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이 글은 반론이라기 보다는 최근 제기된 작은 견해차들에 대한 해명서에 가까운 것으로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1. 철학사의 미래











   심심찮게, 매우 비슷한 통찰을 보여주는 세계적 지성들을 만나게 되고, 대개 그 때의 감정은 확신과 연대감에 기인하는 반가움이지만, 이 책은 당시 마치 생각을 그냥 통째로 도둑맞은 것처럼 너무나도 똑같은 나머지 당혹감에 압도되어 서평도 작성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 책은 미래 철학사의 (새로운) 방향 전환을 예시하는 매우 중요한 책이자, 내가 이 계열의 지적 작업 전통을 버릴 수 없는 결정적 사유인 동시에, 그래서 여기에 무지하게 되면 기계와 Data, 산업혁명과 Data혁명 등을 단순 이분법으로 대립시키면서 (sub-/post- indivdual quantum(ic)) Data혁명이 단지 채굴[data-mining]기술과 채굴기계혁명에 의존하는 후기산업혁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간파해내지 못하고 역사변동 및 시대전환의 방향들과 scale을 완전히 오독하게 되어 득한 혼란에 빠져버리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그러한 종류의 척도 이론에 해당한다.

Data(산업)혁명을 마치 산업혁명을 대체하는 혁명으로 과대평가하게 되면 다음 위기에 이어질 5차 산업혁명이 생화학기계[1] 혁명으로서의 Bio(-pharmaceutical) revolution이 될 것이라는 사실도 예견은커녕 도저히 설명조차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rf. 

















2. 기업이 주도하는 혁명??  Data 자본주의 Utopia라는 환상 

  ;위로부터의 수동(사회)혁명의 본질 대 아래로부터의 주체적 근원혁명의 관계






























O'NEIL, Cathy('2016). Weapons of Math Destruction: How Big Data Increases Inequality and Threatens Democracy. NY: Crown Publishing Group;

>국역: 김정혜 ('2017) [[대량살상수학무기 :어떻게 빅데이터는 불평등을 확산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가]] 흐름출판;


SHAFFER, Kris ('2019). Data versus Democracy How Big Data Algorithms Shape Opinions and Alter the Course of History. Apress;

>국역: 김선 ('2020) [[데이터, 민주주의를 조작하다 :빅데이터 알고리즘은 어떻게 여론을 만들고 역사의 경로를 바꾸는가]] 서울: 힐데와소피;




3. 객체지향에 관한 오독들

  ; 오직 사소설만이 존재할 이 신물나는 개인주의 시대에 맞서기 



66

어떤 식으로 자연의 문제가 정신 안에서 해소되는지 설명하는 자연철학과 어떤 식으로 정신의 문제가 자연 안에서 해소되는지 설명하는 초월적 철학은 분명히 상반된 과제를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일한 체계를 구축하며, 이 체계를 바탕으로 ‘보이는 정신’인 자연과 ‘보이지 않는 자연’인 정신이 ‘하나의 전체hen kai pan’로 통합된다. 이것이 바로 셸링의 몇 안 되는 완성작 가운데 최고의 걸작으로 간주되는 『초월적 관념주의[2] 체계System des transcendentalen Idealismus』(1800년)의 핵심 내용이다.

이 저서에서 셸링은 정신의 진화사에 관한 생각을 발전시켰다. 이를 모형으로 구축된 것이 바로 헤겔의 변증법이다. 셸링에 따르면 정신은 필연적으로 무의식 상태에서 일종의 ‘외부 세계’로 객관화되며 이 객관화 과정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서야 완성된 자의식의 형태를 갖추게 된다. 이 ‘자아’의 역사를 지배하는 것은 자연철학에서 유래하는 대조의 메커니즘, 즉 무한하고 무의식적인 원심 활동과 자의식 및 유한한 세계를 생산해 내는 제한적이고 의식적인 구심 활동 사이의 상응관계다.

99[3]


이상의 서술이 극명하게 보여주는 바와 같이 Schelling-Hegel에서 만개한 독일 관념론 철학 전통의 합리적 핵심을 전복적으로 계승한 Marxism은 당연히 자연과 정신, 객체와 주체의 통일을 넘어 그 형이상학적 이분법 자체를 지양하고자 한다.

그러나 당면한 시대적 문제의 핵심 중 하나는 자유(지상)주의 지배체제의 결과로 '너 자신'[4] 이외에는 그 어떤 존재나 가치, 문제에도 전혀 관심 없는 이 저주스런 세계의 풍경이다. 따라서 시대 전환을 만들어 내기 위해 불가피한 과도기의 사상적 구호로, 세계-내적-존재로서의 주체가 녹아 있는, '통일적 세계구성체로서 객체'를 지향하는 '객체지향철학'(으로의 대주제 변경)이 요청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5]    






4. 다시, Sokrates에 대하여


당시 제출한 반론은 먼저 모든 문제상황(의 원인)을 오직 개인만의 통제불가능한 내적 충동과 욕동의 반복에 의해 설명하려는 방법론에 반대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특히 Sokrates의 경우 당대 최고의 자기통제적 지성 중 하나로 그의 행적은 당시 주어진 사회정치적 상황에 대한 의식적 인지 분석과 대응으로서 개입의 결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대안적 방법론에 기반한 것이었다. 이것은 붕괴 직전의 연속위기 속에서 (상대주의적) 궤변론 진영이 장악해 중우정치[6]로 타락해버린 민주정파와 이에 도전하는 비판적 귀족주의 참주/과두정파[7] 간의 대립이라는 당대의 사회정치적 핵심모순을 무시하고서는 그의 기괴한 행적들이 전혀 이해될 수가 없다는 관점의 분석틀인 것이다. 이 관점에 입각하면, Sokrates의 죽음은 제자들이 주도했던 coup d'etat와 재발 위험에 공포를 느낀 민주정파들에 의해 그 배후[ 뿌리]로 지목됨으로써 제자들을 위해서라도 궁극적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음이 그야말로 명약관화하다. 


이미 처음 반론을 제출했을 당시부터 이것은 너무나 명확히 현시된 사실이었고 이를 포함한 전모를 밝힐까 했으나, 별로 난해한 관점도 아니고 많은 분들이 조금만 들여다 보면 곧 아시게 될 문제라 생각된 데다, 고백하건대 그 오래전부터 일일이 모든 것을 적기가 매우 귀찮아지기도 했던 터라 실행에까지 옮기지는 못 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이후 사회적으로 Sokrates에 대한 많은 관심과 의문, 논의가 일어나는 것을 목도하다 이제 다시 촛점이 모아진 계제에 결국 마무리를 지어야 하겠기에 마음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그런데 기나긴 서술을 이어 나가야 할 바로 그 찰나에 마침 완전히 동일한 관점으로 정리된 기존 논의가 발견되어 이하 인용으로 대체키로 한다.


66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기원전 404년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배한 후에 위기를 맞이했다. 전쟁에서 많은 피를 흘린 것은 물론이고, 전쟁이 끝나자 스파르타의 조종을 받는 30인 참주정이 세워지면서 또다시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했다. 또한 소크라테스의 재판이 열리기 2년 전, 30인 참주 독재의 끔찍한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아테네에서는 쿠데타가 일어났다.


소크라테스는 이 쿠데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여겨졌다. 반역의 주역들이 대부분 소크라테스와 가까운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스파르타 편에 서서 아테네를 배신했던 [Sokrates의 젊은 연인] 알키비아데스와, 30인 참주정의 지도자였고 쿠데타의 주범인 크리티아스와 카르미데스는 모두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다.


소크라테스는 이 부유한 귀족 청년들과 어울려 다니며 대화를 나누곤 했다. 이 청년들은 민주주의를 별로 탐탁하지 않게 여겼다. 이는 다분히 소크라테스의 영향이었다고 볼 수 있다. 소크라테스가 보기에 다수의 어리석은 사람들을 따르는 민주주의보다는 현명하고 정의로운 탁월한 통치자가 지배하는 사회가 더 완벽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아테네의 시민들 입장에서는 청년들에게 그러한 영향을 미친 소크라테스는 민주주의에 가장 중대한 위협이 되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결국 소크라테스에 대한 사형 선고는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유지하고자 하는 정치적인 판단이 근저에 깔려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시의 재판은 제비뽑기로 추첨된 배심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 재판에 501명의 시민 재판관이 참여했는데, 이 정도의 숫자면 당시 얼마 되지 않았던 아테네 시민의 숫자와 비교해볼 때 시민의 의사가 반영된 것이라고 해도 전혀 무리가 없을 것이다.


501명의 시민 재판관들은 280 대 221로 소크라테스에게 유죄판결을 내렸고, 형량에 관한 두 번째 표결에서는 더욱 압도적인 표차인 360 대 140으로 사형을 선고했다. 아테네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으로 보였던 소크라테스를 용인할 수 없었던 것이다.

99[8]




그런데, 당시 이러한 취지의 반론을 본격 제기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Sokrates가 어찌 되었든 그동안 자신이 뱉어 온 수많은 '말'들을 지키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탈출도 거부한 채 차라리 자살에 가까운 죽음을 향해 걸어갔던 데 반해, 그에 관해 여러 궤변을 늘어놓은 한 사람은 순수하고 무구한 의도의 단순이견일 뿐임을 강조했음에도, 약간의 비판이 들어오자마자, 그간 자신이 청년들을 유혹하기 위해 그토록 쏟아 놓았던 중요한 말들을 (바로 직전 것까지) 곧바로 손바닥 뒤집듯 뒤엎으며 모욕을 포함한 정반대의 비윤리적 언행들을 거침없이 행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그 '말'들을 실제로 지켜가기 위한 어떠한 실질적 노력도 전혀 없다는 점에서 그에게 그것은 단지 일신의 생계를 위한 달콤하고 얄팍한 유혹의 수단에 불과할 뿐이라는 강렬한 진실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더욱이 기가 막힌 것은 이후 1년이 넘어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이익 보호를 위해 바로 다음날 있었던 강연에서도, 임상교육도 전혀 받지 않은 그가 임상윤리의 철칙까지 유린해 가면서 강연 내내 청중들을 세뇌시키기 위해 십여 차례가 넘도록 Sokrates를 멋대로 재단한 것보다도 훨씬 못한 방식으로, 그야말로 분석이나 깊이는커녕 그 어떤 근거도 뭣도 없이 다짜고짜 환자로 몰기 위한 공허한 규정과 선언 행위들을 반복 자행했다는 사실이다.

이또한 그가 역설해 온 정상과 비정상의 전복, 환자에 대한 옹호와 정당화 논리들을 정면으로 뒤엎는 또 다른 파렴치의 추가된 일례일 뿐이다.


겸허히 성찰하건대, 그의 제자와 독자들은 이런 점들을 각별히 유의해야 하며, 우리 둘은 목숨을 걸고 치열한 자성을 통하여 더욱 맹진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9]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X. 

여기서 생산되는 글들은 직접 통신이 어려운 산포한 여러 신/구 좌파들, 특히 (범)Marxist 동지들께 드리는 진정 어린 보고서이자, 정책 기획-제안서들로 의도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변혁적 실천에는 전혀 관심 없고 심지어 내용이나 논의 자체에도 별 관심 없는, '아님 말고' 식의 극히 무책임한 호사가들과 사찰단들만 꼬여 들고 있어 글쓰기가 점점 더 역겨워지고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투명한 문장 의도까지 마음대로 왜곡하고, 목적 대상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그런 분들은 제발 관심을 좀 꺼 주셔도 좋겠다는 강력한 당부 말씀을 다시 한번 드리는 바입니다.










SS.


악법에 의해 그간 불거져 온 보안문제에 대하여 정면돌파와 측면돌파 양안 사이에서 고민하다 일단 측면돌파를 선택하고 이미 보안계정이긴 하나 가일층 강화된 보안을 위해 이곳은 일단, 이 쯤에서 폐쇄키로 합니다.





떠나기에 앞서...


한 물리학자께서 제기하신 예측가능성 문제에 대하여는 이미 충분한 답변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전혀 이해 못한 채 증명을 못 했다고 아직도 분위기만으로 착각하고 있는 심각한 문송이 분이 어제 발견되어 이에 대해 해당 문서에서 상술하고 싶지만 기회가 더 있을지 몰라 그냥 여기서 잠깐 약술하는 것으로 갈음코자 합니다.

예측에 있어서는 거시 vs 미시 관계가 매우 중요하며, 이것은 기후모형을 예로 들면 계절과 일기[日氣; 일일기상]의 관계와 같아서 일일기상을 정밀하게 예측하는 것은 극도의 초기조건 민감성에 지배되지만, 계절변화에 따른 변동 대역(/)폭 등의 추세 예측은 전혀 다른 차원의 system이기에 상당히 정확한 예측이 가능하고, 일일기상 같은 미시data 복잡계도 주장하신 것처럼 예측이 보편적으로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그 때 강조드린 근원변수와 이들을 타고 하향하여 실사해야만 하는 심층구조 분석의 중요성이란 이러한 총-기후계에 있어서는 목표 국소계 상의 일조량과 태양광 energy의 (누적) 총량이 근원변수에 해당하고, 구조실사 이전에는 절대 상상할 수 없었던 지구 자전축 기울기 같은 배후에 숨어 이 모든 변동을 시초 규정하는 숨은 매개변수들의 존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기울기에 의한 단위(지표)면적 당 입사광량[광속]이 경제순환 sysytem에서는 이윤률과 그 확장/파생변수로서의 Piketty지수(군)[10]에 해당하고 이 수치의 시계열 통계자료가, 반복되는 (pattern의) 많은 역사 사건 변동들과 가장 높은 상관계수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너무 빠른 답변으로 이후 동어반복적 방송들이 계속되는 바람에 더 증폭된 듯한) 일각의 오해와는 달리, 말씀드린 바처럼 "충분한 답변"이 이미 애초에 주어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문송이 분이 더 한심했던 이유는 일반상대론적 예측의 증명방법을 생각해 내고, 실제 증명을 실행한 것도 Einstein 본인이 아니고, 오히려 이것이 과학 발전의 일반적 (작업)방식인데, 제출된 타당성과 개연성 높은 생산적 이론이나 가설, 예측에 대하여 발전과 보완을 위한 사회적 협력이라는 방향의 사고는 전혀 못 한 채 알만한 분이 시비 걸듯 "증명해 봐" 같은 태도만을 풍긴다는 것이었습니다.

동일 맥락에서, 당시 과학을 존중하는 태도에 입각해 상찬만을 하였으나 냉엄하게 돌아보면, 애초의 예측가능성 문제 제기 자체가 그리 엄밀한 과학정신으로만 이루어졌다고도 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할 것입니다. 제기 내용도 그렇고 진술 방식도 상당히 수사(학)적이었으며, 직접 반증은 전혀 없고, '많은 경우에서 예측이 쉽지 않다'는 일반적 진술의 변주와 예시 열거들만이 반복되는 전형적 환유 뿐이었다 사료되고 또한 그 의도에 있어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은 영롱한 과학정신과는 다른 정치경제적 목적이 느껴지기에 상기한 협력적 태도가 더 아쉽습니다.)






마지막으로 그간 일정 쪼개 잠깐씩 갈겨 쓰느라 항상 느슨한 졸고였던 글들에 관심 가져 주신 많은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이만 작별인사를 고합니다.

  
















[각주]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 전태일 열사는 우리의 영원한 사표이자 진정한 영혼의 스승입니다.

이 철학적 '기계' 개념은 스승의 유훈 선언과는 다른 것이지만, 어떤 우려들 하고 계시는지는 잘 알기에 그러한 염려조차 완벽히 일소할 수 있는 철학적 방안을 반드시 찾아내도록 최선을 다해 나가겠다는 약속을 올립니다.




[2] 초험적 관념론



[3]

¶ GRIFFERO, Tonino Bernardo('2012). 'Friedrich Wilhelm Joseph [von] Schelling

@ ECOUmberto (a cura di). Storia dell’età moderna e contemporanea.  Gruppo Editoriale l’Espresso. vol11;

@ ECO, Umberto et al. Storia Della Filosofia;

>국역: 윤병언 ('2020:53).



rf.

  Schelling은 Hegel의 사상적 직계가족으로서 뿐만 아니라, Max WEBER가 [[종교사회학Gesammelte Aufsätze zur Religionssoziologie]]에서 Bougeoisie적 근대(성)의 주요 지표 중 하나로 본격 개념화하고 따라서 혁명적 현대 Mao주의 문화(혁명)이론[11]에서 핵심 공격 목표의 하나로 설정된 '탈주술화[脫呪術化;Entzauberung]'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인물이기도 하기 때문에 여러가지로 중요성을 가지며, 

  Griffero는 Italia를 대표하는 독일철학, 미학 연구자이자 Schelling 전공자로서 주목할 가치가 있기에 이하 동저자의 조사된 관련 주제 저작 목록을 공유키로 함. 



직접주제 단행본

(1994) Senso e immagine. Simbolo e mito nel primo Schelling, Guerini, Milano

(1995) Cosmo Arte Natura. Itinerari schellinghiani, "Pratica Filosofica 9", Cuem, Milano

(1996) L’estetica di Schelling, Laterza, Roma-Bari

(2000) Oetinger e Schelling. Teosofia e realismo biblico alle origini dell’idealismo tedesco, Nike, Segrate (Milano)



직접주제 논고

('1992) Schelling: filosofo della mitologia (with F.C.), ≪Informazione filosofica≫, 7, may, 39-42

('1993) L'≪immagine in quanto immagine≫. La pittura nella filosofia dell'identita di Schelling, ≪Rivista di estetica≫, XXXIII, nn. 44-45, 24-51

('1994) ≪Misteri≫ della filosofia nel giovane Schelling, in Filosofia '93, ed. by G. Vattimo, Laterza, Roma-Bari, 95-119

('1994) Intuizione intellettuale e intuizione estetica. Theoria e visio beatifica nel primo Schelling, ≪Paradosso≫, 9, 59-82

('1995) Paradossi del theatrum mundi nel giovane Schelling, ≪Bollettino A.I.S.E.≫, III, n. 4, 18-20

('1995) La coscienza postuma. Immediatezza e autoriflessivita dell'autocoscienza nel pensiero del primo Schelling, ≪aut aut≫, nn. 267-268, 125-160

('1995) Essentification. Escatologia e Geistleiblichkeit nello Schelling intermedio, in G. Carchia e M. Ferraris (edd.), Interpretazione ed emancipazione. Studi in onore di G. Vattimo, Cortina, Milano, 11-33

('1995) Perche l’arte e non, piuttosto, la filosofia? In margine alla prima ≪estetica≫ di Schelling, in G. Vattimo (ed.), Filosofia '95, Laterza, Roma-Bari, 119-140 (spanish transl., ¿Por que el arte y no, mas bien, la filosofia? Notas marginales a la primera "estetica" de Schelling, in G. Vattimo, compilador, Filosofia y poesia: dos aproximaciones a la verdad, Gedisa, 1999)

('1996) Signatura siderum. Pianeti e comete nella filosofia dell'identita di Schelling, in La natura tra Oriente e Occidente, Atti del Convegno Nazionale A.I.S.E, Trento 11-12 aprile 1994, ed. by R. Troncon, Luni Ed., Milano, 277-294

('1996) Mathesis universalis. Costruzionismo e metodo assoluto in Schelling, ≪Rivista di estetica≫, XXXVI, n.s. 1-2, 103-136

('1998) Introduzione. Identita di essere e significato: la mitologia come processo teogonico della coscienza, in F.W.J. Schelling, Filosofia della mitologia. Introduzione storico-critica, ed. by T. Griffero, Guerini, Milano, 11-66

('2000) Grund ed Existenz. Classicita e melanconia alla luce della “Teoria dei principi” di Schelling, in C. Tatasciore (ed.), Dalla materia alla coscienza. Studi su Schelling in ricordo di Giuseppe Semerari, Guerini e Associati, Milano, 238-272

('2001) Clef de voute et chef-d’?uvre. Esthetique et philosophie de l’art dans le Systeme de l’idealisme transcendental, in A. Roux-M. Veto (ed.), Schelling et l’elan du Systeme de l’idealisme transcendental, L’Harmattan, Paris-Montreal-Budapest-Torino, 153-174

('2003) Essere senza poter essere. Spunti ontologici nell’ultimo Schelling, ≪Rivista di estetica≫, n.s., 22, XLIII, 71-84

('2003) Presentazione, in F. W. J. Schelling, Le arti figurative e la natura, ed. by T. Griffero, Aesthetica Edizioni, Palermo, 7-30.

('2004) “Wie die Alten sagen…”. Bemerkungen zum Verhaltnis von Schelling zu Oetinger, in R. Adolphi/J. Jantzen (hrsg.), Das Antike Denken in der Philosophie Schellings, Frommann-Holzboog, Stuttgart-Bad Cannstatt, pp. 497-519.

('2005) Un ≪segreto pubblico≫. Schelling e l’idea di proprieta intellettuale, in F. Vigano (a cura di), La natura osservata e compresa. Saggi in memoria di Francesco Moiso, Guerini e Associati 2005, Milano, pp. 54-86.



간접주제 논고

(2012) Arte e verita, in U. Eco (a cura di), Storia dell’eta moderna e contemporanea, Gruppo Editoriale l’Espresso, vol. 11, pp. 90-97



직접주제 편집저작

(1998) F.W.J. Schelling, Filosofia della mitologia. Introduzione storico-critica, ed. by T. Griffero, Guerini, Milano

(2003) F. W. J. Schelling, Le arti figurative e la natura, ed. by T. Griffero, Aesthetica, Palermo



[4] ☞[14] P.S.


[5] ☞[13]


[6] 衆愚政治, 현대 Greek: χλοκρατία=okhlokratía, 영어: ochlocracy


[7] 이 진영의 정치체 대안에 대한 평가와 형식적 단계론에 대한 회의를 반영한 규정임.


[8] ¶ http://www.redian.org/archive/26197


[9] ☞[12] P.S.


[10] Piketty 체계는 그 연역적 구조에 있어(서는) 결국 Marx 체계, 특히 이윤률 개념으로부터 제2 기본법칙을 거쳐 자본 대 (총)소득 (비교) 관계를 지시해 주는 지수군들의 개발과 이 지수들의 (귀납(/)통계적) 관측 관계를 표현하는 제1 기본법칙을 향해 수립되어 나아간 것으로 요약되기 때문에 제1 법칙이 명시하는 바와 같이 자본수익률γ가 역사적으로 큰 변동이 없는 (실증)조건에서는 자산(자본):소득비β가 함수 α[자산소득분배율]를 포함한 주요 경제(system) 지표들을 결정하는 원인변수가 된다. 그러므로 β를 정의하는 수식인 제2 기본법칙이 Piketty 체계에서의 핵심 중 핵심에 해당하고, Marx 체계로부터 Piketty 체계로 확장하는 디딤돌로서의 제2 기본법칙이란 결국 이윤률 변동에 대한 자본의 대응(전략)으로서 금융 중심 자산화를 통한 금융 (및) 독점 자본주의 지대 (추구) 경제로의 전환 정도를 수학적으로 포착해 내기 위한 매우 '근사적'인 방편이었기 때문에 이윤률 곡선의 inversion 형태를 띄는 것이며, 그래서 Piketty 체계에서 (유사)근원변수로 등극할 수 있었던 것이다.

즉, 세속적 주류경제학 체계에서는 통상 g값이 이윤률을 (간접) 표현하고, 여기서 s값은 금융화 정도를 추출해 보여주는 sampling 지표, 표본값으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동원된 여러 개념들이나 방법론적 엄밀성에 있어서 다소 문제가 있을 수는 있어도 본질적 논리구조 상에서는 궁극적 이단 관계라기보다 확장적 응용 관계로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애초엔 제도(/)개혁주의자로서 순진한 기대를 품고 매우 '합리적'인 조세 개혁 방안을 제안했다 그조차 전혀 받아들여질 기미도 보여주지 않는 체제의 완고한 보수성을 깨닫고 후속작에서 정치의 불가분한 연계성을 중요하게 역설하며 급진화하고 있기 때문에 지나치게 그를 비판이나 경쟁 상대로만 여겼던 일부 Marxist (경제학) 분파의 초기 대응은 재검토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여기서 쓰인 '이단 관계'란 용어에 대하여 간혹 일부 종교계의 image를 떠올리는 분들도 계시던데, 이 맥락은 현대 France 철학에서 온 것으로, 이단(점)이란 Gaston BACHELARD적 과학사학 전통 상의 '인식론적 단절'에서 유래한 분절, 절단(점)과 유의어이며, 반대 의미의 접합(점)과 함께 '절합' 개념을 형성하는 하위 요소의 변용이므로 굳이 불필요한 우려나 걱정을 갖지 않으셔도 좋을 것임. (간혹 절합과 동의어로 '이접'이 사용되기도 하나 이는 논리학적 빈용어인 'disjuction[Le.]/disjonction[Lfr.]'과 혼동을 초래하므로 주의를 요함.)



[이후 (Marxism 전통에서의) '이단' 개념과 관련하여 수려한 논변이 발견되어 여기에 추기함.

66 

한국에서 알튀세르 전유는감히 말하자면알튀세르가 스피노자에 대해 말했던 바를 상기시킨다. “만약 스피노자가 이 세상에 출현한 이단이 남긴 가장 위대한 교훈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면이단적 스피노자주의가 되는 것은 거의 정통 스피노자주의인 것이다![Louis Althusser, “Éléments d’autocritique”, in Solitude de Machiavel, p. 182.] 우리는 비슷한 방식으로이단적 알튀세리언이 되는 것은 알튀세르 사상 자체의 일부라고 말할 수 있다.[따라서 알튀세르 같은 철학자에 대해 적용” 운운 하는 것은알튀세르가 어떤 유형의 이론가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그것이 마키아벨리가 됐든 스피노자가 됐든아니면 바슐라르나 캉길렘 또는 프로이트나 라캉이 됐든아니면 레닌이나 마오심지어 마르크스 자신이 됐든 간에알튀세르는 자신이 활용하는 사상가들의 사상을 비틀고 때로는 뒤집어서 활용한다이처럼 이단적인 방식으로 그들을 활용하면서도알튀세르는 그 사상들에 관해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진리 효과를 산출한다그에게는 그것이 그 사상가들에 대한 충실성을 지키는 유일한 방식이다.] 그리고 한국의 경우가 바로 그랬다이는, 1980년대 말과 90년대 초 마르크스주의의 몰락이 거의 모든 사람에게 불가피한 것으로 비쳤을 때 PD의 알튀세리언들이 수동적으로 세계사의 흐름을 추종하지 않고오히려 역설적이게도 1970년대 말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를 선언했던 알튀세르의 저술에 의지하여 마르크스주의의 현재성을 입증할 수 있는 길을 추구했으며나중에는 한국의 국민적 역사의 시간 속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전화할 수 있는 길을 필사적으로 모색하려고 했다는 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그리고 바로 이러한 상상적인...막대 구부리기’ 덕분에 알튀세르는 상아탑 속에만 현존하는 서방 마르크스주의자들’ 가운데 한 사람 또는 현대 프랑스 철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는 데 그치지 않고, 1980년대 이후 한국 인문사회과학 및 사회운동 속에 깊이 지속되어온 정치적지적 효과의 부재하는 중심이 될 수 있었다.

99

¶ 진태원('2020). '필연적이지만 불가능한: 한국에서 알튀세르 효과'@{황해문화}no.108 '2020가을호. 새얼문화재단 간. p238.]

]




참고로 3체 문제 불능 증명을 통해 태양계 안정성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태양계도 chaos system이라는 사실을 암시한 등의 업적으로 chaos 이론의 아버지로 불리는 Poincaré의 반론을 최대한 고려하더라도, (초기 조건들에 대한) 거시계와 미시계의 민감성 임계/역치는 단순히 공간지리적 규모에서뿐만 아니라, (병진)운동에서의 관성량인 질량과 특히 시간 단위에서도 그 scale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北京에서의 나비 한 마리 날갯짓이나, 심지어 수백 수천 번의 핵폭발(/)실험을 하더라도 인간의 인식 가능 범위 내 시간 단위에서 지구가 궤도에서 이탈하는 등의 일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또한 거시 system의 경우 (초기) 조건 변수의 수치가 작을수록 발생빈도가 급격하게 많아져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상쇄 효과와, 거시계 특유의 자기조절 효과 창발 등등도 반드시 고려되어야만 할 요소이다.)


 





[11] 막다른 골목에 몰려 정체에 빠진 문화연구 진영(/)Group들은 바로 이 방향에서 광활한 새 활로의 착상을 찾아 보아야만 할 것이다.


(여기서 Mao주의는, 물론 전고에서와 마찬가지로 당연히 Mao를 전적으로 숭배하는 교조주의나 그 체제 자체, 특히 현재의 중국 체제에 대한 평가 논의와는 전혀 아무런 관련이 없(고 현재 지금 여기의 문제상황을 돌파해 나가기 위한 정신적, 이론적 도구 자원으로서 활용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12] P.S.

이후, 사회적으로 쟁점이 된 이 문제에 대하여 한 선생께서, 근거가 수반되진 않았지만 그 이름과 얼굴을 걸고 지상파 전국 방송에서 이견을 제기하셨기 때문에 존중과 예우의 의미로 일단은 열린 문제로 남겨두기로 하겠습니다.

(

그러나 양 계열의 해석차는 본질적으로 Text 표면에 천착하는 (내재적) 하등비평Lower Criticism과 Text 이면을 관통해 토대와 조건의 Context를 위주로 읽어내려는 (초월적) 고등비평Higher Criticism 간 관계, 특히 방법론 상 근거자료 우선순위에 대한 차이로부터 비롯하는 것으로 Text 표면에 이런 맥락들이 (명시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Sokrates 본인이 정치 문제에 직접 관여하거나 정치적 주장을 노골적으로 행하기보다 청년 정치가들의 Mentor나 정신적 지주로서, ('진리의 정치'로 필연 귀결될) 진리론을 중심으로 하는 추상적 철학 및 이념적 지향을 주로 제공한 그야말로 사상적 뿌리에 해당하는 관계였기 때문으로 보이며, 후자의 해석은 무수한 논자들에 의해 지지되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더욱이 전자적 해석의 최대 난제는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도덕군자들은 항상 존재해 왔고 세속화, 속물화된 욕망의 노예라는 성격에서 당시보다 결코 뒤지지 않을 자본주의 말기인 현재의, 성철이나 법정과 유사한 존재로 상정되는 그 해석에서 왜 유독 Sokrates만이 이런 이유만으로 극형에 처해졌다는 것인지 납득시키기가 쉽지 않다는 점일 것임을 주지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참고로 후자 계열(의 무수한 논자들)에 속하는 주요 논의로는 같은 방송에서 수 차례 강의하신 바도 있는 박홍규 선생님의 명료하고 선명한 논의나, 미국을 대표하던 치밀한 전설적 급진주의 탐사보도 전문 기자로, 그 자신에 관한 전기도 여러 권 출간되어 있는 Isidor Feinstein STONE을 위시한 다음 자료들을 우선 검토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




그리고 차제에 철저한 학문적 솔직성을 위해 반대 자료들도 모두 공개하면, 애초 문제가 되었던 δαιμόνια[daimonia]에 대한 과잉 주목으로 특징지어지는 특이 해석도 전혀 계통 없는 돌출은 아니고, 한일 모두에서 역시 많은 비판을 받긴 했지만 유명한 柄谷行人 선생이 최초 제출했던 착상들의 기본 Frame에 기대어 그 일부를 postmodernism적으로 과장한 열화본이라 할 수 있으므로 이 문제에 관심있는 분들은 다음도 참조해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13]) 

또한 비록 비판은 많이 받았지만, 柄谷 선생의 일관 해석 중 몇몇 발상은 참고할 만한데, 특히 흥미로운 한 가지는 객체지향철학 계보와 완전히 동일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그 정치적 의의를 서술하고 진정한 철학(의 기원)으로 승인하고 있는 Ionia 자연철학에 관한 다음과 같은 대목들입니다.

66

이오니아의 사상가는 윤리나 인간에 대한 인식을 ‘자연학’의 관점에서 이야기했다. 그것은 인간과 세계를 일관되게 자연(physis)으로 보는 것이다. 그들은 그와 같은 보편적 시점을 처음으로 제기했다. 나는 바로 이런 태도를 ‘자연철학’이라고 부르고 싶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이오니아의 정치(이소노미아)와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99

66

이오니아에서 인간에 대한 사랑은 인간을 노모스가 아니라 피시스[퓌지스]에 의해 보는 태도, 즉 인간을 폴리스, 부족, 씨족, 신분과 같은 구별을 괄호에 넣고서 보는 태도와 분리할 수 없다. 이와 같은 태도를 가져온 것이 이소노미아다. 이소노미아(무지배)는 단순히 개개인이 참정권에 있어 대등하다는 것만이 아니라 좀 더 근본적으로 생산관계에서 지배-피지배의 관계가 부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임금노동이나 노예와 같은 시스템은 인정되지 않는다. 그것들은 피시스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99





[14] P.S. "너 자신을 알라Γνώθι Σεαυτόν."

             ; Frame과 Main Frame, 그리고 Meta인지. 수구반동의 사상적 본질


웬만한 기타 오독들은 그냥 철저히 무시하고 떠나려 하였으나, 정말 알만한 유명인사 행세를 하며 돌아다니는 분 중에 자신의 무지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이 말이 '네 분수를 알고 나대지 말라'는 뜻이라 우겨대는 분들이 계셔서, 보다 못해 이에 대하여는 한마디만 덧붙입니다. 


a. frame

   일단, 특히 기자분들이나 언론계 쪽에서 frame을 무슨 가짜 news 같은 범주와 동일시하는 분들이 많이 계시던데 frame이란 인간 인식의 선험적 조건이자 형식으로서의 인식틀을 의미하며, 따라서 frame의 외부란 있을 수 없고, 다만 눈에 쉽게 띄는 국소적 조각 frame들과, 배후에 숨어 전체를 장악한 채 모두를 포획/세뇌함으로써 결코 보이지도, 의심받지도 않는 Matrix가 되어 버린 거대한 default (/) main frame이 있을 뿐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가짜 news를 파헤친답시고 설치고 있는 바로 당신 자신이 지배체제와 지배질서를 유지하고 정당화하기 위한 가장 거대한 거짓의 세계를 지탱해 온 [나사와 조이개를 움켜쥐고 있는] 가짜 중의 가짜, Smith 요원이 아닌지를 항상 의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b. meta인지

    이 frame들 중에서 세계와 주체의 관계, 특히 사회 내 주체의 위치에 대한 가상적 도식이 바로 ideology입니다.

그런데 위 '인사'들은 이런 일말의 의심도, 자성도 없이 기성/기득권의 main frame과 ideology적 상징(체)계에 매미처럼 찰싹 달라 붙어서 마치 한 몸이라도 된 듯 이 체계를 곧 세계 전체이자 실재 그 자체라 철석 같이 신봉하며, 조금이라도 자기 믿음에 맞지 않게 행동하는 타자를 발견하면, 무조건 그는 이 현실을 '몰라서' 그러는 것이라며 분노에 휩싸여 자기 믿음(/)체계에의 맹종을 강요하느라 울어대기 바쁜 나머지 자기 의심은 꿈에도 해보지 못 하는 노둔한 한계를 보여주고 있을 뿐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수구보수반동이란 바로 이 추호도 자기 자신은 의심해보지 않는 반성적 무능, 반성능력의 부재 이외 다른 그 어떤 것도 아님을 이들은 결코 깨닫지 못 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바로 꼰대 중의 꼰대왕이라는 사실과 그렇게 된 이유조차 끝까지 알아채지 못 한 채 엉뚱하게 fashion이나 humour 같은 사소한 변장술에만 목을 매고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심한 문제의 진원지인 최경영 기자는 여러 심각한 요소가 있어 보이므로 도대체 뭘 어디서 어떻게 확인했다는 것인지 밝히고 책임을 지시기 바랍니다.




____________________



나름 언론개혁 부르짖던 분이라 일단 자정능력 test 기간을 가졌습니다. 


바라는 개혁이 이루어진 세상에서는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조심조심 눈치보며 "부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아직 그간 자신이 한 일의 역사적 의미를 전혀 모르고 계시고, 그걸 알 수 있거나 지금이라도 자정이 가능했던 분이라면 애초에 그런 일을 하지도 않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이 난관에 빠진 이유가 (인사참사에 의한) 조국사태 때문이었다면, 

대한민국 언론사에서 문재인 정부의 언론개혁을 좌초시킨 것은 바로 당신(이 일으킨 나비효과) 때문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언론의 2대 핵심 가치로서의 '정론'과 '윤리'를 완전히 유린하면서 위기 부정론을 가장 열렬히, 가장 저열한 방식으로, 가장 뒤늦게까지 주장하다 심지어 이미 재난재원금까지 풀리고 난 위기의 한복판에서 재출연한 {Journalism Talk Show J}에서조차 "이것은 위기가 아니다"라는 주장을 다시 펼쳐 경제 문외한인 panelist로부터도 핀잔을 들을 정도의 행태를 반복하고 그녀와 함께 Corona19 Pandemic도 별것 아니며 금방 회복하고 원래의 상태로 복귀할 것이라는 둥의 얼토당토 않은 주장들을 계속해 언론개혁세력의 신뢰성에 결정적 의혹과 파열구를 발생시켰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먼저, 민주당 정부에 대하여는 우호적인 입장을 견지해 왔고, 지금도 복잡한 심경으로 지켜보고 있는 분파에 속함을 밝히며 오해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언론개혁 팀의 기본정서

 : 보수언론보다 극심하고 외설/노골적인 천박한 elitism을 가장한 반동적 위계주의.

   이는 진실된 개혁세력이 그 관점과 태도에서만 일시적 실수를 범한 것이라기 보다 정치권력 경쟁을 중심으로 일부 경제 정책에서만 부분적 진보성을 띄면서 지식교육문화 분야에선 극단적 보수반동성을 가진 사이비 개혁세력의 본질이 폭로된 사태로 보아야 합니다.








'210110___________________


1.

문맥을 보면 아시겠지만 원래 진행하려던 문화자본의 욕망과 행동 특성 및 계급적 속성 등등 자세한 추가분석이나 비판은 일단 중단한 (/) 대기 상태입니다.

최근 좌측으로부터 격화된 비판과 지지율 급락으로 위기감에 사로잡힌 일부 민주당(내) 우파 인사들의 본격적 우경화 타개 시도 등으로 급작스럽게 조성된 정세적 고민 때문에 길어진 것이긴 하지만, 그런데 그새 점차 개인의 실수를 넘어 집단적 비호를 통해 조직 전반의 문제로 비화하면서 자칭 개혁언론의 민낯과 밑바닥이 드러나는 점입가경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원래 문제를 제기한 계기도 진중권 교수 등, 이 사건을 그 결과의 진위와 상관 없이 [일부] 소위 '대깨문들의 타정파 제거와 인신공격을 위한 신상털기 시도'로 보는 시각이 있고, 이 시도를 어리석고 섣부르게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적어도 4~5가지의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인데, 이들은 복잡한 문제의 구조나 도대체 뭐가 진짜 문제인지도 전혀 이해를 못 한 채, 애초에 진심어린 사과와 반성, 피해회복과 재발방지 등을 위한 자정조치 정도만 취해도 될 일을 일부 몰지각한 외부 인사가 "잘 버텨라"며 선동을 하는 듯싶더니, 급기야 강 씨는 1일 공장장으로 출연한 program에서 막판에 "한마디만 하겠"다며 "소비자가 원하는 방송입니다. 어느 한사람에 의해....."까지 말하다 잘리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분명히 밝혔듯이 문재인 정부에 대하여는 우호적 입장을 견지해 왔고, "국민"이 간절히 원하는 소중한 과업이므로 망치지 말고 제대로 하라는 고언이자 채찍인데 이 충정을 완전히 곡해하면서 "소비자"나 "국민"이 원하는 방송이므로 무슨 짓을 해도 되고 무슨 말을 해도 면죄되는 거라고 생각하는 인사들이 사태를 정반대 방향의 걷잡을 수 없는 시한폭탄으로 키우고 있습니다. 



그들이 진정으로 정의롭고 윤리적인 개혁 세력인지, 단지 새로운 주류 (/) 권력 밑으로 줄만 바꿔 섰을 뿐 기본적인 자기 정정과 자기 개혁 능력조차 전혀 없는 참칭 세력인지 헷갈리는 많은 분들은 당장 그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하나만 관심 갖고 지켜보셔도 극명한 시금석을 얻게 될 것입니다.




2. frame론 재고


학문적 솔직성 원칙을 위해, 상기 개진된 frame론은 당연히 최근의 결론에 해당하는( 신neo-Kantian계보의 명맥을 잇는 후예들), 특히 post-Althusserian적, Balibarian적 frame론을 전제하고 있는 것임을 숙지하고 읽어 주시기 바라며, 그 이전 논의까지 포함하는 frame론들의 전체 계보 구조를 모두 공개하면 다음과 같음.  



  a. (전기)Althusserian과학주의   유물론적 정신분석 및 해체론, 정동이론

      ↘                                   ↗                                    ↘

  b.        post-Althusserian                                              Balibarian계열 탈해체주의

                                            ↘                                    ↗

  c.                                            postmodernism



a열은 아직 frame의 외부를 견지하고 있었고, b열은 외부를 상정하나 직접 대면/인지의 불가능성을 강조함으로써 인식론적 외부는 부정하는 것이며 따라서 frame 간 평면 관계를 부인하는데 반해, c열은 담론의 물질적 외부를 부정하거나 frame 간 평면 관계를 강조함.


그러므로 a, b열에서 '사실'과 '진실'은 frame에 균열과 파열구를 내는 중요한 경로이자 핵심 수단으로 설정되며 '사실'은 주로 과학적 이성의 종합을 통해 위로부터, '진실'은 무의식과 정동, 대중/민중 등의 경로를 통해 아래로부터 정신분석적 진리 개념과 정동이론, 소수자 위치/관점론 등의 형태로 주어짐.


여기서 중요한 점은 따라서 항상 최소한 이 두 방향으로 동시에 준거/참조점이 주어져야 하는 것이지, 하나가 다른 하나를 대립적으로 배타/배척하거나 억압하는 관계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며, 특히 소위 '전문가'가 욕망과 이해관계로부터 완전히 면제, 해방된 존재가 전혀 아니고 인문사회 분야에서는 더욱더 그러하기 때문에 온전한 과학성을 항상 보증하는 동의어가 절대 될 수 없다는 점으로, 본인의 입장이 이런 모든 점들을 도외시한 'τέχνοκρατία[Tekhnokratia]전문가 독재론'을 비판하는 것일 뿐 '전문가 참조론'을 반대하는 것도 아니므로, 또다시 '전문가'를 외설적으로 강조하는 전략은, {Journalism Talk Show J} season1을 통해 기자 계층 자신을 포함한 여타 주체들의 강력한 감정적 저항을 불러 일으키는 역효과를 수반할 뿐 아니라 그 자체로 언제나 과학적 진리일 수도 없다는 것이 스스로 충분히 입증되면서, 중도하차 등을 포함한 파산 과정을 이미 겪을 만큼 겪었기 때문에, 이를 반복하는 것이 결코 현명한 선택이 될 수 없고 반동적 퇴행에 불과하다 아니할 수 없으며, 차후 상황에 따라 문화자본 분석론을 통해 상술될 수 있음. 


(이 외에도 전문가 독재론의 폐해 중 하나는 그 어떤 분야의 전문가도 자기 영역에서 한 발자국만 벗어나면 모두 곧바로 대중으로 복귀하게 되는 것이 현실인데, 이 사이에 존재론 상의 고정불변한 절대적 격차를 공상하면서, 한 분야 전문가에게 영원한 특권적 작위를 부여하고 모든 분야에 대한 독점적 발언의 전권을 허용하는 인식론적 착오로 여기에서 수많은 치명적 오류가 발생하며 전문가들의 세계란 사실 항상적 논쟁 상태이기 때문에, 이에 무지한,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식의 초등 교내 방송 동아리를 연상시키는, "전문가들은!", "전문가들에 의하면!"만 강조하며 전혀 상관없는 분야 종사자들을 뭉개고 퉁쳐서 뭉뚱그리는 얄팍한 조작적 포장 방식 보도보다 여론조사 인용과 마찬가지로 정확한 취재원과 출처를 명시해 그에 대한 신뢰도(평)가는 보도 수용자들의 주체적, 개별적 판단에 맞겨야만 함. 더구나 평소 기껏해야 1명, 좀 중요하거나 헷갈리는 문제라야 2~3명 정도 취재하는 관행에 비추어 그토록 모호하고 정의도 안 된 출처를 최근처럼 너무 티나게 빈용하다간 곧바로 정말 취재는 한 건지 한낱 기자 개인 의견에 불과한 조작인 건지조차 의심받게 될 것임.)






3. 和와 不和














和란 군국주의적 전체주의를 포장하는 기만일 뿐이며, 不和야말로 실재하는 갈등과 모순을 투명하게 드러내어 진정한 변화와 혁신을 불러올 수 있는 유일한 원천이자 진정한 동력이라는 것이 우리의 확고한 정치철학적 신조임을 천명함.

 

(또한, Carl Schmitt(-Claude Lefort) 이래로 Chantal Mouffe에 이르기까지 '정치(적인 것)'[이]란 본질적으로 적과 동지의 구분 행위로서 정의되므로, 그 자체로는 어떠한 문제도 없으며 단지 이를 경쟁 관계로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광의의) 자유(민주)주의 주류 양당제라면, [다만 원론적 체계화 차원의 논의일 뿐이지만] 실재하는 적대 관계를 반영하며 정체되고 붕괴 중인 기득권 기성 정치를 초월하여 위기의 대안으로서 새로운 (해법의) 정치를 발명해 보고자 모색하는 것이 급진(민주)주의 정치라 할 수 있는데 반해, 요즘 다시 부상하려는 통합은 [특히, Jacques Rancière의 분석에 의하면] 본원적으로 행정의 영역에 속하는 것임.


이상 제3절은 특히 이 선생님께 대한 존경을 담아 서술하였음을 양해 부탁드림.)





'210117___________________



4. 기계지향철학 문제


이에 대한 논평을 하시려는 분들은 신유물론 계열과 객체/기계지향철학 계열의 최신 철학들이나 최소한 Deleuze-Guattari 사상만이라도 검토를 하고 나서 해주십사 당부를 드려왔는데, 아주 단순한 image 하나에만 의지해 함부로 1변수 선형함수 (운동)만을 "기계적"(인과론)이라 인상하면서, (초)다변수 경향 인과와 대립하는 것처럼 말하시는 분들은 이에 대하여 신유물론 계열과 객체/기계지향철학에선 '(nano)경향기계동맹 대 (nano)반경향기계동맹들 간 전쟁'으로 설명하고 있음을 숙지해주시기 바람.


여기서도 곧바로 드러나는 바와 같이 이 철학적 '기계' 개념은 여러분이 상상하는 그 낡은 기계가 아니라 차라리 '변수' 또는 '함수' 개념에 가까움. 

원래는 GUT[대통일이론] 등의 통일적 세계구성체론을 향한 하나의 경로로서 제기된 매우 추상적인 개념 model이나, 혹시 19~20세기와 그 이전 기계 image에 개인적으로 너무 깊이 침윤되어 심각한 기계-혐오감을 극복하기 어렵다 느껴지시는 분들은 대신 그냥 '행위소'나 '행위자'와 동의어로 이해하고 계셔도 큰 문제는 없겠음.


(참고로 '당신은 기계이다'라는 문장을 '당신은 예술품이다'의 경우와 비교하면 이것이 단순히 생명의 문제는 아니라는 사실을 곧 아실 수 있으리라 사료됨.)


그러므로, 존재자들 간의 관계는 그 차이뿐 아니라 공통성 또한 균형 있게 동시에 인식되어야 한다는 것이 기본 정신으로, 인간의 특별한 입장만을 배타적으로 강조하는 대립적 인식체계로서의 humanism을 '인류세anthropocene' 시대에도 여전히 다시 주장하기보다는 협력적 동물-인간-기계 공동체로서의 commune을 지향하는 post-humanism[ 일각에선 trans-humanism]에 더 친화적이며, 따라서 이러한 새로운 철학들은 우리가 아무리 저항한다 해도 결국엔 Big Data와 IoT 시대의 정신이 되고 말 것으로 보이나, 아직 형성 중에 있는 최신 철학이기에 모두 열려있는 문제이므로 이에 대한 불순하지 않은 이론적 토론과 논의는 언제든 환영함.



(이에 대한 지독한 오독을, 가해공격의 빌미로 삼고 있다는 건 정말 구토 나는 일이 아닐 수 없음.)








SSS.


"짤리지만 않으면 좋겠"다며 잔뜩 주눅 들어 있다가 고삐라도 풀린듯이 신이 나서 오히려 도발을 계속하고 있는 최 기자 등으로 인해 우울해하고 슬퍼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몇 자만 적습니다.


애초 문제 자체도 주요하게는 시금석으로서 제기했던 것이자, 응당한 최소한으로서 당사자의 진심어린 반성과 사과 정도만을 요구했고 이외 어떠한 법적 대응도 없을 것임을 시사하며 최대한의 협력 의지를 밝혔을 뿐 아니라 오늘도 사실 문재인 정부에 적극 협력하여 돌파해 나아가야 하는 정세라는 취지의 글을 쓰러 들어 왔었건만, 이와 정반대로 집단적 2차 가해 담합과 (절대우월적 지위를 이용, 출연자에 대한) 사주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므로 이는 슬퍼할 문제가 아니라 분노해야 할 문제입니다. 


담합의 (배후) 주체들을 정확히 특정할 수 있지만 여기선 하지 않겠으나, 국민은 바보가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대책 없이 사태를 키우다간 제가 굳이 뭘 하지 않더라도 곧 그 얕은 의도를 모두 알아채게 될 것이고 제2, 제3의 진중권을 탄생시키며 자칫 중요한 보궐선거 모두를 잃고 언론개혁만이 아니라 개혁 자체와 정권을 좌초시킨 장본인들로 역사에 길이 남게 될지도 모른다는 깊은 우려를 전합니다.















분노해야 할 문제라고 말씀은 드렸지만, 사실 저부터도 분노보다 웃음이 나긴 하는데 누누히 강조해 왔듯, 너무 황당하게도 '전문점'[ㅋㅋㅋ] 같은 걸 부정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거니와 전문가의 가치 자체를 부정하는 것도 전혀 아닐진대 자존심에 치명상이라도 입으셨다는 건지 더욱 극성을 부리려는 기세인 듯하나, 앞으로 언론 신뢰도 평가 여론조사 추이도 주시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더욱더 깊어져야 하고 동시에 넓어져야 하며, 따라서 우리에겐 specialist들 뿐 아니라 훌륭한 융합적 generalist들도 필요합니다. 

이 중, 한없이 깊어진 공부의 모범을 보여주는 분들은 물론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애초 문제제기의 이유는 그것을 무기로 다른 국민을 깔보고 무시하며 깔아뭉개려는 태도와 고정적 독점 권력-계급화 시도를 통한 전문가 독재 체제 욕망에 대한 준열한 비판과 반대였음을 명심하고 사건의 본질을 덮어버리려는 불순한 의도로 왜곡하고 호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전문가들은 자신의 지식을, 대중 위에 군림하고 지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겸손하게 그들 속에서 그들을 위해 복무하고자 사용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 주는 대중노선을 강조하기 위해 불가피 그것을 공 중의 공으로 갖는 Mao주의까지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인데, 

이미 저리톡1에서 스스로 파산하고 중도하차된 반동적 권위주의에 20세기 공장형 지식 model을 잔뜩 버무려 다시 들고 나와, 그나마 season2에서 보여주었던 반성과 전환 시도조차 완전한 위선과 연기였을 뿐임을 스스로 폭로하고 있는 당신들은 앞으로 언론개혁은 포기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번 일을 계기로 그나마 단 한 가닥 남겨두었던 희망도 완전히 접었습니다.

이것은 완전한 치기이자 광기 이상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 수준이니까 스스로 좌초한 거지 대체 누구 탓을 하는 겁니까? 전 아주 조금 빨리 현상을 명료히 의식화했던 것에 지나지 않고 그조차도 이미 season1이 스스로 실패한 뒤였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정권이 교체될 경우 동북아 정세가 본격적으로 불안해질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시기입니다.

유치한 짓은 그만두고 서둘러 연대와 협력의 길로 돌아 나오실 것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정부에 비판적인 여러 동지와 선생님들께는 너무 죄송하고, 혹시 다른 판단이나 전략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서재 내 아무 문서에나 비Login 비댓을 달아주시는 등등의 방법으로 조언과 입장을 적극 표명해 주시기를 간구드립니다.)










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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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urgeoisie 유물론과 자본주의 Realism의 위력을 잘 보여주는 책.

넓게 보면 Isolde CHARIM까지를 포함하여 (특히 (아류화된) Postmodernism의 자장 안에서) 한껏 관념화하면서 모호한 안개 속을 헤매고 있거나, 아니면 반대로 mannerism에 빠져 규격화된 Cliche´와 Routine들로 점철된 형식적 정세분석만을 답습하고 있는 웬만한 양대 계열 좌파들보다도 훨씬 명료한 의식으로 현실을 꿰뚫고 있음.
(이것이 바로 지배 ideology에 세뇌되어 흐리멍텅하고 허황된 꿈을 꾸며 반대계급을 위해 투표하고, 그들의 행동대원으로 동원되어 온 대중들에 비해, 냉철한 계급의식으로 철저히 무장한 채 단 한시도 자기 계급(의 관점과 이익)을 배반하지 않는 일관된 투표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지배계급의 비밀무기인 것이다.)




다만, 당연히 American Narkissism은 전혀 극복되지 않아서 치명적 오판으로 떨어질 수 있고 아직 그 정도로 확정된 미래 상태는 아니며 이유도 타당하지 않음.


technical한 주요논점으로는 두 주기가 독립적으로 각각 작동하다 이번에만 우연히 일치하게 된 게 아니라 하나의 유기적 사회구성체가 운동하면서 전술했던 바와 같은 하나의 장주기 파동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며, 이에 대하여 FRIEDMAN은 반주기 단위로 세분화된 '(사회)경제적 주기'는 비교적 정밀하게 인식하고 있으나 소위 '제도적 주기'란 실은 정치-군사 구조주기로서 미국이라는 특수한 역사 상황 속에서 내전적 갈등은 과잉각인되고 (특히 고립주의 시기 발생한) 국제전들은 과소각인되어 반주기와 완주기를 혼합/혼동하면서 상상적으로 구축한 특이성 착란일 가능성이 매우 높음.
반주기와 완주기에서는 공히 체제 위기가 발화하면서 국내 및 국제적 갈등과 모순이 폭발하나 별다른 특별 변수가 없다면 대개 반주기에서는 (모순의 강도에 따라 Vietnam전 같은 중소규모의 저강도 국지적 국제전들이 병발하기도 하나) 주로 내전 유형의 일국적/사회 내적 갈등이 주요모순으로 폭발하고, 완주기에서는 총모순이 모두 폭발하면서 패권 경쟁과 세계질서 재편을 그 핵심으로 하는 세계체계 수준의 전면적 국제총력전 발발로까지 격화할 위험을 내재하고 있음.

따라서 이 세계체계 수준에서는 실은 미국의 첫 번째 경제주기[ 소위 Washigton 주기]의 붕괴가 불-영 패권 전쟁이었던 Napoleon 전쟁의 일환으로 수행된 영미 전쟁에서의 미국 해안 봉쇄와 해상 무역 차단의 여파이자, 이 때문에 본격화되었던 농광업국가에서 (자립)공업국가로의 체제전환을 위한 필연적 과정이었던 것임.
이 때부터 가속화된 본격적 공업화[1]가 기존 농업기반 지주세력들의 저항과 내적 갈등을 심화시키다 결국 격발한 것이 미국내전인 남북전쟁인 것이며 FRIEDMAN은 이를 첫 번째 제도적 주기의 붕괴로 인지하게 된 것으로 이는 새 체제의 기원이나 원인으로서의 시작점이라기보다 그 반영이자 결과로서의 현상이며 본질적으로는 체제전환점이 아니라 (상부)구조조절/변형점에 해당함.
따라서 저자는 '제도적 주기'라는 개념으로 이러한 내적 사회구조 조절 주기를 지칭하고자 하는지 (국제적) 체계 전환 주기를 구축하고자 하는지 아니면 '사회경제적 주기'처럼 반주기 단위로 양자 모두를 통칭하고자 하는지 명확히하고 개념적 통일성과 일관성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될 것이며, 전자라면 2차 제도 주기의 붕괴점은 (소위 4차 사회경제적 주기와 함께 붕괴해 버린,) 남북전쟁에 이은 제2 내전기로서의 1960년대 후반~70년대의 반전-민권운동기로 잡아야만 할 것이며 한국의 '87년 체제'~'97년 체제' 변형기도 결국 세계체계 상에서는 이 내전(과 조절) 주기의 지연된 일부에 해당함.
그러나 그는 이 개념 범주 하에서 1차 제도적 주기까지는 내전 주기를, 이후 2차 제도적 주기부터는 국제총력전 주기를 접합시켜 버리고 있음.


또한, 여기서 각별히 주의할 점은 지금 현재의 국면을 포함하여 국제전 주기에는 내전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내전으로 시작하나 국제전으로 격화하여 주요모순은 결국 국제전( 또는 최소한 국제갈등)이 된다는 뜻으로 이 때문에 내(전)적 갈등은 곧 봉합되어 버리게 되는 것임.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






P.S.
최근 주식시장의 예측불가능성에 대한 작은 문제제기가 있었던 듯한데, 물론 이 작업을 향한 제기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이나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장기적 거시경제와 체계위기의 pattern을 역사적으로 분석하는 것이지 속물적으로 미시 주가선을 예측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임.
일반적으로 증시는 무엇보다 scale 부존재 문제를 넘어 복잡계 내에서도 자기참조적이고 자기실현적인 feedback system이라 '예측' 자체가 계 구성요소, 즉 시장참여자들에게 격렬하고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특히 이번처럼 위기 시에는 국가나 각종 국제 기구들의 필사적 초거대규모 개입을 촉발하기 때문에 그 자연적, 잠재적 낙폭이 전혀 기록되지 않는, 실현된 시계열 주가data만으로 접근하는 피상적 수학주의 현상학으로는 절대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하고 이 때문에 실제 BOURBAKI group 이래로 성공한 사례도 없음.
뿐만 아니라 '악재'나 '호재'란 이름의 빈발하는 각종 불가사의한 단발, 특발성 외생변수들로 가득 차 있는 noise가 매우 심한 말단 종속성 함수계임.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수군들의 network system이란 paradigm으로 접근해서 단발, 특발성 변수군과 외생변수군들로 연결되는 node 다발을 사상하고 (반복적) 장기지속 독립변수군들을 통해 심층 구조 분석으로 하향하는 방법을 반복하면서 근원변수들을 향해 나아가면 복잡계 특성이 점차 제거되고 이론적 추상선을 추출하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하지는 않으며, 또한 이번 9월 증시조정도 금융-실물 변동 관계 분석을 토대로 이미 오래전[4월경]부터 예측되어온 사실이기 때문에 (fuzzy) pattern 추론이나 이런 식의 다양한 예측기법들이 전혀 불가능한 것도 아님.
 
관련하여 간혹 '도과'에 대하여 위기의 '종결'이나 '완결'로 읽은 듯한 분들도 계시던데, 이는 전적인 오해이며, 이 위기는 장기적 "General Crisis"의 일환으로, 앞으로도 계속 이런 도과하는 파동들이 연속하면서 점차 심화되어 결국 (minus) 초저금리인하 등의 각종 완화 정책들이 실효 한계에 도달하고 재정위기 Bubble 붕괴를 몰고 와 유가위기 및 패권경쟁 등과 복합적 상승작용을 일으켜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어 나아갈 것이며, 언제든 느닷없이 돌발할 계속되는 새로운 방역위기와 기후위기는 수시로 그 진폭과 속도를 비선형적으로 배가할 기폭제[Big trigger]가 될 것임. 또한, 설령 경이로운 대처를 통해 이 모든 위기가 극복되더라도 10여 년 후 다음 Juglar 파동 위상에서 다시 증폭되어 재발하게 되는 그러한 위기임.)


어쨌든 이런 영롱한 과학정신의 cool하고 dry한 문제제기와 토론들은 언제든 진심을 다해 환영합니다. 











 




[작성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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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구구한 오독들에 대하여 무시로 일관해 왔으나, 이번 계제에 몇몇 만연한 오해들만 사소한 것부터 점차 중요한 문제들로 간략히 일괄키로 합니다.[이하 경어 생략]



I. 


II. 


III. 


IV. 정신분석과 Lacanian politics


1. 정신분석적 Marx주의 이론사

1a. 20c 초반

1b. 20c 중반 →파산 후 Spinoza주의로 전환

1c. 21c 초반


2. 정신분석 비판

2a. 인간과 동물의 관계

2aa. 자연 동물계에서의 억압과 거세

        특히 동물계 대타자로서 Alpha male의 독점과 독식에 의한 억압

        거세된 가축들의 경우

2ab. '인간/문명(화)' 범주 내에서 '억압/거세'와 '(순수)욕망 고수'의 양립 불가능성

2ac. '순수욕망'이라는 환상과 욕망의 미로

      +타자와 주체의 sub-/post-individual quantum constitutive relations;

        즉, 타자와 주체 간 개체 수준 이하로의 해체적 구성 및 얽힘(이라는 실재적 중층복합) 관계들과 복잡미묘한 항시적 상호감응 때문에도

        타자의 욕망과 주체의 욕망은 정밀한 원천적 분할이 불가능하며, 그 자체가 관념적 욕망에 불과함.

         욕망이란 기본적으로 Tabula rasa의 토대 위에 sub-&super- individual level의 총체적 중층 관계망 속에서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고, 계발되며, 죽끓듯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



2b. Foucault(ian Turn)의 선구성과 '억압가설'에 대한 비판적 재고의 필요

2c. Deleuze도 대동소이하나, Lacan도 seminar에서 박사과정의 중국출신 유학생을 초빙해 장기간 불교경전들을 강습받았고, 이런 식으로 알게 모르게 Europe과 France 현대 철학들의 그 고도한 현대성은 불교철학에서 착상받은 바가 크다.

그러나 Lacan 정신분석과 불교철학의 가장 큰 이단점은 불교가 전적으로 가혹한 금욕주의였던 데 반해, Lacan은 본질적으로(는) jouissance를 탐닉하는 쾌락주의로 전향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절대 욕망을 양보하지 마라"는 Lacan의 계명과 "욕망들을 끊임없이 베어내고 비워내야 한다"는 해석은 20세기 후반을 풍미한 Lacan주의자들의 실제 행태와 특히 2ac를 고려하면, 일정한 재해석이고 반성적 회귀를 통한 갱신이며 하나의 분기에 가깝다.



2g. 문제의 심각성 : 심리 체제와 정치경제 체제의 융합

                           대타자 살해의 불가피성

2h. 대안노선의 문제 : 'Menger sponge' vs '대주체'라는-이념의-연대
      Lacanian politics에서 연대 개념의 공백


2s. 결국 극단적 억압가설에 사로잡혀 '모든' 주체와 공동체, 개인과 사회의 개연관계를 대립적 이분법으로만 과도 일반화함으로써 개인주의적 자유지상주의나 개인주의적 anarchism 이외의 (정치적) 대안을 사유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 Lacan주의 최대 문제의 하나이며, 이에 대하여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두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연합체”로서 개인과 사회가 서로를 상승시키는 Marx적 공동체 이념(을 향한 (영속적) 상호변혁의 재도전)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한 대안으로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대안공동체는 '대주체' 이념의 첫 현실적 구현형으로 고려될 수도 있음.)[1]



 

V. Populism의 문제 ; 좌파 Melancholia에 맞서는 T-1000형 좌파를 위하여














V1. 좌파 Melancholia의 패배주의, 허무주의와 그 원인으로서의 역사 및 시대 인식


       역사는 절대 직선적으로 변화하는 것이 아니며, 모식화한다면 그나마 가장 근사[近似]한 model은 오히려 3차원 나선형 모형이고, 2차원 사영으로 단순화할 때 (sine) 파동형이 된다. (이것이 Deleuze의 [[차이와 반복]] 같은 사상들이 탄생할 수 있었던 근본 토대이다.) 따라서 하나의 역사객체, 특히 사조나 사상, 철학, 종교 등의 Meme을 포함한 문화객체들은 결코 Wallerstein의 주장처럼 완전한 사멸/소멸이나 만료, 단절이 되지 않기 때문에 사망선고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오늘날에도 너무나 건강하게 살아 끊임없이 재해석, 인용되며 현대인의 생활을 깊숙이 지배하고 있는 수천 년 전의 고대 종교들과 철학들의 경우를 환기해 보라. 특히 2세대 구좌파와 3세대 신좌파의 관계는 역사의 나선/파동 운동을 규정하는 2대 기선의 여러 속성들 중 가장 대표적 대립물인 국가주의 대 자유주의를 각각 구현한 사조이자 무엇보다 신좌파라고 해서 결정적 오류와 한계 없이 현재 상황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고 있고, 구좌파만 극복 불가능한 치명적 오류/한계 때문에 완전히 도태된 구시대의 유물이 아니라는 점에 유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잘못된 역사/시대 인식은 상황(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자칫 또다른 치명적 실수와 패배로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

따라서 Wallerstein의 '거대한 순환[;대순환의 직역]' 가설도 시대주기를 세분하여 그 안에서 운동과 상부구조의 미세조절과정을 세밀하게 고찰, 이론화하지 못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데, 이 150년 이상의 과정을 남한의 '80년대 12년 순환으로 축약하여 무리하게 적용시키면서 구좌파 전체에 섣부른 사망선고를 내리는 것은 그 엄청난 정치적 효과에 비해 그 근거가 너무나도 박약하다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시대구분 및 역사인식과 관련하여 많은 분들이 전고에서의 다음과 같은 구절

66

최근, 반복 재현되고 있는 시대적 혼란을 극복할 새로운 상황 인식과 '인지/담론/Media 전략'으로 제출된 다음과 같은 견해는, 주체의 동물화 감정화를 오히려 적극 추동해 온 3세대 (post)anarcho 신(사회운동)좌파와도 구별되고 양대 계보를 통합하면서 최신작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For A Left Populism]]를 저술한 Chantal MOUFFE의 시대/문제 의식 및 대안적 시도와도 공명하는, 강력한 4세대 좌파의 맹아적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기에 각자의 일독과 판단을 권하고자 한다.

99

을 마치 필자가 populism을 옹호하는 것으로 오독하셨던 듯한데, 이 언급의 진의는 국제 좌파 진영 내에서 (Nancy FRASER와 함께) 가장 민감하고 신속한 시대인식(전환)을 보여주고 있는 이론가들 중 하나로 평가할 수 있는 MOUFFE의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좌파운동사관을 지시한 것이었다.


66
라클라우와 무페의 작업은 늘 당대의 정세에 대한 면밀한 분석에 입각해 있다. 그들의 대표작인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1985)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확립된 유럽 사회민주주의 체제의 위기에 대한 이론적 대응이었다. 전후 자본주의 고도성장의 종식이라는 경제적 환경과 여성운동, 반인종차별운동, 환경운동 같은 신사회운동의 부상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채, 마거릿 대처와 로널드 레이건의 신자유주의에 맥없이 무너졌던 구좌파의 한계를 넘어서 새로운 사회주의 전략을 모색하려는 것이 그 책의 주요 관심이었다.
30여년 뒤에 출간된 무페의 이번 책은 신자유주의의 위기에 대한 성찰의 산물이다. 2008년 이후 신자유주의는 근본적 위기에 빠져들게 되었지만, ‘제3의 길’을 주창한 신좌파는 이번에도 위기에 대처하는 데 무능했다. 오히려 스페인의 포데모스, 그리스의 시리자 같이 대중의 민주주의적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대중적 집합 의지”로 구성하려고 시도한 새로운 종류의 좌파 포퓰리즘 정치만이 두각을 나타냈다. 그렇다면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신자유주의 이후 새로운 진보 헤게모니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좌파 포퓰리즘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2]
99

이들의 공통점은 공히 한국 좌파들과 달리 이미 지금 여기의 당대와 신좌파에 대한 깊은 성찰에까지 도달해 있다는 것이다.

.......



V2. Melancholia의 그림자를 벗어나는 경로들


하나의 경로로서 '애도'와 그 최대문제로서의 청산주의 유도 및 유착


애도에 맞서는 강력한 Antithese로서의 사도 바울의( 충실성) 경로 

 

또 하나의 경로로서의 T-1000형 좌파

  : 자유자재의 변형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핵심요소로서, 선택가능한 Configuration들의 대량 증식



V3. 좌익 Populism의 깊이


Populism의 문제는 그에 대한 어떤 결론 자체 보다도 미정립과 혼란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이 혼란은 한국 좌파 전체에 일반적으로 퍼져 있는 상태이고, 단위 안에서는 물론 심지어 개별 논자 안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본서 저자를 포함해, ㅎㅈㅊ 자체가 한국 사회에 좌익 Populism 논의를 선도적으로 도입, 선전해 온 group이면서도 자기 단위와 과거의 자신에 반론을 전개하고 있는 형국인데,




zero-base에서 (좌파는) Populism에 대하여 반대, 옹호, (비판적) 연대의 3가지 stance를 선택할 수 있겠으나, 최근 며칠 상간에도 잘 확인되는 바이지만 한국 좌파에게 있어 Populism의 첫 번째 문제는 순수이론적 동기에서 Populism을 비판하자마자 한국적 상황의 특수성 때문에 그것이 곧바로 자기에게 Boomerang처럼 되돌아와 자신은 물론, 복지확대 등 인민의 요구를 관철시키려는 모든 노력들을 공격하게 된다는 사실이며, 이러한 Populism 비판의 역설이 자신들의 숙명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의식이 다른 일정들 때문에 계속 묵혀 두었던 본고를 미완성 형태로라도 급하게 공개하게된 직접적 계기이다.[3]




그러므로 이러한 역설적 난관을 돌파하기 위한 대안 품행의 하나로 오히려 좌익 Populism의 긍정적 측면들을 검토하는 다음과 같은 자료들을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성이 대두되는 것이다.


66

1. 중국의 마오와 프랑스의 마오


.....얼마간 잘 알려져 있다시피 1960년대와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프랑스의 좌파 철학자들은 마오의 사상에 상당히 경도되었었다특히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라는 맑스주의 철학자와 그를 중심으로 연구하고 활동하던 다수의 청년 좌파 철학자들이 그러했는데여기에는 바디우 자신뿐만 아니라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 에티엔 발리바르(Étienne Balibar) 등이 포함된다이 가운데 특히 바디우가 특이한 점은 60년대에 그가 보여줬던 마오에 대한 열광적 동의를 (내용상 어떤 변화도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여전히 공공연하게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예컨대 발리바르와 같은 경우 마오에 대한 평가가 다소 복잡하다중국의 인민해방전쟁기의 마오는 다소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반면(유보 없는 긍정은 아니다), 문화혁명 시기의 마오에 대해서는 상당히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을 볼 수 있다그러나 어떤 마오가 발리바르 안에서도 여전히 흔적으로 남아있다고 우리는 추정해볼 수 있을 것이다랑시에르 또한 오늘날 문화혁명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진 않을지 모르겠으나 그가 지식인과 무지대중 간의 지적 차이를 완전히 거부하고 모든 사람은 지적으로 평등하다는 주장을 펼칠 때 나름대로 그는 어떤 마오주의를 계속 실천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들 청년 좌파 철학자들(피에르 마슈레레지스 드브레자크-알랭 밀레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은 1964년 말에 창설되었다가 68년 5월 이후 해산된 맑스-레닌주의 저널(Cahiers marxistes-léninistes)의 가장 젊은 필진을 이루었는데이들은 모두 알튀세르의 제자들로 스승의 권유를 받아들여 그 저널의 점점 더 뚜렷해지는 친-중국화의 경향성을 만들어냈다.

 

알튀세르 자신은 무엇보다 마오의 모순론에서 많은 이론적 영감을 이끌어 냈으며변증법을 헤겔의 종말목적론적이고 관념론적인 논리로부터 떨어뜨려 놓기 위해 그것을 이용했다(그의 첫 번째 저서인 맑스를 위하여에 그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다). 비록 알튀세르는 마오의 문화혁명에 대해서는 공공연한 발언은 자제했지만그는 맑스-레닌주의 저널』 14호에 익명으로 문화혁명에 대하여라는 글을 발표했으며 거기에서 문화혁명을 맑스와 레닌이 구상했던 대중의 이데올로기적 혁명을 최초로 실행에 옮겼던 유례없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평가했다즉 문화혁명은 사회주의 혁명이 단지 권력 장악이나 소유관계 및 생산관계의 변혁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또한 이데올로기의 혁명을 반드시 통과해야 하며이에 미달할 경우 자본주의로 후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러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행해진 전대미문의 시도였다는 것이다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라고 이해될 수 있지만사실 알튀세르는 이 글을 자기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하지 않았으며이후 문화혁명에 대해서도 다시 논한 적이 없다.

 

그렇다면 이런 상이한 입장의 결들이 보여주는 차이점들은 그만큼 공산주의를 이해하는 방식들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며이런 쟁점들을 그 자체로 살펴보는 일이 분명 필요할 것이다프랑스의 마오가 중국의 마오와 같은가그렇지 않은가 하는 질문도 얼마간 유의미하겠지만프랑스의 마오에 대해 사유할 때 우리가 가장 먼저 생각해봐야하는 것은 프랑스의 마오가 하나가 아니라는 점이다(과연 중국의 마오는 하나일까).

 

바디우가 자신의 대담에서 공산주의적 정치를 추구하기 위한 근본적 경험은 문화혁명이지소비에트 국가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마오는 사회주의 국가 내에서 대중 행동이라는 수단을 통해 상황을 혁명적인 방식으로 공산주의를 향하게 만들려 시도했던 자였으며, “국가가 공산주의적 해결책이 아니라 단지 그 혁명을 위한 새로운 콘텍스트에 불과하다는 것을 사유했던 사람이었다고 말한 것은 어떤 의미에서였을까왜 그는 자신의 대담에서 갑자기 문화혁명을 파리 코뮌(1871)의 경험과 연결했던 것일까?

.......


  2. 알튀세르가 마오에게서 발견한 것

 

최근 루이 알튀세르의 제자 중 하나인 에티엔 발리바르에 따르면, 1917~1968년의 기간에 유럽 공산주의 진영은 두 개의 거대한 노선으로 분할되어 논쟁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계급 대 계급’ 노선이라고 볼 수 있다면 다른 하나는 ‘인민전선(popular front)’ 노선이라고 볼 수 있다. ‘계급 대 계급’ 노선은 자본주의 사회는 기본적으로 부르주아 계급과 프롤레타리아 계급으로 나뉘어 있으며 이 두 계급간의 대결은 점차 격화되어 필연적으로 내전으로 치닫게 되고 결국 이 싸움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승리로 귀결된다는 관념에 기초한 노선을 말한다. 물론 현재 자본주의 사회 내에는 두 계급에 정확히 속하지 않는 중간적 계급들이 있지만, 이들은 계급투쟁이 발전함에 따라 점차 분해되어 프롤레타리아트 안으로 흡수될 수밖에 없는 존재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 노선의 가장 대표적인 이론가라고 볼 수 있는 사람은 죄르지 루카치(특히 <역사와 계급의식>)로 그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즉자적 계급에서 자기 자신의 조건에 대해 의식적인 대자적 계급으로 이행함으로써 사회주의를 열어내는 역사의 주체가 될 것이라고 바라봤다(맑스 자신에게서 이런 입장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텍스트는 <공산주의자 선언Communist Manifesto>이다).

 

다른 한편, ‘인민전선’ 노선은 모순들의 복수성과 복잡성에 대해 사유하면서 자본주의 사회 내에는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의 모순만이 아니라 다양한 다른 모순들이 있으며 따라서 이질적인 세력들의 연합으로서의 인민전선을 형성함으로써만 자본주의에 대한 투쟁을 유효하게 조직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한다. 여기에 대표적인 이론가로 꼽을 수 있는 사람은 안토니오 그람시인데, 특히 그는 저발전된 이태리 남부의 문제(‘서발턴’이라는 유명한 표현이 여기에서 유래한다)를 부각시키면서 모순들의 복잡성과 불균등성을 사유하고자 시도했으며, 자본주의의 경제적 상황이 자동적으로 혁명으로 귀결되지 않는다고 바라봤다. 따라서 그는 혁명적 해법을 다시 사유했으며, 모순들의 복잡성을 반영하는 인민전선의 형태를 특권화 했던 것이다(맑스 자신에게는 자본주의 사회구성체는 발전을 거듭할수록 복잡해진다는 사유가 담겨 있는 다수의 텍스트가 있는데, 무엇보다 <자본> 1권이 공산주의로의 혁명적 이행을 메시아주의적인 방식으로 논하는 32장 이후에 갑자기 식민지 문제를 논하는 33장을 추가하며 마무리되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눈여겨 봐야하며, 또한 중간에 착취의 엔지니어러로서의 공장감독관에 대한 분석을 하면서 자본주의가 이른바 사회민주주의적 개혁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도 시사했다는 점을 봐야한다).

 

발리바르에 따르면, 대립하는 이 두 가지 노선 가운데 ‘계급 대 계급’ 노선의 계보에 속하는 후대의 이론가가 이태리의 마리오 트론티라고 볼 수 있다면, ‘인민전선’ 노선의 계보에 속하는 후대의 이론가가 알튀세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알튀세르는 그람시와 유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가 1968년 저서 <맑스를 위하여>에 수록되어 있는 “모순과 과잉결정”이라는 장에서 그람시를 자신의 이론적 선구자로 상찬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의 과잉결정(overdetermination) 개념은 그람시가 봤던 모순들의 복잡성을 사유하기 위해 고안된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알튀세르는 그람시의 입장이 모순들의 복잡성을 너무나 강조한 나머지 그 모순들의 접합이 왜 전체적인 차원에서 여전히 자본주의적인 것으로 이해될 수 있는지를 파악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를 가지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람시에게서는 자본과 노동의 대립이 어떻게 ‘최종심급’을 구성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찾아낼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알튀세르는 그람시를 대신할 수 있는 인민전선의 이론가를 추구하게 되는데, 이때 알튀세르가 찾아낸 것이 바로 또 다른 인민전선의 이론가이자 그러한 노선에 입각하여 혁명을 성공시킨 실천가로서의 마오쩌뚱이다. 알튀세르는 마오의 텍스트들 가운데 유일하게 <모순론>에만 관심을 기울였는데(예를 들어 그는 <실천론>을 서구의 실용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영향 받은 텍스트로 저평가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맑스주의적인 변증법적 유물론의 완전히 혁신된 상이 제시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마오의 <모순론>을 읽어보면, 마오는 모순의 보편성과 절대성에 대해서만 주목하는 것의 과오를 지적하면서 모순의 특수성과 상대성에 주의를 기울이자고 주장하면서, 혁명과 같은 “거대한 사건은 발전과정에 많은 모순을 포함하고 있”으며, “예를 들어, 중국의 자산계급민주주의혁명 과정에는 중국사회의 피압박계급과 제국주의 사이의 모순, 인민대중과 봉건제도 사이의 모순, 무산계급과 자산계급 사이의 모순, 농민 및 도시의 소자산계급과 자산계급 사이의 모순, 각각의 반동적 지배집단 사이의 모순 등이 있어 그 상황은 매우 복잡하다”고 주장한다. 모순들의 복잡성에 대한 이런 인식에 기반하여 그가 개념화하는 것이 바로 기본모순, 주요 모순 및 부차적 모순, 모순의 주요 측면 및 부차적 측면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마오는 이때 기본모순 자체는 하나의 사회구성체 내에서 지속적으로 유지되지만, 주요 모순은 기본 모순이 아니며, 게다가 주요 모순은 부차적 모순과 구체적인 정세 속에서 자리를 바꾸는 전위(displacement)의 운동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그는 “중국과 같은 반식민지국가에서는 주요 모순과 부차적 모순의 관계가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는데, “제국주의가 이러한 나라에 침략전쟁을 일으켰을 때”, “이때 제국주의와 이러한 나라 사이의 모순이 주요 모순이 되고, 이러한 나라의 내부 각 계급 간의 모든 모순(봉건제도와 인민대중 간의 주요 모순을 포함하여)은 모두 일시적으로 부차적, 종속적인 위치로 떨어지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또 다시 상황이 변화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제국주의가 무력을 통한 억압을 꾀하지 않고 정치, 경제, 문화적 수단을 통한 온건한 억압을 행하는 경우, “반식민지국의 지배계급은 제국주의에 투항하고 양자는 동맹을 맺어 인민대중을 공동으로 억압”하는바, (제국주의와 동맹한) 지배계급과 인민대중 간의 내부 모순이 오히려 주요 모순의 위치로 올라서게 된다.

 

알튀세르는 바로 이런 마오의 <모순론>에서 기본모순이라는 ‘최종심급’의 상과 주요모순 및 부차적 모순의 ‘과잉결정’의 상을 발견했고, 경제주의에 대해 급진적인 비판을 가하면서도 다원주의라는 역편향으로 빠지지 않을 수 있는 길을 찾아냈던 것이다. 알튀세르는 경제적 환원론을 비판하기 위해서 최종심급과 지배적 심급을 구분하고(이 둘을 일치시키면 환원주의에 빠진다), 또한 모든 사회구성체는 지배관계를 갖는 구조(structure à dominance)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데, 이는 사실 마오가 이미 다 말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오는 “어떠한 발전과정에 많은 모순이 존재하고 있다면 그 중의 하나는 반드시 지도적,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주요 모순이며 다른 것들은 부차적, 종속적 위치에 놓이게 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알튀세르는 마오의 논의를 좀더 정밀하게 가공하기 위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의 개념들을 도입했다고 볼 수 있다.


  3. 바디우와 중국의 문화대혁명


 

앞선 칼럼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알랭 바디우는 루이 알튀세르의 제자 가운데 하나로, 68혁명 당시 마오주의 좌파에 적극적으로 가담했으며,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열렬히 옹호했던 사람이다. 다른 제자들(특히 우리가 앞으로 이어질 다른 칼럼들에서 살펴보게 될 에티엔 발리바르)은 문화대혁명에 대해 부정적인 판단을 내리거나 또는 그렇게 돌아섰지만, 바디우는 지금까지도 그것을 고집스럽게 지지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이런 바디우의 특이한 입장은 그의 독특한 진리 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바디우는 자신의 책 <윤리학>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한 사건에 대한 충실성의 실재적 과정을 ‘진리’(하나의 진리)라고 부른다. 그 충실성이 상황 속에서 생산하는 것이 바로 진리이다. 예컨대 중국 문화대혁명과 프랑스 68년 5월이라는 두 개의 서로 얽혀진 사건에의 충실성을 사고하고 실천하고자 했던 1966년에서 1976년 사이의 프랑스 마오주의 정치가 그것이다.”

 

이렇게 바디우는 중국 문화대혁명과 프랑스의 68혁명을 진리적 사건이라고 보며, 그 사건들에 대한 충실성(fidélité)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윤리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그 사건들이 이후 역사 속에서 어떤 실패를 경험했든지 간에 그것들이 당시 정치 상황 내에 어떤 “내재적 단절”을 가져온 한에서 여전히 배반되어선 안 되는 것으로 남아 있다는 뜻이다. 바디우에게 진리란 기존의 체계 및 그 체계를 다소간 합리적으로 설명하거나 정당화하는 지식이 가지고 있는 어떤 공백을 명명하는 ‘사건’으로 발발하며, 그런 사건이 일단 발발하면 그것은 진리과정의 담지자인 ‘주체’의 ‘충실성’에 의해 보존되어야 한다.

.......

이제 우리는 바디우가 어떤 의미에서 중국의 문화대혁명(그리고 프랑스의 68혁명)을 진리 사건이라고 보는지 이해할 수 있다. 마오쩌뚱의 문화대혁명은 당의 국가화(관료제화)를 중단시키고 당을 그 외부로부터 공격하기 위해 행한 혁명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배제되었던자들이 하나의 집합으로 출현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마오의 유명한 슬로건인 “모든 반역은 정당하다”(造反有理)라는 말에 따라 문화대혁명에 가담했던 많은 청년들은 중국의 사회주의 혁명 과정에서 혁명의 적으로 배제되었던 전-부르주아지의 자식들이었다. 마오는 이들을 동원함으로써 당시의 상황상태, 즉 당시의 국가를 해체하려고 했던 것이다. 따라서 바디우에게 중국의 문화대혁명은 파리코뮌, 러시아혁명, 중국의 인민해방전쟁 등과 함께 국가를 해체하고 사멸시키려고 시도했던 혁명적 사건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우리가 첫 번째 칼럼에서 논했던 마오에 대한 인터뷰(버소)에서 바디우는 이렇게 말한다. “공산주의적 정치 추구의 근본적인 경험은 문화혁명이지 소비에트 국가가 아닙니다. 오늘날 러시아와 중국은 모두 자본주의 국가이며, 그와 같은 것으로서 그것들은 정치사상과 관련해서 나에게 어떤 흥미도 주지 못합니다. 당분간 마오는 사회주의 국가 내에서 대중행동에 의해, 상황을 혁명적인 방식으로 공산주의 쪽으로 맞추어 나가려고 시도했던 그 최후의 위대한 역사적 실험과 연계된 고유명사입니다. 마오는 국가란 공산주의적 해결책이 아니라 그 혁명의 새로운 콘텍스트일 뿐이라는 것을 사유했던 첫 번째 사람입니다.”

 

물론 우리는 바디우의 이런 견해가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사유하기에 충분한 것인지 비판적으로 질문해봐야 할 것이다. 마오의 “혁명적” 시도는 왜 처참하게 실패 했을까에 대해서 말이다. 바디우는 문화대혁명의 실패는 인정하지만, 이 실패에 대한 설명은 제공치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는 문화대혁명을 단순히 마오가 자신의 권력을 유지, 강화하려고 했던 폭력적인 시도였다고 보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적어도 그 점에 대해 바디우는 우리에게 알려주는 바가 있다.

 

 

  4. 좌파 포퓰리즘, 인민전선의 새 이름인가

 

2014년에 작고한 에르네스토 라클라우(Ernesto Laclau)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정치철학자로 정확히 프랑스 철학자는 아니다. 그러나 프랑스 철학이 오직 프랑스에만 있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 라클라우와 오랜 기간 동반자로 함께 작업한 벨기에 출신의 정치철학자 샹탈 무페(Chantal Mouffe)는 실제로 젊었을 때 알튀세르의 세미나에 참여했으며, 라클라우 자신도 알튀세르를 탐독하고 그의 몇몇 개념들(과잉결정, 이데올로기적 호명)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알튀세르의 이단적 상속자라고 볼만하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에서는 무페의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이승원 역, 문학세계사, 2019년)가 번역됨에 따라 라클라우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포퓰리스트 이성에 대하여>(On Populist Reason)라는 저서도 국내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아마 조만간 국내에도 번역이 되지 않을까 한다). 이 칼럼에서 우리가 포퓰리즘에 대한 라클라우의 논의에 주목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우선 그의 논의가, 우리가 두 번째 칼럼에서 다룬 ‘인민전선’ 전술의 최근의 이론적 발전을 대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둘째, 그의 논의의 큰 윤곽이 세 번째 칼럼에서 우리가 다룬 바디우의 이론과 몇몇 지점에서 놀라울 정도로 수렴하고, 또 매우 중요한 지점에서 발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양자의 수렴과 발산은 우리 자신의 정치를 사유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쟁점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두 번째 칼럼에서 이미 말했듯이, 유럽 공산주의 진영이 20세기에 서로 갈라져 싸웠던 가장 큰 쟁점은 ‘계급 대 계급’ 노선인가, ‘인민전선’ 노선인가 하는 문제였다. 이 두 노선이 처음으로 가시적인 방식으로 서로 부딪혔던 것은 나치를 비롯한 파시즘 세력에 어떻게 맞서 싸울 것인가 하는 질문을 둘러싸고였다. 당시 소련에 근거지를 두고 있던 코민테른은 처음에는 ‘계급 대 계급’ 노선을 채택했지만, 이후 이 노선이 처참하게 실패함에 따라 인민전선 노선으로 급선회한 바 있었다. 이런 노선 전환은 매우 복잡했던 독일에서의 상황과 관련된다. 러시아 혁명의 성공에 고무되어 1918년에 행한 독일혁명이 (이후 바이마르 공화국의 집권 세력이 되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배신으로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손에 스파르타쿠스단 지도자인 칼 리프크네히트(Karl Liebknecht)와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가 즉결 처형된 사건은 사회민주주의자들에 대한 독일 공산주의자들의 적개심을 극단화했다. 또한 나치 세력이 발흥하고 있었을 당시 독일이 맞이한 경제 위기는 매우 심각한 것이어서, 곧 자본주의가 붕괴될 것이라는 예상을 가능하게 만들어줬다(로자의 붕괴론은 이를 뒷받침하는 이론적 준거가 되어주었다). 독일 공산주의자들은 이런 낙관 속에서 독일 인민이 조만간 자신들을 지지해 줄 것이라고 여기면서, 심지어 나치세력과의 공조 속에서 사회민주주의정부를 흔들기 위한 파업을 조직하기까지 했었다. 그리고 나치가 권력을 잡았을 때에도 독일 공산주의자들은 곧 인민이 나치의 거짓을 깨닫고 곧 자신들을 지지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알다시피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며, 코민테른은 결국 계급 대 계급 노선을 포기하고 인민전선을 주장한 디미트로프 테제를 채택하게 된다. 인민전선(popular front)은 다양한 조직에 소속된 노동자 및 농민 세력을 통일시킨다는 통일전선(united front)에 대립하는 것으로, 그것은 소부르주아지뿐만 아니라 일부 부르주아지까지 전선으로 광범위하게 묶어내야지만 파시즘에 대한 효과적인 저항을 할 수 있다는 사고에 기반한 전술이었다.

 

이런 인민전선 노선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한 정치가 가운데 하나가 바로 마오였으며, 그것은 바로 일본제국주의에 맞선 국공합작뿐만 아니라, 국공합작 이후 대장정 시기 중국 ‘인민’의 생성을 도모한 그의 성공적인 실천으로 나타났다. 라클라우는 <포퓰리스트 이성에 대하여>에서 마오의 대장정 시기의 투쟁에 대한 짧지만 매우 중요한 다음과 같은 코멘트를 남겼다. “하나의 극단적 예로 마오쩌뚱의 ‘대장정’을 들어보자. 여기에 위에서 묘사한 의미의 ‘포퓰리즘’이 있다. 즉, 복수의 적대적 상황들에서 ‘인민’을 역사적 행위자로 구성하려는 시도가 있다. 마오쩌뚱은 심지어 ‘인민 내부의 모순’에 관해 말하고 그래서 고전적 맑스주의 이론에 파문이었던 실체, ‘인민’이 등장한다. (…) ‘인민’은, 순수한 계급 행위자들(생산관계 내의 정확한 위치에 의해 정의되는)의 속성으로 간주되는 동질적 본성을 갖기는커녕, 복수의 단절 지점들의 [등가적] 연결로 인식된다.”(On Populist Reason, Verso, p. 122) 여기서 우리는 라클라우가 마오의 인민전선 노선을 좌파 포퓰리즘의 명확한 사례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라클라우가 말하는 ‘좌파 포퓰리즘’이란 바로 인민전선 노선의 새 이름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매우 놀라운 방식으로, 포퓰리즘을 설명하는 라클라우의 이론적 논의의 틀은 바디우의 것과 몇 가지 점에서 수렴하는 양상을 보인다. 우선 라클라우가 이질적 세력들로부터 등가적 사슬을 만들어내는 실천으로서의 포퓰리즘을 주장할 때, 그런 이질적 세력들이란 바로 기존의 권력(헤게모니) 안에서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자들, 다시 말해서 배제된 다양한 세력들을 지칭하며, 이들이 자신들의 이질성들을 하나의 등가적 표면 위에 등록하는 데에 성공할 때에 비로소 효과적인 대항-헤게모니적 정치가 출현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 이는 바디우가 배제된 다양한 자들이 하나의 집합(즉 자신의 이름을 포함하고 있는 비정상적인 집합)으로 출현할 때 그것이 바로 진리 사건이라고 말하는 것과 대동소이하다. 바디우는 상황상태(국가) 안에 있는 ‘공백’을 명명하는 것이 진리 사건의 정치라고 주장하면서, 이때 이런 공백이란 하지만 단순한 없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의 다양성”(즉 무는 하나가 아니라 다양한 것들이 그 안으로 모두 들어올 수 있는 공이라는 의미에서)을 뜻한다고 말하는 것은 라클라우가 이질적인 세력들의 등가적 접속을 사고하는 것과 상당히 가깝다. 게다가 라클라우와 바디우는 또 다른 면에서도 수렴하는데, 그들이 공히 인민(등가적 사슬 또는 자신의 이름을 포함하고 있는 집합으로서)을 생성시키기 위해 필수적인 조건으로서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하지만 라클라우와 바디우가 수렴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하나의 결정적인 지점에서 발산한다. 라클라우는 인민의 이름을 공동체적 충만성(이런 충만성이 종국에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그가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을 의미화 하는 이름이어야 한다고 보는 반면, 바디우는 인민의 이름은 결코 충만성의 이름이어서는 안되며, 오히려 공백을 명명하는 것이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바디우는 공동체적 충만성을 명명하려는 행위는 반드시 진리의 도착으로서의 시뮬라크르(그것의 가장 대표적인 이름은 나치다)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비록 라클라우가 현정세에서 민족적 경계를 넘어서는 포퓰리즘을 생산해야할 필요성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라클라우의 논의가 민족 공동체 또는 더 나아가 초민족적 공동체(supranational community)로서의 유럽 등에 준거하는 공동체주의처럼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다른 한편 바디우에게 제기해야 할 질문은 그가 공백을 명명해야한다고 말하면서 국제주의를 강조할 때 그것을 어떻게 지도자에 대한 개인숭배와 화해시킬 수 있다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최근 에티엔 발리바르는 포퓰리즘의 문제설정을 일정하게 인정하면서도 포퓰리즘이 아니라 대항-포퓰리즘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했는데, 그가 말하는 대항-포퓰리즘은 좌파 포퓰리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포퓰리즘의 핵심적인 요소로서의 지도자 숭배와 모종의 (민족적이거나 그렇지 않은) 공동체에 대한 준거를 거부하는 것이다.


  5. 반폭력의 정치로서 혁명을 사유하기

 

알튀세르의 제자인 에티엔 발리바르는 1990년대부터 폭력이라는 문제를 다시 사유하기 위한 이론적 작업을 심도 깊게 진행해 왔다. 폭력을 제거하거나 적어도 제어하려는 전통적인 모델은 기본적으로 세 가지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첫 번째가 국가에 의한 폭력적 수단들의 독점을 통해 사회로부터 폭력을 제거하려는 ‘폭력 독점’(monopoly of violence)의 모델이라고 한다면, 두 번째는 지배계급(또는 그들을 대변하는 국가)의 폭력을 종식시키기 위한 혁명적 폭력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대항폭력’(counter-violence) 모델이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지배의 수단으로서든 그런 지배에 대한 저항의 수단으로서든 간에 모든 폭력은 잘못이라고 비판하는 ‘비폭력’(non-violence) 모델이다. 맑스주의는 통상 두 번째 모델, 즉 대항폭력 모델을 특권화해 왔다고 알려져 있으며, 이는 어느 정도까지는 사실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주지하다시피 첫 번째 모델은 토마스 홉스에 의해, 그리고 세 번째 모델은 마하트마 간디에 의해 특권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발리바르는 맑스주의 내에 대항폭력 모델과는 개념적으로 구분될 수 있으면서도, 그렇다고 폭력 독점 모델이나 비폭력 모델로 환원될 수 없는 또 다른 폭력에 대한 정치가 경향적으로 구성되어 왔다고 주장하면서, 그것을 반폭력 모델(anti-violence)이라고 부른다. 반폭력의 정치는 폭력에 맞선 투쟁의 정치로서, 지배계급의 압도적인 폭력에 저항함에 있어서 폭력적 수단을 사용할 필요성이 있다고 인정하지만(따라서 비폭력 모델은 채택할 수 없다), 동시에 모든 폭력적 수단의 활용은 극단적 폭력을 제한하거나 감축하여 (전쟁이 아닌) 정치 그 자체가 가능해지는 방향으로 조직되어야 한다는 관념을 핵심으로 한다.

 

맑스 자신의 경우를 먼저 살펴볼 것 같으면, 맑스는 <공산주의자 선언>(1847년)에서는 프롤레타리아트가 투쟁 속에서 점점 자신을 정치적으로 통일시켜나가 결국 부르주아지와 계급 대 계급의 최후결전을 치르고 국가권력을 장악함으로써 공산주의 사회로 이행할 수 있으리라는 폭력혁명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1848년 혁명이 잔인하게 진압되어 실패로 돌아가자 맑스는 더 이상 이런 전망을 유지할 수 없었고, 그리하여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에 대한 좀 더 근본적인 이해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정치경제학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했으며, 런던 도서관에 파묻혀 이후 근 20년을 작업하여 <자본> 1권(1867년)을 출판하게 된다.

 

<자본>에서 맑스는 예전과 달리 역사의 방향에 관한 세 가지 다른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하게 된다. 하나는 <자본>의 32장에 제시되어 있는 생각인데, 이는 <공산주의자 선언>에서 이미 나왔던 메시아적 종말론 테마의 반복으로, 혁명을 수탈자들의 수탈이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자본>의 33장에 제시되어 있는 생각인데(혁명을 논하는 32장이 마지막 장이 아니라 그 뒤에 33장이 추가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많은 것을 말해준다), 거기에서 맑스는 중심의 자본주의 국가 내의 모순들이 식민지에 대한 착취를 통해 완화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놀라운 것은 <자본>에 나와 있는 공장 감독관 제도에 대한 그의 분석이다. 여기서 그는 공장 감독관이 국가의 편에서 파견된 ‘착취의 엔지니어’라고 볼 수 있지만, 동시에 공장 감독관은 아동노동 착취를 비롯한 자본가들의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초과착취를 제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파악하면서, 계급적대에 관해 자신이 과거에 가지고 있던 생각을 일정하게 수정한다. 과거에 맑스는 계급적대를 화해 불가능한 것이라고 보았으며, 따라서 (누가 이기든 간에) 계급 대 계급의 폭력적 충돌이 불가피하다고 여겼지만, 이제 <자본>에서는 계급적대를 화해 불가능한 것이 아닌 ‘환원 불가능한 것’으로 보면서,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이 (여론 등을 활용하고 다른 시민 세력들과 연대하여) 자본가 계급의 극단적 폭력을 제어하면서 자본주의를 좀더 민주적인 방향으로 발전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본다.

 

분명히 <자본>에서 혁명에 대한 사유는 결코 사라지지 않지만, 그것은 역사가 발전할 수 있는 하나의 가능한 경로로서만 고려되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 부르주아지의 폭력에 맞서는 반폭력의 정치가 폭력적 혁명의 정치의 곁에 또 하나의 가능성으로 나란히 제출되고 있는 것이다. 발리바르는 맑스가 바로 이 두 가지 가능성 사이에서 망설이고 있었지만, 얼마 안 있어 발발한 1871년의 파리 코뮌으로 인해서 그 망설임이 강제로 중단되었다고 말한다. 맑스는 파리 코뮌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될 수 있다고 보면서 봉기 이전에는 봉기에 반대했지만, 대중들이 실제로 봉기에 나서자 찬성 입장으로 돌아서서 파리 코뮌에 실천적으로, 또 이론적으로 동참하게 된다(비극적이게도 맑스의 애초의 예상은 틀리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으며 맑스는 이 사건으로 인해 심각한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맑스주의에서 또 다른 반폭력의 정치의 거대한 사례는 레닌에게서 발견될 수 있는데, 레닌은 혁명 그 자체를 하나의 반폭력의 정치로 만들어낸 최초의 이론가이자 실천가였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제2인터내셔널은 반전 입장을 취하고 있던 많은 좌파 정치인들이 1차 대전이 발발하자 애국주의와 찬전으로 돌아서면서 돌이킬 수 없이 붕괴하게 되었다. 끝까지 반전의 입장을 고수했던 극소수의 사람들(레닌, 룩셈부르크, 트로츠키 등)은 짐머발트 회의(이른바 제2.5인터내셔널)에서 제국주의 전쟁을 혁명적 내전으로 전환할 것을 결의했지만, 유일하게 레닌만이 그것을 실제로 어떻게 가능하게 만들 것인가를 이론적으로 연구했다.

 

발리바르에 따르면,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탐독하면서 레닌은 전쟁이 ‘시간이 걸리는 과정’이라는 통찰을 얻어냈으며, 따라서 전쟁 초기에는 대중들이 애국주의에 고무되어 전쟁에 찬성할 것이지만 장기간 지속되는 전투 속에서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경험들을 하게 되면 결국 근본적인 불만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예상하고, 볼셰비키 조직원들로 하여금 제국주의 군대에 스스로 지원하게 만들었다. 이 조직원들은 처음에는 전쟁에 나온 다른 병사들과 함께 전투를 하면서 그들과의 유대감을 발전시키다가 전쟁에 대한 대중들의 불만이 쌓여나가기 시작하면 그 불만을 정치적으로 조직해내는 임무를 맡았다. 이 때문에 러시아에서 2월 혁명이 발발했을 때 만들어진 대중조직은 단순한 노동자 소비에트가 아니라 노동자-병사 소비에트였으며, 재향 군인들은 이 평의회 조직의 거대한 한 축을 구성했다. 레닌은 바로 이런 정치적 개입을 통해 러시아를 혁명적으로 패배하게 만듦으로써, 사실상 1차 대전이라는 거대한 폭력 그 자체를 멈출 수 있었다(실제로 2월 혁명이 발발했을 때 망명 중이었던 레닌은 독일 정부를 찾아가, 만일 자신을 러시아 한복판으로 들여보내만 주면 혁명을 일으켜서 러시아를 전쟁에서 빼내고 이 전쟁을 멈추게 만들겠다고 약속하고 독일 정부로부터 그 유명한 ‘밀봉열차’를 받아내서 러시아로 멈추지 않고 들어가 10월 혁명을 성공시킨다).

 

반폭력의 정치의 또 다른 사례는 바로 대장정의 마오에게서 발견된다. 마오 또한 국공합작이 깨진 이후 중국 공산당이 처해 있던 거대한 열세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에 제시된, ‘방어전이 늘 공격전보다 용이하다’는 테제를 독특하게 해석하여 중국 상황에 적용시켰으며, 중국 공산당원들이 인민대중 속으로 숨어들어가도록 만드는 전략을 구사했다. 공산당원들은 이렇게 대중 속으로 도망침으로써 그 속에서 전세의 역전을 도모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되었는데, 그 속에서 그들은 주민대중을 정치적으로 자신들의 편으로 돌려놓을 수 있었고, 또한 다양한 소규모 게릴라전을 수행함으로써 전쟁에 필요한 무기 및 전쟁기술들을 확보하여 마침내 반격에 나설 수 있었다. 불가능해 보였던 중국의 사회주의 혁명의 성공으로까지 이어지는 이 놀라운 대역전극은 지배계급의 압도적 폭력에 대해 맞서 싸우기 위해 무대의 중앙을 단번에 장악하는 전술(예컨대 파리 코뮌의 전술)을 구사하지 않고 오히려 대중들 속으로 숨어들어가 정치와 방어전쟁을 결합하는 길을 마오가 찾아낼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반폭력의 정치로서 혁명을 사유하고 또 성공시켰던 레닌과 마오의 정치는 혁명 성공 이후 오히려 홉스적인 폭력 독점의 모델로 도착되고 말았을까? 우리는 다음 칼럼에서 이 문제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

 

 

  6. 어떻게 혁명을 문명화할 것인가?

 

지난 번 칼럼에서 우리는 대항폭력 노선으로 환원될 수 없는 반폭력의 정치 모델, 곧 폭력을 단순히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고 그것과 맞서 싸울 수 있는 길을 찾아내는 정치로서의 반폭력의 정치 모델에 대해 논하면서, 맑스주의의 역사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몇몇 탁월한 사례들을 검토했다. 특히 발리바르가 지적하듯이 레닌은 1차 대전이라는 거대한 극단적 폭력을 멈출 수 있는 효과적인 길을 발견할 수 있었던 실로 유일한 정치가이자 이론가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폭력을 단순하게 거부하는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노선은 (오늘날 유행하는 이러저러한 비폭력론이 취하는 형태와는 명확히 구분되는) 비타협적이고 투쟁적인 성격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극단적 폭력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길을 찾는 데에 실패했다. 왜냐하면 간디는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이 성취된 이후 인도 내의 종교적 갈등이 폭력적인 방식으로 터져 나오자, 갈등을 단지 일시적으로 유예시킬 수나 있었던 단식(간디 자신의 목숨을 건 단식) 외에 그 어떤 유효한 개입의 수단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비폭력 노선은 간디 사후 인도 내 종교 분파 간 대학살의 참극이 일어나는 일을 전혀 막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왜 맑스주의의 이런 반폭력의 정치는 혁명 이후 폭력 독점의 홉스적 모델로 변질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는가? 이 문제는 사실상 모든 사회주의 혁명이 경험했던 문제로, 단순히 (스탈린으로 대표되는) 몇몇 지도자들의 개인적 오류로 환원될 수 없는 것이며, 오히려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맑스주의 노선의 필연적 귀결이라고 봐야 한다.

발리바르에 따르면,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관념은 단번에 가공된 것이 아니다. 그 용어가 처음으로 출현한 것은 1848년 혁명에 대한 분석(<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에서였는데, 맑스는 그것을 공산주의자들이 채택할 수 있는 여러 전술들 가운데 하나의 전술로 제안했으며, 그 내용을 이루었던 것은 노동자와 농민의 동맹이었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투쟁이야말로 농민들을 해방시켜줄 수 있는 유일한 투쟁임을 보여줌으로써 중간계급으로서의 농민들을 부르주아지의 편에서 분리하여 자신들의 동맹군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1848년 혁명은 실패했으며, 그 후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관념은 (맑스의 정치경제학에 대한 연구의 착수와 더불어) 맑스의 텍스트에서 완전히 실종되었다가 20여년이 흐른 뒤 1871년의 파리코뮌에 대한 분석(<프랑스 내전>)에 이르러서야 다시 등장하게 된다. 이때 그 관념은 단순히 적절한 정세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취할 수 있는 가능한 하나의 전술이 아니라 모든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취해야할 이행의 보편적 형태라는 성격을 부여받았으며, 그 내용의 핵심은 노동자 계급의 직접민주주의적인 자기 통치에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가공할 모순이 이미 이런 프롤레타리아 독재 관념의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으며, 이 모순으로 인해 맑스가 노동자 계급의 직접민주주의적인 자기 통치로서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논하는 바로 그 텍스트에서 하나의 문제에 대해 완전히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즉 우리는 그 텍스트에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안에서의 공산당의 역할에 대한 어떤 논의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자기 통치’와 공산당의 ‘지도’라는 관념을 어떻게 화해시킬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다양한 이질적 세력들로 구성되어 있는 노동대중을 통일시켜 하나의 단일한 통치 계급으로 조직하기 위해서는 그 조직화의 중심으로서의 공산당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맑스에게 수십만 대중들의 희생으로 끝난 파리 코뮌의 처참한 실패는 바로 이 점을 보여주는 듯이 여겨졌을 것이다. 지배 계급의 압도적인 폭력과 대결함에 있어서 직접 민주주의적인 자기 통치는 무장해제까지는 아닐지라도 매우 곤란한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피의 일주일”이라고 불리는 파리 코뮌 진압 이후 맑스와 엥겔스가 곧바로 전위당을 건설하기 위한 투쟁에 돌입한 것은 이 때문이고, 이런 그들의 노력은 1875년 독일 사회민주당 창립으로 귀결된 바 있다.

 

하지만 맑스 자신을 포함하여, 맑스주의는 이 이론적 모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기는 커녕, 파리 코뮌 뿐만 아니라 러시아 혁명, 중국 혁명 등 모든 사회주의 혁명을 결정적으로 홉스적 폭력 독점 모델로 변질시킨 것이 바로 이 모순이었다고 우리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발리바르에 따르면, 이 모순은 정확히 혁명의 방어를 둘러싼 딜레마로 정식화될 수 있다. 혁명은 노동대중을 점점 더 자율적으로 만들고 그들의 자기 통치의 역량을 확장시켜 나가야 하는 것으로 가정된다. 그러나 혁명을 부르주아지나 또 다른 반혁명세력들(외국의 군대를 포함하여)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서는 노동대중을 군대로 조직해야만 하며, 따라서 그들을 규율화해야만 한다. 문으로 내보낸 근대 자본주의의 핵심으로서의 규율권력(미셸 푸코)이 다시 창문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없는 것이다. 대항혁명을 불러오지 않는 혁명이란 있을 수 없다면, 권력장악으로서의 혁명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늘 자신을 더 극단적인 혁명 또는 “초-혁명”(Ultra-Revolution)으로 전환시킬 수밖에 없으며, 이는 곧 혁명의 도착(perversion)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러시아 혁명의 성공 이후 전시 공산주의 시기 레닌은 크론슈타트 수병들의 반란의 진압을 계기로 당 내외부에서 터져 나온 비판에 대응하기 위해 공산당 내에서의 ‘분파형성권’(right to tendency)을 금지하는 권위주의적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는 결국 스탈린에 이르게 되면 당의 일괴암적 통일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숙청의 정치로 귀결되고 만다. 우리는 또한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유사한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마오는 중국 공산당의 기술관료주의화를 비판하기 위해 ‘요새를 포격하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대중들을 동원하여 반역을 조직했지만, 점점 상황이 통제 불가능하게 되자, 계급투쟁이 당을 관통해야 한다고 할지라도 이런 계급투쟁의 최종적인 해결장소는 여전히 당이어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혁명을 봉합할 수밖에 없었다. 당이 진리의 장소로 나타나야 한다는 맑스주의의 뿌리 깊은 사고를 마오 또한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1976년에 있었던 프랑스 공산당 22차 당 대회에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의 폐기 문제를 둘러싼 큰 논쟁이 벌어졌는데, 알튀세르는 이 개념을 폐기하려는 당의 주류적 입장에 맞서 투쟁했으며, 그의 제자인 발리바르도 알튀세르와 대동소이한 입장을 택하여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하여>라는 글을 썼다. 그러나 1977년 11월에 이탈리아 공산당 기관지 <선언>(Il manifesto)이 주최한 “혁명 이후의 사회에서의 권력과 저항”이라는 콜로키움 이후 사정은 크게 변했다. 알튀세르가 자신의 종전 입장을 되풀이하는 글을 그 콜로키움에서 발표하고 몇몇 인터뷰를 행한 반면, 발리바르는 1978년 초에 작성한 글(<국가, 당, 이행>)에서 자신의 스승의 입장을 명시적으로 비판하면서 사실상 1976년 논쟁 당시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의 폐기에 찬성했던 니코스 풀란차스(Nicos Poulantzas)와 수렴하는 입장을 취하기 시작했다(물론 풀란차스의 입장이 당의 주류적 입장과 같은 것은 아니었다).

 

1980년대와 90년대 발리바르의 이론적 작업의 축들 가운데 하나는 마오의 “조반유리”를 스피노자의 “오히려 인식하라”라는 슬로건과 결합함으로써 어떻게 혁명을 문명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사유하는 작업이었다.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고 볼 수 있는 이 작업에 있어서 그는 혁명의 지배적인 상 자체를 전환해야할 필요성을 제기하는데, 그에 따르면 우리가 갖고 있는 혁명의 상은 사실상 프랑스 대혁명의 모델에서 연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혁명이 반드시 이런 권력장악의 형태를 취해야 하는가? 앞서 말했듯이 권력장악으로서의 혁명, 특히 프롤레타리아트라는 통일된 계급의 독재로서의 혁명은 필연적으로 제기되는 혁명 방어의 딜레마를 좀처럼 극복할 수 없어 보인다.

 .....지배자들의 폭력뿐만 아니라 그에 맞서는 피지배자들의 대항폭력까지도 분석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상호 도착을 제어하는 혁명 문명화의 길을 우리가 발명할 수 있을까? 나는 거기에 좌파 정치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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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 불한당에게 고함!!!


X0. 반지성주의와 반권위주의를 전혀 구분 못하고 무례와 모욕을 선동하는 불한당에게, 그리고 학회와 해당 교육학회에 국립((국어))원 model을 권고함.


X1. 우선 2천 5백년 역사의 논리학에서 오류론의 제1조는 필수적으로 다음에 관한 것이다.

   Argumentum circumstantialis ad hominem via auctoritatem=ad verecundiam


X2. 그러므로 "과학이란, 전문가들도 실은 잘 모른다는 믿음"이며[: Richard Feynman],

"아무리 Nobel상 수상 과학자라도 대학원 신입생의 질문 하나에 쩔쩔매며 진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열심히 최선을 다해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철저한 평등 정신의 소산"이다[: 이정모]. 


X3. 우리 운동의 Lenin주의 선배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고 목숨까지 기꺼이 희생할 정도의 무한한 헌신성으로 무장하고 있었음에도 전위주의, 아니 단지 계몽주의를 추구한다는 단 한가지 이유 때문에 지난 30년을 운동 안에서조차 갖은 욕을 들으며 죄인처럼 숨죽여 지내야만 했다.


X4. 더구나 빛나는 대중노선을 그 핵심정신으로 하는 Mao주의에 의하면 당신은 반동이자 인민의 적이다.[5]


X5. 그래서 일찌기 산전수전 다 겪어 오신 한국 Marx주의의 쟁쟁한 거장들과 선배들은 함께 모여 다음과 같이 합의하신 바 있다.

    "우리 모두는 대중이며, 대중의 외부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다만 대중 안에서 우리 모두가, 대중 하나하나가 훌륭한 과학자들이 될 때까지 서로를 가르치고 서로 배우며 도와 나갈 뿐이다."[6]  


X6. 그런데 이제 헌신성이라고는 아예 말조차 할 것도 없고, 일생을 자기 자신과 자기 시간만을 위해 살아 와서, 쓸데없는 문제에 천문학적 시간을 허비하고 검토를 부탁하며 찾아 온 한 사람을 구원해 내는 데는 단 하루도 온전히 쓰기 싫다고 선동하는 당신이 나타나서 함부로 대중들을 비웃고 깔아뭉개며 세상과 정신의 주인이자 지배자 행세를 하려 드는 걸 도대체 어떻게 용납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7]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 물론 '더 나은 실패를 위하여 다시 한번 더'의 전형이 될 수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과정이 바로 ('인간'의) 역사 그 자체로(서) 사고되어야 한다.




[3] 따라서 골조만 드러난 미완성 초고이기에 혹시라도 다소 거친 비판으로 읽힐 수도 있으나 저자를 비롯한 ㅎㅈㅊ 선생님들께는 두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정신분석을 연구하시는 여러 선생님들께도 따뜻한 사랑과 존경을 보내는 바이며, 사정상 틈틈이 매우 조금씩 완성해 나갈 수 밖에 없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에 당장은 어렵겠지만, 시간이 주어진다면 차츰 그러한 진심과 진의가 글 전반에도 오롯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4] https://marxpino.tistory.com/258



[5]

V3a. Mao의 공과와 그에 합당한 올바른 처우

V3b. Maoism의 눈부신 보석으로서의 대중노선


V3s. 따라서 이는 물론 당연히 Mao를 전적으로 숭배하는 교조주의나 그 체제 자체, 특히 현재의 중국 체제에 대한 평가 논의와는 전혀 아무런 관련이 없(고 현재 지금 여기의 문제상황을 돌파해 나가기 위한 정신적, 이론적 도구 자원으로서 활용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6] 당조직 자체까지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며, 당이 설정되더라도 그 위치만은 반드시 대중 내부가 아니면 안된다는 규정임. 



[7] 최근, 특히 불과 며칠 간에 사회 각 분야에 급격한 전문가 숭배 및 신격화와 진보운동에 대한 Populism 비난 현상의 파급이 목격되어 이를 직접 선동한 것으로 판단되는 2(+1)개 핵심 text (/) node를 타격하는 목적으로 수행된 작업이며, 본인들 각자에게 요지는 전달되었다고 판단되어 더 이상의 구체적 지목은 생략하기로 함.


(아울러 이는 사상투쟁을 전개하는 투사모형의 행동노선에 입각한 사회정치적 개입의 일환이므로 가끔 이와 유사한 어떤 작업 행위를 목도하시더라도 심각한 오해 없도록 각별한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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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작성 중]


0. 생태-생물학주의적 영감들


a. 0/0=Encounter; 존재의 마주침(遭遇) 또는 교전

b. Entanglement/Engagement[앙가쥬망] : repetitive/stable/long-term (cor)relation/interaction/(co/in-)habitation


b1. 비적대적 얽힘

b11. 공생관계와 통합체제

        +/+=mutualism       [상생]

        +/0=commensalism[편리공생]

b12. 경쟁관계와 경합체제

         ±/±=

         -/-(비폭력)=



b2. 적대적 얽힘

        -/+=parasitism       [포식/기생]
        -/0=amensalism     [편해기거]
        -/-(폭력)=


b21. 착취exploitation    ← 하위의 내부자

b22. 수탈expropriation  ←하위내부자+내적 외부자

b23. 차별discrimination ←내부의 외부자

b24. 배제exclusion         ←외부자

b25. 무지/무시/비가시화   ←인지적 외부자 ; 암흑자, 그림자

b26. 폭압/폭력                 : 근원적 지배기제

           심리적=혐오

           물리적

b27. 파괴와 살해/살육       : 폭력의 종국적 형태





1. 정치적 평면화와 철학적 평면화















우선, [[경합들]]에서의 무프와 이 두 저자들의 공통문제는 한없이 복잡다단하고 역동적인 존재(자)들의 관계를 납작하게 평면화하고 형해화하고 있다는 것으로 이는 애초 그 의도와 달리 신-사조라는 포장지만 둘렀을 뿐 오히려 변증법이 도달했던 수준의 극복이라기보다는 그 현저한 퇴행이라 평가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상기의 중층관계망 복합 속에서 HARMAN은 모든 관계들을 symbioses/symbiotics[1]로만, HARAWAY는 sympoieses로만, MOUFFE는 agonistics로만 단일 범주화한다는 문제점을 노정하고 있는데, 이 중층복합관계망은 결코 단일하지도, 평면적이지도 않고 게다가 영원히 고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며 모든 주요 관계(변화)가 불가역적인 것 또한 아니다.

MOUFFE는 '존재론'적 심의 대신 Derrida적 Postmodernism의 구성적 외부 관계 '정체성론'에 기반한 반본질주의적 불확정성의 다원적 주체론을 주어진 공리적 대전제로 출발하여 그 대책으로서의 정치적 해결에만 집중하나 평화(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이상적 가치에 대한 맹목적 집착으로 당위를 향한 의지 하나에만 의지해 이 비약을 강요하고, 반면 HARMAN과 HARAWAY 등 일의성 철학에 도달한 존재론의 후예들은 본질에서 평등하고 동질적인 존재자들 간에 실재하는 끔찍한 적대와 갈등이라는 문제의 본격과 심각성을 애써 외면하면서 그 원인과 대안이라는 치열한 정치경제적 고민의 부재와 공백을 드러낸다.   





2. 무프 사상사의 단절 또는 동요


Laclau의 antagonistic paradigm과 radicalism ;급진민주주의

후기Mouffe의 agonistic paradigm과 (post-)liberalism ;(포스트-)자유민주주의


Laclau는 당시 세계체계 주변부이자 종속국의 가혹한 살인독재와, 활동가 3만여 명을 납치 학살해 아직까지 유골도 못 찾고 있는 더러운 전쟁[Guerra sucia]을 목도했을 뿐 아니라, Eric Hobsbawm의 도움으로 Oxford 유학길에 오른 '1969년도까지 그 자신이 직접 Argentinian National Left[: 당조직은 Partido Socialista de la Izquierda Nacional]의 핵심적 일원으로서, 말년까지도 Confederación Socialista Argentina와 깊은 연계를 맺으며 생을 강력하고 열정적인 Peronist로 살았기 때문에 확고한 radical 전통에서 결코 이탈한 적이 없고 그 투혼을 잊은 적도 없으며 그의 Marxism 재구성 이론과 좌익 Populism 전략도 모두 이로부터 분출되어 나온 것이었다. 따라서 그런 매력에 이끌렸던 Mouffe도 자연스럽게 그와의 협업기간 동안 적극적으로 이에 동조/동화하였던 것이 가장 중요한 동력 중 한 축을 형성해 온 것이었으나, 원래 그녀의 자생적이고 원천적인 동기는 대다수 서구 지식인들의 전형을 반복하는 중심부 백인 중산층 출신에 더하여 여성으로서 평화와 민주주의라는 가치만을 배타적으로 절대화함으로써 맹목적 고착 증상을 드러내려는 내재적 경향이 잠재되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3. 무프의 통찰이 Femi 항목 편집자와 기만적인 저자들에게 가하는 현타

  ; 도대체 '급진주의'란 무엇인가?












대체로 Rosemarie Tong의 개론서들은 (일정 정도는 상업적 목적의) 판본을 거듭할수록 새로운 경향과 분파 정보 수집열에만 편중할 뿐 초험적 분석가로서의 정치하고 정합적인 구조화 및 범주화나 거시적 관점과 역사적 paradigm 구축에는 완전히 실패하면서 분파들의 자기 변명과 합리화 논리들에도 내재적으로 오염되어, 단기적이고 피상적인 현상들까지 난삽하게 마구 뒤섞은 채 무질서하게 나열할 뿐인 체계로 열화되고 있다는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데, 특히 LF와 RF의 결정적 이단점으로서 antagonism에 기반한 일상적 또는 (좋게 말해) 전략적 폭력성이라는 결함과 낙인을 은폐하기 위해 법제도주의 대 문화주의라는 기만적 유사 변별점을 동원, 대체하고자 하나 문제는 이 관념적 경계선 상에는 어떠한 실질적 장벽도 존재하지 않고 또 근원적 실재 차원에서는 정치와 문화 자체가 결코 구분될 수도 없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양 진영 간에 인자와 운동이 조금도 고정되지 못 하게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3'. 한국의 자칭 보수우파들은 과연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들인가?

 ; '역사적' 전체주의의 정치철학적 본질 

실재하는 갈등과 대립, 적대를 부인, 은폐하는 기만적 기능주의 통합체제의 장기 지속

노조등의 자유로운 조직과 활동을 불허/방해하는 박정희(식) 체제는 자유민주주의와 대결하는 전체주의의 변종 




4. [[경합들]]에서 무프 논변이 가지는 심각한 오류들


4.1. 이제 우리 모두는 자유민주주의자들이 돼야 한다고??

    ;  지속적 퇴행과 우경화 시기의 최후 저작


4.2. 자유(민주)주의 위기의 원인에 대한 오분석과 (폐회로적) 동어반복의 순환논리

       안일한 정세 분석과 시대 인식에 있어 최장집류와 동일한 오류를 범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Zizek의 Badiou 사건론 비판과도 동일한 맥락에서 Mouffe 또한 위기를 포함한 모든 동태변화의 원인을 정치라는 단일 구조 안에서만, 특히 자유(민주)주의 안에서만 찾고 있음.  


4.3. 근본적 대안과 적대 없는 세계 


4.4. 비적대 관계망 내 평화적 민주주의와 적대 관계망 활동들의 철학적 및 전략적 교란




(4.)S. 결론적으로 무프는 세계사의 '68국면 전후에서 Althusser의 제자로서 Marxism에서 출발해 post-Marxism과 radical( democrat)ism을 거쳐 liberal 좌파로 퇴행했다 4차 위기 국면에서 좌익 populism으로 복귀하는 등 post-liberal 좌파와 radical (progressive) 우파 사이에서 동요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고, 본서는 원저가 '2013년 작으로 복귀 이전까지 현실화/우경화 추세선 상의 작업을 짜맞춘 총화물에 해당하며, 이 구도 안에 있는 그의 기성 자유(민주)주의 비판이란 결국 보수화된 modern liberal에 대한 post(modern) liberal의 비판적 갱신으로 정리할 수 있음.[2][3]







[각주]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 

symbioses : 공생관계들

symbiotics=symbionts : 공생물(/)체들


[2] 

이상은 완전히 독립적 작업이므로 추가적 교차비평Transkritik이나 교차검증을 원하는 분들은 다음도 참고하시오.


 LAURIE, Timothy (2013). "Review: 'Agonistics: Thinking the World Politically'"@Melbourne Journal of Politics. 36: 76–78. 

 :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좌파적 비판


유용민 (2015). "아고니즘의 혼란과 역설: 샹탈 무페의 갈등 인식에 대한 비판적 고찰Chaos and Paradox in Agonism: A Critical Appraisal of Chantal Mouffe’s Theory of ‘Conflict’"@한국언론학회{커뮤니케이션 이론}vol.11, no.3, 통권 29호 pp. 4-46.

 : 다소 우파적 또는 공화주의적 염려의 반영으로 읽힐 수도 있으나 최소한 현재까진 국내 거의 유일 비판


[3]

그러나 radicalism 자체만으로는 어떠한 진보성도 담지되지 못 하며, 따라서 '급진주의'로의 번역에도 문제가 있고 문제의 핵심은 (특히 개인주체가 심리적으로[ ; 느낌적인 느낌으로]) radicalism인가 아닌가가 아니라 그것이 사회의 실재적 적대와 역동적 변화를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는 이론과 paradigm인가, 그렇다면 그 근원과 주적은 과연 무엇인가를 과학적으로 해명하고 현실검증하는 것이라 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이 부실하거나 생략될 때 편집증적 피해 망상으로 전락해 버리게 되는데, 현실검증이라는 단 하나의 연결고리만을 제외하면 편집증은 일반적으로 대단히 논리적이고 정합적인 '체계' 구축 성향을 그 대표적 증상으로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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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이론적 혼란을 느끼시는 분들은 급한 대로 다음의 약평을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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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hizome 2024-04-19 0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Page는 (댓글창을 통해) 적어도 당분간은 ‘학술‘ 특히 ‘철학‘ 관련 주제들을 위주로 모아 게시하는 용도로 사용키로 함.

rhizome 2024-04-19 0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 신유물론 계보학 총론 (초록) ]


최근 일부에서 신유물론들을 관계론적 일원주의와 실체론적 다원주의로 분류, 대립화하려는 시도가 있는 듯한데...
모든 유물론 계열들은 기본적으로 일원주의 주변에 포괄 또는 분포한다 할 수 있으나,
a. These : 이를 가장 강경하게 추구하는 흐름인 실체론적 일원주의가 고질적으로 ‘환원주의reductionism‘화해 버린다는 핵심문제를 노정하기에
b. Antithese : 이에 대한 반발로 유물론 계열 내부에서 표현적 유물론이나 문화주의적 유물론 등 (유사-)다원주의적 시도들이 출현하게 되는 것이고,
c. Synthese : 궁극적으로 대립하는 양자를 통합하려는 흐름이 관계론적 일원주의 계보라 정리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