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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의 고군분투 생활기
제스 월터 지음, 오세원 옮김 / 바다출판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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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직업의 개념으로 -혹은 나의 전혀 쓸모없는 선입견으로- 바라본 ‘시인(들)’이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뭔지 모를 힘겨움과 ‘고군분투 생활기’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현실적인 고통이 더해진, 『시인들의 고군분투 생활기』라는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가슴 아픈 이야기가 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혹은 제목에서 나름 재미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전해져, 어느 정도 재미있는 요소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은 소설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이런 나의 생각들은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었고, 어떻게 보면 틀린 말이기도 했다. 예상과 달리 꽤 재미있게 다가왔기 때문에 틀린 말이기도 했지만, 그 재미가 어느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그런 진정한 재미가 아니었기에 맞는 말이기도 했다. 뭐, 어떻든, 읽는 동안은 그저 유쾌할 수 있었고, 책을 덮은 지금도 그 느낌이 남아있기에, 처음의 나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에 좀 더 무게를 둬야 하는 것일까?! 음… 

 

 『시인들의 고군분투 생활기』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몰락하는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그 중에서도 ‘맷’이라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중심이 된다. 신문사에서 일하며, 한 가정에서 한 여자의 남편으로, 두 아이들을 아버지로 안정적으로 살아가던 ‘맷’은, 한때 유행하던 ‘닷컴’의 유혹에 넘어가서 신문사를 그만두게 된다. 자신 있게 시작한 사업(시와 금융정보를 결합한 뭐라나…)이 실패로 돌아가고, 다시 신문사로 돌아가지만 이내 해고당하게 된다. 고정적인 수입이 끊어지고, 그동안 야금야금 쌓아왔던 많은 빚들(그것은 미국 경제의 문제를 나타내기도 한다)로 인해 길거리로 쫓겨날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러던 중 우연히 만난 마리화나가 그에게는 한 줄기 빛으로 느껴진다. 마리화나를 팔면서 빚을 줄여나가고, 다시 자신의 집과 가족을 정상궤도에 올려놓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것마저도 실패로 돌아가는… 뭐, 그런 상황들이 펼쳐진다. 

 

 내용만보면 한없이 축축 처지고, 짜증나고, 답답하고, 때로는 너무 불쌍해서 슬프기까지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할지도 모른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작가인 ‘제스 월터’는 이런 안타까운 상황들을 상당히 위트 넘치게 풀어낸다. 절망 속에서 현실과는 전혀 다른 희망을 심어주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무조건적으로 절망으로 밀어 넣지도 않는다. 사실, 주인공인 맷의 상황을 애처롭게 바라보면서 소설 속에서라도 그가 마약 왕으로 거듭나, 그렇게라도 행복해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제스 월터’는 나의 바람과는 다르게, 맷을 마약 수사관들의 품으로 밀어 넣었다. 그럼에도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그에게 회복의 힘을 안겨줌으로써 현실적인 새로운 희망 속으로 다시 밀어 넣는 다는 사실에 또다시 안도감마저 느끼게 만든다. 그와 동시에 그 사이사이에, 비록 경제적으로는 위험에 처해있을지라도, 나름의 양심으로 복수를 해나가는 맷의 행동과 그래도 남편이라도 자신의 아내와 미묘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남자에게 은근한 압박을 가하는 등의 행동들을 통해서 끊임없는 웃음을 안겨주기도 한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이 이야기가 웃기지만 그 웃음이 진정한 웃음은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마냥 좋아서 웃는 웃음이 아닌, 씁쓸함에 기초한 웃음. 맷을 그런 처지로 몰고 갈 수밖에 없었던 세상 앞에서 울기 싫어서, 그래서 웃을 수밖에 없는 그런 웃음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 그의 모습이 오늘날 우리의 아버지가 겪는 모습인 것만 같아서, 그리고 언젠가는 겪게 될 나의 모습인 것만 같아서, 그렇기에 오히려 더 웃을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아, 이렇게 말하고 나니 더 슬퍼지는 것만 같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을 지울 수 있는 맷의 한 마디가 있었으니… 

 

세상에. 정말 용서할 수 없는 일은……
스스로 자신을 가엾게 여기는 짓거리이다. -P419 

 

 그동안 가졌던 것, 지켜왔던 것들을 잃고 난 후에야, 사람들은 그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알게 된다. 소중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혼동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어쩌면, 뭔가를 잃기 전과 잃은 후의 차이점은 내 몸뚱이가 소유한 뭔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의 어떤 생각들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시인들의 고군분투 생활기』가 전해주는 것은 결국 ‘희망’이라는 것이다. 세상이 정말 형편없더라도, 그 어떤 절망 속에서도 누구에게나 희망은 있다는…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며, 너무나 당연하다고만 생각하는 그런 메시지를 이런 작품을 통해서 전해주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하지만 잊고 살아가는 것들을 말이다… 자신을 괴롭히는 것들에서 벗어나, 『시인들의 고군분투 생활기』를 통해서 잠시라도 그 속에 존재하는 웃음을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웃다가 그 마지막에는 다시 씁쓸함으로 남겨지더라도, 그동안 잊고 살아가던 ‘희망’을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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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스크로 가는 기차 (양장)
프리츠 오르트만 지음, 안병률 옮김, 최규석 그림 / 북인더갭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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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아무 생각 없이 틀어놓은 TV를 통해서 한 편의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자꾸만 어디론가 떠나려고만 하는 남자와 그와는 반대로 우연히 마주하게 된 어느 마을에 머물고자 하는 여자의 이야기였다. 큰 감정의 기복 없이, 덤덤하게 흘러가는 드라마였는데, 뭔지 모를 느낌에 계속해서 관심 있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냥 그렇게 우연히 다가왔던 드라마는, 다가올 때처럼 그냥 그렇게 사라져갔다. 그러다가 또 한 번의 우연으로 『곰스크로 가는 기차』라는 책을 발견하게 되었고, ‘곰스크’라는 단어를, 그리고 오래전 드라마를 봤을 때 내가 느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들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혹시나 싶어서 다시 찾아보니, 드라마는 2004년 작품으로 엄태웅과 채정안이 출연했었다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었고, 기억으로만 남아있던 그 영상들을 보다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뭐 였을까, 우연하게 만난 작품을 7년이나 기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물론, 드라마에서 계속 흘러나오던 ‘곰스크~, 곰스크~’를 외치던 음악에 세뇌 당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는 사실은, 책으로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읽으며 희미하게나마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는 앞서 잠깐 이야기했듯이 그리 복잡한 내용은 아니다. ‘곰스크’라는 도시 자체가 꿈인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어릴 적부터 그곳을 갈망해왔고, 결국에는 떠나게 된다. 그런 그의 곁에는 그와 결혼한 아내가 있다. 그녀는 곰스크로 향하는 것이 그리 달갑게 느껴지지 않지만, 함께 떠난다. 곰스크로 향하는 기차가 어느 시골 마을에 잠깐 머물게 되고, 여차저차해서 그들은 기차를 놓치고 만다. 다시 곰스크로 향하는 기차를 타기위해 그들은 그 마을에서 일을 하지만, 시간이 점점 흘러 아이를 낳고,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게 되면서 그들은 그곳에 머물게 된다. 그럼에도 남자는 여전히 곰스크를 그리워한다는, 뭐 그런 내용이다.

 무조건적으로 꿈을 향해 나가고픈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왜 그렇게 ‘곰스크’만을 원하는 것일까?! 도대체 그에게 ‘곰스크’는 어떤 의미인 것일까?! 그는 그곳에서 어떤 삶을 꿈꾸고 있었던 것일까?! 비록 곰스크는 아니지만, 이미 완벽하게만 보이는 가정을 꾸린 그가 끝까지 놓지 않는 곰스크에 대한 열정은 미련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그의 꿈에 대한 진정성에도 의문이 들었다. 그의 열정이, 진짜 자신만의 꿈인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주입된 꿈에 불과한 것인지 말이다. 지금의 행복을 바라는 아내를 처음부터 헤아릴 수는 없었던 것일까?! 



“인생이 의미를 가질지 아니면 망가질지는 오직 당신에게,
다른 사람이 아닌 당신에게만 달려 있다는 사실을 왜 직시하지 않는 거죠?” -P57
 


 반면에, 겉으로는 결혼한 남자의 꿈을 함께하고자 하지만, 그것보다는 당장의 행복을 향하고만 싶은 여자가 있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 꾸는 꿈이 진짜 꿈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낯선 세상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곰스크’로 향하다가 내린 어느 마을에서 새로운 가정을 꾸릴 수 있었다는 사실을 보면 그런 단순한 낯섦에 대한 두려움은 아니었던 듯하다. 그렇다면 왜?!, 라는 생각이 든다. 조금 힘들어도, 아니 많이 힘들다고 해도, 결혼한 사람이 원하는 세상을 향해 그냥 믿고 갈 수는 없었던 것일까? 이제 막 가꾸어나가는 그 마을과 ‘곰스크’와의 차이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어쩌면 별 것 없는 ‘곰스크’에 대한 남편의 환상을 깨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고통이 될 수도 있겠지만, 고통보다는 영원한 희망-삶을 유지하게 하는-을 위해 그의 꿈을 지켜주고 싶었던 것일까?!

 나 스스로에게 ‘만약, 나라면?’이라는 질문을 하고, 주절주절 이런저런 대답들을 내뱉는다. 그러다 문득 생각한다. 지금 나에게 보다 중요한 것은 ‘나의 곰스크는 과연 무엇인가?! 아니, 나에게 곰스크라는 것이 있기는 한 것인가?!’, ‘있다면, 나는 지금 곰스크를 향해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미 누군가는 자신은 이미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놓쳤다고, 그래서 그냥 가슴 속에만 곰스크를 담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나는 아직 곰스크를 향하고 있다고, 아니, 나는 이미 그 기차를 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어야 되지 않을까?!
 


“사람이 원한 것이 곧 그의 운명이고, 운명은 곧 그 사람이 원한 것이랍니다.
당신은 곰스크로 가는 걸 포기했고 여기 이 작은 마을에 눌러앉아 부인과
아이와 정원이 딸린 조그만 집을 얻었어요. 그것이 당신이 원한 것이지요.
당신이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면, 
기차가 이곳에서 정차했던 바로 그때 당신은 내리지도 않았을 것이고
기차를 놓치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 모든 순간마다 당신은 당신의 운명을 선택한 것이지요.” -P61
 



 결론-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말이지만…-은 남편의 입장도 아내의 입장도 아닌, 엉뚱한(?!) 곳에서 튀어나온다. 내가 지금껏 걸어온 길이 내가 원했던 것이고, 그것이 운명이라는 결론 말이다. 당신이 만약, 이미 곰스크로 가는 기차는 놓쳤다고 생각하더라도, 반대로 벌써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탔거나, 아직 기다리고 있다고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지금껏 걸어온 길, 그리고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 그런 순간순간의 선택이 결국에는 내가 원한 것이라는 것을, 그러니 매순간을 소중히 생각하고 감사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그대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곰스크로 가는 기차』에는 표제작인 《곰스크로 가는 기차》외에도 7편의 단편이 함께하고 있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는 듯 한 느낌이 드는 《철학자와 일곱 곡의 모차르트 변주곡》과 《두 시절의 만남》, 오늘날 우리 사회를 그대로 축소시켜 놓은 것만 같은 느낌의 《배는 북서쪽으로》 등, 모두 특별하면서도 제대로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는 느낌을 들게 하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상당히 적은 정보만이 알려진 작가, ‘프리츠 오르트만’이지만,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통해서 온전히-물론 그에 대해서 약간의 정보가 주어져 있기는 하지만…- 그의 작품으로만 그의 세상을, 그리고 오늘날의 우리의 모습을 따라가는 시간들을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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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추락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시공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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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들어 중국 작가의 작품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가능하면 특정 나라, 특정 작가의 글에 한정짓지 않고 다양한 작품들을 만나보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어느 나라의 어느 작가인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보게 된다. 그런데 왠지 중국 작가의 작품들은 나와 잘 맞는 것 같다는 생각에 조금씩 관심이 더 가게 된다. 특별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막연히 그들의 글이 잘 읽힌다는 느낌이랄까?! 막힘없이 읽을 수 있고, -같은 유교권이라 그런지- 그들의 생활 모습 또한 크게 낯설지 않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중국작가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생겨날 때쯤 ‘하 진’이라는 작가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중국 출신의 미국작가이다. 영어로 작품을 쓰는, 미국작가. 출신이 중국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의 문학을 미국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 작가인 것이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당연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는 그의 뿌리를 꼭꼭 숨겨두는 대신에, 더 당당하게 드러내고, 그 뿌리에 대한 따뜻한 사랑의 기운까지 담아낸다. 미국 사회 속에 묘하게 겉돌고 있는-그럴 수밖에 없는- 이민자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멋진 추락』을 통해서 더욱 선명하게 말이다.

 
『멋진 추락』에는 12가지의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 다양한 이야기만큼이나 다양한 재미가 있다. 물론 가끔씩은 입맛에 맞지 않는 것도 있고, 또 때로는 정말 귀한 음식인데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상당한 재치로 웃음이 나게 하는 이야기도 있고, 이런 것이 과연 그들(!?)이 이야기하는 꿈인가 싶은 생각이 들게끔 하는 안타까운 이야기도 있으며, 때로는 이게 뭐야, 싶은 생각이 드는 이야기, 그리고 그저 힘겹게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등…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서 이민자들의 삶-기쁨, 슬픔, 아픔, 그리고 그 외에도 그들이 타지에서 느끼는 수많은 감정들…-을 담아낸다. 지금 당장의 나와는 상관없는 삶이지만, 내가 겪을 수도 혹은 내 주위의 누군가가 겪을 수도 있는 일. 아니 어쩌면 그 누군가가 벌써 겪은 일이다. 작가 하 진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문득, 이런 이야기를 풀어내는 동안 그의 느낌은 어땠을까를 생각해보게 된다. 냉소적인 웃음 뒤에 감추어둔 어떤 슬픔이 아련하게 전해지는 것만 같다. 그리고 이런 슬픔이 우리의 현실에, 그리고 이 이야기들 속에 그대로 녹아들어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웃을 수만도, 울 수만도 없는, 때로는 화가 나지만 쉽게 화를 낼 수도 없는 상황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그렇다고 쉽게 해결되지도 않는 일들…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생각해야하는 것일까!? 그저 알아간다는 그 사실 하나로만 만족해야 하는 것일까!?

 
‘하 진’이라는 작가, 정말 담담하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참 쉽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야기가 잘 읽힌다고 표현하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 같다. 이야기가 복잡하다는 느낌이 없이 술술 읽힌다. 그렇다고 아무런 내용도, 아무런 의미도 없는 글도 아니다. 각각의 내용들을 막힘없이 읽어 나갈 수 있지만, 각 이야기의 마지막에 다다를 때쯤이면 잠깐 멈춰 서서 어떤 생각들을 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때로는 너무 허무하다 싶을 정도의 끝맺음 앞에서 도대체 이건 뭐지?, 라는 생각에 어쩌지 못하고 있는 나를 만나게 되기도 하지만… 이런 쉬운 문장들의 합, 그 끝에는 이야기 이상의 또 다른 생각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전혀 서두름도 없이, 조곤조곤 할 이야기를 다 하면서도, 생각할 뭔가는 조심스레 남겨두는 세심함까지 가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꾼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는 속담이 이 상황에 적합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새롭게 시작하면 다 잘될 것 같고, 남이 하는 일을 따라 해도 무조건 다 잘 될 것 같은, 그런 꿈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하는 일보다 남이 하는 일이 더 좋아 보이고, 나의 삶보다 그들의 삶이 훨씬 나을 것이라는 착각 속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민자가 아닌 그 테두리 밖에서 그들을 지켜보면서 그들을 다 안다고, 혹은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과오를 범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이런 것은 어떨까?! 일단은 지금의 나에게 최선을 다해보는 것, 말이다. 이 책의 표제작이기도 한 《멋진 추락》에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라고 생각하고 주인공이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시도를 한다. 죽음을 생각했던 이런 행동이 오히려 지금까지와는 다른, 생각지도 못했던 삶의 길을 열게 만드는 것이다. 그저 우연한 행운을 거머쥔 한 남자의 이야기로 비춰져서 어이없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삶의 마지막을 감수하는 행동이 오히려 그를 살게 했다고, 좋게 생각할 수는 없을까?!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이 역시 적합한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이라고 말이다. 자, 어떤가!? 마지막을 감수할 만큼의 노력, 그 노력으로 지금의 나에게 최선을 다해보는 것. 그것이라면 그 어느 곳에서도 꿈을 꾸고, 실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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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사랑이었네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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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에서 허우적거리다 ㅡ.

 가끔씩 내가 왜 이러고 있나, 라는 생각이 들 때 가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라는 쉽사리 대답하기 힘든 질문들까지 쏟아내면서… 내 삶의 방향을 잃었다는 느낌에 삶의 배고픔까지 더해진다. 그러면서 지난날들에 대한 후회로 가득한, 괴로움의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 언젠가의 선택은 이랬어야 하는데, 그때는 또 이렇게 했어야 하는데 등등의 후회와 다시 그 시간 속으로 돌아갈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생각들로 또 다시 후회할 시간들을 보낸다. 그렇게, 그렇게 나는 점점 깊은 늪으로 빠져들어 허우적거리기만 한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든다고 해야 하나. 뭔가에 한 방 맞은 듯 한 느낌이다. 전혀 모르던 것들을 새롭게 알았기에 느끼는 그런 느낌이 아니라, 알고 있었지만 잊고 있었던 것들을 다시 깨닫게 되었을 때의 그 느낌말이다. 『그건, 사랑이었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런 느낌이었다. 글의 내용에 따라 큭큭 웃기도 하고, 끔찍함에 가슴아파하기도 하고, 많은 이들의 따뜻함에 가슴이 뜨거워지기도 했지만, 순간 느꼈던 그 느낌은 오래도록 계속 되었다. 

 

 깊은 늪에 빠져 그저 허우적거릴 때는 대답하기 힘들었던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쉽게 떠올랐다. 내 삶의 궁극적인 목표가 뭘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때마다 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던 단어는 “행복”이었다. 단지, 스스로 열심히 살아야 한다며 바쁘게 이리저리 설치고 다니면서 그 단어를 잊고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그 답을 떠올린 것이다. 한비야님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내 귓가에 울려 퍼지는 웃음소리로 전해져 왔다. 그리고 그 웃음소리는 내 귀에서 내 머리로 그리고 내 가슴으로 조금씩 파고들었다. 그런 다양한 감각으로 끊임없이 나를 돌아보게 하고 반성하게 하며, 앞으로의 나를 새롭게 새겨 넣도록 한다.

 

인간 한비야를 만나다 ㅡ. 

 한비야의 글을 읽고 있으면,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를 뛰어난 감각으로 세련되게 표현하는 것도 아닌데 그 내용이 쉽게 받아들여진다. 내용이 눈에 쏙쏙 들어오면서 마음까지도 참 편안해 진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인간 한비야를 만날 수 있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말릴 수 없는 무한한 긍정과 웃음, 그리고 아침 밥 꼭 챙겨먹고 하루에 한 번은 자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조금은 독특한 모습의 인간이지만, 진짜 뜨거운 피와 심장을 가진 인간적인 모습이기에 편안하고 쉽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건, 사랑이었네』, 이 책의 내용이 그런 것이다. 오지 여행가 한비야보다, 구호 팀장 한비야보다도 인간 한비야에 한층 더 가까운 이야기로 가득한 책. 물론 여행이나 구호 현장의 이야기들도 담겨 있지만 그것들 또한 인간 한비야의 모습을 보다 부각시킨다. 산이 좋아 무수한 선 자리도 마다하고 산에 가는 그녀의 이야기부터 시작해, 쓸데없는 걱정일랑 말고 지금을 재미있게 살자는 이야기, 그녀의 종교인 천주교만의 이야기가 아닌 개신교, 불교, 이슬람 등의 모든 종교에 대한 이해와 포용의 이야기, 돈을 바라보는 시점의 변화를 말하며 단순함의 미덕을 강조하는 이야기 등등의 많은 것들이 그녀의 긍정이라는 큰 에너지와 결합되어, 그 어느 책에서 ‘~해라’식으로 강하게 이야기하는 것보다 더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이 책을 통해서 인간 한비야를 만나서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인간 한비야를 만나게 됨으로써 내가 느끼는 좌절감도 만만치 않다. 그 동안 내가 해왔던 온갖 행동들이 잠시 편하기 위한 핑계거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한없이 부끄러워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같은 인간인데 나는 왜, 라는… 뭐, 결국에는 그것마저도 장점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그녀도 인간이고, 나도 인간이다. 지금은 다르지만 같아질 수도 있다. 고로 지금 내가 이럴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발전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말이다. 

 

 나에게 남겨지는 숙제들 ㅡ. 

 이 책을 만나고, 아직도 앞으로의 계획을 계속해서 세우고 행동하는 한비야를 만나면서, 나 역시도 그녀처럼 내 삶을 단계적으로 밟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지금 내가 안고 있는 고민들부터 시작해서 나뿐만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공통적인 생각과 고민들을 하나씩 풀어가고, 결국에는 우리 모두가 나아가야할 앞으로의 세상까지 나가는 것 말이다. 말은 거창하지만 당장은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해나가야 할 것이다. 결국에는 이 책을 읽고 내 삶의 숙제가 너무 많아졌다. 아니, 많아진 것이 아니라 원래 있었던 숙제들을 한 방에 정리한 듯 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원래 숙제라고 하면 답답한 가슴이 먼저 떠오르는데 신기하게도 여기에서 떠오르는 숙제들은 내 가슴을 다시 뛰게 한다!! 이것이 한비야의 힘인가?! 

 

 이런 책은 참 괜찮다 싶다. 누가 이처럼 수다스럽지만 편안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해줄 수 있을까?! 지금 바로 내 곁에서 나만을 위해 두런두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때로는 손까지 따뜻하게 잡아주는 그런 사람, 그런 책. 단 한 권의 책으로 온기가 느껴진다고 해도 절대 과장이 아닌 책. 

 

 지금도 어디선가 누군가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상당한 하이 톤의 가볍고 수다스러운 느낌에서 섞여 나오는 웃음소리이지만, 그 웃음이 전해주는 온기는 나를 어디론가 데리고 가려는 듯하다. 그곳이 어디인지 또렷하게 떠오르지 않아 말이나 글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 느낌만은 또렷하게 전해진다. 내가 가야하고, 우리가 가야만 하는 곳. 성공이라면 성공일수도 있고, 행복이라면 행복일수도 있는 그곳. 그 곳으로 천천히, 하지만 당당하게 발걸음을 옮겨본다. 웃음소리 하나로 내가 달라지고, 우리가 달라진다. 나와 세상을 움직이는 것. 그건, 역시 누군가에게서 전해져오는 또는 누군가를 향한 사랑이었다. 

 웃음소리가 가득하고, 그 웃음소리에 담긴 온기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책, 『그건, 사랑이었네』이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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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천 정사 화장 시리즈 1
렌조 미키히코 지음, 정미영 옮김 / 시공사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어둠이 스민 거리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걷고 있다. 그곳은 갑자기 어디서 무엇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습한 느낌의 거리이다. 아니, 어쩌면 나를 어둠으로 안내하는 그 무엇인가는 벌써 펼쳐져 있었던 듯하다. 그로 인해 나의 마음이 조마조마해진 것이다. 하지만 이내 습하게만 느껴졌던 거리가 젼혀 다른 모습으로 변하게 된다. 어느덧 나는 이름 모를 어떤 꽃의 향기에 취한 채, 낯선 거리를 나풀나풀 걷고 있는 것이다. 그 순간, 누군가 다가와-전혀 놀라지 않는다- 조용히 속삭인다. 이 거리와 이 거리에 닿아있는 마을에 얽힌, 그리고 앞에서 펼쳐져 있었던 그 조마조마함에 대한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그 순간, 내뿜는 숨결 하나하나에 어느 꽃의 향기가 스며있다. 마냥 행복해지는 그런 향기는 아니다. 뭔지 모를 슬픔이 담겨있는, 그래서 더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그런 향기이다. 나는 조금씩 조금씩 그 향기에 취해만 간다. 『회귀천 정사』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읽어나가는 그 모든 순간들이 나에겐 이런 느낌의 반복이었다. 

 

 『회귀천 정사』(혹시, 정사라고 해서 19금의 그 정사를 떠올리는가?! 그렇다면 미안한데 어쩌나. 여기서의 정사(情死)는 ‘사랑을 이루지 못한 남녀의 동반 자살’을 이르는 말인데 말이다. 하긴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는 제목에 ‘정사’라는 단어가 포함됐다는 이유만으로 검색 시 성인 인증을 해야 했다고 하니 충분히 그럴 수도…)에는 표제작인 《회귀천 정사》를 비롯해 《등나무 향기》, 《도라지꽃 피는 집》, 《오동나무 관(棺)》, 《흰 연꽃 사찰》까지 총 다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모두‘화장(花葬, 꽃으로 장사 지내다) 시리즈’라고 불리는 시리즈의 일부이다. 시리즈라고 하지만 그 내용은 각기 다르다. 단지, 사랑이 담긴 미스터리한 이야기라는 것과 꽃이 그 주인공이라는 정도의 공통점이 있을 뿐이다. 아, 그리고 또 하나. 『회귀천 정사』에 있는 다섯 편의 이야기가 전체적인 큰 틀은 비슷하게 유지된다는 것이다. 어떤 의문 가득한 사건이 터지게 되고, 그 사건을 하나씩 풀어헤쳐나가는 과정 속에서 그 의문에 대한 해답 이상의 뭔가를 찾아가는 것이다. 처음에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걷을 수밖에 없는- 미스터리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것은 어떤 경험일수도 있고,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하지 못할 정도의 희미한 느낌일수도 있고, 누군가의 노래 속 내용일 수도 있다. 그런 이야기들이 해결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다양한 모습의 꽃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꽃’이라는 -이제는 너무나도 흔하게만 생각되는- 하나의 단어가, 생명에서 죽음으로 이어지는 꽃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던지는 사랑의 꽃이 되기도 하며, 사랑이었지만 피어날 수 없었던 꽃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누군가의 기억-그것이 좋든, 나쁘든-으로 새겨진 꽃으로, 혹은 죽었다가 다시 소생하는 꽃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그저 아름답게만 느껴지는 단편적인 꽃이 아닌 다양한 순간과 다양한 트릭 속에서 피고 지는 꽃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각각의 이야기들은 꽃을 통해서 조마조마한 마음을 아름답지만 슬픈 향기로 채워놓는다. 

 

 형사가 주인공인 《도라지꽃 피는 집》을 보면… 사창가 뒷골목에서 시체가 발견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시체가 된 사내의 꼭 쥔 주먹에는 새하얀 모습의 도라지꽃이 남아있다. 이 사내는 왜 이 곳에서 죽었으며, 도라지꽃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 것이기에 그렇게 꼭 쥔 채로 죽어있을까, 라는 의문도 잠시, 또 하나의 비슷한 사건-또 누군가가 도라지꽃을 손에 꼭 쥔 채로 죽어있는…-이 발생하게 된다. 이는 -작품에서 자주 표현되는- ‘붉은 등불이 스며든 피부’를 가진 여자들과 얽혀 도라지꽃과 살인 사건에 대한 보다 큰 궁금증을 유발하게끔 한다. 이야기는 해결을 향해 점점 다가가고, 결국에는 해결을 하게 되지만, 그 이면에 남겨진 사연은 이 이야기를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닌 사랑이 담긴, 그래서 단순히 누군가를 비난할 수도 없는 그런 이야기로 바뀌게 된다. -이렇게 한 줄로 정의한다는 것이 머쓱하지만- 한편의 슬픔이 담겨있는, 그래서 더 아름답다고 느껴지는-그럼에도 분명 인간으로써 경계해야 할 사항들이 담긴- 그런 이야기들로 태어나는 것이다.
 

 


한번 말라 시들어버린 꽃은
그저 모든 것이 시들어 떨어질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P85 



 저자는 말한다, ‘어디까지나 주인공은 꽃’이라고. 주인공이 꽃이라고 그저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꽃에게도 그저 아름답게 피는 것에서만 그치지 않고 시드는 순간이 다가오기 마련이다. 그 피고 지는 각각의 순간들이 저마다 다른 모습이긴 하겠지만, 특히나 꽃이 그저 시들기만을 조용히 바랄 수밖에 없는 순간들을 과연 아름답다고만 할 수 있을까?! 당연하게도, 『회귀천 정사』에서는 꽃을 통해 인간의 어둠-앞서 경계해야 할 사항이라고 표현한-을 그대로 나타내고, 그에 대한 냉소적인 모습을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전체적으로 보면 희미한 느낌이 깔려있는 이야기들임에도 불구하고, 간직하고 싶고 지켜내고픈 한 송이의 꽃을 저마다의 가슴에 품고 살아가기 때문일까, 꽃이라는 것이 때때로는 그 자신의 선명함을 숨기지 않는다. 다시 시들기 위해-그것이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피는 꽃과 같이 세상의 모든 생이 사를 향해 달려가지만, 결국에는 우리 가슴속에 여전히 살아 숨쉬는, 저마다 꿈꾸는 한 송이 꽃이 있기에, 혹은 그런 추억과 기억이 있기에 우리는 지금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그 생과 사에서 우리가 간직하고, 또 지켜내고픈 꽃은 어떤 꽃이며, 그 꽃은 어떤 향기의 간직하면서 우리의 가슴속에서 피고 지는 것일까?! 

 

 어떤 작품에 대해 장르를 구분 짓는 것이 그리 현명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 작품은 미스터리라는 장르로도, 그냥 일본 문학이라는 장르로도, 혹은 연애 소설이라는 장르로도, 그 어느 곳에 구분해서 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다양한 빛깔을 내고 있다. 아니, 그냥 아무 빛깔도 없는 흰색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저마다 나름대로 받아들이고 느끼는 그대로의 빛깔을 나타나는 하얀 색의 작품 말이다. 당신에게는 과연 어떤 빛깔, 어떤 향기의 작품일까?! 궁금하다면 역시 직접 만나볼 수밖에… 

 

 ‘화장(花葬) 시리즈’는 모두 8편이 있고, 그 중 5편이 이 책, 『회귀천 정사』에 실려 있다. 그리고 남은 3작품은 『저녁 싸리 정사』라는 이름의 책에 실려 있다고 한다. 그 『저녁 싸리 정사』도 조만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펼쳐질지, 어떤 향기가 느껴지는 책이 될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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