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기본적으로 마오의 체제가 지금까지 지속된다고 보고, 이를 ‘포스트 마오시대’라고 부릅니다. 저는 개혁개방이 있었다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현재 가장 중요한 임무는 마오체제를 철저히 개혁해내는 것입니다. 마오체제를 철저히 비판해야만 그중 합리적인 부분을 떼어내는 일도 가능해지지요. 그래야 역사적 교훈도 이끌어낼 수 있고요. 1980년대에 우리는 항상 서방을 이상화하면서, 서방의 현대화에 대해 반성하지 않은 채 그것으로 중국의 문제를 해결하려 했기 때문에 많은 문제가 발생했거든요. 지금 우리는 또 마찬가지로 마오쩌둥시대에 대해 반성하지 않고 이를 이용해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데, 이렇게 하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45)
아시아의 젊은이들이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다니는 것엔 반대하지 않지만, 적어도 중년 이상의 아시아인이 우리의 뿌리를 잊는다면 진정한 아시아인이 아니라고 단언합니다. 우리는 지금 삼농에서 뽑아낸 ‘잉여의 과실’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그런 사실 자체를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지요. 중국 옛날에 "부끄러움을 알아야 용감해질 수 있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우리가 삼농 덕택에 오늘의 번영을 누리고 있음을 부끄럽게 여기고, 스스로의 경험에 입각한 이론체계를 만드는 데 용감해져야 합니다. (84)
많은 사람들이 제게 ‘당신은 자유주의자인가 아니면 사회민주주의자인가’를 묻습니다. 저는 이에 대한 대답을 이미 오래 전에 찾았습니다. 현재 중국이 해야 할 일은 사회민주주의자든 자유민주주의자든 모두 동의할 수 있는 일입니다. 제가 반대하는 것은 사회민주주의자와 자유민주주의자가 모두 반대할 일들입니다. 사회민주주의자가 찬성하고 자유민주주의자가 반대하는 일, 혹은 자유민주주의자가 찬성하고 사회민주주의자가 반대하는 문제들은 현재의 중국에서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159-160)
하지만 당시 저는 훌륭한 농부가 결코 아니었지요. 단련된 농사꾼이 아니었던 거에요. 이후 대학에 진학해 도시로 돌아왔을 때도 제가 훌륭한 농부가 되지 못했다는 열등감은 남아 있었습니다. 현재도 농민형제들이 밭에서 익숙한 몸짓으로 노동하는 것을 볼 때마다 부러움을 느낍니다. 저는 우리가 학문을 하는 것과 농민들이 벼를 베는 것이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비록 훌륭한 농부는 되지 못했지만 현재 학문분야에서 노력하는 것으로 그 모자람을 보충하려고 합니다. 이것도 문혁의 경험이 제기 준 수확입니다. (249)
이런 방식도 가치가 있기는 하지만, 마오 쩌둥의 방식은 아니지요. 마오의 방식은 무리 현실에서 출발해 우리에게 속하는 원리를 생산하는 것입니다. 그 원리가 겉보기에 매우 이론화된 서술은 아닐 수 있지만, 반드시 중국의 실제에 적합해야 합니다. 마오쩌둥은 이런 방법으로 장 제스에게 승리했습니다. …… 단순히 직관만으로 좋고 나쁨을, 선과 악을 평가할 수 없습니다. 가장 유감인 것은 오늘날까지도 중국 지식계가 지나치게 유럽과 미국의 유행 이론을 쫓아가려 하면서 이 문제를 너무 단순화해 토론할 수 없는 지경으로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동아시아를 토론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우리가 중국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회복하고 우리 스스로 원리를 만드는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것입니다. (256-257)
자리에서 이런 예를 들었습니다. "당신은 여전히 일본언론과 주류의식이 당신에게 준 상상을 갖고 있다. 즉, 중국은 경제가 발달하면서 점점 더 위협으로 변하고 있으며 독재국가라는 식의 생각들이 잠재의식 속에 있다. 그런 상태로 중국에 오면 잠재의식 속에 규정된 시각대로 거기에 맞는 모습들을 찾게 된다. 이렇게 되면 진정한 중국을 관찰할 수 없으며, 이른바 동아시아의 시각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 그럼 어떻게 해야 자신의 국가를 상대화할 수 있는가? 저는 "호기심을 유지하면 된다"라고 했습니다. "네가 보는 모든 사건들을 머릿 속에 있는 기존의 이론으로 급하게 해석하지 말고, 해석 불가능한 현상을 찾으라"고 말입니다. (270)
저는 그가 (텐안먼사건의) 정치적 생존자라서 존경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가슴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원 자바오를 쇼만 하는 실패자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텐안먼세대는 무엇을 성취했습니까? 제 삶을 돌아보면 별로 큰 성과도 없었습니다. 우리도 스스로 부끄럽게 여겨야 합니다. 공산당을 비판함으로써 우리 스스로 위안을 얻는 것은 아닌지, 남을 비난하면서 위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294)
저는 지난 20여년 동안 우리가 너무 많은 비교를 해온 것은 아닌지 반성합니다. 한국과 폴란드에서도 해냈는데, 왜 우리는 그렇게 못하는가? 한국의 독재자도 오래가지 못했고 폴란드의 독재자도 오래가지 못했으니 중국에서도 그럴 것이라고 기대하는 식입니다. 이런 꿈이 너무 많기 때문에 우리가 현실을 제대로 못 보게 됐다고도 생각합니다. 중국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증명한다 해도, 현실에서 어떻게 실현될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누군가 방법을 말한다 해도 사상누각인 경우가 많습니다. 현실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습관, 생각과 유리돼 있기 때문입니다. / 학자들이 그렇게 끊임없이 계산하고 비교하는 모습에 감탄하기도 하지만, 저는 그들이 중국노동자와 인민의 현실과 요구를 분석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정력을 쓰길 원합니다. 한국과 폴란드처럼 되지 못했으니 아직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언제까지 되풀이해야 합니까?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311-312)
독자적인 문화가 없다면 노동자들은 한줌의 모래 같고, 방향도 찾지 못합니다. 마치 이상과 꿈도 없이 살아가는 개인과 마찬가지로 말이에요. 그리고 문화는 노동자들의 권리의식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노동자들은 우선 자신들의 권리를 의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노동자 문화의 배후에는 바로 이러한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각성, 우리 스스로가 깨우치는 과정이 있는 것이지요. 또 노동자의 해방은 임금을 올리고 대우를 개선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노동자의 해방은 미래사회에 대해 어떻게 새롭게 상상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현재 노동자 한명 한명이 모두 두 가지 방면에서 압박을 받고 있어요. 하나는 물질적 경제적 압박이고, 다른 하나는 정신적 사상문화적 압박입니다. 노동자는 두 가지 측면에서 동시에 해방돼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술 노래 영화 연극 그리고 박물관을 통해 사람들이 더 많이 사고하고 대화하고 반성하고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만들려고 하는 겁니다. (34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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