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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완 송 1 - 운명의 바퀴가 돌다
로버트 매캐먼 지음, 서계인 옮김 / 검은숲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그런 것은 내일 생각하기로 했다. 내일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무척이나 흥미롭게 읽은 책, 《소년시대》 작가의 작품이기도 하고, 내가 상당히 관심 있게 찾아서보는 세기말을 다룬 소설이라는 사실에 이끌려 별다른 고민 없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냥 아무런 생.각.없.이. 책을 읽어나간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단 한 줄의 문장이 나의 앞으로 다가와 나를 막아섰다. “그런 것은 내일 생각하기로 했다. 내일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라는 문장…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혹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말하는 이야기인데, 그 순간만큼은 전혀 당연하게 보이지 않았다. 『스완송』에 담긴 이야기들과 겹쳐져서 더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언제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내일이 사라져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하늘이 불타고, 온통 불바다가 되기 시작한다. 수많은 집과 빌딩들, 도시와 나라가 사라진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 채 사라져 버린 사람들이 있다.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그 고통의 순간들은 그들의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앞으로 다가올 순간들에 대한 고통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채로 남겨져 있다. 살아있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아무것도 모른 채 사라져버리는 것이 나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늘이 불타고, 온통 불바다가 된 곳에 남겨진 사람들에게 함께 남겨진 것은 과연 무엇인지, 그들이 그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지… 『스완송』은 그렇게 시작한다. 귀환 불능 지점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스완송』을 보면 무엇보다도 상당한 책의 두께에 놀라게 될 것이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것은, 불행인지 다행인지-책의 마지막에 이르게 되면 아마도 그마저도 전자에 가깝지 않을까 싶지만…- 그런 두께의 책이 두 권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전혀 기죽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 책의 두께 따위는 인식도 못 할 테니 말이다. 어느 한 순간 책에서 눈을 떼고 보면 언제 내가 이렇게 읽었나 싶을 정도로 책의 페이지가 넘어가 있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얼마 남지 않게 된 분량에 아쉬움을 더하게 될 테니 말이다. 음, 너무 식상한 말인가?! 그래도 할 수 없다. 사실이니까… ‘로버트 매캐먼’의 글을 경험한 적이 있다면 이 책을 읽지않았더라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로버트 매캐먼’은 지옥 같은 세상, 그 속에 살아남은 사람들 중에서도 세 무리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이 책의 주인공이자, 책의 제목이 되기도 하는 ‘스완’과 그의 곁에서 “그 아이를 지켜라.”라는 목소리를 제대로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 ‘조시’, 오직 자신의 생존만을 위한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 ‘매클린’대령과 그를 왕으로 모시고 새로운 세상을 살아가는 ‘롤런드 크로닝거’, 그리고 거리의 부랑자에서 누구보다 강인한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난 ‘시스터’가 그 주인공 들이다. 그들에게 주어진 일차적 목표는 생존이다. 우선은 살아야 한다. 살기위해 그들은 선택을 해야만 하고, 선도 있고 악도 있는 새로운 세상에서, 그들은 어느 것에 더 무게의 중심을 잡을 것인지, 어떻게 그들의 선택을 믿고 밀어붙이는지, 그 대서사시가 시작되는 것이다.
『스완송』은 앞서 언급했다시피 ‘세기말’을 다룬 소설이다. 지금까지 세기말을 다룬 소설이자, 대표 소설들로 코맥 매카시의 《더 로드》, 스티븐 킹의 《스탠드》나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를 꼽았다면, 이제는 하나 더 추가해야 할 것 같다. 로버트 매캐먼의 『스완송』을 말이다. 개인적으로 무슨 이유인지 모르게 자꾸만 관심이 가게 되는 것이 ‘세기말’을 다룬 소설이기도 하다. 절대 직접 경험하지 못할 일들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묘한 흥분 때문인지, 아니면 언젠가는 경험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불안한 생각에 대한 일종의 마음잡기라는 이유때문인지… 혹은 바닥의 순간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다양한 본성들에 대한 호기심인지… 뭐, 어떤 것이든 세상의 마지막, 나의 마지막을 생각해보는 것은 그 이상의 뭔가 많은 생각들을 떠올리게 한다. 『스완송』역시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또 달랐다.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장르가 혼재되어있다. 현실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봤을법한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가 시작되지만, 그 속에 담긴 연결고리들은 무슨 마법 같은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또다시 이야기되는 것이 현실이기도 한 것이다. 이리저리 앞뒤가 명확한 것은 아니지만, 인간-혹은 그 존재를 떠나서- 본연에 있는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어쩌면 진부하면서도 다르게 보면 언제나 할 말이 많을 수밖에 없는, 가장 큰 문제를 두고 이야기한다.
“… 하지만 어쨌든 이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이 아직 전부 사라지지는 않았다고 믿고 싶어요.
아름다운 것을 지킬 수 있다고 믿고 싶어요.”
복잡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들 만큼이나 캐릭터들이 가지는 매력들도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재미이다.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힘겹게 세상을 살아가던 이에게 던져진 생존의 문제. 그 캐릭터들이 가지는 매력은 단지 그들이 자신만의 생존을 위해서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희망을 키우는 존재, 희망을 노래하는 존재인 스완과 뚜렷한 이유는 없지만 그녀를 지키고 말 것이라는 조시, 자꾸만 자신에게 보이는 환영을 믿고 그것이 자신이 해야 할 일임을 깨닫고 앞으로 나가는 시스터가 보다 선에 가까운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는 반면에,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발버둥치다가 왕으로 군림하려는 매클린, 그리고 더 이상의 나약한 내가 아님을 보이기 위한 게임을 하고 있는 롤런드는 악에 가까운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렇게 선과 악이 있는 것 같지만, 절대선과 절대 악은 없다. 상상조차 하기 힘든 고통의 순간들이 펼쳐져 있지만, 그만큼의 희망의 순간들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만의 생각으로 행동하는 누군가를 욕할 수도 비난할 수도 없는 것이다. 어떻게든 앞으로만 나가는 사람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없기에 그런 것일 수도 있을 것이고, 그들이 해야만 하는 일이기에 그런 것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그 어떤 짓을 해도 가엾고 안타깝게만 느껴지지만, 순간순간 그런 나의 생각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보다 어른스러운 생각으로 나를 놀라게 하는 스완이나 롤런드의 모습은 결코 이야기에서 눈의 떼지 못하게 만든다.
이 모든 생각들이 아직은 이야기의 끝을 보지 않아서 나오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들이 하나의 공간으로 모아지는 순간은 2권에서 기대해야 할 듯 하기에 말이다. 아직도 이들이, 그리고 내가 가야할 길은 많이 남았다. 어떤 길이 펼쳐질지, 그리고 이들과 나는 또 어떤 길을 선택하게 될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