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쏘다녔지, 터진 주머니에 손 집어넣고.

짤막한 외투는 관념적이게 되었지.

나는 하늘 아래 나아갔고, 시의 여신이여! 그대의 충복이었네.

오, 랄라! 난 얼마나 많은 사랑을 꿈꾸었는가!

 

내 단벌 바지에는 커다란 구멍이 났었지.

- 꿈꾸는 엄지동자인지라, 운행중에 각운들을

하나씩 떨어뜨렸지. 내 주막은 큰곰자리에 있었고,

- 하늘에선 내 별들이 부드럽게 살랑거렸지.

 

하여 나는 길가에 앉아 별들의 살랑거림에 귀기울였지.

그 멋진 구월 저녁나절에, 이슬 방울을

원기 돋구는 술처럼 이마에 느끼면서.

 

환상적인 그림자들 사이에서 운을 맞추고,

한 발을 가슴 가까이 울린 채,

터진 구두의 끈을 리라 타듯 잡아당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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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though the radiance which was once so bright
Be now for ever taken from my sight


한 때 그토록 찬란했던 광채가
사라져 버렸다 한들 어떠랴


Though nothing can bring back the hour
Of splendor in the grass, of glory in the flower


초원의 빛, 꽃의 영광
그 시간이 돌아올 수 없다 해도


We will grieve not, rather find
Strength in what remains behind


우리는 슬퍼하지 않고
남아있는 것들 속에 강함을 찾으리라


In the primal sympathy
Which having been must ever be


이제껏 존재했고 앞으로도 존재할
근원적인 공감 속에서


In the soothing thoughts that spring
Out of human suffering


인간의 고통으로부터 솟아난 위안 속에서


In the faith that looks through death
In years that bring the philosophic mind


죽음을 꿰뚫어보는 신념 속에서
철학적 정신을 불러오는 세월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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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수동 오정초등학교 가는 길.

 

 

20년 전 살았던 동네.

어릴 적 기억에 비해 다 너무 작고 좁고 짧아보여서 놀랐다.

 

 

20년 전과 똑같은 모습의 놀이터.

이젠 너무 낡았어. 

 

 

 

 

묶여 있던 스트레스로 하룻밤 만에 사망한 불쌍한 개구리를 묻어주었던 자리. ㅜ) 

 

 

호돌이 공원으로 가는 계단. 

 

 

호돌이 공원. 

 

 

여덟 살 고사리 같은 손으로 X냄새 참아가며 은행을 주웠다. 할머니가 시켜서; 

 

 

저 기구 위에 잘 올라갔었는데.

내가 사랑했던 아카시아 나무는 못찾겠네.

예전엔 저 뒤의 숲으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지금은 아예 길이 안 보여.

 

 

저 뒤의 글씨 지금 사진 편집하다 봤네. 사유지였어?!

언제부터??

 

 

 

이런 게 원래 있었나?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 2007년이라고 되어 있네.

근데 코딱지만한 땅에 열고 닫고 할 게 뭐가 있어?

 

 

동신아파트 쪽으로 내려가는 길. 

 

 

단풍나무 아직도 있네.

저 빨간 게 땅으로 빙글빙글 돌면서 떨어지는 걸 신기해했었다. 

 

 

홈플러스 역곡점. 집에서 걸어서 한 시간도 안 걸리네.

베스킨라빈스 파핑 트로피카♡ 

 

 

계속 경인로를 쭉 걸어가다가

소사역 근처에서 원미도서관 쪽으로 뚫린 길을 못찾아서

부천역까지 갔다가 다시 되돌아옴.

소사역으로 들어가 3번 출구로 나오면 되네.

 

 

원미도서관 도착!

석가탄신일인 오늘은 휴관일이라 내부 사진을 찍을 수 없어 안타까웠다. 

 

 

 

 

 

 

저 멀리 보이는 위브.

저게 생기면서 이렇게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이 바뀌었지.

(뭔가 이상해서 검색해보니 높은 건물 2개는 나중에 생긴 리첸시아고

낮은 건물들이 위브다. 위브도 크던데 리첸시아는 얼마나 높은거지?)

(또 추가 검색. 66층이군)

 

 

원미도서관을 떠나 부천종합운동장역으로 가는 길.

있는 줄은 알았지만 처음 들어가보는 곳. 

 

 

오잉? 높은 곳에 있는 저건 뭐지?

가까이 가서 자세히 봤음 좋겠는데. 

 

 

수상한 물체에 접근 중...

 

 

문제의 이상한 나무 가까이로 갔다.

어떻게 저런 모양이 나오지? 

 

 

부천종합운동장. 

 

 

 

까치울역을 지나 작동터널까지 갔다.

터널 안으로 지나가면 공기가 안 좋을 것 같아 위로 넘어갔는데

이미 꽤나 지친 상태에서 가파른 산길을 넘어가느라 힘들었다. 헥헥...; 

 

 

 

궁동복지관 건너편 카페에서 잠시 휴식... 

 

 

 

 

 

 

 

오류동 20년 전 이용했던 서점이 아직도 있다.

(난 지하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는데)

대형서점이 활발히 생겨나는 와중에 어떻게 안 없어졌을까?

구경하고 있는데 아저씨가 어딜 가봐야 된다고 하셔서 황급히 잡지 한 권 샀다.

 

 

슈퍼에 들러 마실 것을 사고 집으로 돌아왔다.

KGB는 술이라기보단 그냥 음료에 가까운 것 같다.

마들렌은 아까 카페에서 샀다. 맛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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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합격자 명단에서 당신의 이름을 보고 축하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여 왔습니다. 1등만을 기억하는 세상에서 수능 점수 100점으로 예비 합격한 당신을 축하할 자신이 내게도 없습니다. 지금쯤 당신은 어느 대학의 합격자가 되어 대학 생활을 시작하고 있거나, 아니면 기술 학원에 등록을 해 두었는지도 모릅니다만 어쨌든 나는 당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축하의 편지를 씁니다. 이제 대학 입시라는 우리 시대의 잔혹한 통과의례를 일단 마쳤기 때문입니다.

나와 같이 징역살이를 한 노인 목수 한 분이 있었습니다. 언젠가 그 노인이 내게 무얼 설명하면서 땅바닥에 집을 그렸습니다. 그 그림에서 내가 받은 충격은 잊을 수 없습니다. 집을 그리는 순서가 판이하였기 때문입니다. 지붕부터 그리는 우리들의 순서와는 거꾸로였습니다. 먼저 주춧돌을 그린 다음 기둥, 도리, 서까래, 지붕의 순서로 그렸습니다. 그가 집을 그리는 순서는 집을 짓는 순서였습니다. 일하는 사람의 그림이었습니다. 세상에 지붕부터 지을 수 있는 집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붕부터 그려온 나의 무심함이 부끄러웠습니다. 나의 서가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낭패감이었습니다. 나는 지금도 책을 읽다가 '건축'이라는 단어를 만나면 한동안 그 노인의 얼굴을 상기합니다.

차치리(且置履)라는 사람이 어느 날 장에 신발을 사러 가기 위하여 발의 크기를 본으로 떴습니다. 이를테면 종이 위에 발을 올려놓고 발의 윤곽을 그린 것 입니다. 한자로 그것을 탁이라 합니다. 그러나 막상 그가 장에 갈 때는 깜박 잊고 집에 두고 갔습니다. 신발 가게 앞에 와서야 탁을 집에다 두고 온 것을 깨닫고는 탁을 가지러 집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제법 먼 길을 되돌아가서 탁을 가지고 다시 장에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장이 파하고 난 뒤였습니다. 그 사연을 듣고는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탁을 가지러 집에까지 갈 필요가 어디 있소. 당신의 발로 신어 보면 될 일이 아니오." 차치리가 대답했습니다. "아무려면 발이 탁만큼 정확하겠습니까?" 주축돌부터 집을 그리던 그 노인이 발로 신어보고 신발을 사는 사람이라면 나는 탁을 가지러 집으로 가는 사람이었습니다. 탁과 족, 교실과 공장, 종이와 망치, 의상과 사람, 화폐와 물건, 임금과 노동력, 이론과 실천... 이러한 것들이 뒤바뀌어 있는 우리의 사고를 다시 한 번 반성케 하는 교훈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당신이 대학의 강의실에서 이 편지를 읽든 아니면 어느 공장의 작업대 옆에서 읽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어느 곳에 있건 탁이 아닌 발을 상대하고 있다면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당신이 사회의 현장에 있다면 당신은 당신의 살아 있는 발로 서 있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대학의 교정에 있다면 당신은 더 많은 발을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대학은 기존의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종속의 땅'이기도 하지만 그 연쇄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가능성의 땅'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그동안 못했던 일을 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가고 싶은 곳을 찾아가겠다고 했습니다. 대학이 안겨 줄 자유와 낭만에 대한 당신의 꿈을 모르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얽매여 있던 당신의 질곡을 모르지 않습니다. 당신은 지금 그러한 꿈이 사라졌다고 실망하고 있지나 않은지 걱정됩니다. 그러나 '자유와 낭만'은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자유와 낭만은 '관계의 건설 공간'이라는 말을 나는 좋아합니다. 우리들이 맺는 인간 관계의 넓이가 곧 우리들이 누릴 수 있는 자유와 낭만의 크기입니다. 그러기에 그것은 우리들의 일상에 내장되어 있는 안이한 연루와 결별하고 사회와 역사와 미래를 보듬는 너른 품을 키우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대학은 당신이 그동안 만들지 않고도 공부할 수 있게 해준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만나는 연대의 장소입니다.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발의 임자를 깨닫게 하는 '교실'입니다. 만약 당신이 대학이 아닌 다른 현장에 있다면 더 쉽게 그들의 얼굴을 만날 수 있습니다.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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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수능 공부할 때 언어영역 문제집에서 보고 인상깊었던 글.

1996년 출간된 <나무야 나무야>라는 책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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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살았을 때 집의 (언니와 내가 쓰던) 안방.

하얀 벽에 큰 풍뎅이 같고 굵고 실한 벌레가 붙어 있었다.

라디오인가?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라디언은 여병추야... 그놈들은 말이야 어쩌구 저쩌구..."

???

그리고 가만히 있던 벌레가 나를 향해 돌진했다.

나는 욕실 바가지(지금도 집에서 쓰고 있는 하얀 거;)를 휘둘렀다.

그 벌레는 바가지에 정통으로 맞아도 끄떡없이 계속 나에게 달려들었다.

그렇다! 그것은 바로 요새 우리 사회에 창궐하는... 일베충이었던 것이다!! -_-;

전엔 뉴라이트라는 점잖은 이름으로도 불리웠으나 이제는 벌레가 된 그들...

 

나에겐 믿음이 있었다.

지금 기성세대의 부조리한 가치관에 의해 우리나라가 지역감정으로 분열되어 있어도

세대가 바뀌면서 그런 것들은 사라질 거라고... 지역감정은 단지 구세대의 유물이라고.

정말 막연한 기성세대에 대한 불만과 막연한 다음 세대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헤겔의 자기실현으로서의 역사를 믿었다.

그러나 그런 나의 꿈은 일베의 등장으로 산산히 부숴졌다.

 

알고보니... 어린 것들이 더하더라고! ㅠㅠ

 

학교 다닐 때 아무렇지 않게 컨닝하는... 그러면서 안하는 게 병신이라고 하는 학생들은 보며

이 아이들이 세상에 나가서 사회의 구성원이 된다고 생각하니 두려웠다.

통일의 대한 염원도 없고... 민주화라는 단어도 왜곡해서 쓰는 젊은 세대가 걱정스럽다.

어제는 요즘 특히 시끌시끌한 인터넷 기사들을 읽고 이육사 이야기를 보고

여러 생각을 하게 되면서 이런 꿈까지 꾸게 되었나 보다.

 

마지막으로 벌레가 내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순간 꿈에서 깨어났다.

실로 오랜만에 꾼 악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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