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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 버트런드 러셀의 실천적 삶, 시대의 기록
버트런드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박병철 해설 / 비아북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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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지난 달 알라딘 독자 신간평가단이 선정한 인문/사회/과학분야 주목할만한 도서이다. 이 책이 선정된 이유는 일단 이 책의 지은이인 버트런드 러셀이 글을 매우 시원하고 잘 쓰는 작가일 뿐 아니라, 각각의 주제들에 대해서 아주 논리적이고 핵심만 간결하게 기록하기로 워낙 유명한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여러 에세이집들이 번역된 데 이어서, 영어로 『Bertland Russell's Best』라는 제목이 붙어있는 이 책도 번역이 되어 나왔다. 많은 독자들, 그리고 나조차도 말 그대로 'best'일 것이라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완전히 속았다. 이 글은 best도 아니고, 그냥 아무것도 아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이다. 아무런 고려없이 러셀의 글을 마음대로 재단질해서, 마치 잠언집을 보는마냥 형편없이 편집해놓았기 때문이다. 러셀이 이 책의 원고를 직접 보고, 수정을 봐주고, 서문을 써주었다는 것 자체가 정말 이해가 안될 지경이다. 일말의 이해를 할 수 있는 실마리가 있다면, 러셀 본인만은 각각의 단편이 어떤 의미로 쓰여진 조각글인지 다 이해할 수 있고, 그래서 이 정도만 인용해도 그 뜻이 온전히 전달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거라는 정도다. 이것도 아주 많이 이해한 것이다. 러셀을 접한 이래로 그에 대해 이렇게 분노한 것은 처음이다……. 

  이 책이 화가 나는 이유는, 위에서 내가 추측한 러셀이 이 책을 별 생각없이 출판할 수 있게 한 이유와 정확하게 반대이다. 러셀이 아닌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여기에 등장하는 각각의 조각글이 어떤 맥락에서 어떤 의도로 쓰인 것인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서유럽 사람의 입장에서 쓴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대한 비하가 가감없이 수록되어 있기도 하고, 지금은 폐기된지 오래인 행동주의 심리학에 기반한 사회개혁 프로그램에 대해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글도 보인다. 같은 글에서 인용했다고 하는데, 전혀 연결이 되지 않는 두 단편이 나란히 이어서 쓰여있기도 하다. 대체 이것을 어떻게 바라보아야할까? 

  그의 글은 이런 식으로 뽑아내어 읽었을 때 그 정확한 의미를 전혀 파악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는다. 그는 기본적으로 논리학자이며, 문장과 문장, 문단과 문단 사이의 연관이 매우 높은 편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글의 논지 전개를 따라가야만, 그가 실제로 하려는 주장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근거가 어떻게 그 주장을 받쳐주는지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가 글에서 자주 쓰는 (그의 체험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이는) 다양한 비유들도, 글 전체와 아주 짙은 관계를 맺고 있다. 다시 말해, 그의 비유는 단순히 수사적 전략에 그치지 않고 아주 강한 논리적 연결고리를 전제하고 쓰인다. 

  그나마 그가 일관되게 논리적으로 비판하는 종교에 대한 부분은 그 뜻이 살아있는 편이다. 그것은 논리적 완결성을 결여한 종교의 교리와 도그마에 대한 철학적 비판, 그리고 그의 대표적인 에세이집 가운데 하나인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에서 보여주는 종교의 여러가지 사회적인 해악에 대한 지적들이 많이 알려져있기 때문에 그나마 쉽게 이해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주제에 대한 조각글들은, 특히나 결혼(성)과 윤리, 도덕에 대한 단편들의 경우 이런 난점은 더욱 두드러진다. 이미 번역되어 나오기도 한, 같은 주제에 대한 다른 에세이들은 명쾌하고 직접적으로 서술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는 이러한 러셀의 글의 참맛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으로 러셀을 읽으려 시도하는 것은, 그 자체로 완전히 실패하는 것이다. 러셀의 노벨상 수상 소감문, 그리고 이 책이 주로 인용하지만 한국에는 아직 번역되지 않은 많은 에세이들이 차라리 편집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실려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너무 많이 남는다. 러셀의 글이 어떤지 알아보고 싶다면, 차라리 에세이집이 완전히 번역되어 나온 다른 책들, 예를 들면 『행복의 정복』, 『우리는 합리적 사고를 포기했는가』같은 책이 훨씬 낫다. 나는 주로 사회적인 주제들에 대한 에세이가 실려있는 『게으름에 대한 찬양』을 특히 좋아한다. 이런 책들은 특정한 주제에 편중되어 있어 그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것은 힘들지라도, 그의 글의 특징적인 면이나 성향을 파악하는데는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단 하나, 이 책의 긍정적인 면을 하나 꼽아보자면, 편집자와 해설자가 달아놓은 코멘트들이 다행히도 어느 정도는 이 책의 혼란스러운 면을 다소나마 보완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러셀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기 위해서는, 러셀을 연구한 사람들의 이같은 정리가 약간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의 글과 진짜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역시나 다른 사람들의 코멘트나 2차문헌에 의존하기보다는 원래 저자와 직접 대면하고 책을 통해 대화하는 것이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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