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기생뎐
이현수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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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이라... 한세월을 거슬러 올라간 조선조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그렇지도 않네 그려. 세월의 뒤안길로 영 사라진 줄 알았던 기생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현대의 기생들의 이야기다. 이름하여, <신기생뎐>이다. 군산에 터를 잡은 부용각 기방에서는 화투짝 내리치는 소리며 "쓰리 고"를 외치는 비명소리가 터져 나오거나 노래방 기계음과 유행가가 흘러나오기도 한다. 미스 민이 기방의 전통에 따라 화초머리를 올릴 적에도 밤무대 의상을 입은 밴드가 풍물잡이와 함께 들어서는 것을 보면 전통도 세월의 흐름을 꽁꽁 묶어두지는 못하는 모양이구나 싶어진다.  

  조선조 선비들이 기녀들이 시와 풍류를 알아듣는다 하여 해어화(말을 알아듣는 꽃)라 불렀다던가...  <신기생뎐>에서는 기생의 길을 받아들이고 피를 쏟아가며 얻은 소리로 인정 받았지만 점차 빛을 잃어가는 한 떨기 해어화를 만날 수 있다. 각 인물을 중심으로 연작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작품은 구성진 가락과 질펀한 사투리로 기생의 애환과 슬픔, 기방의 삶과 죽음을 담아 내고 있다. 

  부용각은 반백 년의 세월을 기방 부엌에서 보냈다는 타박네가 여자 장사가 아닌 기방의 전통을 고수해왔다는 자부심으로 지켜 온 곳이다. 타박네의 손길, 눈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는 부용각에는 손맛을 잃지 않기 위해, 이 곳을 지키기 위해 한 순간도 마음 편하게 쉬어보지 못한 부엌 어멈의 고단한 삶이 묻어 있다. 일흔 아홉 살이란 나이를 잊게 만드는 강단을 지닌 타박네의 강팍한 사투리는 이야기 자락 자락에 끼어들어 매콤한 양념 역할을 해주는지라 부용각 뿐 아니라 이 이야기에서도 없어서는 안될 존재이다. 바싹 마른 두 다리를 새가슴에 붙이고 앉아 있곤 하는 타박네의 손맛이 변함이 없었던 비결에 어쩔 수 없이 눈매가 젖어온다. 

   기생의 제복인 색 고운 화사한 한복과 장신구로 치장을 하고 미모와 웃음, 소리와 춤으로 사내들을 녹이고 홀리는 이들이 못내 미울 법도 하다. 헌데 화려한 삶의 밑자락에 허망함과 슬픔을 채우며 사라져갈 운명이 자못 안타까워진다. 손님이 아내에게 주기 위해 사 들고 온 작은 화분을 보며 한숨을 쉬는 이들은 사랑에 패배할 운명을 지니고 여인들이다. 한없이 추켜 올려졌다가도 순식간에 나락으로 내팽개쳐지는 처지가 되는 것이 이들이다. 미모나 재능이 뛰어나 이름이라도 알려지면 사내들은 한 번이라도 품어보고 싶은 욕망에 애간장을 태워가며 줄을 선다. 그러나 어쩌다 제 맘에 들지 않거나 기분이 틀어지면 "기생 주제에... "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이 그네들의 슬픈 운명인 것이다.  

  타박네와 함께 부용각의 전통을 지키고 있는 이는 소리기생 오 마담이다. 속없이 있는 거 없는 거 다 펴주다 사랑에 속고, 사랑에 울면서도 또 그 놈의 사랑에 목을 매는 오 마담의 속절없는 목마름은 기생이 필연적으로 지닐 수 밖에 없는 삶의 빈자리 때문일까. 오 마담에게 들러붙어 등골을 빼먹는 기둥서방 김사장의 이야기도 한 쪽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가 꾼으로서의 품위(?) 유지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살짝 가상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읊어대는 여성에 대한 견해를 듣고 있자니 부애가 나서 양푼이에서 밥을 떠먹던 숟가락으로 '얌통머리 없는 놈'의 뒤통수를 한 대 딱~ 때려주고 싶은 심통이 불쑥 쏟아 오른다. 반면 능소화에 홀렸는가, 소리에 취했는가, 어쩌다 한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긴 사내의 한결같은 사랑은 늘 같은 자리에 놓여 마루에 인두로 지진 것 마냥 동그란 대접 밑테 자국을 남길 만큼 지극하다. 

  기생의 눈물은 누구도 닦아주질 못하니 그저 마르거나 시들게 내버려 두어야 한다고, 기생의 일생에 남는 건 고작해야 몇 가지 삶의 흔적과 한 장의 손수건 뿐이라고....

  풍물잡이의 장단에 어깨를 들썩이듯, 가녀린 손 끝으로 만들어내는 춤사위를 지켜보듯, 꽃살문에 손 구멍을 폭폭 찔러 안을 들여다 보듯, 그렇게 기생들의 삶의 애환이 담긴 이 작품을 읽었다. 역사 속으로 조용히 사라져가는 기생의 비감하면서도 허허로운 삶의 한 자락이 가슴 한 구석에 꽃잎 하나를 떨구고 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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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1-03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곱게 춤을 추고 가야금을 뜯고 소리를 하는데, 막상 발 뒤꿈치는 저려 금세 주저앉을 것 같고, 손끝은 갈라지고 목소리를 빼앗길 듯한, 그래도 마지막까지 꼿꼿하게 앉아 `나는 나 자신만 섬깁니다'라고 말할 것 같았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씩씩하니 2006-11-03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으로 기가막힌 삶의 주인공인거 같애요,,기생이...
기생이라는 단어 속에 웅크리고 있는 기구한 삶의 애환이 가득한 책 같애요...
황진이를 문득 떠올렸는데...

비로그인 2006-11-03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시절 MT나 개강파티,종강파티를 하면 늘 타박네가 빠지지 않았어요.
가사가 너무 슬프고 화나서 뭐 이런 인생이 다 있나 해서 저는 입을 꼭 다물고 안 불렀는데 선배들은 이 노래를 무지 좋아하더라구요.
결혼하고 나서 보니 지금 여성들의 삶도 실상은 그 이야기에서 그리 멀리 진화된것 같지는 않아요.

아영엄마 2006-11-03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력!! 처음 쓴 리뷰가 너무 길어서 좀 줄여서 올렸어요..^^;;

실비 2006-11-03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구절이 인상깊네요.. 허허로운 삶의 한 자락이 가슴 한 구석에 꽃잎 하나를 떨구고 간 작품.. 예전에 읽은 황진이 생각나네요... 황진이도 그랬는데.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