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는 잠이 오지 않아서 잠깐 읽고 말겠다고 한 책을 모두 읽었다. 거기에서 내가 찾아낸 건 바로 '도파민'. 도파민이 있어야 그 모든 천재 같은 재능이 시작된다는 걸 알았다. 여기에서 알았다는 것은 체험했다는 말도. 어느 정도의 열정과 어느 정도의 도파민이라면 메조판티 추기경과 같은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잠자리에서 막연하게 헤아려보았다. 지식에 대한 사랑이 바탕이 되었겠지만 거기에는 신에 대한 사랑도 한몫 단단히 했을 테고 신에 대한 사랑 못지 않게 인간에 대한 사랑도 한몫 대단했을 터다. 거기에 물론 내가 이걸 과연 얼만큼 해낼 수 있을까 라는 자가 실험에 대한 호기심도 플러스. 앤젤라 더크워스의 그릿을 다 읽고난 후에도 도파민과 도파민이 정기적으로 생성되는 그 과정을 얼마나 지속적으로 갖고 갈 수 있는가_ 거기에 모든 성공과 실패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실패하고 다시 일어서는 그 과정에 대해서 앤젤라가 어떻게 서술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도파민의 능력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힘든데 확실한 건 서로가 서로를 간절하게 부른다는 건 알겠다. 서로가 서로를 원하는 그 반응이 어느 정도인가는 묘사하기 힘들다. 솔직히 하자면 가물가물해서 뭔 묘사가 가능하지 않다. 김현의 사라짐, 맺힘을 다 읽고 너무 허망해서 버스 안에서 눈물이 뾰로롱 흘러나왔을 때 그래도 희망에 찬 한 문장, 


 "중세의 귀부인들의 우아한 옷 속에 감춰져 보이지 않던 인간의 불행이 브뤼헐의 손을 통해 나에게 다가온다. 나는 가슴을 열고 그것을 그대로 받아 들였고, 그래서 그 아픔으로 오래 떨었다." (255) 


 아우, 쌤, 하고 버스 창문에 미친년처럼 머리를 지그시 기대고 아우, 쌤! 하고 느낌표. 말하고자 하는 건 도파민이었는데 도파민 이야기는 하지도 못하고 그냥 주머니에서 꺼내놓기만 하고 공항으로 갈 준비를 한다. 애인은 당부했다. 무조건 한 권이야, 딱 한 권만 가방에 넣고 와, 두 권도 세 권도 안돼, 딱 한 권. 그 한 권의 책을 아직도 고르지 못하고 있다, 딸아이도 나도. 암담하다. 그냥 책상 위에 올려져있는 거 아무 거나 한 권 들고 가야겠다. 마음으로는 톨스토이를 갖고 가고 싶지만 그럼 나는 여행지에서 세상에 태어나 처음 보는 모든 풍경들을 외면하고 톨스토이만 읽게 될 것이다. 그건 노노. 일단 너무 무겁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포기. 


 

  메리 올리버는 자신의 시 [여름날 The Summer Day]에서, 풀밭에 무릎을 꿇고 앉아 메뚜기를 뚫어지게 관찰하다가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 깨달았다고 노래한다. 마지막 행에서 그녀는 독자에게 이렇게 묻는다. 

 "그대, 하나뿐인 험난하고 귀중한 삶에서 무엇을 할 계획인가?" (77) 


 나도 이 질문에 답을 좀 해봐야겠다. 일단 놀고난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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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9-10-23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톨스토이는 안 돼요, 안 돼!!
메리 올리버 읽고 싶네요. 넘 근사해요.
잘 다녀와요~~ 조심히, 즐겁게!!!
 




  그의 임무 중에는 '콘페소레 데이 포레스티에리confessore dei forestieri, 즉 외국인 전용 고해신부로 일하는 것도 있었다. 한 번은 교회 당국에서 그를 어느 감옥에 파견했는데, 다음 날 아침 처형될 두 명의 사형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누구도 이들의 고해를 들어줄 수 없었다. 결국 이들은 죄 사함을 얻지 못한 상태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 왜냐하면 이들이 구사하는 언어를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감옥에 다녀온 날 밤, 메조판티는 자기 방에 틀어박혀 그 언어를 공부했고, 다음 날 아침에는 이들이 처형대로 가기 전에 하느님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내릴 수 있었다. 

 최소한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랬다. 

 또 한 번은 어떤 여자가 찾아와 메조판티에게 문제를 하소연했다. 사르데냐어밖에는 모르는 자기네 하녀가 부활절에 자기 죄를 고해하고 싶어한다는 것이었다. (볼로냐에 있는 신부 중에는 사르데냐어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러자 메조판티가 말했다. 2주 동안의 시간 여유를 주면, 자기가 사르데냐어를 배우겠다고 했다. 그 여자는 어처구니 없다는듯 웃으면서 그러라고 했다. 이때부터 매일 한 시간씩 그 하녀가 메조판티를 찾아왔다. 부활절에 그는 하녀의 고해를 들을 수 있을만큼 사르데냐어를 충분히 잘하게 되었다고 한다. 

 메조판티의 문서들을 처음 뒤져보았을 때, 나는 거기 나와 있는 언어들의 풍부함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도대체 이 양반은 전 세계 언어의 문법이라는 헤라클레스의 과업을 이렇게 깨끗이 처리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런 한편으로 조사를 계속하는 동안 나는 이렇게 평범하기만 한 유물을 보면서 조금은 실망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뭔가가 빠진 것 같았다. 즉 '학습'의 과정 - 설령 그 과정이 기적에 가깝다 하더라도- 을 보여주는 흔적이 없었던 것이다. 혹시 그가 어떤 방법을 갖고 있었을 수도 있지만 나로선 어떤 지침이나 단어장이나 문법 연습이나 또는 학습 관련 필기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어쩌면 그런 기록은 파괴되었거나 또는 보존할 가치가 없다고 간주되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워낙 뛰어난 기억력을 지니고 있었던 까닭에 뭐든지 한 번 보면 머리에 집어넣어 보존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다 나는 뭔가를 발견했다. 그리고 문득 메조판티가 '정말로' 하려던 일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었다.                                                                                                                (71-72) 




  솔직히 이 구절들 다 읽자마자 막 몸이 저릿저릿하면서 등줄기에서 쫘악 소름돋았다. 메조판티. 번역이 하도 발번역이라서 엉망이라는 리뷰가 압도적으로 많은데 요상하게 말을 꼬아서 번역한 건 확실히 책 초반이지만 느껴진다. 번역 감수 뿐만 아니라 편집도 과연 제대로 이루어졌을까 하는 의구심이 꼬리를 무는...... 그래도 아주 못 읽을 정도는 아닌지라 한 시간만 읽고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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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의 사라짐, 맺힘을 읽는다. 김현을 처음 읽었을 때 역시 멋모르고 읽었는데 마흔 넘어 읽으니 어렸을땐 대체 뭔 생각으로 김현을 읽겠노라 덤볐던 건지 모르겠다. 구구절절 옳은 말씀에 한숨이 포옥 나온다. 외국어로 사고를 한 이상을 부럽다 하셨지만 선생님이라면 충분히 그 정도는 하셨을 거 같은데 이토록 시니컬하셨던가 싶어 눈을 번쩍번쩍 크게 뜨며 읽는다. 종로2가 맥도날드였던 곳이 할리스로 변신. 고등학교 다닐 때 김현 비평집 들고 여기에서 폼 잡고 읽었던 기억 난다. 감자튀김 씹으면서.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커다란 헤드폰을 착용하고 열심히 영어공부를 하시는 칠십대 어르신과 갖가지 공부를 하는 젊은 솔로들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는 중년의 여성들. 그 사이에서 지오다노 티셔츠 다섯 장 들어있는 쇼핑백을 앞에 두고 김현이 세상 최고야 라고 마음 속으로 외치고 있습니다. (내가 영어공부를 해서 그런가 모조리 영어공부하는 이들만 보인다)


인생이 유한하다는 걸 제일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대목들, 그 유한성 안에서 마땅히 갖추어야할 것들. 그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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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기회가 아니면 펼쳐볼 기회가 없을듯 해서 사서님에게 졸라서 대출도 받았는데 아무리 읽고 읽어도 너무 어렵고 지루하고 갑갑해서 제대로 읽을 수 없어요. 그래서 과감하게 훑어읽기를 하고 아무래도 상권은 여기까지인가보다 싶어서 아무 말 없이 표지를 덮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모두 구구절절 옳은 말씀인 거 같은데 읽으면 읽을수록 속이 많이 답답해지더라구요. 아픈 눈에 억지로 인공눈물까지 쏟아부으면서 읽었지만 상권은 여기까지만 읽고 하권을 읽어야겠다 하고 패스합니다. 무조건 존경할게요. 제2의 성 읽는 분들. 저는 가뿐하게 편지로 쓴 철학사를 가방 안에 담고 룰루랄라 산책을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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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10-23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기 하는 저보다 더 많이 읽으셨군요.... 망했어...

수연 2019-10-23 08:14   좋아요 0 | URL
쇼님이 망했으면 전 어쩌라구요 ㅋㅋㅋ 쇼님이 있어서 정말 든든해요, 이 철학 꼬꼬마 아줌마는. 근데 보봐르 언니는 아무래도 무리무리;;;
 

묘하게 감정이입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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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굽는 건축가 2019-10-22 08: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 묘하게 감정이입 200 이란 표현에
묘하게 끌려 후기를 읽어봅니다.

수연 2019-10-22 10:59   좋아요 0 | URL
크크크 역시 표현을 잘해야하는듯 싶어요, 반갑습니다, 빵굽는건축가님 :)

빵굽는 건축가 2019-10-22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수연님 반가워요. ㅋㅋ

수연 2019-10-22 11:07   좋아요 0 | URL
즐거운 가을날 되세요. 그나저나 멋지세요. 건축가라는 직업도 그렇고 빵을 굽는 취미 생활도 그렇고. ^^

빵굽는 건축가 2019-10-22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칭찬 주시니 부끄럽네요 ^^ 감사합니다.
수연님처럼 책을 맛나게 읽는 분들도 멋져요.

수연 2019-10-22 14:02   좋아요 1 | URL
후훗 앞으로 자주 뵙도록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