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록(Confessiones)은 어거스틴의 작품이다. 그런데 현재 출간된 고백록은 수십종에 이른다. 문제는 번역인데 아무렇게나 번역하거나, 종교적인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체 번역해 오류가 심하다. 아래의 세 권은 추천할만하다. 선한용의 번역판은 하버드 출판사의 라틴영문 비교 대조판을 이용했고, 박문재와 성염의 번역은 라틴어를 직역한 것이다. 필자는 선한용의 판만 가지고 있어 나머지 두 권의 번역체는 아직 모른다. 




















번역은 반역이지만, 창조이기도 하다. 얼마전 어거스틴의 <삼위일체론>을 읽었다. 성염과 김종흡의 번역인데, 성염은 라틴어 직역이고, 김종흡은 영어 중역이다. 중역된 판이 안 좋을 것 같아 비교했더니 문체는 확연히 다르지만 훨씬 부드러웠다. 또한 빠뜨린 문장은 찾지 못했다. 성염의 문장이 약간 딱딱하하면 김종흡의 문장은 부드럽다. 학문적 목적이 아니라면 김종흡의 책도 추천할만하다. 하지만 보고서나 연구를 위한다면 성염의 책은 필수다.


번역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 번역도 전문가의 영역이 되었고, 중역이 아닌 원문 중심의 번역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직역으로 일관하여 읽기에 불편함을 주는 것은 번역자의 몫이지만 지양되어야 한다. 즉 번역자도 문학적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고백록이란 단어로 책을 검색하니 루소와 토스토엡스키의 고백록도 보인다. 그들은 무슨 말을 했을까? 문득 고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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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벼락에 고양이가 앉아있다. 생김새는 영락 없는 암컷이다. 동물들은 대체로 예쁘고 귀여운 것들은 수컷이다. 고양이도 다르지 않다. 우리집 고양이들도 두 마리가 있는 멋진 녀석은 역시 수컷이다. 이녀석은 수컷인듯 하지만 입은 옷이 그다지 에쁘지 않다. 뒤섞여 있다. 아버님 말로는 삼색 고양이는 무조건 암컷이란다. 확인해 보니 삼색이라 암컷인 고양이도 있지만, 이색에도 암컷이 존재한다. 뭐.. 뒤쪽 엉덩이를 보면 알 수 있지만 가까이 갈 수 없으니 말이다. 







래리 허타도의 책이 눈에 들어온다. 에딘버러 대학의 명예교수이며, 신약 성서의 세계적인 권위자다. 그는 초대교회가 폭발적으로 발전한 이유를 찾는다. 몇 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하나가 탁월한 도덕성이다. 일반인에게서 찾을 수 없는 높은 수준의 도덕성이 있었던 것이다. 다른 것도 많겠지만 이것만 보아도 그들이 얼마나 집요하게 살았는지 보여준다. 







그의 또 다른 책도 읽어 볼 만한다. 좋은 책이다. 멀리있는 고양이를 보고서 암컷인지 수컷인 알 수 있다면, 이 책들도 분명 좋은 책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아니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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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7-10-19 2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른 것도 많겠지만 이것만 보아도 그들이 얼마나 집요하게 살았는지 보여준다

집요함.. 이라는 단어 저 좋아해요

낭만인생 2017-10-19 22:38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김요한 목사의 <상식이 통하는 목사>를 읽고 있다. 말 그대로 상식이 통하는 목사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렇담 현재의 목사들은 상식이 통하지 않을까? 난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야 많다. 상식이란 개념부터 정의할 노릇이지만, 멀리까지 가지 말고 그냥 상식적인 목사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목사는 상식을 뛰어 넘는 탁월함을 지녀야하는데, 거꾸로 상식도 통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불통하는 목사, 상식 없는 목사가 태반이다. 그러나 세상이 얼마나 골치 아플까? 


목사공부는 무조건 읽어야 한다. 옥한흠 목사의 <목사가 목사에게>도 주의하여 읽을 필요가 있다. 요즘 되어가는 교회 이야기들이 옥한흠 목사의 탓이라고 치부하기는 과한 면이 있지만 상당한 책임은 있다고 믿는다. 왜 그럴까? 현재 옥한흠 목사를 추종하는 개혁적이라는 목회자들의 주장은 적폐적이다. 그토록 옥한흠 목사를 좋아하고 따랐지만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니 당시 가진 불온한 싹들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목사도 그 시대 사람이다. 그것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시대를 깊이 고민하며 다음 세대는 어떨 것인가를 생각한다면 목회의 방향은 사뭇 달라지지 않을까? 만약 옥한흠 목사가 지금 살아 계신다면 적폐세력과 같은 후배들도 좀더 개혁적이지 않을까? 그러니 옥목사님은 목사들에게 좀더 다른 방향으로 목회를 가르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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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엔 가젠의 믿음의 여인들이 새옷을 입고 나왔다. 성경속 여인들의 신앙과 삶을 들여다보는 책이다. 신기한건 이게 소그룹 용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아주 오래전 나온 책이 다시 읽히고 기억 속에서 망각되지 않고 자리를 찾는 것은 위대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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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책을 물고 온다.



종로서적에서 나온 기독교 명저 60선을 찾아 보았다. 이 책은 85년 6월 20일이 초판이고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89년 4쇄판이다. 가격은 무려 4500원이다. 여기서 소개한 책들이 있을까?


개혁된 목사는 참된 목자로 바뀌어 있다. 
















폰 라트의 구약 신학은 있다. 오스카 쿨만의 <그리스도와 시간>은 있다. 절판 된 것이지만.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가 보이고, 다른 몇 권도 보인다. 
















기독교의 본질 세 권이 보인다. 한 권은 포이에르바하. 두 번째는 하르락, 마지막은 하르낙의 책을 정리한 것이다. 세 권 모두 읽을 만한 책이다. 
















죽음에 이르는 병, 과 팡세는 명작이라 계속 판매된다. 


















케제만의 바울 신학의 주제, 하비콕스의 <세속도시> 몰트만의 <십자가에 달린 하나님>. 케제만의 책만 절판이다. 














































칼 바르트의 <복음주의 신학 입문>은 여전히 번역되고 있다. 그러나 바르트는 요즘 중요하게 읽어야할 책들이다. 그에 관하여, 그의, 그를 향한 책들은 모두 읽어야 한다. 지금은 바르트의 시대다. 

































아직 60권은 아니지만 여기서. 끝.


어떤 기준인지는 모르지만 가장 중요한 책들임에는 분명하다. 절판된 책도 있고 계속출간되는 책도 있다. 그 기준은 아마도 필요성이거나, 책이 가진 역사성이리라. 어떤 책은 그 시대에만 통하고, 어떤 책은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읽히는 책이 있다. 둘 사이를 잘 분별하는 것이 저자의 몫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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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7-10-16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르틴 부버 <나와 너>

나는 너야..너는 나야..
이렇게 고백한 사람이 생각나네요

낭만인생 2017-10-18 21:45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저 책 제목이 특이 해서요.. 그런데 책 의외로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