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행관람차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7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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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실히 《고백》의 파장이 크긴 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고백》은 ‘미나토 가나에’라는 이름을 확실히 알리며, 단번에 그녀를 인기 작가로 발돋움하게 한 작품이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것은 그녀의 다음에 나올 작품들에 대한 기대를 상당히 크게 만들기도 했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그녀에 대한 큰 기대는 그 이후에 나온 작품들에 대한 아쉬움도 클 수밖에 없었다. 이번 작품 『야행관람차』 도 혹시 이와 같은 기대와 아쉬움을 반복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행스럽게도 이번에는 아쉬움과는 거리 가 먼, 오히려 《고백》보다 내용면에서는-미스터리적 요소는 다소 밀리더라도…- 좀 더 깊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 작품이었다.

 『야행관람차』에서도 지난 《고백》과 비슷하게, 엔도 가족, 다카하시 가족 그리고 이웃에 사는 고지마 사토코를 통해서, 하나의 사건을 바라보는 여러 사람들의 각기 다른 시선들을 보여준다. 막말에, 제멋대로인 딸‘아야카’와 그것을 참고 받아내는 어머니‘마유미’, 그리고 그런 상황에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도, 하기도 싫어하는 우유부단한 아버지‘게이스케’로 이루어진 ‘엔도 가족’과 의사 아버지‘다카하시’와 아름다운 어머니‘준코’에 의대생 큰아들‘요시유키’, 유명 사립학교에 다니는 딸‘히나코’, 그리고 연예인을 닮은 막내아들‘신지’로 이루어진 ‘다카하시 가족’이 이야기의 중심이 된다. 그리고 그들의 곁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는 이웃집 여자, ‘고지마 사토코’가 있다. 딸의 거칠 것 없는 행동으로 조용한 날이 지속될 리 없는 엔도 가족과, 그와는 정반대로 화목하게만 보이는 다카하시 가족. 이 두 가족 중에 뭔가 일이 발생한다면 누구나 엔도 가족 쪽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뜻밖에도 다카하시 가족에게 어떤 일이 발생하게 된다. 그 어떤 일이란 것이 흔한 것도 아닌, 어머니가 가해자가 되고, 아버지가 피해자가 되는 살인사건인 것이다. 아버지는 죽고, 어머니는 자수하고, 막내아들은 행방불명까지 되어버리는 상황. 다카하시 가족에게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고, 앞으로 그들을 둘러싼 주위 모든 것들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라는 궁금증과 묘한 호기심을 안게 된다.

 단순한 미스터리 소설이 아닐까 하면서, 처음에는 이 ‘살인 사건’에만 초점을 맞추고 읽어 나갔다. 도대체 진짜 범인은 누구이며, 왜 그랬을까, 에만 온통 신경을 쓰면서 말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 작품은 《고백》보다 미스터리적 요소나 요즘 흔히 말하는 반전이라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 말은 즉, 충격적인 어떤 것을 원한다면 실망을 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이런 것이 없다고 실망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보다 더 깊은 어떤 것이 남아 있으니까 말이다.

 『야행관람차』는 답답하고, 짜증나며, 분노까지 일으키게 만든다. (물론 이 책이 재미없거나 형편없어서가 아니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모두 그렇게만 느껴졌고, 등장인물 하나하나 모두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옮긴이가 한 대 때려주고 싶다고 언급하는 ‘아야카’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물들을 한 대-때로는 그 이상- 때려주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으니까 말이다. (아, 그러고 보니 전부는 아니었다. 세상이 정말 형편없다고 느껴져도, 가끔씩 세상의 희망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은 등장하기 마련이다. 단지 실제 세상에서도, 이 이야기 속에서도 그 존재는 아주 소수에 불과할 뿐이지만 말이다.) 자기 일이 아니라고 자기 입맛에 맞게 모든 것을 정리하고 결론 내려버리고, 혹시 자신에게도 피해가 있을까 아주 잽싸게 등을 돌려버리고, 심지어는 상당히 날선 눈빛으로 상대를 아프게만 만드는 주변의 모습들… 어떻게 하나같이 그렇게 자기 중심적일수가 있는지, 어떻게 하나같이 그렇게 타인을 생각하지 않으며 살아갈 수가 있는지… 결국에는 답답함과 짜증, 그리고 분노를 넘어서, 그들 모두가 측은하게까지 느껴질 정도니,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이렇게 타인을 비방하는 사이에도
다음에는 자기가 가해자나 그 친척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어째서 생각하지 않는 걸까? -P319 



 순간 ‘이거다!’ 싶었다. 책을 읽으면서 내 가슴이 계속 답답해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래서 짜증나고, 또 누군가를 향해서는 주먹을 날려버리고 싶은 만큼의 분노까지 느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사람들이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아니, 어쩌면 생각은 하는데,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진실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 없다는 듯이, 혹은 진실 따위는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듯이, 오직 나만의 생각으로 다른 이들의 머릿속을 상상하고, 오직 나만의 기준으로 다른 이들을 정의 내리며, 결국에는 내가 가장 받아들이기 편한 것으로 어떤 사건을 결론 내려버리는 모습들을 보면 충분히 그런 생각이 든다. 왜 그들은 있을지도 모르는 반대의 상황을 생각하지 않는 걸까?!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문제가 무엇인지도 알고,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한 정답도 알게 된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가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 오랜 시간 동안 달라지는 것은 없었을까?! 실천의 차이?! 그렇다. 분명한 답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실천에 대한 생각조차, 아니 이 문제를 인식조차 못할 정도로 시작부터 별 관심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왜냐, 자신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써 이런 문제를 겪어본 적이 없으니까, 그래서 이것이 문제인지조차 모르니까. 분명 자신의 일이라면 그렇지 않을 텐데 말이다. 꼭 자신도 똑같이 당해봐야지만 아는 것일까?!   



진상은 단 하나.
애도할 상대도, 책망할 상대도, 위로할 상대도
전부 가족이라는 사실. 그뿐이다. -P326 
 


 갑작스럽게 절망으로 빠진 한 가족과 그들을 둘러싼 주위의 다양한 생각과 시선으로 풀어나가는 이야기는 결국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이 모아진다. 물론, 완벽하게 어느 한 가족을 보여주면서 가족의 소중함이나 그 의미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아직은 뭔가 불안하지만, 그래서 아쉽지만, 그 아쉬움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는 작은 불씨를 남겨놓는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작은 불씨가,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우리는 얼마나 큰 힘을 받으며 살아가는지, 그리고 그것들을 왜 그렇게 당연하게만 받아들이며 살아왔는지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지게 만든다. 그리고 그렇게 -너무나 당연하게도- 가족의 소중함과 가족이라는 이름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한 번 떠올리게 한다.


 앞서 몇 번이나 언급했지만, ‘미나토 가나에’의 지난 작품보다 깊이가 깊어졌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단순히 가족의 소중함이나 그 의미를 돌이켜보면서 모든 것을 -마냥 행복하게- 마무리 짓지 않고, 보다 큰 틀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했다는 점에 있다고 할 것이다. 서로 다른 개인과 개인의 합, 서로 다른 가족과 가족의 합으로 이루어진, -책의 제목으로도 언급된-‘관람차’같은 모습이 세상이라고, 그래서 가족만큼이나 타인에 대한 생각도 많아져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기에 말이다. 나는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며 이 책을 보기는 싫다, 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저 내가 타인이 될 수도 있고, 타인도 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번쯤 해보는 것, 그것마저도 싫다면 이 작품 속의 인물들이 그들만의 입장에서 어떻게 방식으로 하나의 사건을 바라보고 있는지 그저 지켜보기만 해도 충분히 가치 있게 이 책을 읽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아이들을 대하는 부모의 입장과 자기만의 생각으로 반항하고, 방황하는 아이들의 입장.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불편하고, 힘들어하는, 그래서 불행해하는-설사 겉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사람들과 자신이 지금껏 지켜온 품격-그런 것이 있다고 한다면…-있는 삶을 보호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입장. 살인사건을 중심에 두고 가해자니 피해자니 따지며, 가해자와 관련된 사람이라서 받게 되는 비난의 눈빛들과, 반대로 그저 가해자와 관련이 없다는 이유로 피해자가 되어버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해있는 입장. 정확히 자신만의 입장에서 살아가는-어쩌면 이것이 당연하게만 느껴지는 인간의 모습인지도 모르겠지만- 사람들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말이다….


 실컷 이런 저런 말을 떠들지만, 나 역시도, 그토록 싫어하던 이 책 속의 인물들과 다르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나도 모르게 순간 움찔하며 잠시 망설이게 된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가?! 음… 그렇다. 대답이 딱히 필요하지는 않을 것 같다. 지금 당장에는 그저, 언젠가는 나 스스로의 물음에 당당하게 답하고, 그에 걸맞게 행동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하며 조금씩 노력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상당히 흥미로운 소재로 독자들을 끌어당겨, 다양한 생각과 시선으로 독자들의 정신을 빼놓고, 결국에는 기대 이상의 묵직함까지 안겨주는 작품, 『야행관람차』. ‘미나토 가나에’라는 이름에 대한 만족과 또 다시 그녀의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를 높이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된다. 꼭 한 번 만나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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