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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가분 - 마음주치의 정혜신의 나를 응원하는 심리처방전
정혜신.이명수 지음, 전용성 그림 / 해냄 / 201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평소에 자신이 어떤 말을 즐겨 쓰는지, 또 어떤 말을 좋아하는 지 관심 있게 관찰하고 깊게 생각해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적어도 나는 말이다. 내가 어떤 말을 좋아했던가… 이런저런 단어들이 머릿속에서 떠다니지만 쉽게 손에 잡히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홀가분’이라는 단어는 어떨까?! 지금까지 큰 의미 없이 쓰던 말이 누군가의 책의 제목이 되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감정을 표현할 때 즐겨 쓰는 430여 개의 단어 중 긍정성을 뜻하는 쾌(快)의 최고 상태로 꼽은 말’이라는 설명까지 곁들여지니 혹하지 않을 수 없다. ‘홀가분’이라는 단어를 앞에 놓고 생각한다. 그래,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이것이라고…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에서는 세상의 기준과 시선에서 홀가분해지기 위해서 또다시 세상의 기준과 시선에 의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아, 언제쯤이면 이런저런 잡스런 생각 없이 ‘홀가분’을 맛볼 수 있을까?!

 

 『홀가분』은 세상의 기준과 시선에 불안해하지 않을 수 있도록, 그 어떤 경우에도 나를 사랑하고 지지함으로써 온 마음으로 홀가분해질 수 있도록 응원하는 독특한 형태의 심리처방전이라고 한다. 만병통치를 자신하는 약장수의 영험한 약 같은 처방전은 아니지만, 적어도 자기를 돌아보고 보듬어주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심리처방전의 역할로는 의미가 있을 것이라 말한다. 스스로 홀가분함을 경험해 봤다면서 말이다. 그렇게 『홀가분』은 자기성찰과 진짜 잘 사는 것에 대한 근본적 의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한걸음 한걸음을 함께 한다.

 

 사실, 책을 제대로 읽기도 전에, 나도 그럴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앞섰다. 나는 스스로 나만의 길을 걷고 있다고, 세상의 어떤 시선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나 스스로의 모습을 찾지 못하고 남의 시선이나 남의 방식만을 의식하고 따라가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에 더더욱 말이다. 그러다가 만난 이 책의 프롤로그에 담긴 “저는 이것으로…… 충분하고 충분합니다.”라는 말은 내가 원하는 것이 결코 큰 것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홀가분』을 조금씩 따라가다 보면 뭔가 길이 있지 않을까싶은 생각이 들었고, 결론적으로 보자면 그 선택은 잘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스타일의 책을 보면서 항상 생각하는 것이지만, 내가 이렇게 했으니 너도 이렇게 해야 한다, 는 식의 글은 반감만 안겨준다. 그런 책은 읽기도 싫다. 하지만 이 책에는 그런 강요는 전혀 없을뿐더러, 오히려 그냥 마주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느낌이 든다. 꼭 이렇게 해야 한다, 나는 그렇다 너도 그래야한다, 가 아니라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저는 그렇게 노력 중입니다.”라는 식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심리처방을 나 자신, 그리고 내 주위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틀을 구성하는 이 사회에 대한 생각들까지 아우르고 있다는 사실에 더 마음에 드는 이야기들이 아닌가 생각된다.

 

 『홀가분』에서는 다양한 처방전을 내놓으면서 마지막으로, 세상에서 가장 먼저 만나야 할 사람은 자기 자신이라고 한다. 만약, 내 눈 앞에 온전히 나 자신 그대로의 모습으로 서있는 나를 만나면 어떨까!? 죽기 전 그런 경험을 한 번이라도 할 수 있을까!? 그것을 황홀한 축복이라고, 한 번이라도 제대로 경험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하는 그녀의 글에서 나의 소망도 찾게 된다. 나 자신과의 만남. 가장 먼저 해야 할 만남이자, 가장 어렵기도 한 만남. 그 만남의 시간을 가진다면, 아니 그 시간을 향해 조금씩 걸어간다면 홀가분한 나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말이다.

 

 사람이기에, 사람은 누군가를 계속 필요로 한다. 나의 걱정과 고민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나의 아픔을 덜어줄 수 있는 사람, 나에게 힘이 되어주는 사람 등… 필요로 하는 그런 사람을 찾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동안 내 주위 사람들에게 왜 나를 이해하지 못하냐는 짜증 섞인 말들만 하면서, 정작 나는 그들에게 넓은 마음으로 다가서지 못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나에게 왜 그런 존재가 없을까, 도대체 나란 인간은 뭐가 문제인가를 생각해보는 것도 좋은-어쩌면 당연한- 방법이겠지만, 자기 스스로가 먼저 다른 이의 그 누군가가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 나에게 『홀가분』이 그런 존재가 되어줬다면, 나 역시 누군가에게 홀가분을 안겨줄 수 있는 존재로, 그리고 결국에는 나 스스로가 홀가분한 모습으로 바뀌는 삶을 향해 가는 것. 그것이 내가 가야할, 우리가 가야할 길이 아닐까?!  “저는 이것으로…… 충분하고 충분합니다.”라는 말이 쉽게 나올 수 있는 삶을 향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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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싸라비아] 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앗싸라비아 - 힘을 복돋아주는 주문
박광수 글.사진 / 예담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우리 삶이 순간들의 연속이기 때문일까, 삶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바라보기란 결코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사진을 바라보게 되는 것일까?! 연속되는 순간들을 잠시라도 멈추게 하여 잠깐이라도 숨 쉴 수 있도록, 뒤돌아 볼 수 있도록 하기위해서 말이다. 내 삶은, 그의 삶은, 그리고 이 세상은 어떤 순간들로 이루어져있나. 『앗싸라비아』를 통해서 잠시 멈추어 서서 우리의 삶을 바라본다.

 

 서문에서 이야기한다. 세상 혹은 삶의 아름다움 그 자체의 경이로움에 빠져 그 멋진 순간들은 카메라에 담지 못했다고. 그래서 지금 볼 사진들은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막 지나간 찰나의 사진이라고. 그러니 부디 가장 아름다웠을, 사진의 바로 앞 순간을 상상하라고 말이다. 나는 지금까지, 사진은 그저 그 순간만을 담아내는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해왔다. 그러니 뭔가 담아두고픈, 추억하고픈 순간들이 다가오면 그 순간을 카메라 렌즈로 바라보든가, 아니면 지금 당장의 순간을 눈을 통해 내 기억 속에 온전히 간직할 것인가의 사이에서만 고민해왔다. 그런 순간들은 그대로 느끼고, 그 여운이나마 사진에 남겨놓는다면 나중에 추억할 때에 보다 선명하게 그 순간들을 그려낼 수 있을 텐데, 왜 어느 한쪽만을 선택해야한다고 나 자신에게 강요해왔는지, 때늦은 후회가 살짝 밀려온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고, 일단 나 자신의 선택에 대한 어리석은 강요를 벗어나기 위해, 지금부터는 눈앞에 보이는 사진의 그 모습 그대로가 아닌 바로 앞의 순간을 상상하는 연습을 시작해본다.

 

 『앗싸라비아』는 그동안 박광수 작가가 보여줬고, 우리에게 익숙했던, 그림이 아니라 사진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포토에세이다. 다양한 장소, 다양한 나라를 다니며 사진을 담았고, 명사들의 주옥같은 말들도 골라서 함께 담아놓았다.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들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들, 이런저런 생각들이 스쳐지나간다. 지난날에 대한 기억, 그리움이나 엄니에 대한 사랑, 그리고 살아가는 동안 힘을 얻기 위해 매일매일 외우는 주문이라는 -책의 제목이기도한- ‘앗싸라비아’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고, 다양한 사진들을 만나는 재미도 있었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많이 아쉽다. 도대체 어떤 사진의 모습을 담아서 보여주고 싶었는지, 어떤 이야기들을 하고 싶었는지 좀처럼 정리가 되지 않았기에 말이다. 왜 박광수, 그는 그림이 아닌 사진을 선택했을까?! 그것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진들로 말이다. 특히나 전체적으로 어두운 톤-그래서 더더욱 보기가 힘들었다-의 사진들과 명언들, 그리고 본문의 글들이 함께 어울리지 못하고 따로 노는 듯 한 느낌이었다. 그러다보니 사진을 보며 이 생각, 글을 보며 저 생각. 결국 마지막에는 이런 저런 생각들이 뒤엉켜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는 듯 한 느낌마저 들었다. 사진에 담은 바로 그 순간 앞의 장면을 상상해야하는데, 점점 다른 생각만 들뿐이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색다른 시도라는 자체는 박수칠 일이지만, 결과만을 보는 독자 중 하나인 나로서는 박수보다는 아쉽다는 말이 먼저 나오는 것이 사실이다. 에세이라는 특성에서 뭔가 정리된 이야기를 찾고 있는 내가 잘못인지도 모르겠지만…

 

당신을 만나는 모든 사람이 당신과 헤어질 때는 

더 나아지고 더 행복해질 수 있도록 하라.

-마더 테레사

 

 어떤 것이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것이 사실이다. 조금만 내가 더 마음을 열고 책을 봤으면 또 다른 느낌이었을까?! 힘을 북돋아 주는 주문, ‘앗싸라비아’에 집중하고, 행복을 비는 주문인 ‘카스트로폴로스’에 보다 집중했다면… 나를 만난 모든 사람이 더 행복해질 수 있도록, 그리고 내가 만난 모든 사람들로 인해 나 역시도 행복해질 수 있도록 살아가는 삶을 향하기 위해서는 보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좋은 것에 집중할 수 있었어야 되는 것은 아니었나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보면 『앗싸라비아』에 아쉬워할 필요도, 실망할 필요도 없는데 말이다. 오히려 고맙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결국에는 ‘앗싸라비아’와 ‘카스트로폴로스’를 가지고 책을 덮을 수 있으니 말이다.

 

 앗싸라비아 카스트로폴로스 앗싸라비아 카스트로폴로스 앗싸라비아 카스트로폴로스 앗싸라비아 카스트로폴로스 앗싸라비아 카스트로폴로스 앗싸라비아 카스트로폴로스 앗싸라비아 카스트로폴로스 앗싸라비아 카스트로폴로스 앗싸라비아 카스트로폴로스 앗싸라비아 카스트로폴로스 앗싸라비아 카스트로폴로스 앗싸라비아 카스트로폴로스 앗싸라비아 카스트로폴로스 앗싸라비아 카스트로폴로스 앗싸라비아 카스트로폴로스 앗싸라비아 카스트로폴로스 앗싸라비아 카스트로폴로스 앗싸라비아 카스트로폴로스 앗싸라비아 카스트로폴로스 앗싸라비아 카스트로폴로스 앗싸라비아 카스트로폴로스 앗싸라비아 카스트로폴로스 앗싸라비아 카스트로폴로스 앗싸라비아 카스트로폴로스 앗싸라비아 카스트로폴로스 앗싸라비아 카스트로폴로스 앗싸라비아 카스트로폴로스 앗싸라비아 카스트로폴로스 앗싸라비아 카스트로폴로스 앗싸라비아 카스트로폴로스 앗싸라비아 카스트로폴로스 앗싸라비아 카스트로폴로스 앗싸라비아 카스트로폴로스 앗싸라비아 카스트로폴로스 앗싸라비아 카스트로폴로스 앗싸라비아 카스트로폴로스 앗싸라비아 카스트로폴로스… 힘든 순간 다시 힘을 낼 수 있도록, 그리고 항상 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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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드게임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신유희 옮김 / 예담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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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콜드게임』
‘… 해가 지거나 폭우, 또는 분쟁 등의 이유로 경기를 진행할 수 없게 된 때,
또는 양 팀 간의 점수 차가 너무 많이 나 더 이상 경기를 계속할 필요가 없을 때에
심판이 경기를 중단시키는 경우에 쓰인다…’

 


  

 콜드게임은 주로 야구 경기에서 많은 점수 차이로 더 이상 경기를 진행하기 어려운 경우에 적용된다. 흔히 야구를 인생과 비교해서 많이 이야기들 하고는 하는데, 콜드게임을 인생에 적용시켜본다면 제대로 뭔가를 하기도 전에 무기력하게 삶이 끝나버리는 것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삶의 또 다른 역전의 기회라는 연장은커녕- 누구에게나 주어진 삶의 끝까지 가보지도 못하고 중간에 주저앉고, 결국에는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주어진 삶이 거기까지가 아니겠는가, 라고 한다면 딱히 할 말은 없지만… 적어도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도 못한다면 그것 또한 너무 억울한 일이 아닐까?! 소설 『콜드게임』은 제목그대로, 이와 다르지 않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콜드게임』은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당하는 이에게는 한없이 잔인하기만한…- 사이에 누군가를 “콜드 게임” 상황으로 밀어붙이고, 이번에는 반대로 자신이 그런 상황으로 몰리게 되는 사람들-보다 정확히 말해서, 이제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이들-의 이야기이다. 주위 친구들 한명씩 각기 다른 방식으로 뭔가에 피해를 입는다. 심지어 누군가는 죽기까지 한다. 사건의 공통점을 찾아보니 그 친구들은 중학교 2학년 때 3반 아이들이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모아보니 결국 그런 짓(?!)을 한 가해자는 ‘토로요시’로 결론 내려지게 된다. 그는 중학교 때 모든 반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소년이다. 그가 돌아온 것이다. 복수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미츠야’를 비롯한 몇몇은 ‘기타중학 방위대’라는 이름으로 그의 복수를 막기 위해 토로요시를 찾아 나서게 된다.   

 

  만일 당신의 경우라면 어떻겠는가…?! 기타중학 2학년 3반 출신이라면…?! 혹시, 나는 누구를 괴롭히는 그런 짓을 한 적이 없을 것이라고, 그래서 그렇게 당하는 이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하는가!? 난 절대 누군가를 괴롭히는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괜찮을꺼라고 말이다. 설사 앞장서서 누군가를 괴롭히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 상황에서 그저 가만히 그런 일을 지켜보고 있었다면?! 그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방관자의 입장에서 가만히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떠올려본다면!? 그래도 난 괜찮다고 생각하는가!? 뭐, 실제 그런 일이 있지 않아서 모르겠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너희들에겐 아무려나 좋은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것일지도 모르는 거다.
그건 몰랐습니다, 로는 끝나지 않는 일도 있어. 그건 기억해둬라.” -P370

 

 기타중학 2학년 3반 출신이라는 상상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그와 비슷한 경험은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전혀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내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 행동하나에 누군가는 상처를 받는… 나로서는 전혀 알지도, 상상도 못했던 결과는 낳는 그런 일이 있었을 것이다. 물론 나도 그렇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혹은 당해보지- 않은 일들에 대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무관심하다. 반대로 자신이 직접 당하게 되면 난리가 나면서 말이다.

 

우리 친척 아줌마는 왕따 대책 학부모 모임이라는 곳에 들어 있었는데,
왕따 당하는 애한테도 문제가 있다고 한마디 했더니,
그 왕따 대책 모임의 학부모들이 왕따를 시켰다잖아. -P264

 

 그리고 때로는 위와 같이, 잘못을 알면서도 보통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요즘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많이 드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난 얼마나 타인에게 무관심하게 나만의 생각만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의 상대가 내가 된다면 어떨까, 그리고 나만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 모두가 한번쯤이라도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이 세상은 적어도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닐 텐데, 따위의 생각 말이다. 적어도 왕따 문제의 대책을 위해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다시 왕따가 문제가 되는 것은 상상도 못할 그런 세상 말이다.   

 

  복수를 하기위해 찾아온 옛 친구(?!)를 막기 위해 찾아나서는 아이들. 보통은 사건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그들을 응원하기 마련인데, 이 상황에서는 마냥 그럴 수도 없는 일이다. 도대체 누가 올바른 것이고 누가 잘못된 것인가?! 도대체 왜 이런 불편함을 느껴야만 하는 것인가?!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결국 우린 얼마나 어리석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먼저 실감하게 된다. 미처 생각할 기회가 없었던 그런 것들을 『콜드게임』을 통해서 더 절실히 느끼게 되는 것이다.   

 

 

  『콜드게임』은 불편하지만, 한번쯤-어쩌면 삶이 진행되는 동안 계속해서…-은 꼭 생각해야 할 것들을 이야기한다. 이를 통해서, 지난 날-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이 했을지도 모르는 행동들에 스스로 놀라고 부끄러워하고, 반성하게 된다. 나는 지금쯤 삶이라는 게임에서 몇 이닝을 소화하고 있는 것인지, 내 주위 사람들은 지금쯤 몇 이닝을 소화하고 있는 지, 내가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는 콜드게임으로 사라지고 있지는 않은 지, 나와 그리고 내 주변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할 때 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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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완 송 1 - 운명의 바퀴가 돌다
로버트 매캐먼 지음, 서계인 옮김 / 검은숲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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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은 내일 생각하기로 했다. 내일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무척이나 흥미롭게 읽은 책, 《소년시대》 작가의 작품이기도 하고, 내가 상당히 관심 있게 찾아서보는 세기말을 다룬 소설이라는 사실에 이끌려 별다른 고민 없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냥 아무런 생.각.없.이. 책을 읽어나간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단 한 줄의 문장이 나의 앞으로 다가와 나를 막아섰다. “그런 것은 내일 생각하기로 했다. 내일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라는 문장…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혹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말하는 이야기인데, 그 순간만큼은 전혀 당연하게 보이지 않았다. 『스완송』에 담긴 이야기들과 겹쳐져서 더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언제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내일이 사라져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하늘이 불타고, 온통 불바다가 되기 시작한다. 수많은 집과 빌딩들, 도시와 나라가 사라진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 채 사라져 버린 사람들이 있다.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그 고통의 순간들은 그들의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앞으로 다가올 순간들에 대한 고통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채로 남겨져 있다. 살아있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아무것도 모른 채 사라져버리는 것이 나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늘이 불타고, 온통 불바다가 된 곳에 남겨진 사람들에게 함께 남겨진 것은 과연 무엇인지, 그들이 그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지… 『스완송』은 그렇게 시작한다. 귀환 불능 지점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스완송』을 보면 무엇보다도 상당한 책의 두께에 놀라게 될 것이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것은, 불행인지 다행인지-책의 마지막에 이르게 되면 아마도 그마저도 전자에 가깝지 않을까 싶지만…- 그런 두께의 책이 두 권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전혀 기죽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 책의 두께 따위는 인식도 못 할 테니 말이다. 어느 한 순간 책에서 눈을 떼고 보면 언제 내가 이렇게 읽었나 싶을 정도로 책의 페이지가 넘어가 있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얼마 남지 않게 된 분량에 아쉬움을 더하게 될 테니 말이다. 음, 너무 식상한 말인가?! 그래도 할 수 없다. 사실이니까… ‘로버트 매캐먼’의 글을 경험한 적이 있다면 이 책을 읽지않았더라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로버트 매캐먼’은 지옥 같은 세상, 그 속에 살아남은 사람들 중에서도 세 무리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이 책의 주인공이자, 책의 제목이 되기도 하는 ‘스완’과 그의 곁에서 “그 아이를 지켜라.”라는 목소리를 제대로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 ‘조시’, 오직 자신의 생존만을 위한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 ‘매클린’대령과 그를 왕으로 모시고 새로운 세상을 살아가는 ‘롤런드 크로닝거’, 그리고 거리의 부랑자에서 누구보다 강인한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난 ‘시스터’가 그 주인공 들이다. 그들에게 주어진 일차적 목표는 생존이다. 우선은 살아야 한다. 살기위해 그들은 선택을 해야만 하고, 선도 있고 악도 있는 새로운 세상에서, 그들은 어느 것에 더 무게의 중심을 잡을 것인지, 어떻게 그들의 선택을 믿고 밀어붙이는지, 그 대서사시가 시작되는 것이다.  

 

  『스완송』은 앞서 언급했다시피 ‘세기말’을 다룬 소설이다. 지금까지 세기말을 다룬 소설이자, 대표 소설들로 코맥 매카시의 《더 로드》, 스티븐 킹의 《스탠드》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를 꼽았다면, 이제는 하나 더 추가해야 할 것 같다. 로버트 매캐먼의 『스완송』을 말이다. 개인적으로 무슨 이유인지 모르게 자꾸만 관심이 가게 되는 것이 ‘세기말’을 다룬 소설이기도 하다. 절대 직접 경험하지 못할 일들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묘한 흥분 때문인지, 아니면 언젠가는 경험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불안한 생각에 대한 일종의 마음잡기라는 이유때문인지… 혹은 바닥의 순간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다양한 본성들에 대한 호기심인지… 뭐, 어떤 것이든 세상의 마지막, 나의 마지막을 생각해보는 것은 그 이상의 뭔가 많은 생각들을 떠올리게 한다. 『스완송』역시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또 달랐다.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장르가 혼재되어있다. 현실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봤을법한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가 시작되지만, 그 속에 담긴 연결고리들은 무슨 마법 같은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또다시 이야기되는 것이 현실이기도 한 것이다. 이리저리 앞뒤가 명확한 것은 아니지만, 인간-혹은 그 존재를 떠나서- 본연에 있는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어쩌면 진부하면서도 다르게 보면 언제나 할 말이 많을 수밖에 없는, 가장 큰 문제를 두고 이야기한다.



“… 하지만 어쨌든 이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이 아직 전부 사라지지는 않았다고 믿고 싶어요.

아름다운 것을 지킬 수 있다고 믿고 싶어요.”

 

 복잡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들 만큼이나 캐릭터들이 가지는 매력들도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재미이다.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힘겹게 세상을 살아가던 이에게 던져진 생존의 문제. 그 캐릭터들이 가지는 매력은 단지 그들이 자신만의 생존을 위해서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희망을 키우는 존재, 희망을 노래하는 존재인 스완과 뚜렷한 이유는 없지만 그녀를 지키고 말 것이라는 조시, 자꾸만 자신에게 보이는 환영을 믿고 그것이 자신이 해야 할 일임을 깨닫고 앞으로 나가는 시스터가 보다 선에 가까운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는 반면에,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발버둥치다가 왕으로 군림하려는 매클린, 그리고 더 이상의 나약한 내가 아님을 보이기 위한 게임을 하고 있는 롤런드는 악에 가까운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렇게 선과 악이 있는 것 같지만, 절대선과 절대 악은 없다. 상상조차 하기 힘든 고통의 순간들이 펼쳐져 있지만, 그만큼의 희망의 순간들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만의 생각으로 행동하는 누군가를 욕할 수도 비난할 수도 없는 것이다. 어떻게든 앞으로만 나가는 사람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없기에 그런 것일 수도 있을 것이고, 그들이 해야만 하는 일이기에 그런 것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그 어떤 짓을 해도 가엾고 안타깝게만 느껴지지만, 순간순간 그런 나의 생각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보다 어른스러운 생각으로 나를 놀라게 하는 스완이나 롤런드의 모습은 결코 이야기에서 눈의 떼지 못하게 만든다.  

 

  이 모든 생각들이 아직은 이야기의 끝을 보지 않아서 나오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들이 하나의 공간으로 모아지는 순간은 2권에서 기대해야 할 듯 하기에 말이다. 아직도 이들이, 그리고 내가 가야할 길은 많이 남았다. 어떤 길이 펼쳐질지, 그리고 이들과 나는 또 어떤 길을 선택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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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
김제동 지음 / 위즈덤경향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김. 제. 동. 대구의 어느 놀이공원에서 모든 이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을 무대장악 능력으로 이벤트의 사회를 보던 그의 모습을 기억한다. 대구의 야구장에서 장내 아나운서로, 반응이 별로라고 생각되면 선글라스를 벗는 묘기(?!)로 관중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던 그의 모습을 기억한다. 그가 대구 출신이다 보니, TV를 통해서 만나기전부터 여기저기에서 그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하지만 그때는 그냥 단순히, 말 잘하고 조금 재미있는 이벤트 진행자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그랬던 그가 언젠가부터 방송에 조금씩 출연하게 되고, 그때까지 보아오던 그의 모습이 겉으로 그렇게 쉽게 판단할 정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만큼의 내공(?!)을 가지고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명확한 어떤 것이 아닌, 어렴풋한 느낌이었다. 방송을 통해서 그를 만나고, 이야기를 듣다가, 이제는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라는 제목의 책을 통해서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서 그에 대해서 그동안 느꼈던 것들이 보다 명확해졌다고 이야기한다면 너무 지나친 것일까?! 단순히 그가 남들보다 뭔가가 뛰어나서 그렇게 느껴졌던 것이 아니라, 그가 이토록 많은 생각들을 하고 있으며, 그 이상으로 다른 이들의 생각을 담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었으며, 그것을 받아들일 줄도 알고 있다는 사실이 그를 그렇게 만들고 느끼게 만든다는 것을…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는 2010년 2월에서 2011년 3월까지 경향신문에 연재된 인터뷰 내용을 담은 책이다. 제목 그대로 김제동이 만난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한 권의 책에, 그것도 25명이나 되는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를 담아낸다는 사실이 조금은 무리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저 겉만 핥는 것 같은 느낌은 들지 않을까, 하면서 말이다. 반면에 한 권의 책으로 그 수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대감 또한 없지 않았다. 물론 정말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솔직히 그가 25명 중에 들어있다는 사실에 이 책을 보지 않을 생각도 했었으니…-도 들어있었고, 실제 그가 들어있을 필요도 없었겠다 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뭐, 암튼! 내가 책을 읽기 전 어떤 생각을 했던지 상관없이 김제동, 그는 이 이야기들을 혼자 듣기 아까운 이야기들이었다고, 소문 좀 내면서 함께 듣고 싶은 이야기들이었다고 말한다. 책을 다 읽은 지금, 나 역시 동감한다. 정말 혼자 듣기 아까운, 소문 좀 내면서 함께 듣고 싶은 이야기들이 맞다고 말이다. 

 

 아까운 이야기, 함께 듣고 싶은 이야기들 중에서, 지금 여기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고민이 된다. 사람은 모두 다르기 마련이지만 또 같기도 하다, 라는 말로 애매한 말로 시작한다면 괜찮을까?! 사람은 다르기 마련이다. 그들이 바라보는, 그리고 그들이 받아들이는 세상도 다르고, 그 세상에 속한 많은 것들 중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다르다. 누군가는 작가로, 누군가는 과학자로, 또 다른 누군가는 배우로, 정치인으로, 경영인으로… 그들만의 세상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하지만 또 사람은 같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걸어가지만 결국에는 궁극적인 하나의 뭔가를 찾아가는 것이기에 말이다. 길은 다르지만 그 목적지는 결국 하나로 모아진다, 로 간단히 정리될 수 있는 것일까. 비록 그 ‘하나’라는 것도 저마다의 정의는 다르겠지만, 적어도 이 책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하나’는 확실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분야에서 최고-정확한 표현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라고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이들이 하는 말이기에 무조건 좋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말들을 할 수 있기에 지금의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물론 이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위치-라고 표현되는…-따위가 결코 중요한 것이 될 수 없겠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능력 내에서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의 모습들은 결코 어떤 지위나 권력으로도 이야기 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말이다. 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들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바라보는 다른 세상을 만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는 탓인지, 쉽사리 뭔가가 정리 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김제동만의 편안하면서도 핵심을 파고드는 방식으로 듣고 있으니, 그가 만난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존경스럽게만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짧게 정리해서 누군가의 이야기,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아내는데, 당연히 좋은 이야기들-존경심이 불끈불끈 솟아날 정도로…-만이 담겨지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런 생각들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모두도 그 이야기만큼 존경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쓸데없이 조금 혼란스럽게도 느껴지지만, “나도 내가 이야기하는 만큼 살지 못한다는 반성이 있어요.”라는 신영복 선생의 말씀은 그런 혼란을 한 번에 해결하면서, 또한 그 어떤 이야기보다도 강하게 내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생각, 그리고 그 이상의 좋은 이야기들이 가득한 세상이지만 그 좋은 이야기들만큼 살 수 있는 삶.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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