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명 : 괴물 (개봉일 2006-07-27)

괴물 (2006)

감독
봉준호

주연
송강호....강두
변희봉....희봉
박해일....남일
배두나....남주
고아성....현서
이재응....세진
이동호....세주
김뢰하....방역대원
박노식....흥신소직원
고수희....간호사
윤제문....노숙자
오달수....괴물 목소리

강두와 현서
이 글의 일차 목적은 봉준호의 최신작 [괴물]을 기다리는 잠재 관객들이 남은 3주 동안 기대치를 적절한 수준으로 잡을 수 있게 도와주는 것입니다.

우선 [괴물]이라는 영화의 성격부터 설명하겠습니다. 한 마디로 괴물이 좀 나오는 봉준호 영화입니다. 비교 대상으로 적절한 가장 좋은 영화는 [살인의 추억]과 같은 봉준호의 전작들이지, 괴물이 나오는 장르 영화들이 아닙니다. 봉준호의 목표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도식적인 괴물 영화의 설정을 될 수 있는 한 비장르적이고 '사실적인' 자기 세계에 끌어와 자기 식의 영화를 만드는 것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평론가들은 어울리지 않을 법한 이 조합의 시너지 효과에 집중할 것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가 가진 고유의 가치는 부인할 수 없어요.

그래도 다른 장르 영화들에 대한 비교는 불가피합니다. [버라이어티]의 데릭 엘리는 래리 코헨의 [Q]를 언급했는데, 대도시의 극사실적인 묘사와 배우들의 매소드 연기, 비틀린 블랙 유머는 분명 비교대상이 될 만합니다. 게시판의 Q님은 조 단테의 [피라냐]를 예로 들었습니다. 전 루이스 티그의 [엘리게이터]를 예로 들고 싶군요. 두 작품 모두 존 세일즈가 각본을 썼습니다. 분명한 사회의식을 가진 진지한 좌파 작가가 쓴 괴물 이야기들이니 쓸만한 비교대상이 될 수 있겠죠?

[괴물]에서 [쥬라기 공원]의 액션과 스릴을 기대하지는 마시길 바랍니다. 이 영화엔 스필버그식으로 관객들의 신경을 통제하는 장면 같은 건 없습니다. 한강에서 돌연변이 괴물이 나와 사람들을 공격하고 죽이긴 하지만 영화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식 롤러코스터와 거리가 멉니다. 이건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말이기도 하고 보다 담은 게 많다는 뜻도 됩니다. 둘 다 맞습니다. [괴물]의 몇몇 장면들은 보다 짜임새 있는 편집과 장르적 테크닉으로 훨씬 긴장감있게 재조립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넉넉한 여유 속에서 영화가 담아낸 풍성한 멜로드라마와 코미디는 쉽게 떨어낼 수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결국 이건 관객들이 취향에 따라 선택할 문제입니다.

봉준호의 영화 세계와 기존 괴물 영화 장르는 얼마나 유려하게 결합되었을까요? 초반의 괴물 공격 시퀀스는 근사합니다. 그건 감독이 장르 관습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고 그걸 능동적으로 재해석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기존 장르를 비틀고 우리 사회에 이식하는 작업이 끝나면 조금 맥이 풀리기도 합니다. 중반 부분에서 영화의 각본은 종종 클리셰와 싸우다가 그냥 끌려가버리기도 합니다. 그 때문에 캐릭터들의 '사실적인' 대사들이 관습을 정당화하기 위한 변명처럼 보이기도 하죠. 후반부의 액션은 창의적인 면과 관습적인 면 모두를 갖추고 있습니다. 박해일의 화염병 액션이 대표적이죠. 자세한 설명은 스포일러이니 피하겠습니다.

영화의 정치적 함의는? 봉준호 감독은 영화의 설정이 정치적인 주제를 떠나 별 볼일 없는 주인공들을 극으로 모는 도구로서의 역할이 더 강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맞는 말이겠죠. 하지만 그건 이 영화의 정치적 메시지에 대한 뻔뻔스러운 알리바이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에서 차지하는 미국의 위치를 정치적 의미를 제거하고 해석할 수는 없거든요. 차이가 있다면 해석의 범위일 겁니다. 미국과 한국만의 이야기로 잡느냐, 아니면 지금의 세계 정세로 확대해서 해석하느냐. 여기서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게 꼭 미국만은 아니지만요.

이는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합니다. 일단 이 영화의 정치적 요소는 영화의 드라마에 보다 거대한 차원을 더해줍니다. 차원을 떠나 드라마가 상당한 정서적 힘을 얻게 되기도 하죠. 하지만 주인공들을 철저하게 고립시키는 이 설정들은 종종 설득력을 잃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매스컴이 사건을 다루는 방식을 들 수 있겠군요. 한강에 버스만한 크기의 괴물이 나타났는데 다들 바이러스에만 신경을 쓰는 게 있을 법한 일입니까? 바이러스의 존재도 확인하지 못했고 그 존재를 과장해서 얻을 것도 없는데 죽어라 그 가설을 밀어붙이는 미국측의 반응은 또 어떻고요? [괴물]의 세계는 사실적인 세계도 아니고 한강변에서 매점을 하는 노동자 계급 사람들의 눈으로 본 주관적인 세계도 아닙니다. 꼭 봉준호와 같은 경력의 한국 좌파 지식인 남성이 만들어낼 법한 우주이죠. 그런 우주를 다루는 것 자체는 나쁠 게 없는데, 그게 너무 분명하게 보여서 탈이랄까.

특수효과는? 음... 이 영화의 괴물은 두 발로 뛰어다니고 서커스 단원처럼 다리에서 곡예를 부릴 줄도 아는 올챙이 비슷하게 생긴 동물입니다. 움직이는 모습이 낯설긴 하지만 전 이런 동물이 실제 세계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몰라요. 훤한 대낮에 아무런 분위기도 잡지 않고 튀어나와 사람들을 공격하는 도입부 장면은 특수효과 티가 꽤 나는 편이지만 사실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같은 상황에서는 특별히 다르지 않을 겁니다. 밤장면이나 하수구 장면에서는 꽤 괜찮은 편이고요. 더 좋은 건 이 괴물이 캐릭터가 꽤 분명히 잡혔다는 겁니다. 가끔 그 고립된 상황과 기형적으로 일그러진 육체가 안스럽기까지 해요.

[살인의 추억]도 그랬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큰 힘을 실어주는 건 배우들의 연기입니다. 변희봉의 '늙은 아비의 몸짓'은 그냥 훌륭합니다. 덜 떨어졌지만 딸에 대한 걱정과 사랑으로 가득 찬 송강호의 아빠 연기도 좋고요. 배두나와 박해일도 제한된 캐릭터를 잘 꾸려가는 편이지만 전 딸 역의 고아성이 보여준 당찬 연기를 더 높이 쳐주고 싶군요. 김뢰하, 박노식, 고수희와 같은 노련한 단역들도 무시해서는 안 되고... 심지어 종종 아킬레스건이 되곤 했던 영어권 배우들도 캐스팅이 썩 잘 된 편입니다. 스코트 윌슨과 폴 라자와 같은 베테랑들이 참여하고 있지요. 돌연변이 괴물과 멀쩡한 현실세계의 사람들이 충돌한다는 영화의 기본 설정을 가장 잘 살려주는 것도 바로 배우들입니다. (06/07/04)

DJUNA


기타등등

이병우의 쿵짝거리는 음악은 은근히 니노 로타를 연상시키더군요. 펠리니 생각이 났습니다.

정말 이런 사건이 우리 세계에 일어났다면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끝나지는 않았을 겁니다. MBC에서는 특별 인물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인터넷에서는 댓글 논쟁이 달리고, 관련된 사람 대부분은 스타가 되고, 소송사건이 일어나서 몇 억이 오가고 난리가 났겠죠. 아마 보통 할리우드 괴물 영화들이 이 과정을 더 정직하고 정확하게 잡아내고 있을 겁니다.

종종 튀어나오는 거친 편집은 소스 부족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아무리 제대로 하고 싶어도 만든 괴물이 딱 그 정도밖에 없다면 방법이 없겠죠, 뭐.

 

 

너무너무 기대되는 <괴물>

출처 http://djuna.cine21.com/movies/the_host.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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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인터라겐 > 식물도감?? 생화 같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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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또유스또 2006-07-08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기랑 치커리는 진짜 아니어요?
정말 진짜 같아요...
그럼 모형? 놀라워라...
 

오, 창백한 오필리아여, 흰눈처럼 아름답구나!
어린아기에 지나지 않았던 그대는 물줄기에 운반 되어 죽었노라
노르웨이의 거봉巨峰에서 불어닥친느 한풍寒風은
- 아주 낮게내려와서, 처절한 자유를 그대에게 가르쳐 주었노라

그대의 머리칼을 온통 매질하고,
꿈꾸는 그대의 마음을, 격렬한 소음으로 가득 채웠던 숨결이었다.
나무들의 통곡, 밤의 탄식 속에서
그대는 대자연의 절규를 들었으리라

거대한 헐떡임과도 같은 해조음海潮音은,
그대의 어린 가슴에는 너무나 인간적으로, 너무나 따듯하게 생각되었노라
사월 어느날 아침,
얼굴이 맑고 창백한 한 사람의 기사騎士, 어리석은 광인狂人은,
그대의 무릎 위에 말없이 앉았도다

하늘이여, 사랑이여, 자유여, 아 가엷은 광여狂女여, 이 꿈은 어쩐 일인가
불에 녹아버리는 눈 처럼, 그대는 그에게 마음까지 떠맡겨버렸노라
그대의 커다란 환상幻想이, 그대의 말을 질식시켜 버렸도다
그리하여 두려운 영원永遠은 그대의 푸른 눈을 놀라게 하였으리라

-랭보-

 

 

 

밀레이 작품

 

 

화가명 :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John Wiliam Waterhouse, 1849~1917)
작품명 : 오필리아
제작년도 : 1894년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124.4X73.6cm

작품설명: 19세기 영국 화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섬세한 빛의 흐름을 따라 우아하게 묘사된 작품 '오필리아' 에는 어두운 죽음을 맞이 하기 전 가장 아름답고 고귀하게 피어 오르는 꽃과 같은 오필리아의 모습을 담고 있다.
화가는 극히 자연적이고 이상적인 여인의 아름다움을 추구한 표현법에는 전기 파라엘 화파의 화풍이 담겨 있다.
1870년 영국 왕립 학교에서의 교육을 받기 전까지 아버지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던 워터하우스는 자신이 앨머 태디머와 같은 화가에게서 받았던 초기 영감보다 더 많은 것들을 후대의 젊은 화가들에게 전달하였다. 희곡과 문학에서 비극이 지니는 특별한 가치만큼이나 빛을 받아 흐르는 눈물이 슬프면서도 화려하게 반짝이는 것과 같이 작품 "오필리아"에서는 사랑과 번민이 함께 녹아 있는 비극적 감정의 흐름이 눈부신 아름다움으로 탄생하는 특별한 느낌을 선사하고 있다.

 

이그림 또한 워터하우스 작품입니다.

 

Hebert

 

Pascal Adolphe Jean Dagnan-Bouveret

 

Alexandre Cabanel

 

Paul Albert Steck

 

Henri Gervex

 

Georges Jules Victor Clairin(French, 1843-1919)

-Ophelia
-Ophelia in the Thistles
 
Gregory Crewdson
미국 사진작가의 오필리아 작품이랍니다
또다른 느낌이네요
 
Lucien Levy Dhurmer
 
Jules Joseph Lefebvre
 
George Frederick Watts
 
Redon
 
Margaret Macdonald
 
 
Thomas Francis Dicksee
 
Joseph Severn
 
 
Arthur Hughes
 
 
Amanda Keeys
 
 
Diana Elliot
 
 

레어티즈가 오피리아에게 말하였다.

 

 햄릿 왕자와 그의 하찮은 호의란 건 유행이요 젊음의 객기이며 청춘기의 꽃송이라,

빨리 피나 영원하진 못하고 달콤하나 오래가진 못하니,

한순간의 향기요 시간 때우기 이상은 아니다.

 

오필리아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그뿐여요?

 

레어티즈가

 

 조심해라 오필리아, 조심해라 누이야.

그리고 네 몸을 욕망의 포격과 위험이 닿지 않는 네 애정의 후방에 두거라.

가장 정숙한 처녀가 자기 아름다움을 달에게만 드러내도 방탕하기 짝이 없어.

악담의 타격은 미덕의 화신도 못 피해.

봄의 새싹들이 봉오리를 열기도 전에 자벌레가 너무 자주 그들을 갉아먹고,

청춘의 아침 이슬 속에는 저염성 마름병이 당장에라도 생길 수  있단다.

그러니 주의해. 최상의 안전은 조심이야.

젊음은 곁에 뉘 없어도 자기에게  반항해.

 

 

-<햄릿>, 셰익스피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3

 

 

 오필리아는 죽었다. 그녀의 오라비가 말한데로 사랑에 몸을 사렸다면 그녀는 더 행복할 수 있었을까?

 

레즈티어의 말처럼 사랑은 잠시 왔다 풀썩 주저 앉고 만다. 그리고 오필리아처럼 그 사랑에 두 번 다시 잊지 못할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 아름다운 처녀가 더 이성으로 햄릿을 보았다면 그녀는 그런 가련한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련하다 못 해 청승스러운 그녀에게 질투를 느낀다.

 '한 순간의 향기'는 곧 사라질 것이다. 죽도록 사랑해도 죽도록 미워해도 어느 순간 금붕어처럼 다시 사랑하고 다시  미움을 반복하는 것이 사람이라 피 흘리며 아파하는 것도 잠시 사랑이 식어지듯 아픔도 식어지면 그 뿐이다. 그렇게 '그들을 갉아먹고' 가버리면 다시 꿈틀거리며 오늘을 살려 바둥거릴 것이다. 그 때 기쁨과 슬픔이 죽어진 자리에 적당히 간하고 적당히 익힌 추억이 있으니 그리 나쁜 장사는 아닐 것이다.

 

 

 

EspeRaNZ님이 올려주신 오필리아 설명 작품의 이해를 위해 여기에 추가합니다^^

 

햄릿의 연인이자 비련의 여주인공 :오필리아

그녀의 연인인 햄릿에 의해 아버지 플로니어스가 살해당하고 햄릿이 영국으로 떠나자

그만 정신을 놓아버리고 만 그녀는 실성해서 들판을 헤매다 물에 빠져 죽는다....

한 남자를 뜨겁게 사랑한 죄밖에는 없는데...

그녀의 너무나 순수한 영혼은 비통했던 현실의 세계와는 어울리지 않았는가 보다.

꽃으로 만든 관을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에 걸려고 기어오르다 심술궂은 가지는 그만 뿌러지고 말았다.

가여운 그녀는 화환과 함께 흐느끼는 시냇물 속으로 떨어져 떠내려간다.

지고의 여인은 소리도 지르지 않고 그저 꽃을 꼭 쥔 채 강물에 몸을 맡긴다.

이제 그녀는 강물이 되고 강물을 그녀가 된다. 그녀는 들풀이고 들풀은 그녀가 된다.

덤불과 이끼는 여인의 드레스 장식으로 번지고, 물빛은 그녀의 가냘프고 하얀 목덜미와 핏기 가신 뺨 주위를 맴돈다.

죽음만이 그녀의 안식처였을까. 오필리아Ophelia는 마치 꿈을 꾸며 즐기듯 천천히 자신의 무덤 속으로 가라앉고 있다.

죽음 앞에서 모이는 완벽한 아름다움이라니.

지그시 반쯤 감긴 오필리아의 눈은 마치 자신의 쉴 곳을 찾은 듯 슬픔을 건너 오히려 평온하다.

생에서 죽음으로 변해가는 여인을 거부할 수 없을 것 같다.

점차 무거워지는 눈꺼풀, 살포시 벌어진 입과 위로 열린 두 손 모두 비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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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또유스또 2006-07-07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서워요....히끅~
혼자 보니 ..으스스입니다요...
 
 전출처 : 가넷 > [현대미술 따라잡기] 우연을 통제·활용하는 예술가들

[현대미술 따라잡기]

우연을 통제·활용하는 예술가들
유진상 계원조형예술대 교수·미술이론
 

예전부터 미술에는 다양한 우연성들이 존재했다. 이러한 우연성 때문에 합리적인 사람들은 미술이 어렵다거나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림을 그리면서 예측할 수 없는 효과와 사건들로 인해 숱한 실패를 겪은 사람들은 이 때문에 미술을 저주하기도 한다. 우연의 서구적 어원은 주사위에서 비롯된다. 아랍어에서 온 ‘hasard’나 라틴어의 ‘alea’가 여기에서 비롯됐다. 그런데 우연성이라는 말은 매우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그림을 그리다가 우연히 놀린 붓이 가져온 뜻하지 않은 효과를 ‘우연의 일치(coincidence)’ ‘우발적 사고(accident)’ ‘우연적 사건(incident)’이라고 하고, 작가의 기분이나 상황에 따른 ‘임의성’ 혹은 ‘자의성(arbitrariness)’ 도 있으며, 시간의 경과에 따른 ‘예기치 못한 효과(unexpectedness)’ ‘예측 불가능성(unpredictable)’도 있다.

여기에는 물론 ‘선택(choice)’과 ‘기회(chance)’가 존재한다. 전체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일어나는 우연을 ‘확률(statistic)’이나 ‘개연성(probability)’으로 표시하기도 하지만, 의도하지 않고 ‘거저 얻어진(gratuitous)’ 경우나 ‘재수가 좋은(fortunate)’ 경우도 있는 것이다. ‘그럴듯한(likely)’ 경우나 ‘그럴 수도 있는(plausible)’ 경우도 있고, ‘일어날 수도 있는(contingent)’ 효과들도 기다리고 있다.

 

이것들은 대체로 통제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예술가들은 오랜 훈련을 통해 실패할 확률을 줄여나가거나 개념적으로 우연 자체를 활용하기도 한다. 예술은 우연에 대한 통제의 기술이면서 동시에 우연을 활용하는 기술이다. 현대미술에 ‘사태(event)’나 ‘발생(happening)’ 등의 용어가 사용되고, 이들을 ‘수행’ 혹은 ‘공연(perform)’하는 장르들이 생기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럽다. 기성제품을 차용하는 마르셸 뒤샹이나 뿌리기 회화로 유명한 잭슨 폴록(사진) 같은 예술가들이 인정받는 데는 이런 이유도 있는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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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가넷 > [현대미술 따라잡기] 예술가는 어떤 사람?

[현대미술 따라잡기]

예술가는 어떤 사람?
유진상 계원조형예술대 교수·미술비평
 

우체부 슈발이 만든 상상의 궁전.

예술가의 삶은 어떨까? 명예와 부, 모든 이들의 찬사와 압도적인 재능으로 가득 찬 삶일까, 아니면 고독과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는 삶일까?

 

그렇다면 예술가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어떤 이는 자신의 예술적 이상에 사로잡힌 독선적인 사람으로, 또 어떤 이는 베짱이처럼 인생을 즐기기로 작정한 사람으로 비친다. 예술가와 그들의 삶은 일반인에게 이처럼 몇 가지의 고정된 이미지로 각인된 듯하다.

 

1997년 프랑스 ‘리옹 비엔날레’ 큐레이터 하랄트 제만은 ‘타자(L’autre)’라는 비엔날레 제목처럼 ‘다른 것(타자성·alterity)’ 혹은 ‘다른 인간’이라는 유형으로 예술가를 규정하고 있다. 그 의미를 이해시키기 위해 비엔날레에서 제만은 한 우체부를 예로 들었다. ‘슈발(Cheval·말(馬))’이라는 이름의 이 우체부는 리옹 남동쪽에 위치한 오트리브(Hauterives)에서 매일 32km 정도의 거리를 걸어가 우편물을 배달했다. 1879년 어느 날 꿈에서 성을 본 슈발은 자신이 걸어다니는 길가의 돌로 성을 쌓기 시작했다. 이 작업은 1912년까지 33년간 이어졌다.

 

요정과 화초, 머나먼 곳의 문명과 상상의 여행, 그리고 역사에 등장하는 알 수 없는 이야기들로 이루어진 이 성은 앙드레 브르통과 피카소, 팅겔리 같은 예술가들에 의해 발견돼 20세기 미술사에 기록됐다. 이윽고 이 성은 1969년 앙드레 말로에 의해 역사적인 문화재로 지정되기에 이른다.

 

제만에 의하면, 예술가는 꿈을 이루는 사람이다. 일반인과 다른 것은 바로 그 꿈의 내용이며, 그것을 현실에 구현하는 방식이다. 동시대 미술은 점점 더 예술적 형식에서 이 꿈의 내용에 관한 것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이 놀라운 꿈의 현실화를 구경하기 위해 매년 14만여 명이 프랑스 산골의 이 성을 찾는다고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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