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 복수! 복수! 복수는 나의 것

복수! 분명 사람의 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누구나 복수를 꿈꾸며 살아간다. '그 사람만 없다면 나는 행복해 질 것을' '그 사람 때문에 내가 이 지경이 되었어'라고 생각하면 그를 제거하고 싶어진다. 복수는 결코 우리를 행복으로 엔딩하게 하지 않는다. 그래도 여전히 복수는 달콤하다.  

<극락도 살인사건> 

<극락도 살인사건>은  정통 추리소설이라고 보기에는 힘들다. 추리소설의 극치는 수수께끼같은 문제들이 마지막에 이르러 치밀한 논리와 명쾌한 풀이를 통해서 해석이 되는 것이다. 무의미하게 흩어지고 나누어진 단서들이 한가지 분명한 의미를 부여받음으로 끝나게 된다. 슬프게도 <극락도 살인사건>은 그렇지 않았다 것이다. 섬 사람 모두가 죽어가는 풀수 없는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듯 하지만 모두가 '약물' 때문으로 몰아 버린다. 복수의 이유도, 내용도 없도, 순식간에 사람들이 돌변해서 짐승처럼 서로를 죽인다. 무엇 때문인지도 드러나지도 않는다. 잔인한 살인만이 중반너머까지 이어지는 답답한 지루함이 계속된다. 그러나 마지막에 이르러 그 정체가 밝혀진다. 순진한 의약도?의 약물 투여 사건이었다. 제약회사의 회장이 극락도 주민을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한 것이 부작용을 일으켜 서로를 죽이게 한 것이다. 물론 이것도 불투명하다. 어쩌면 이 약은 검증되지 않는 5공 시절의 이데올로기 였는지도 모른다. 극락도 주민들은 이유도 모르는체 실험 대상이 되었고, 자신도 모르는 우발적인 행동과 생각을 하게 된다. 복수는 어쩌면 우발적인, 아니 누군가에 의도된 상황 속에서 일어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극락도 살인사건은 아무 것도 모르는체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서로를 미워하고, 서로에 대하여 분노하고 서로에게 까닭없이 삿대질을 해댄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존재에 의해 투여된 '약물'의 부작용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명쾌한 답을 주지 않지만, 그래서 이 영화는 더욱 강렬하게 우리의 삶을 궤적한다.

 

 

 

 

 

 

 

 

그런데 복수는 왜하고 싶어하는 것일까? 정의가 때문에? 아니면 내가 손해를 보았기 때문에? 하여튼 복수는 그가 나에게 해를 주었기 때문에 그에 응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복수는 법으로 금지다. 복수는 국가가 대신한다. 개인적을 복수는 불가능하다. 만약 복수를 하려면 국가의 복수?를 받아야한다. 그럴 자신이 있다면 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를 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에 이어 박찬욱 감독의 '복수 삼부작'으로 알려진 <<복수는 나의 것>>, 그러나 너무나 어두운 내용이라서 사람들은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무서워도 일단 웃겨야 한다는 사소한 진리를 놓치고 말았다. 어쨌든 이 영화는 복수의 복수를 낳은 복수의 악순환을 그려주었다. 농아인이었던 류는 극렬사회주의자인 애인과 함께 누나의 신장이식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중소기업 사장의 딸을 유괴하여 돈을 요구한다. 그러나 누나는 이 사실을 알고 죄책감에 시달려 자살을 택한다. 누나를 묻어주기 위해 물가에 간 찰라 사장이 딸이 익사 사고로 죽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사장은 다시 류를 찾아내 복수하지만 극렬사회주의자였던 류의 애인의 동료들에 의해 다시 복수를 당하게 된다.  복수는 또다른 복수를 계속하여 부를 뿐이다. 

 

 

 

 

 

 

 

 

 

사실 <복수는 나의 것>의 주제는 사회적인 불가피한 상황 속에서 일어나는 어처구니 없는 복수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싶어 안달이다. 의외로 복수는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상황 속에서 일어난다. 의도하지 않았던 사고로 죽은 어떤 남자. 그러나 그의 아들이 아버지를 죽인 원술?에게 복수한다. 그리고 다시 동생이 복수한다. 알고보면 복수는 어처구니 없는 것이다.  

<죽이고 싶은> 

영화 <죽이고 싶은>은 기억에 의한 미움으로 나타는 복수임이다. 복수는 기억에서 나온다. 문제는 왜곡된 기억이라는 것이다. 잘못된 기억을 소유함으로 그 기억에 의하여 상대를 미워하고 복수하려는 마음을 갖게 된다. 그렇다면 기억을 상실하면 복수심도 없어진다는 결론에 이른다.  

  

 

 

 

 

 

 

 

  

 

 

 

같은 입원실에서 서로를 죽이기 위해 기묘한 방법을 동원하지만 복수는 미수에 그친다. '수진'이라는 한 여자에 대한 서로다른 기억을 갖게 됨으로 서로에게 불신과 복수심을 갖는다. 중반부까지 이어지는 왜곡된 기억의 해석으로 서로를 죽이려하는 그들만의 싸움에 관객은 내심 불편해지는 영화다. 관객들이 영화에 몰입하지 못하도록 관객를 타자로 밀어내 버리는 어색한 플롯 때문에 겉도는 영화다. 어쨋든 마지막 부분에서 김서형분이 열연한 숨겨진 실체 '백과장'의 직접화법을 통해 그들의 복수가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가를 보여준다. 


 

"사람은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
 

우리가 믿고 확신하는 기억이란 것이 얼마나 황당하고 왜곡되시 쉬운 것인가를 일깨워주는 촌철살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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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벽한 아내를 원하십니까? 

전래 동화에 우렁이 각시 이야기가 있다. 민담에는 '사람으로 변한 동물' '평범한 남자와 고귀한 여자의 만남' '지배자의 서민 착취'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관리가 우렁각시를 빼앗아 간다는 내용으로 하층민의 슬픔이 고스란이 담겨있다. 어쨋든 우렁각시는 남자들의 우상이요 모든 남편들의 이상형이다. 남자들에게는 모든 여자들에게서 이러한 우렁각시 신드룸을 기대한다. 착하고 조용하고 다소곳하면서 자신의 일을 착실히 하는 고향같은 엄마같은 아내를 갖고 싶어한다. 그러나 현실은 대부분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다. 

집에 들어가면 잔소리하고, 짜증내고, 남편을 마음대로 주무르려 한다.  그래서 오직 여성으로서만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만을 취하려 한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로봇 여성이다. 펨봇이라고 부르는 여자로봇을 만들어 좋은 기능만을 취하여 만들었다.  오스틴 파워2탄에서도 여성로봇인 펨봇이 등장한다. 이들은 이블박사의 살인병기 로봇으로 오스틴 파워를 유혹하는 데사용된다.

 

 

완벽한 몸매와 요염한 포즈를 통해 오스틴 파워를 유혹하지만, 역시 실패하고 만다.  완벽한 몸매와 눈을 어지럽게하는 탁월한 외모와 남자의 요구에 절대적 순종으로 순종하는 여성상이다. 그들은 금발이다. 금발은 어리숙함과 성적 매력이 조화된 조종되는 여성상이다. 마를린 먼로를 보라. 그녀는 유명세를 타자 곧바로 갈색의 머리를 금발로 염색했다. 이들의 머리를 보라! 모두가 생머리에 어깨 아래로 내려오는 길이를 가지고 있다. 펨봇은 남자들의 숨겨진 욕망을 채워주는 조건을 그대로 갖추고 있다.

 스텝포드 와이프라는 영화에서는 정말 완벽한 아내가 나온다. 바비 인형같은 몸매와 완전한 순종하는 여성이 새로 이사간 스텝포드 마을에 살고 있었다. 방송국에서 잘나가던 조안나는 스텝포드로 이사가면서 완벽한 여성들에게 이상한 낌새를 느낀다. 결국 그곳의 여자들은 로봇이었다. 아니 로봇이 되었다. 철저하게 프로그램되어 움직여 진다. 완벽하면 할수록 불안해지는 것은 결국 남자이다.

 

 

 

 

 

 

 

 

 

 

여우같은 여자와는 살아도 곰 같은 여자와는 살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여우같은 여자는 완벽한 여자가 아니라 시샘하고 질투하는 여자다. 곰같은 여자는 완벽한 여자다. 단순히 몸매가 따라주지 않는 여자가 아닌 순종으로 일괄하며 살아가는 생기없는 여자다. 완벽한 여자를 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완벽함에 더욱 이질적으로 대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다. 옛말에도 이르기를 너무 깨끗한 물에는 물고기가 살지 못한다 하지 않았던가! 완벽함은 곧 인간이기를 거부하는 것이며, 사랑하고 용서하고 인내하며 참아주며 허물을 엎어줄 '정'을 누리지 못한다. 완벽을 추구하는 현대의 캐리우먼과 사회 속에서 로봇처럼 살아야하는 현대 여성들을 슬픈 멜로디로 담아낸 영화이다.  <블레이드 러너>에서도 미모의 로봇 여성이 등장한다. 자신이 로봇인지도 모르고 살아가며 완벽한 삶을 추구해 나간다.

 

블레이드 러너의 레이첼역의 손영

로봇 여성은 프로그램되고 그것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삶을 살아간다. 어쩌면 여성 로봇 펨봇은 이 사회가 요구하는 완벽한 여성상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알고 신사임당이 유교적 색체로 덧입혀진 여성상이며, 5공화국의 필요에 의해 억지 해석된 여성상인 것처럼 현대의 여성들은 그러한 절대적 순종을 요구받고 살아간다.  

결국 완벽함을 요구하는 남성들에 의해 조작된 여성상은 남자를 무미 건조하게 만들고, 인간답지 못한 모습으로 살아가도록 만들다. 부족하기 때문에, 허물이 있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말이 전적으로 옳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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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25일 서재 방문자수가 무려 490명이나 됩니다. 알라딘에서 490명이 된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죠. 그런데 이러한 방문자 통계가 하루 아침에 끝나지 않고 연이어 계속 된다는 점이 신기합니다.

 

 

 

7월 12-18일까지의 방문자 통계를 봐도 18일 하루를 빼면 거의 200명도 되지 않는 방문자 통계인데, 무슨 일인지를 몰라도 방문자가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알라딘의 속성상 방문출처를 알 수 없어서 답답하기는 하지만 기분은 좋습니다.  

 

 

 

여러 정황들을 살펴 보면, 

먼저 페이퍼를 꾸준하고 쓴다는 것. 

둘째,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 

셋째, 다음뷰를 통해 많은 유입자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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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몽선습 童蒙先習 
 

童(아이동) 蒙(입을몽) 先(먼저선) 習(익힐습)  


동몽선습은 어린이들에게 가장 기초적인 윤리와 역사적 정통을 가르치기 위하여 만들어진 책이다. 조선조 성종과 명종 때 활동했던 소요당 박세무(1487-1564)가 지은 것으로 최초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서당에서 주요 교재로 채택되어 읽혀진다. 천자문을 익히고 난 후 들어가는 초급과정이다. 부자유친, 군신유의,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의 오륜을 설명한다. 역사적내용으로는 중국의 삼황오제부터 명라나까지의 역대사실을 서술했고, 우리나라는 단군에서 시작하여 조선의 역사까지를 약술한 책이다. 동몽선습에서는 인간이 짐승과 다른점을 오륜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파하면서 참 인간다움을 이루기 위해서는 오륜을 잘 지켜야 할 것을 강조한다.

동몽선습의 1,1을 보면 이렇다.

1,1 天地之間萬物之中에 惟人이 最貴하니 所貴乎人者는 以其有五倫也라.
해 :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오직 사람이 가장 귀한데, 사람이 귀한 까닭은 오륜이 있기 때문이다.  

1,4 然則 父慈子孝하며 君義臣忠하며 夫和婦順하며 兄友弟恭하며 朋友輔仁然後에야 方可謂之人矣니라.
해 : 그러하니, 아버지는 사랑하고, 자식은 효도하며, 임금은 의롭고, 신하는충성되며, 남편은 화평하고, 아내는 유순하며, 형은 우애하고 아우는 공경하며, 벗은 인으로써 서로 도운 연후에야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동몽선습을 통해 유교적 가르침을  장려했으며, 도리와 의를 중시함으로 나라의 기틀을 잡으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중국을 신봉하는 사대주의적 성향이 깊게 자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쉽다.

 

 

 

 

 

 

 

 

 

격몽요결(擊蒙要訣)  

 

擊(부딪칠격) 蒙(입을몽) 要(구할요) 訣(이별할결)

격몽요결은 조선조 선조 10년인 1577년 율곡 이이가 해주 석담에서 어린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지은 책이다. 입지장, 혁구습장, 지신장, 독서장, 사친장, 상제장, 제례장, 거가장, 접인장, 처세장 등 모두 10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린아이들의 몽매(蒙昧)함을 일깨우는 요긴(要緊)한 비결(秘訣)이란 뜻이다.

서론1, 人生斯世에 非學問이면 無以爲人이니  

해 : 사람이 이 세상에 삶에, 학문이 아니면 이로써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가 없다.

율곡은 학문으로 통해서 사람이 사람다워짐을 강조하고 있다. 사람됨이란 자기 혼자서 깨달아지는 것이 아닌 조상들이 물려준 지혜를 배우고, 도리를 배움으로 사람다워진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러한 보수주의적 성향은 교사들의 지위를 중요시하고 학생들을 교사의 지식을 습득하는 수준으로 본 것이다. 

1. 立志章 

立(설립) 志(뜻지) 章(글장)  

격몽요결은  뜻을 세우고 글을 배워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학업에 아무런 목적도 없다면 진정한 발전과 성취가 없음을 강조한 부분이다. 

1,1,1 初學은 先修立志하나니 必以聖人으로 自期요 不可有一毫自小退託之念이니라.  

해 : 처음 배움에는 먼저 모름지기 뜻을 세워야 하나니, 반드시 성인(聖人)으로써 스스로를 기약(期約)하고, 조금이라도 자신을 작게 여기거나 중도(中途)에서 물러설 생각을 갖지 말 것이다.

학습법에 있어서 현대의 전문가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공부의 목적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지금으로부터 수백년 전의 사람인 율곡이이는 공부에 대한 중요한 의미를 이미 발견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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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 세자의 죽음, 그 비밀은?

 

사도세자(1735-1762)의 영정 


아래는 박영규님의 쓴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 실록>의 일부분이다. 이곳에서 저자는 사도세자의 죽음을 조울증, 즉 미친결과로 보고있다.

사도세자는 영조의 둘째 아들이며 영빈이씨의 소생이다. 이복형인 효장세자가 일찍 죽고 영조의 나이 40세가 넘어서 출생한 때문인지 2세 때 벌써 세자로 책봉되고, 10세 때 홍봉한의 딸 효빈 홍씨와 가례를 올렸다.

사도세자는 어려서부터 총명한 아이였다고 한다. 3세 때 이미 부왕과 대신들 앞에서 [효경]을 외웠고, 7세 때 [동명선습]을 독파했다. 서예를 좋아했고, 수시로 문자를 쓰고 시를 지어 대신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10세 때는 소론측이 주도한 바 있는 신임옥사를 비판했다고 한다.1749년 15세 때 부왕을 대신하여 서정을 대리했는데, 이때 그를 싫어하던 노론들과 영조의 계비 정순황후 김씨, 숙의 문씨 등이 그를 무고했다. 성격이 과격하고 급했던 영조는 수시로 그를 불러 꾸짖었고, 이로인해 그는 정신질환 증세를 부이기 시작했는데 궁녀를 죽이고 여승을 입궁시키거나 몰래 왕궁을 빠져나가 관서지역을 유람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장인 홍봉한은 그의 병증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히기는 힘들지만 병이 아닌 것 같은 병이 수시로 발작했다고 한다. 이 같은 현상은 현대에 조울증이 아니었는가 생각된다.사도세자의 돌발적인 행동이 계속되자 1762년 계비 김씨의 아버지 김한구와 그 일파인 홍계희, 윤급 등의 사주를 받은 나경언이 세자의 비행 10조목을 상소하였다. 이에 영조는 분개하여 세자를 죽이기로 결심하고 그를 휘령전으로 불러 자결하라고 명했다. 하지만 그가 부왕의의 명을 거부하자 그는 뒤주에 가둬 8일 만에 굶겨 죽였다. 이때 그의 나이 28세였다. 그가 죽은 뒤 영조는 세자를 죽인 것을 후회하며 그의 죽음을 애도한다는 의미로 그에게 사도라는 시호를 내린다. 이후 그의 아들인 정조가 즉위하자 장헌으로 추존되었다가 다시 장조로 추존되었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사도세자는 어릴적부터 똑똑한 것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서울대 정별설 교수는 아버지인 영조가 절대권력으로 인해 미친 아들을 죽인 것으로 보인다. 정별설교수는 어릴 적 사도세자는 똑똑하지 않았고, 오히려 공부를 싫어하고 시와 여행을 즐긴 것으로 본다. 부인 홍씨의 한중록은 자신의 친정이 사도세자의 죽음과 연관이 없다는 것을 변증하기 위해 기록된 것으로 보아야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한중록이 혜경 홍씨가 죽고 나서 즉 사도세자의 아들인 중조의 시대가 열리면서 편집된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노론의 입지를 강화 시키고 사도세자의 죽임이 노론과 별 상관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권력이 아니라면 다른 사유를 찾아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조울증, 즉 미쳤기 때문이다.

 

 

 

 

 

 

 

 

무사 박동수에서 나오는 사도세자는 중국에 대항하여 조선의 명예와 자존심을 세우려는 북벌지계의 첨병으로 나온다. 사도세자가 북벌지계를 주장함으로 중국과 정면으로 대치하게 된다. 노론이 청의 사조를 받고 조선을 지키려 하는 것과 반한다. 

 사도세자가 칼로 베어버린 '삼전도비'는 청태조가 자신의 공덕을 적은 비석이다. 병자호란 때 청에 굴욕적인 강화협정을 맺고 청태도의 요구에 따라 세운 비석이다. 그 때가 조선 인조 17년(1639)에 세워졌다. 높이는 3.95m로 폭은 1.4m로 사람의 두배 반에 해당하는 적지 않는 비석이다. 원제는 "대청황제공덕비'이다.   사진출처는 (http://kbsam93.blog.me/90117886573)이다.

 

 

 

탕평책을 편 영조는 노론에 의해 방해를 받았다. 그러나 정순황후 김씨와 숙의 문씨는 노론세력을 지지했고, 이에 반하는 사도세자를 제거하려 하였다. 사도세자는 당시 힘이 없었던 소론과 남인과 친하게 지냈고, 영조 몰래 소론과 남인이 주로 사는 관서지방을 빌미로 삼아 세조를 공격했다. 사도세자는 역사 문헌에 조울증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노론을 제지하려는 영조의 정치적 수단으로서 죽임을 당한 것으로 보아야 옳은 것이다.  

이러한 추측이 가능한 것은 영조가 무수리의 아들로 태어난 신하들의 신임을 얻지 못하였고, 사람들의 말에 움직이는 그런 사람이었다. 신하들의 청이 들어오면 함부로 거절하지 못한 영조였다. 영조는 사도세자를 죽임으로 정치적인 입지를 강하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도세자의 어머니 영빈이씨와 아내 혜경 홍씨 등 모두 그의 적이었고, 노론과 관계된 인물들이었다. 당시 권력을 잡고 있었던 노론을 극히 싫어했던 사도세자는 그들의 원수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처지였던 것이다. 7월의 무더위 속에서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는 8일 만에 죽고 만다. 

  

 

 

 

 

 

 

 

그렇다고 한다면 '무사 백동수'에 나오는 사도세자는 그동안 권력에 의해 감추어진 사도세자의 진실을 밝혀주는 픽션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비록 완전학 역사적 사실을 따르지는 않지만, 그의 정신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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