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실격 외 세계문학의 숲 5
다자이 오사무 지음, 양윤옥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언젠가부터 관심 있게 지켜본-그렇다. 기회가 없다는 핑계로 오랜 시간 지켜만 봐왔다- 《인간 실격》을 이제야 만날 수 있었다. 무슨 내용인지도 제대로 모른 채 무작정 읽어야한다는 생각이 강했던 작품이었는데, 작품을 읽기도 전에 작가의 이력을 보게 되면서, ‘다자이 오사무’라는 작가에 대한 관심이 더 많이 가게 되었다. 특히나 그의 이력 중에서, 첫 번째 자살을 시도한 이유가 자신이 속한 계급과 자신의 정치적 지향의 불일치에 따른 괴로움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더더욱 말이다. 자신이 속한 계급이라면, 그의 아버지가 귀족원 의원과 중의원 의원에 오르기도 한, 그 지역 명사이자 그 지방의 대지주라는 사실에서 출발 하는 것이고,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이라면 사회주의 운동의 그것과 일치하는 것이었는데… 그 불일치에 대한 선택으로 결심한 것이 자살-그것도 그 많은 자살 시도 중 그 시작이란다-이라니, 솔직히 그리 곱게만 보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현실과 이상의 불일치에서 오는 고통이라고 느껴지기보다는 그저 무던히 이상적이기만한, 그래서 그저 현실로부터의 도피만을 생각한 나약하는 인간의 모습을 -다자이 오사무라는 한 인간의 모습으로- 그대로 나타내는 것만 같았기에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뭐, 사실 작가에 대해서 자세히 아는 것이 아니기에 이런 적당한(혹은 단순한) 생각을 뒤로하고, 원래의 목표였던 《인간실격》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인간실격》은 세상, 특히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그렇지만 그 사이에 속하기 위해 인간들을 속이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요조’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 흔히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그 실체를 찬찬히 살펴보라고 한다. 하지만 요조는 처음부터 이미 한걸음 물러난 상태, 그러니까 애당초 인간이라는 무리에는 끼어들 수 없는 존재로 태어났다. 그런 요조는 어릴 적부터 인간을 두려워했지만, 그럼에도 인간이라는 것이 뭔지 광대 짓을 해서라도 인간이 되고픈 인간이었다. 서로를 속고 속이면서도 즐겁게 살아가는 인간이 도무지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인간이 되기 위해 애쓰면서 살았다. 하지만 그것이 결국에는 그 자신을 고통 속으로 떨어지게 만든다. 도쿄의 고등학교로 가게 되면서, 요조는 그 자신을 점점 타락의 길로 밀어 넣어, 말 그대로 거의 폐인의 삶을 살게 된다. 자신의 고통에 대한 반전을 꾀하는 삶이 아닌, 고통을 더 고통스럽게 만드는, 혹은 그렇게 밖에 할 수없는 모습들의 반복을 통해서, 그는 그 스스로를 폐인으로 낙인찍게 된다. 그토록 인간이길 원했던 인간이, ‘인간실격’이라는 단어로 그 스스로를 인간이 아니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요조의 이런 모습들에 왜 눈물이 나려고 하는 걸까!? 나약하다면 한없이 나약하게만 느껴지는, 그래서 한없이 초라하고 볼품없게만 느껴지는 그런 요조의 삶에 내가 왜?, 가 아니라, 나이기에… 나도 인간이기에…, 라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일까?! 누구나 적어도 한 번 쯤 -그 시간이 아주 짧게 지나가버리든, 오랜 시간으로 남겨지든 상관없이-은 겪게 되는 고민을 그대로 드러내기에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로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큰 고통으로 스며들어 눈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실제로는 나약하지만, ‘난 절대 그렇지 않다’, 고 부정만 하며 살아가는 삶이, ‘그래 나 나약하다. 하지만 그만큼 고통을 받으며, 또 그것을 견디며-혹은, 더 깊은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 라고 하는 삶 앞에서 눈물 외에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일까…

 앞서 ‘다자이 오사무’라는 작가를 언급하면서 그의 나약함도 동시에 이야기했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이렇게 편하게 앉아 누군가를 향해 나약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그 자격을 논하기에 앞서서-도, 사실은 그 누군가가 그 나약함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상대의 나약함을 알지만, 나의 나약함도 알기에, 함부로 누군가-더군다나 감히 그의 삶을-를 대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비로소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오히려 그가 나타낸 나약함은 그가 가지고 있는 나약함을 통해서 오히려 더 강해보이기까지 한다. 다자이 오사무는, 자신만을 위해서 쓴 작품이자, 자신을 오롯이 드러내는 작품, 《인간실격》을 통해서 그런 나약하지만 강하기도 한 인간을, 그런 이들이 존재하는 세상을 보다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이랬고, 이런 식으로 세상을 살았다. 그러니 당신만은 그러지 않아야 한다, 는 식으로 말이다.

 누군가는, 다자이 오사무가 《인간실격》 한 편을 쓰기위해 태어난 문학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 한 편을 작품을 쓰기위해서라기보다는 이 한 편의 소설 같은 삶을 살다간 인간, 다자이 오사무로 더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

 아, 이 책 『인간실격』에는 《인간실격》을 비롯해, 《물고기비늘 옷》, 《로마네스크》, 《새잎 돋은 벚나무와 마술 휘파람》, 《개 이야기》, 《화폐》라는 작품도 함께 있다. 이를 통해서 15년이라는 그의 작품 활동을 한 눈에 볼 수 있다니, -《인간실격》으로 많은 이름이 알려진 다자이 오사무이기는 하지만- 그의 다른 작품들에서 또 다른 재미를 찾아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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