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인터뷰하다 - 새로운 중국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이창휘.박민희 엮음 / 창비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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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기획력과 알찬 내용, 무엇보다 미래 지향점의 모색으로서 역사란 어떤 것인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별 5개를 받아 마땅하다!. 문혁을 둘러싼 십인십색의 견해. 이 다름은 현재 중국에 대한 상이한 진단과 상통하며 동시에 미래 중국의 형성에 대한 담론적 리더십을 위한 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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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인터뷰하다 - 새로운 중국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이창휘.박민희 엮음 / 창비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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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기본적으로 마오의 체제가 지금까지 지속된다고 보고, 이를 ‘포스트 마오시대’라고 부릅니다. 저는 개혁개방이 있었다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현재 가장 중요한 임무는 마오체제를 철저히 개혁해내는 것입니다. 마오체제를 철저히 비판해야만 그중 합리적인 부분을 떼어내는 일도 가능해지지요. 그래야 역사적 교훈도 이끌어낼 수 있고요. 1980년대에 우리는 항상 서방을 이상화하면서, 서방의 현대화에 대해 반성하지 않은 채 그것으로 중국의 문제를 해결하려 했기 때문에 많은 문제가 발생했거든요. 지금 우리는 또 마찬가지로 마오쩌둥시대에 대해 반성하지 않고 이를 이용해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데, 이렇게 하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45)

아시아의 젊은이들이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다니는 것엔 반대하지 않지만, 적어도 중년 이상의 아시아인이 우리의 뿌리를 잊는다면 진정한 아시아인이 아니라고 단언합니다. 우리는 지금 삼농에서 뽑아낸 ‘잉여의 과실’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그런 사실 자체를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지요. 중국 옛날에 "부끄러움을 알아야 용감해질 수 있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우리가 삼농 덕택에 오늘의 번영을 누리고 있음을 부끄럽게 여기고, 스스로의 경험에 입각한 이론체계를 만드는 데 용감해져야 합니다. (84)

많은 사람들이 제게 ‘당신은 자유주의자인가 아니면 사회민주주의자인가’를 묻습니다. 저는 이에 대한 대답을 이미 오래 전에 찾았습니다. 현재 중국이 해야 할 일은 사회민주주의자든 자유민주주의자든 모두 동의할 수 있는 일입니다. 제가 반대하는 것은 사회민주주의자와 자유민주주의자가 모두 반대할 일들입니다. 사회민주주의자가 찬성하고 자유민주주의자가 반대하는 일, 혹은 자유민주주의자가 찬성하고 사회민주주의자가 반대하는 문제들은 현재의 중국에서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159-160)

하지만 당시 저는 훌륭한 농부가 결코 아니었지요. 단련된 농사꾼이 아니었던 거에요. 이후 대학에 진학해 도시로 돌아왔을 때도 제가 훌륭한 농부가 되지 못했다는 열등감은 남아 있었습니다. 현재도 농민형제들이 밭에서 익숙한 몸짓으로 노동하는 것을 볼 때마다 부러움을 느낍니다. 저는 우리가 학문을 하는 것과 농민들이 벼를 베는 것이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비록 훌륭한 농부는 되지 못했지만 현재 학문분야에서 노력하는 것으로 그 모자람을 보충하려고 합니다. 이것도 문혁의 경험이 제기 준 수확입니다. (249)

이런 방식도 가치가 있기는 하지만, 마오 쩌둥의 방식은 아니지요. 마오의 방식은 무리 현실에서 출발해 우리에게 속하는 원리를 생산하는 것입니다. 그 원리가 겉보기에 매우 이론화된 서술은 아닐 수 있지만, 반드시 중국의 실제에 적합해야 합니다. 마오쩌둥은 이런 방법으로 장 제스에게 승리했습니다. …… 단순히 직관만으로 좋고 나쁨을, 선과 악을 평가할 수 없습니다. 가장 유감인 것은 오늘날까지도 중국 지식계가 지나치게 유럽과 미국의 유행 이론을 쫓아가려 하면서 이 문제를 너무 단순화해 토론할 수 없는 지경으로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동아시아를 토론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우리가 중국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회복하고 우리 스스로 원리를 만드는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것입니다. (256-257)

자리에서 이런 예를 들었습니다. "당신은 여전히 일본언론과 주류의식이 당신에게 준 상상을 갖고 있다. 즉, 중국은 경제가 발달하면서 점점 더 위협으로 변하고 있으며 독재국가라는 식의 생각들이 잠재의식 속에 있다. 그런 상태로 중국에 오면 잠재의식 속에 규정된 시각대로 거기에 맞는 모습들을 찾게 된다. 이렇게 되면 진정한 중국을 관찰할 수 없으며, 이른바 동아시아의 시각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 그럼 어떻게 해야 자신의 국가를 상대화할 수 있는가? 저는 "호기심을 유지하면 된다"라고 했습니다. "네가 보는 모든 사건들을 머릿 속에 있는 기존의 이론으로 급하게 해석하지 말고, 해석 불가능한 현상을 찾으라"고 말입니다. (270)

저는 그가 (텐안먼사건의) 정치적 생존자라서 존경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가슴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원 자바오를 쇼만 하는 실패자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텐안먼세대는 무엇을 성취했습니까? 제 삶을 돌아보면 별로 큰 성과도 없었습니다. 우리도 스스로 부끄럽게 여겨야 합니다. 공산당을 비판함으로써 우리 스스로 위안을 얻는 것은 아닌지, 남을 비난하면서 위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294)

저는 지난 20여년 동안 우리가 너무 많은 비교를 해온 것은 아닌지 반성합니다. 한국과 폴란드에서도 해냈는데, 왜 우리는 그렇게 못하는가? 한국의 독재자도 오래가지 못했고 폴란드의 독재자도 오래가지 못했으니 중국에서도 그럴 것이라고 기대하는 식입니다. 이런 꿈이 너무 많기 때문에 우리가 현실을 제대로 못 보게 됐다고도 생각합니다. 중국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증명한다 해도, 현실에서 어떻게 실현될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누군가 방법을 말한다 해도 사상누각인 경우가 많습니다. 현실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습관, 생각과 유리돼 있기 때문입니다. / 학자들이 그렇게 끊임없이 계산하고 비교하는 모습에 감탄하기도 하지만, 저는 그들이 중국노동자와 인민의 현실과 요구를 분석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정력을 쓰길 원합니다. 한국과 폴란드처럼 되지 못했으니 아직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언제까지 되풀이해야 합니까?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311-312)

독자적인 문화가 없다면 노동자들은 한줌의 모래 같고, 방향도 찾지 못합니다. 마치 이상과 꿈도 없이 살아가는 개인과 마찬가지로 말이에요. 그리고 문화는 노동자들의 권리의식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노동자들은 우선 자신들의 권리를 의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노동자 문화의 배후에는 바로 이러한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각성, 우리 스스로가 깨우치는 과정이 있는 것이지요. 또 노동자의 해방은 임금을 올리고 대우를 개선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노동자의 해방은 미래사회에 대해 어떻게 새롭게 상상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현재 노동자 한명 한명이 모두 두 가지 방면에서 압박을 받고 있어요. 하나는 물질적 경제적 압박이고, 다른 하나는 정신적 사상문화적 압박입니다. 노동자는 두 가지 측면에서 동시에 해방돼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술 노래 영화 연극 그리고 박물관을 통해 사람들이 더 많이 사고하고 대화하고 반성하고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만들려고 하는 겁니다. (34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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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들 사이의 중국인 - 근대 중국인의 동남아 이민 심산출판사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로컬리티 번역총서 6
필립 A. 큔 지음, 이영옥 옮김 / 심산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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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0C 중국인 해외이주의 쓰리고 장엄한 역사에 대한 엄밀한 추적. 동남아 호주 북남미의 탄탄한 화인사회가 무엇을 축으로(예: 방언과 계급에서 민족으로) 또 무엇을 대가로(노예의 삶, 식민자 및 토착민과의 갈등--때로 학살로 이어진) 형성되었는지 소상히 밝힌다. 설익은 번역이라 별 한 개 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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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들 사이의 중국인 - 근대 중국인의 동남아 이민 심산출판사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로컬리티 번역총서 6
필립 A. 큔 지음, 이영옥 옮김 / 심산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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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통로들에는 공간적인 측면이 있을지라도, 그것들은 사회 경제적 유기물로 여겨진다. 유럽의 중국인 이주에 대한 권위자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중국의 특화된 이민-송출 공동체들[교향僑鄕]은 "대응 관계에 있는 해외의 공동체들과 완전히 통합되어 있고, 대개 주위의 사회 경제로부터 고립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교향의 수입 혈연관계 사회구조는 완전히 고향의 일부도 아니고 망명자들이 받아들인 땅의 일부도 아닌 특별한 구역에서 존재한다. (74) ...... 근대 초기의 상업화가 배타적인 유대를 약화시킨 것이 아니라 강화시켰다는 점이 눈에 띈다. 중국 해안지역에서 보이는 언어와 문화적인 분열의 모자이크는 이민자들을 위한 주요한 자산으로서 배타주의를 강하게 만들었다. (76)

그들[유럽 식민자들을 말함]은 수입을 끌어올리고 식민 통치에서 이익을 유지하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했을까? 그들은 자신들이 거의 알아들을 수 없는 토착민들의 언어와 관습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그리고 차별 대우, 부족한 시장 지식, 끔직한 언어 장벽 등의 상황 앞에서 어떻게 중국과 무역했을까? 이러한 초기의 식민지 사업들에서 중국인 이민자들은 반드시 필요한 동업자였다. 비록 중국 상인들이 독자적인 제국의 창업자는 아니었을지라도, 그들은 곧바로 타인의 제국들에게 필수적인 협력자가 되었다. 식민지 정권은 정치적 의미에서 "그들의 것"이 아니었지만, 중국인들은 그 안의 상당한 경제적 지분을 장악하게 되었고 그것들을 관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들은 (식민주의자들의 밑이지만 3등 시민인 토착민보다 위에 있는) 2등 시민이었다. 이러한 식민지의 카스트제도를 통해 중국인들은 거의 3세기 동안 번영할 수 있었지만, 그 제도는 지역민들 사이에 심한 적대감도 낳았고, 나중에 엄청난 결과로 나타났다. (81)

노예무역과 그에 따른 노예제의 폐지는 그 대체물로서 아시아인 노동력을 수입하게 하였다. ... 노예제와 마찬가지로, 연기 계약의 준 노예제도 국가가 그것을 강제하려고 준비한 지역들에서만 번영하였다. 탈출은 형사 범죄로 여겨졌고, 노동자에 대한 학대 행위나 살인조차도 국가의 처벌을 면제받았으며, 비인간적인 생활과 작업 조건들도 묵인되거나 국가기관에 의해 합법화되었다. ... 비록 노예 소유제는 1834년에 마침내 모든 영국 점령지에서 폐지되었다고 할지라도, 영국의 플랜테이션과 광산들에서 일하는 연기 계약이라는 독특한 제도는 살아남았다. 연기 계약 노동은 당시 막 영국의 제국주의 통치 아래 들어간 남아프리카의 지역으로 금광이 경제의 지주였던 트란스발에 도입되었다. 보어전쟁(1899~1902) 이후, 광산에서 노동력 부족 때문에 "아시아계"(여기서는 중국인) 쿨리들을 들여오게 되었다. (154)

조직들(쿵쓰公司(광동어), 공쓰(표준어), 후이會, 대체로 서양 저작들에서 '비밀결사'로 불림)은 타이완과 중국 동남 해안에서 유래하였고, 19세기 말에 동남아시아로 퍼져 나갔다. 그것들은 아마도 전통적인 마을의 상호부조 모임들에서 성장하였고, 이제 인구 증가와 노동 송출의 시대에 적응한 것이었다. "삼합회"나 "천지회"는 세계 곳곳의 그런 회합들 사이에서 가장 고전적인 명칭이었다. 서로가 피로 맹세하여 묶였던 중국의 조직원들은 보통 젊고 하찮은 남자들로 그들의 고향을 떠나서 상호부조와 보호가 필요하였다. 여러 세대로 구성된 종족들과 달리, 조직은 한 세대의 형제 관계를 모방하였다. 그 내부 구조는 형이 동생을 다룬다는 점에서 위계질서가 있었고, 그런 질서는 형식적으로 종족보다는 더 평등한 형태였지만 권위에 대한 근거를 제공하였다. 해외 중국이주민들 사이에서, 대부분의 중국인들이 단신으로 이민을 가서 갑작스럽게 고향에 있던 그들의 종족과 떨어져서 많은 형태의 압박에 취약하던 때, 조직은 다양한 방식으로 친족 집단을 대신하였다. (217)

정치인들은 이러한 경제적 경쟁과 인종적 적대감이라는 수프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다. 1867년 캘리포니아 선거들에서 공화당원들은 반중국인 운동의 리더십을 놓고 민주당원들과 겨루었다. 인종차별과 노예제의 연계에 민감하였고 패배한 남부 동맹으로부터 거리를 두려하였던 민주당원들은 중국인을 목표물로 삼는 것이 백인 노동자들의 공포감에 호소하는 안전한 방법이고, 그 과정에서 남부의 노예들을 보호하였던 역사로부터 민주당을 자유롭게 할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재건 중이던 남부에서 흑인의 참정권처럼 중국인의 참정권도 지지한다는 비웃음 때문에 곤란하였던 공화당원들은 그들의 반중국인 입장을 증명하기 위하여 싸웠지만 ... 1867년 민주당원들의 압도적인 승리는 7년에 걸친 공화당의 주 정부 장악을 종결시켰다. 그들의 승리는 대체로 공화당원에게 책임을 돌렸던, 중국인의 '위협'을 기반으로 하였다. (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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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6
일연 지음, 김원중 옮김 / 민음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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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외국이라는 말은 단순히 풍물의 다름이 아니라 언어를 통해 세계를 재현하는 법의 다름을 가리킨다는 것을 실감하다. 왕과 천(天)의 근친, 상상과 사실의 미(未)구분, 내면의 부재, 판이한 젠더감수성(정략적 여성 교환과 전시 젠더폭력), 신분사회의 문법, 간결과 함축의 한자 서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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