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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문화비평이다 자음과모음 하이브리드 총서 4
이택광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택광이라 하면 요즈음 주목받기 시작한 좌파적 성향의 평론가인데, 사실은 난 그에 대해서 이 이상 무엇이라 말을 할 수가 없다. 그가 쓴 글을 읽어본 것이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내가 책읽기, 여러 가지 담론에 대한 주목에 소홀했다는 것을 먼저 밝혀두고자 한다. 내 주위 여기저기에서 이름만 무성할 뿐, 내가 관심을 두는 여러 분야와는 접점이 잘 생기지 않았다. 크게 보자면 정치적인 성향이 일치하는데다가 문화이론 내지는 철학으로 그와 내가 묶일 수 있겠지만, (적어도, 결론부터 말해서) 마르크스에서 라캉으로 그리고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랑시에르에 주목하는 그의 길은 내가 가고자 하는 길과는 들어맞지 않았다.

  이 책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져있다. 하나는 자신의 이론적 입장에 대한 설명 비슷한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그간의 사회현상들을 분석한 결과를 그려놓은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갈래가 어떤 지점에서 연결되는지, 그것이 명확하지가 않다. 이론 부분에서는 문화비평이라는 것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문화비평이라는 영역을 개척한 것으로 간주되는 신칸트학파에 대한 개괄이 있다. 그리고 그들과는 관점을 공유하면서 또 다른, 가장 현대적인 감각을 갖추었다고 할만한 문화비평가이자 철학자인 벤야민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다른 이야기들도 있지만 내 기억에 가장 깊게 남을만큼 반복해서 등장하고 길게 설명된 것은 이 두 가지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다른 한 부분, 즉 그가 사회현상을 직접 분석한 부분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단어는 ‘욕망’이다. 그리고 그 다음이 상징이다. 그리고 그는 상징을 문화와 거의 동일한 단어로 사용하고 있다. 널리 알려져있듯, 이 두 단어를 가장 많이, 빈번하게 사용하는 이론가는 바로 라캉이다. 자주 사용하는 단어의 빈도수에 걸맞게, 그의 사회현상 분석 또한 상상계/상징계/실재계라는 라캉의 구도를 거의 그대로 끌어와서 이야기한다. 궁극적인 무엇, 사건의 원인, 사람들이 열망하는 무엇은 실재계로서 실재하지만 절대 인지할 수는 없는 ‘그 무언가’가 되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한 도구를 찾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특정한 문화현상으로서 드러난다. 이것이 곧 상징이며, 어떤 때에는 상상계의 산물이기도 하다. 최근에 그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듯한 이론가인 랑시에르에 이르면, 대체 어떤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나로서는 종잡을 길이 없어 그저 그가 이야기한 것을 그대로 따라가기만 했다.

  이상한 것은, 그가 문화비평과 사회현상 분석의 방법론이라고 그토록 강조하면서 적었던 ‘철학’의 내용들이 이상하리만치 실제 비평에는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이 질문을 붙잡고 늘어져야만 했다. 단적으로 말해, 비평의 방법이라는 이론에 대한 설명에선 신칸트학파와 벤야민을 이야기하고, 실제 비평할 때는 라캉과 랑시에르를 인용하고 있다. 일관성을 찾기 힘들다. 대체 왜, 이럴거면 이론 파트에서도 자신이 지금까지 연구한 학자들 – 라캉과 랑시에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더 나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계속 든다. 조금은, 뜬금없는 무리수 같은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내가 알고 있는 바에 의하면, 신칸트학파를 칸트와 나눌 수 있는 이유는 인식론적인 입장의 차이 때문이다. 신칸트학파 사람들은, 칸트의 범주 개념을 무한히 펼쳐놓는다. 이는 칸트가 범주를 양, 질, 관계, 양상이라는 유한한 네 가지 분류체계(와 12개념으)로 제한한 것과는 대비된다. 범주란 인식의 토대를 만들어주는 틀이다. 칸트는 유한한 범주로 보편적 인식을 가능하게 하려 했지만, 신칸트학파들은 이런 범주를 인간의 삶의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형성되는 것으로 보았다. 문화는 바로 한 사회가 이런 인식의 틀, 즉 범주들을 역사적으로 축적시킨 결과이며 따라서 그것은 그 문화의 영향을 받고 자라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인식의 매개로 작용한다. 이것이 신칸트학파가 문화연구, 즉 사회현상에 대한 연구를 중요하게 여기고 이에 대한 학적인 연구를 최초로 시작한 까닭이다.

  이런 (내가 알고 있는 한의) 신칸트학파의 개괄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그들이 강조하는 무한한 범주와 인식의 구분이 라캉의 상징(상상)/실재계와 구조적으로 유사하다는 것이다. 범주는 인간의 정신적 활동의 산물이고, 그것은 인식을 결정짓는다. 또한 칸트가 정의한 범주의 정의에 따라서, 사실 인간은 범주 없이는 어떤 인식도 불가능하며, 어떤 의미에서는 범주 자체가 인식을 결정짓는다. 라캉의 상징 또한 실재에 접근하는 매개를 의미하는 것이지만, 그가 대타자라는 말에서 강조하듯이 어떤 의미에서도 실재(계) 그 자체에 인간은 접근할 수가 없다. 그것은 오로지 상징(계)라는 통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신칸트학파의 범주와 라캉의 상징은, 문화라는 이름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신칸트학파에 대한 신나는 설명은 어쩌면 라캉의 이론적 구조를 설명하기 위한 간접적 방법일 수도 있다.

  내가 나름대로 조악하게 맞춰본 이 입장이 맞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내겐 어떻게 해서든 이 공백을 메워야만 했고, 그 까닭은 이론 부분을 벗어나자마자 뜬금없이 (내 추측에 의하면) 라캉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이 좀 더 친절하게 부가되었다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회현상 분석에 들어가고 나서 그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여러 현상들이 ‘중산층의 욕망’이 반영된 ‘쾌락의 평등주의’에 입각해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가 아마도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그의 가장 기본적인 틀인 것 같다. 쾌락의 평등주의는 주로 좁은 의미에서의 정치적인 의미가 담긴 현상을 분석할 때 유용하게 쓰이는 것 같고, 중산층의 욕망은 모든 사회현상이 가능하게 하는 일종의 문화적 저변으로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이런 그의 조감도에 대해서는, 그것이 적절한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서 내가 왈가왈부할 수 있는 입장은 못되는 것 같다. 실제로 그가 쓴 꼭지들 가운데서는 흥미로운 독법들도 몇몇 있었기에, 그저 단순한 이론적 이념의 소산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종합해보면, 그의 문화비평은 라캉(그리고 랑시에르)가 세운 이론을 방법으로 사용해, 중산층의 욕망이 중심이 되는 쾌락의 평등주의를 보여주려고 하는 지속적인 노력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래서 글을 주욱 읽어내리다 보면, 그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은 다름 아닌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숨은 구조에 대해 관찰해보기로 하자.’ 이다. 그 구조란 다름아닌 그가 말하고자 하는 이 두 가지, 바로 그것이다. 대개 모든 글의 구조가 이런 식으로 짜여있다.

  좋은 말로는 확고한 그의 시선 아래 이 사회의 현상들을 여기저기에 배치하여 자기 입장의 설득력을 높이려고 하는 포부로 읽힌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것은 그가 개념화한 ‘문화비평’이라는 장르 자체가 지닌 태생적 한계일 수도 있다. 그의 정의에 따르면, 문화비평의 목적은 ‘사회적인 현상을 통해 사람들을 그렇게 움직이게끔 만드는 구조를 포착해내‘는 일이다. 그리고 실제로 문화비평 영역을 처음으로 개척한 신칸트학파, 베버, 짐멜, 벤야민 등의 인물들은 다양한 사회현상에서 ‘모더니티’라는 단 하나의 주제를 읽어내고 여기에 천착한 것 또한 사실이다. 그가 무의식 중에(혹은 드러내놓고) 이런 학자들의 태도를 따라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나, 다양한 사회현상에 대한 분석, ‘지금 여기에 대한 비평’이라는 광고문구를 달아놓았지만 사실 그가 내리는 결론은 거의 모든 글에서 똑같다. 그래서, 그가 지어놓은 틀의 적절함보다는 오히려 반복의 지겨움이 더 크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는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그가 제기한 분석의 과정이나 결과가 아니가 그가 선정한 여러 가지 사건 자체들일 것이다. 사소하지만 중요한 것들, 그리고 실제로 내 곁을 스쳐 지나갔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잊혀진 사건들, 이 책은 그 모든 것들에 대한 복각이다. 시류에 대한 비평을 실은 책들이 대개 이런 의미를 지니게 마련이지만, 이 책은 조금 남다른 데가 있다. 그의 관심분야가 넓어서인지, 아니면 그만큼 한국에서 많은 사건들이 있어서인지, 그는 거의 모든 사건과 사고들에 대해서 분석의 틀을 들이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게는 지금까지 있었던 여러 가지 사건들을 시대순, 의미순으로 차분하게 되짚어보는 데 더 큰 도움을 준 책이었다.

덧댐1. 딱 하나, 정말 인상깊게 남은 꼭지가 하나 있다. 예전에 개그콘서트에서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었던 코너인 ‘마빡이’가 어떻게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가. 그는 이것을 무의미한 노동이라는 개념과 연결지어서 설명하고 있는데, 이것만큼은 책을 덮고 난 다음에도 머릿속에 웃음과 감동으로 내내 남았다. 실제 개그콘서트의 마빡이보다는, 오히려 그가 쓴 마빡이에 대한 분석에 난 더 크고 즐겁게 웃었다.

덧댐2. 334페이지 각주 번호가 어긋났고, 357페이지 개그콘'스'트라고 인쇄된 부분이 있습니다. 특히 마빡이 부분을 참 재미있게 보고있는데 콘'스'트라고 적혀있어서 김이 좀 샜네요. 다음 쇄에서는 아마 고쳐졌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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