모르니까. 분명 자신의 일이라면 그렇지 않을 텐데 말이다. 꼭 자신도 똑같이 당해봐야지만 아는 것일까?!   



진상은 단 하나.
애도할 상대도, 책망할 상대도, 위로할 상대도
전부 가족이라는 사실. 그뿐이다. -P326 
 


 갑작스럽게 절망으로 빠진 한 가족과 그들을 둘러싼 주위의 다양한 생각과 시선으로 풀어나가는 이야기는 결국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이 모아진다. 물론, 완벽하게 어느 한 가족을 보여주면서 가족의 소중함이나 그 의미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아직은 뭔가 불안하지만, 그래서 아쉽지만, 그 아쉬움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는 작은 불씨를 남겨놓는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작은 불씨가,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우리는 얼마나 큰 힘을 받으며 살아가는지, 그리고 그것들을 왜 그렇게 당연하게만 받아들이며 살아왔는지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지게 만든다. 그리고 그렇게 -너무나 당연하게도- 가족의 소중함과 가족이라는 이름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한 번 떠올리게 한다.


 앞서 몇 번이나 언급했지만, ‘미나토 가나에’의 지난 작품보다 깊이가 깊어졌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단순히 가족의 소중함이나 그 의미를 돌이켜보면서 모든 것을 -마냥 행복하게- 마무리 짓지 않고, 보다 큰 틀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했다는 점에 있다고 할 것이다. 서로 다른 개인과 개인의 합, 서로 다른 가족과 가족의 합으로 이루어진, -책의 제목으로도 언급된-‘관람차’같은 모습이 세상이라고, 그래서 가족만큼이나 타인에 대한 생각도 많아져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기에 말이다. 나는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며 이 책을 보기는 싫다, 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저 내가 타인이 될 수도 있고, 타인도 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번쯤 해보는 것, 그것마저도 싫다면 이 작품 속의 인물들이 그들만의 입장에서 어떻게 방식으로 하나의 사건을 바라보고 있는지 그저 지켜보기만 해도 충분히 가치 있게 이 책을 읽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아이들을 대하는 부모의 입장과 자기만의 생각으로 반항하고, 방황하는 아이들의 입장.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불편하고, 힘들어하는, 그래서 불행해하는-설사 겉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사람들과 자신이 지금껏 지켜온 품격-그런 것이 있다고 한다면…-있는 삶을 보호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입장. 살인사건을 중심에 두고 가해자니 피해자니 따지며, 가해자와 관련된 사람이라서 받게 되는 비난의 눈빛들과, 반대로 그저 가해자와 관련이 없다는 이유로 피해자가 되어버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해있는 입장. 정확히 자신만의 입장에서 살아가는-어쩌면 이것이 당연하게만 느껴지는 인간의 모습인지도 모르겠지만- 사람들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말이다….


 실컷 이런 저런 말을 떠들지만, 나 역시도, 그토록 싫어하던 이 책 속의 인물들과 다르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나도 모르게 순간 움찔하며 잠시 망설이게 된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가?! 음… 그렇다. 대답이 딱히 필요하지는 않을 것 같다. 지금 당장에는 그저, 언젠가는 나 스스로의 물음에 당당하게 답하고, 그에 걸맞게 행동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하며 조금씩 노력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상당히 흥미로운 소재로 독자들을 끌어당겨, 다양한 생각과 시선으로 독자들의 정신을 빼놓고, 결국에는 기대 이상의 묵직함까지 안겨주는 작품, 『야행관람차』. ‘미나토 가나에’라는 이름에 대한 만족과 또 다시 그녀의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를 높이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된다. 꼭 한 번 만나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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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와 비밀의 부채
리사 시 지음, 양선아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 

오늘 설화와 나리는 진실만을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결속을 맹세합니다. 

우리는 천 리를 가는 동안 하나의 강으로 합쳐지는 두 개의 개울과 같을 것입니다. 

우리는 천 년 동안 한 정원에 피어 있는 두 송이 꽃과 같을 것입니다. 

한 걸음도 떨어지지 않을 것이며 우리 사이에 모진 말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단짝일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기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P79

 
 ‘전족’으로 제대로 걷기도 힘들어하는 통코우 마을의 ‘설화’와 푸웨이 마을의 ‘나리’가 만나서 맹세한다. 그 누구도 갈라놓을 수 없는, ‘라오통’이라는 두 마음의 결합을…. 평생 지켜나가야 할 이 약속을 시작으로, 설화와 나리는 그들의 기억을 부채에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누슈’라는 여인들만의 비밀 문자로 말이다…. 하지만 작은 오해로 그들의 ‘우정과 사랑’은 시험에 들게 되고, 결국 그들은 서로에게 ‘후회와 아픔’으로, 그리고 또다시 ‘우정과 사랑’으로 남겨진다. 손에 만져질 듯 생생하게 다가오는 ‘전족’, ‘누슈’, ‘라오통’, ‘후회와 아픔’, ‘우정과 사랑’ 이라는 몇 개의 이미지로 이 소설, 『설화와 비밀의 부채』를 정리해본다. 이 몇 개의 단어들이 너무나도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기에 이렇게 정리해도 전혀 모자람은 없어 보인다. 어떻게 보면 너무 뻔 한 이야기, 단순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할 수도 있겠지만, ‘전족’, ‘누슈’, ‘라오통’ 으로 대표되는 19세기 중국 후난성의 여인들을 만나게 된다면 절대 그런 이야기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적인 복종과 순종을 강요당하며, 다락방의 작은 창 하나가 세상의 전부가 되는 삶을 살아가는 19세기 중국 후난성의 여인들. 어린 시절, 그녀들 각자가 앞으로 짊어지어야 할 삶을 대변하는 ‘전족’을 시작으로 그녀들의 고달픈 삶은 시작된다. ‘전족’에 관한 이야기를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여인들의 발 자체를 지금의 하이힐로 바꾼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겠다, 더 궁금하다, 고 한다면 검색이라는 유용한 방법이 있음을 알려드린다- 묘사와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끔찍한, 그래서 내 발가락이 하나하나 부서지고, 새롭게 조각되어지는 것만 같은 느낌마저 드는, 그 ‘전족’을 그 당시의 여인들이라면 누구나가 해야 하는 것이었고, 실제로 했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녀들에게는 그와 비슷한 처지에 있어서, 서로가 서로를 감싸안아줄 수 있는 ‘의자매’가 있었고, 그와는 약간 다른 개념의 ‘라오통’이 있었다. ‘라오통’은 ‘다른 마을에 사는 두 소녀가 평생 그 관계를 유지하는 것(P34)’을 말하는데, 이 소설의 주인공인 ‘설화’와 ‘나리’가 맺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관계를 보다 돈독하게 해주는 것이, 여자들 사이에서만 은밀하게 전해져 내려온 비밀의 문자 ‘누슈’였다. 남자들은 그 존재 자체도 알아서도 안 되는… 이런 요소들 덕분에, 여자들만의 우정, 그리고 사랑이 이렇게 절절할 수 있다는, 지금까지 미처 알지도, 그리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된다. 비록 그 새로움이 즐거움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은밀하고도 아름다워서 오히려 더 슬프게 다가오게 되지만 말이다. 

  이렇게 나에게 여전히 낯설게만 느껴지는 여인들만의 세상을 알려주는 『설화와 비밀의 부채』를 이야기하면서, 작가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 ‘리사 시’의 소개 글에, 그녀는 분명 파리에서 태어나고 LA 에서 자랐다고 적혀있었다. 글과 함께 있던 사진을 통해 만난 그녀의 얼굴도 분명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 순간 약간의 당혹스러움과 함께, 이 책에 가지고 있던 기대의 딱! 절반이 우려로 넘어가는 것을 느꼈다. 분명 『설화와 비밀의 부채』는 중국 어느 작은 마을의 여인들 이야기를 다룬다고 했었는데, 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는 중국작가가 아니라는 사실에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는 사실이 얼마 지나지 않아 밝혀졌다. 책을 조금씩 읽어나가면서-사실 많은 페이지가 필요하지도 않았다-, 이 글을 쓴 작가가 누구며, 그 작가의 출생이 어디인가, 따위는 이미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아니, 그런 것에 신경을 쓸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고 하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어쩜 그렇게 그 시절 중국의 모습들을 생생하게 담아내는지… 전족이나 라오통을 비롯해 결혼 예식이나 장례 의식 등의 세세한 부분까지도 놓치지 않는 점에 있어서 더더욱 말이다. 아무리 소설이라고 해도, 그래서 현실과 다른 어느 정도의 실수(?!)가 설사 있었다고 하더라도, 쉽사리 나오기 힘든 동양의 정서는 나의 기대 이상이었다. 뭐,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리사 시’는 중국계 미국 작가라고 한다. 물론 그녀의 몸에 흐르는 피가 그녀의 글에 전혀 영향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놀라움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뜬금없지만, 지금 당신의 곁에는 이런 사람이 있는가!?, 묻고 싶어진다. 겉은 전혀 다른 모습이지만, 그 속만큼은 전혀 다르지 않은 사람 말이다. 다른 곳에서 태어나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어느 순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나와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사람. 그래서 그 어느 순간이후로는 나와 같은 색의 영혼을 가지고 있으며, 나와 같은 영혼의 울림을 가졌다고 믿게 되는 사람. 그런 사람을 어쩌면 ‘소울 메이트’라는 말로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상대가 이성이냐 동성이냐 따위는 상관없다. 그저 남자든 여자든 정신적인 교감을 나눌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한없이 행복한 일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나리’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비록 단 한순간의 실수로 인생의 반을 후회와 아픔으로 보내야 했지만, 그마저도 아직 그런 상대를 만나지 못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저 한없이 아름답고 행복하게 비춰질 수 있지 않을까!? 아, 나도 모르게 ‘나리’를 토닥이고 있는 것만 같다. 그녀가 가졌던 우정, 사랑이 어떤 것이었기에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녀를 토닥이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그렇다. 궁금하다면 이제 당신이 『설화와 비밀의 부채』를 만나볼 시간이다. 

  아, 그전에 한 가지 해야 할 일이 있다. ‘나리’는 마지막에 ‘제발 내 말을 들어주오. 부디 나를 용서해주오.’라는 말을 남긴다. 만약 지금 당신 곁에 ‘소울 메이트’가 함께 한다면 -반대로 지금 당신 곁에 ‘소울 메이트’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선 그 존재부터 찾아나서야 할 것이다-, 훗날 대답조차 들을 수 없는 ‘미안하다’는 말보다, 지금 이 순간 ‘사랑한다. 그리고 미안할 짓은 하지 않겠다.’ 는 따뜻한(?!) 말 한마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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