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추락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시공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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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들어 중국 작가의 작품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가능하면 특정 나라, 특정 작가의 글에 한정짓지 않고 다양한 작품들을 만나보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어느 나라의 어느 작가인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보게 된다. 그런데 왠지 중국 작가의 작품들은 나와 잘 맞는 것 같다는 생각에 조금씩 관심이 더 가게 된다. 특별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막연히 그들의 글이 잘 읽힌다는 느낌이랄까?! 막힘없이 읽을 수 있고, -같은 유교권이라 그런지- 그들의 생활 모습 또한 크게 낯설지 않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중국작가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생겨날 때쯤 ‘하 진’이라는 작가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중국 출신의 미국작가이다. 영어로 작품을 쓰는, 미국작가. 출신이 중국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의 문학을 미국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 작가인 것이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당연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는 그의 뿌리를 꼭꼭 숨겨두는 대신에, 더 당당하게 드러내고, 그 뿌리에 대한 따뜻한 사랑의 기운까지 담아낸다. 미국 사회 속에 묘하게 겉돌고 있는-그럴 수밖에 없는- 이민자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멋진 추락』을 통해서 더욱 선명하게 말이다.

 
『멋진 추락』에는 12가지의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 다양한 이야기만큼이나 다양한 재미가 있다. 물론 가끔씩은 입맛에 맞지 않는 것도 있고, 또 때로는 정말 귀한 음식인데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상당한 재치로 웃음이 나게 하는 이야기도 있고, 이런 것이 과연 그들(!?)이 이야기하는 꿈인가 싶은 생각이 들게끔 하는 안타까운 이야기도 있으며, 때로는 이게 뭐야, 싶은 생각이 드는 이야기, 그리고 그저 힘겹게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등…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서 이민자들의 삶-기쁨, 슬픔, 아픔, 그리고 그 외에도 그들이 타지에서 느끼는 수많은 감정들…-을 담아낸다. 지금 당장의 나와는 상관없는 삶이지만, 내가 겪을 수도 혹은 내 주위의 누군가가 겪을 수도 있는 일. 아니 어쩌면 그 누군가가 벌써 겪은 일이다. 작가 하 진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문득, 이런 이야기를 풀어내는 동안 그의 느낌은 어땠을까를 생각해보게 된다. 냉소적인 웃음 뒤에 감추어둔 어떤 슬픔이 아련하게 전해지는 것만 같다. 그리고 이런 슬픔이 우리의 현실에, 그리고 이 이야기들 속에 그대로 녹아들어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웃을 수만도, 울 수만도 없는, 때로는 화가 나지만 쉽게 화를 낼 수도 없는 상황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그렇다고 쉽게 해결되지도 않는 일들…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생각해야하는 것일까!? 그저 알아간다는 그 사실 하나로만 만족해야 하는 것일까!?

 
‘하 진’이라는 작가, 정말 담담하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참 쉽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야기가 잘 읽힌다고 표현하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 같다. 이야기가 복잡하다는 느낌이 없이 술술 읽힌다. 그렇다고 아무런 내용도, 아무런 의미도 없는 글도 아니다. 각각의 내용들을 막힘없이 읽어 나갈 수 있지만, 각 이야기의 마지막에 다다를 때쯤이면 잠깐 멈춰 서서 어떤 생각들을 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때로는 너무 허무하다 싶을 정도의 끝맺음 앞에서 도대체 이건 뭐지?, 라는 생각에 어쩌지 못하고 있는 나를 만나게 되기도 하지만… 이런 쉬운 문장들의 합, 그 끝에는 이야기 이상의 또 다른 생각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전혀 서두름도 없이, 조곤조곤 할 이야기를 다 하면서도, 생각할 뭔가는 조심스레 남겨두는 세심함까지 가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꾼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는 속담이 이 상황에 적합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새롭게 시작하면 다 잘될 것 같고, 남이 하는 일을 따라 해도 무조건 다 잘 될 것 같은, 그런 꿈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하는 일보다 남이 하는 일이 더 좋아 보이고, 나의 삶보다 그들의 삶이 훨씬 나을 것이라는 착각 속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민자가 아닌 그 테두리 밖에서 그들을 지켜보면서 그들을 다 안다고, 혹은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과오를 범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이런 것은 어떨까?! 일단은 지금의 나에게 최선을 다해보는 것, 말이다. 이 책의 표제작이기도 한 《멋진 추락》에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라고 생각하고 주인공이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시도를 한다. 죽음을 생각했던 이런 행동이 오히려 지금까지와는 다른, 생각지도 못했던 삶의 길을 열게 만드는 것이다. 그저 우연한 행운을 거머쥔 한 남자의 이야기로 비춰져서 어이없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삶의 마지막을 감수하는 행동이 오히려 그를 살게 했다고, 좋게 생각할 수는 없을까?!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이 역시 적합한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이라고 말이다. 자, 어떤가!? 마지막을 감수할 만큼의 노력, 그 노력으로 지금의 나에게 최선을 다해보는 것. 그것이라면 그 어느 곳에서도 꿈을 꾸고, 실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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