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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위화 지음, 김태성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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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삶과 글쓰기는 아주 간단할 때가 있다. 어떤 꿈 하나가 어떤 기억 하나를 되돌리면,

그다음에는 모든 것이 변하고 마는 것이다. (p157)

 

 

개인의 역사는 그가 속한 사회와 국가의 역사와 밀접하다. 콩으로 메주를 쑨다는 말이니 공허하기 짝이 없는 소리다.

 

아빠가 삼십 년 전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작은 그러나 작다고도 결코 말할 수도 없는 불이익을 당했다는 걸 얼마전에야 알았다. 아빠는 80년대 초 동네에서 제법 잘나가는 전파사를 하고 있었다. 워낙 성실하셨고 특별한 물건들(오디오, 텔레비전을 비롯해 각종 전자제품)을 최상의 컨디션으로 설치해 주려고 혼신의 힘을 다했었다. 당시 우리 동네는 전파가 잘 잡히는 곳이 아니었다. 동네를 감싸고 있던 산이 그 장벽이었는데, 그게 문제였다. 일본 방송이 전파를 타고 들어오게 해주면 텔레비전이 더더 잘 팔리는 것이었으니 아빠는 전파를 끌어오는 외계인 노릇을 자처했다. 전문기사를 데리고 산을 뒤져 전파를 잡고 안테나와 유선을 설치해 일본방송 전파를 끌어들였다. 장사는 불티나게 되었다. 당시 내 기억으로도 아빠는 밤 2시가 되어야 가게 문을 닫았고 아침 7시면 벌써 가게문을 열고 청소를 시작하셨다. 나는 물양동이에 물을 받아다 몇 번 날라 드리기도 하고 가게 안 먼지를 털기도 했는데 때로는 귀찮아 짜증이 나기도 했다.

 

5.18 광주혁명이 일어났다. 언론이 통제되었지만 일본전파를 타고 들어오는 외신뉴스가 문제가 되었다. 그러니 국가에서 일본방송을 못 보게 전면조치를 내렸다. (그 이전에는 일본방송으로 프로레슬링 시합도 보고 쇼프로도 보고 했던 기억이 많이 난다. 아빠는 일본어를 할 줄 아셨고 당시 연배가 비슷한 어른들은 거의 그랬다.)  그후 아무래도 매출이 줄었던 건 당연지사. 아빠가 당시 그런 금지조치를 당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유선케이블의 원조가 될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많은 희생자들에 비하면 아빠의 그것은 새발의 피라고 할 수 있지만.

 

위화를 처음 만난 건 10년 전 <살아간다는 것>을 읽고서다. 여기 간단한 리뷰도 올린 적이 있는, 당시 꽤 인상적이었던 소설이었다. 그후 <허삼관 매혈기>로 위화를 두번째 만났는데 그것도 강렬했다. 이번엔 에세이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밝혔듯, 이 책은 '지금까지의 길을 되돌아가는 것'이다. '휘황찬란해 보이는 오늘의 결과에서 출발하여 어쩌면 오늘의 불안이 되고 있는지도 모를 원인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저자의 삶을 흔들고 무의식에 자리하고 있는 문화대혁명 시기의 기억은 악몽같이 들러붙어 있으면서도 그 안에서 특유의 냉소와 유머를 발견하고 어느 순간 그 두려움의 기억에서 깨어나는 눈은 그래서 더 밝다. 슬픔 가운데서도 웃음이 있고 기쁨 가운데서도 눈물이 있듯 저자가 살아온 유년의 기억과 학창시절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 글을 쓰는 직업을 갖는 꿈을 이루기까지 중국의 거대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그는 풀뿌리처럼 질긴 생명력으로 살아온 셈이다.

 

인민, 영수, 루쉰, 산채, 홀유를 비롯한 열 개의 단어로 말하는 모국의 정치, 경제, 문화를 비롯한 풀뿌리 사람들의 삶과 욕망과 꿈의 불균형, 국민성에 대해 재미있고 놀라운 에피소드를 통해 이야기하는 이 책에서 저자는 다시 문화대혁명으로 돌아가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내가 오늘날의 중국을 얘기하면서 자꾸 문화대혁명 시기로 돌아가는 이유는 이 두 시대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회의 형태는 이미 판이하지만 일부 정신적 내용은 여전히 놀라울 정도로 닮은꼴이다. 예컨대 우리는 全民운동 방식으로 문화대혁명을 진행한 데 이어 똑같이 전민운동 방식으로 경제발전을 진행해 왔다.  내가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민간 경제의 빠른 성장이다. 문화대혁명 초기에 한꺼번에 수많은 조반파 사령부가 생겨났던 것처럼 1980년대의 중국 사회에서는 돈을 별려는 광적인 열기가 혁명의 광기를 대신하면서 순식간에 무수한 민영기업이 생겨났다.   - p310

 

 

위화는 "저의 글쓰기는 근원이 매우 멀고 깊어 물길의 흐름도 아주 깁니다"라고 말하며 그 연원을 문화대혁명 시기의 대자보 쓰기에 둔다. 심각한 상황인데도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읽는 입장에서는 웃지 않을 수 없는 희한하고도 슬픈 역사의 자락자락이 유머러스하게 서술된다. "문화대혁명 시기의 대자보 쓰기와 오늘날 블로그 쓰기가 갖는 한 가지 공통점은 둘 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p115)"  초등학교 시절 가장 두려워했던 존재, 대자보를 쓰는 헤프닝은 코믹하게까지 읽힌다. 무정부주의 정신을 담는 '산채'나 그보다 한 수 위인 '홀유'를 키워드로 한 장도 흥미롭다.

 

글쟁이 위화의 후기에서는 '과거를 회상하며 삶을 한 번 더 사는'(살게하는) 글쟁이들의 소임이 무엇인지, 새삼 의미있다.

 

타인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었을 때, 나는 진정으로 인생이 무엇인지, 글쓰기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이 세상에 고통만큼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쉽게 소통하도록 해주는 것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고통이 소통을 향해 나아가는 길은 사람들의 마음속 아주 깊은 곳에서 뻗어나오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나는 중국의 고통을 쓰는 동시에 나 자신의 고통을 함께 썼다.  중국의 고통은 나 개인의 고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과거, 오늘, 내일을 알기에도 유효하지만 '독서'와 '글쓰기'에 관한 장에서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새길 만한 내용으로도 좋다. 아무 장이나 마음에 오는 키워드부터 펼쳐 읽어도 무방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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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웨이 2012-11-28 0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제 모옌의 홍등, 원제는 다름요,을 팟캐스트로 들었어요. 슬슬 대륙풍이 부는 건가요? ^^ 이 책이랑 이다혜 작가의 책도, 음, 일단은 다행히 주문에서 한 발 늦었어요. 묵히고 생각해봐야지. ㅎㅎ

댈러웨이 2012-11-28 21:25   좋아요 0 | URL
아, 붉은 수수밭요. 홍등이 아니라. 원제가 무슨 가족인데... --;

라로 2012-11-28 22:07   좋아요 0 | URL
홍꺄오량 가족인가??/특이한 이름이던 기억이,,ㅎㅎㅎ

프레이야 2012-11-30 10:14   좋아요 0 | URL
역시 나비님^^ 홍꺄오량 가족.
붉은 수수밭은 영화로 본 기억만 있어요.
댈님, 팟개스트로 영어로 들으신거죠? 당연히! (아닌가? 중국어?) 암튼 부러워라~~:)

댈러웨이 2012-11-30 10:50   좋아요 0 | URL
바보 프레이야님. --; 한국어로 들었는데요. --; 그런데 그건 영어 리스닝이 나빠서 그런 건 절대절대 아니에요. --; (뭔지 변명같다는...)

프레이야 2012-11-30 10:55   좋아요 0 | URL
아흐흑~ 난 바보야요ㅎㅎ
나도 팟캐스트 들어야지들어봐야지 하면서 미뤘는데
당장 들어봐야겠어요. 어떻게 해요? 그냥 팟캐스트 치면 나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