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들아, 봄날은 봄날이구나. 

 다들 가볍게 옷을 걸치고 호르몬의 흐름대로 몸을 맡기고 싶어하는 걸 보니 

 이 나이가 되어도 여전히 우리들은 모두 열일곱이 되어버리는구나. 


 엄마를 모시고 병원에서 수술 날짜를 잡고 약을 처방받으러 약국에 다녀오는 길, 

 병원 마당 한켠에 벚꽃나무에서 벚꽃들이 빼꼼 얼굴을 내미는 광경을 바라보며

 곧 여든이 되는 할머니와 곧 쉰이 되는 아줌마는 금세 얼굴에 웃음꽃이 펴 

 맙소사, 봄이로구나, 심장이 두근거리는 음향을 밝은 햇살 아래에서 듣는 동안

 봄꽃이 환하게 온 거리를 물들 무렵이면 아마도 당신 앞에 설 수 있을 거야, 

 그 목소리가 들려서 또 나도 모르게 무릎이 꺾일 것만 같아서 두 다리에 단단하게 

 힘을 주면서 심장아 나대지 마라, 곧 님이 오시니 정갈하게 몸과 마음을 닦도록 하자,

 그러는 동안 곧 여든이 되는 할머니가 봄은 사랑을 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계절 같다, 수연아

 

 초여름, 엄마 수술 날짜 잡아갖고 돌아오는 길, 

 전공의 파업이 그 전까지는 끝나기를 간절히 또 기도하고. 


 봄처녀와 봄아줌마와 봄과부와 봄소녀와 봄이혼녀,

 모두 다 봄바람에 정신을 못 차리고 꽃잎 휘날리는 풍경을 가만히 마주하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24-03-18 16: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봄소녀 하고 싶지만 현실은 봄아줌마 ㅋㅋㅋ
아님 저 봄바람 하면 어때여? 봄꽃은 좀 어려울 거 같아서요. 신선한 기운을 부르는 봄바람이 되어볼래요. 신선한 기운… 도 무리일까요? ㅋㅋㅋㅋㅋ

수이 2024-03-18 20:45   좋아요 0 | URL
우리 모두 마음은 봄소녀 저리 가라 ㅋㅋㅋㅋㅋㅋㅋㅋ

새파랑 2024-03-18 19: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의 제목인 문학소녀와 수이님은 잘 어울리는것 같습니다~!!!

수이 2024-03-18 20:45   좋아요 1 | URL
부끄럽습니다 쿨럭쿨럭 새파랑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멘탈라이징과 마인드풀니스는 명확히 다른 개념, 이 책에서는 정신화와 마음 챙김으로 번역.


151
161
164-16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958년 12월 7일에 쓴, 프랑스 작가 콜레트를 떠올리는 전혜린의 일기를 보자. ‘(예술 작품)은 어던 확실한 대상인 것이다. 그것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일(직업)을 이해해야 한다. 천분과 재질에 의해서만 콜레트가 위대한 여류 작가가 된 것은 아니다. 펜은 때때로 그 여자의 생활 수단이었고 그 펜에 의해 그녀는 세심한 작업을 요청받았었다. 마치 수공업자가 자기 연장에 의해 그런 요구를 받듯이. 고금을 통해 프로라는 것은 아마추어로부터 생겨난 것이다.˝ 전혜린은 뒤이어 시인 체사레 파베제의 글을 인용한다. ˝이 생활 속에서는 임의의 심리학적 내용이 아니고 예정된 엄격성을 압도하는 생활의 테크닉, 즉 한트베르크(Handwerk)가 중요했다.˝

이런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몇 년 뒤 한국에 돌아와 현대 독일문학 선집을 기획할 때, 그녀는 일본에서 수입된 정전의 목록이나 수상 경력 등에 얽매이기보다 자신이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작품 내 가치, 허구의 주인공들이 동시대의 혼란스러운 한국인들에게 어떤 위안이나 기준을 제공할 수 있는 가능성 등을 고려하며 새로운 기획력을 선보일 수 있었던 건 아닐까. 15
(15. 첨언하자면 데미안은 1965년 초 전혜린의 사망 이후 출간된 유고집에 실린 두 개의 세계를 읽은 독자들이 구입하기 시작하면서 폭발적인 호응을 얻게 된다. ˝당시 신생이었던 문예출판사가 그 원고를 사들여 1966년에 데미안을 출간하였고, 5천부 넘으면 베스트셀러가 되던 그 시절에 1년에 5만부나 팔리는 진기록을 남겼다˝고 한다. 서은주, 앞의 글, 36쪽. 2017년 현재까지도 전혜린 번역 버전의 데미안과 생의 한가운데는 계속 판을 거듭하며 서점에 나오고 있다.)

나중에 좀 더 살펴보겠지만, 1920년대 ‘1세대 여류‘작가들에 대해서도 남성 평자들은 ‘작품 없는 문학가‘ 운운했다. 그 발언이 실은 그 여성 작가들이 남긴 소설이나 시, 번역, 수필 등에 대한 가차 없는 폄하와 조롱, 왜곡된 인식에서 비롯되었던 것처럼, 전혜린을 ‘문인‘ 혹은 ‘작가‘라고 부르기를 다소 저어했던 현대의 평자들은 역시 그가 남긴 수필과, 그가 현대 독일문학을 소개하는 데 있어 선정 및 번역이라는 과정을 거치며 추구했던 바, 문학에서 귀중하게 생각하는 바를 형상화했던 과정에 대해서는 ‘문학 생산‘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것일까. 전혜린은 ˝식민지를 거쳐 분단과 전쟁으로 페허가 된 50-60년대 현실에서 일본어가 아닌 서구의 언어로 읽고 생각하고 썼던, 몇 안 되는 번역가˝이자 ˝유학 체험을 통해 당시 유럽의 다양한 문화, 예술의 경향을 본고장의 언어와 감각으로 생생하게 체험˝했기 때문에 [데미안]과 [생의 한가운데]를 비롯하여 현대 독일문학의 현주소를 ‘적집적으로‘ 한국 독자들에게 알려주는 매개체였다는 사실의 의미를 애써 지워버리는 건 아닐까. (116-11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 밑줄

둘은 또한 하나의 신비로 드러나는데, 이는 둘이 무의식적 지식에 의해 재현될 수 없는 구멍이기 때문이다. "무의식적인 지식조차도 오로지 둘의 신비에 해당하는 그 무엇을 메우기 위해 창안됩니다." 끝으로, 둘은 본래 분열되어 있지만 서로 겹칠 가능성에 열려 있는 두 개의 무의식적 지식을 가리킨다. 사랑이 어떤 매개도 없는 회복 불가능한 분열이라고 말한 이후 라캉은 이렇게 첨언한다. 사랑은 또한 "두 지식이 회복 불가능하게 구분되어 있는 한에서 두 지식 간의 연결입니다. 그러한 연결이 일어날 때 매우 특권적인 무언가가 창조됩니다. 두 무의식적 지식이 겹칠 때, - P79

놀라운 뒤범벅이 만들어집니다." 때로 사랑의 둘은 두 분열된 지식의 교차를 통해 출현한다. 이것은 하나의 사건이다. 특권적이고 놀라운 사건, 하나의 축복이자 심연인 사건 말이다.
요컨대 라캉의 둘이 성의 구조, 분리된 성, 성적 비관계, 증상, 신비로운 구멍, 분열되고 연결 가능한 지식과 같은 다양한 맥락에 관련되는 한편, 둘에 대한 이러한 레퍼런스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성의 문제에 깊이 연루되는 사랑의 둘은 라캉에게 의심스러운 것으로 남는다는 점이다. 사실 이것은사랑의 둘의 치명성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는 정신분석가로서는 임상적으로 너무나 당연한 입장이다. 그의 초기 논문(「편집증적 범죄의 동기: 파팽 자매의 범죄에서 라캉은 말라르메에게서 가져온 "둘이라는 질병 (mal d‘étre deux)"을 상상적 사랑으로서의 치명적 정념에 연결시킨다. 후기 라캉이 보다 "교화된 [문명화된]"사랑의 출현에 대한 정신분석의 기여 가능성을 언급한다는 점을 고려할때, 둘이라는 질병의 함의를 상상적 층위 너머로 확장시키는 것은 합법적일 것이다. 후기 라캉이 실재를 "작동되지 않는 것 (ce qui ne marche pas)"으로 정의한다는 점을 근거로 해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사랑의 둘은 그 치명적 정념 때문에 상상적으로 잘 작동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조화롭지 못한 주이상스 때문에 실재적으로 잘 작동하지 않는다. 또 실재에서 잘 작동하지 않는 것이 증상으로 출현하는 한, 모든 사랑의 둘은 증상적이다. - P80

사랑의 무대는 현상학적 경험이 아니라 주체적 구축의 문제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이 무대가 영원한 재구축 과정에 놓여 있다는 점인데, 왜냐하면 연인들은 둘의 확장과 둘을 위협하는 대상의 회귀 사이에서 늘 서투르게 나아가기 때문이다. [한편 정신분석은 연인들이 서투르게 나아가는 이유는 그들이 오이디푸스적 (Oidipous)이기 때문에, 즉 그들의 발이 부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할 지도 모른다.] 나아가 바디우는 또 다른 함수t를 제안한다. - P82

요컨대 라캉과 바디우 모두 융합적이고 통합적인 하나를 비판한다. 그러나 라캉이 성적 둘의 병리학에 초점을 둔다면, 바디우는 사랑의 둘의 가능성에 초점을 둔다. 라캉이 수학소 "그들/둘을 갖고 둘 주변을 맴돈다면, 바디우는 진리로서의 둘의 힘을 확신한다. 바디우에게 사랑은 세계의 무한에 관여하는 과정적 둘이다. 둘은 접근 불가능하지 않다. 우리가 사랑의 절름발이를 계속 밀고 나가기로 결심하는 한에서 말이다. 둘은 성적 비관계와 충동의 유한성을 통해서 또 그것들 너머에서 사랑의 무한을 창조하기 위한 매개로 기능한다. - P85

라캉의 다음의 발언을 보자. "실재를 정의하는 이러한 난관, 이러한 불가능성과의 대면을 통해 사랑은 시험되지 않습니까? 파트너와 관련해서 사랑은 제가 이러한 치명적인 운명에 대한 용기라고 불렀던 것을 현실화시킬 수 있습니다." 사랑과 불가능성의 매개자는 용기이다. 사랑은 능력, 상황, 여건의 문제가 아니라 불가능성과 마주하는 용기의 문제이다. 용기는 불가능한 것을 견디게 하고 불가능한 것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 있게 한다. 용기에 의해 지탱되는 사랑은 단순히 반작용하지 않으며 성적 비관계라는 치명적인 운명에 적극적으로 직면한다. 불가능성을 메울 때, 사랑은 상상적 보충물이다. 불가능성 - P86

을 통과할 때, 사랑은 용감한 모험이다. 사랑은 성적 비관계의 난관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난관을 용감히 통과하는 것이다. - P87

사랑의 절차는 이 발언과 다른 요소 간의 연결에 대한 탐색을 통해 구축될 것이다. ‘나는 너를 사랑해‘는 세계의 무한과 연동되는 사랑의 무한을 창조하는 중심 재료로 기능할 것이다. 바디우는 이렇게 말한다. "이를테면 내가 알지 못했던 누군가와의 만남이라는 완벽한 우연이 결국 하나의 운명이라는 외양을 띠게 되는 것이지요. 사랑의 선언은 우연에서 운명으로 이르는 이행의 과정"이다. 운명이 팔루스 함수의 필연적 작용에 다름 아닌 라캉과 달리 바디우에게 운명은 진리로서의 사랑을 지칭한다. 그러나 우연에서 운명으로의 이행에서 핵심은 단순히 ‘나는 너를 사랑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조직된 무질서로서의 우연을 극복함으로써 둘이라는 준(準)안정적 질서를 조직하는 주체적 과정에 있다. 운명으로서의 사랑은 만남의 힘을 초과하는 충실성의 사후작용 덕분에 가능하다. 시를 단어 하나하나를 통해 우연을 극복하는 실천으로 여기는 말라르메를 원용하며 바디우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에서 충실성은 이러한 끈질긴 승리를 지칭합니다. 다시 말해 지속성의 고안 속에서, 한 세계의 탄생 속에서, 나날 이후의 나날로 인해 극복된 만남의 우연을 지칭하는 것이지요." 충실성은 고정된 도그마나 도덕적인 의리, 정적인 보수주의가 아니다. 충실성은 재창안의 운동이며, 만남의 불연속적 힘을 소생시킬 수 있는 새로운 무언가에 대한 일관된 창조이다. 그것은 만남의 무작위에 대한 투쟁과 승리를 통한 주체적 세계의 구축을 가리킨다. 오직 충실성만이 만남을 (사랑의 선언에 의해 그 단초가 세워지는) 운명으로 전환시키는 사랑의 과업을 완성시킬 수 있다. - P9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애착외상

그러나 Bowlby(1958)도 인간에 대한 애착의 정서적 기능을 인정했다. 즉, 겁먹었을 때, 유아는 양육자에게 ‘안식처‘(p. 370)로서 근접을 추구한다. 우리는 이 기본원칙을 명심해야 한다. 위협을 받거나, 위험에 처하거나, 괴로워하거나, 아플 때, 아동은 안전감, 안정, 그리고 웰빙을 회복하기 위해 엄마와 접촉하려고 한다. 엄마는유아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유아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보완적인 방법으로 동기부여 된다. 그러나 Bowlby는 또한 우리의 애착 안정성에 대한 욕구는 유아기와 아동기를 훨씬 넘어서는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것은 동일한 이유로, 즉 위험과 고통에 직면했을 때 안정을 회복하고 편안함을 제공하기 때문에 평생에 걸쳐 중요하다. - P33

보다 일반적으로는 애착 인물의 가용성은 유아의 두려움에 대한 예민함(susceptibility)을 감소시킨다. Ainsworth(Ainsworth, Blehar, Waters & Wall, 1978)는 Bowlby의 다음과 같은 강조를 되풀이함으로써 우리 모두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 점을 간단히 표현했다. Bowlby의 강조는 ‘두려움을 야기할 만한 상황에서 신뢰할 수 있는 동반자와 함께 한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가! 함께 하면 두려움은 사라지지지만 홀로 있을 때 두려움은 거대해진다.‘(p. 20)이다. 반복해서 강조하겠지만, 외상 경험의 원형은 두려우면서 심리적으로 홀로인 것이다.
Bowlby(1982)는 ‘어떤 형태의 행동도 애착인물의 행동보다 더 강렬한 느낌을 동반하지 않는다‘(p.209)고 주장했다. 따라서 애착이 잘 작동할 때, 애착 인물에 대한 근접성은 안정감을 제공한다. 우리는 애착행동의 목표로 물리적 근접성보다 안정감을 우선시하는 Alan Sroufe와 Everett Waters(1977)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현명하다. 근접성은 안정감을 확립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애착 인물의 가용성에 대한 신뢰를 확립하는 것도 또 하나의 방법이다. 물론, 어떤 연령대라도 극심한 고통을 겪는 경우, 신체 접촉은 안정감에 가장 강력한 경로일 가능성이 높다(Ainsworth, Blehar, Waters & Wall, 1978). 따라서 애착의 일차적 역할을 정서적 안정 상태에 두는 동안, 평생 동안 이 목표에 대한 수단인 근접성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대충 처리해서는 안 된다.

어린아이나 어른이 애착 인물을 상실한 경우, 내적 표상이 근접성과 접촉을 전적으로 대체할 수는 없으며, 최소한의 편안함을 제공할 수도 없다. 이것은 어린 아이나 어른 모두에게 해당한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애착될 때,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기를 원한다. 그들은 다른 관심사와 활동을 추구하는 데 있어 잠시 떨어져 있을 수 있지만, 애착 인물과 함께 상당한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다면, 다시 말해 근접성과 상호작용이 없다면 애착은 그 이름에 걸맞지 않는 - P44

다. 실제로, 큰 아이나 성인조차도 때때로 사랑하는 사람과 신체적으로 가깝게 접촉하기를 원하는데, 이는 재난이나 심한 불안 또는 심한 병으로 인해 애착행동이 강하게 활성화되는 경우에는더욱 확실하다(Ainsworth, Blehar, Waters & Wall, 1978, p. 14).

그러나 물리적 근접성이 안정감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정서적으로 먼 양육자와의 접촉은 편안함을 제공하지 않을 것이다. 그에 따라, Bowlby와 Ainsworth가 그들의 작업을 통해 예시해 주었던 것처럼, 관계의 질은 근접성이나 가용성과 관련된 안정감의 핵심이다. 학대적이거나 무관심한 양육자에 대한 근접성은 진정한 안정감을 제공하지 않는다. 외상과 관련하여 애착 인물에 그렇게 많은 비중을 두는 주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즉, 안정 애착은 정서조절의 중추이며 따라서 안정 애착은 고통, 극단적인 경우로 외상성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법을 배우는 일차적 수단이다. 동물과 인간 영아에 대한 광범위한 발달 연구 덕분에 이제 우리는 애착관계가 감정조절과 함께 생리적 조절과 발달을 매개하는 방법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이 연구의 대부분은 애착과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의 관계에 중점을 두고 있다(Polan& Hofer, 2008; Suomi, 2008). - P45

유아는 엄마가 떠나면 그녀를 따라가고, 엄마가 돌아오면 인사를 한다. 유아는 또한 주기적인 접촉을 유지하면서 엄마 옆에서 멀어지는 탐색을 한다. 참고로 18개월이 되면 대부분의 유아들은 작은 규모의 애착 인물 네트워크를 갖지만, 한 명의 인물(흔히 엄마)이 일차적이다. 즉, ‘애착행동은 특히 유아가 괴롭거나, 배고프거나, 피곤할 때, 또는 아플때, 그 사람과 다른 애착 인물이 모두 가용할 때, 특정 사람에게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Marvin & Britner, 2008, p. 280). 종종, 이는 성인기에도 한 명의 애착인물, 주로는 연인이 전형적으로 1차적이 된다는 점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 P50

요컨대, 우리는 이제 아동의 기질이 돌봄에 영향을 미치고, 거꾸로 돌봄이 기질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기질에 의해 어떤 아동은 민감하게 반응하는 방식으로 부모에게 더 도전적일 것이고, 어떤 아동은 민감하든 둔감하든 돌봄에 덜 반응적일 것이다. 보다 반응적인 아동의 경우, 돌봄은 좋든 나쁘든 기질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Vaughn과 동료들이 결론지은 것처럼 ‘기질적 차이의 저변에 흐르는 애착과 생리적 메커니즘 둘 다 중요한 양육자의 행동 방식과 연합된 사회적 환경에의해 조정된다.‘(Vaughn, Bost & van Ijzendoorn, 2008, p. 210). 마지막으로 기질과 애착은 둘 다 생리적 반응성, 정서성, 관계 질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 P7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