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 여행 - 놀멍 쉬멍 걸으멍
서명숙 지음 / 북하우스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제주의 바람은 드셌다. 비는 온몸을 훑고선 내 옷을 적셨다. 발은 눅눅하고 몸은 무거웠다. 뒤 따르는 친구 둘은 비에 젖은 안경 때문인지 흐릿했고 앞길은 빗물로 자욱했다. 그 길을 걷는 다른 이들도 있었지만 난 고독했고 외로웠기에 황홀했다. 파도는 바위를 삼킬 듯 넘실대고 가끔 멀리 떠 있는 섬조차 잡아먹을 듯 보였다. 바닷길 따라 하염없이 걷다보면 닿지 못할 그곳에 닿을 것 같았다. 제주 올레 둘째 날은 그리도 험했다.

 어딘지 모를 곳을 향해 무작정 걷는 걸음에 어깨는 무거웠지만 머리는 상쾌했다. 바다 냄새가 코끝에 아른거릴 때엔 기운을 돋우는 살가움도 있었다. 그랬다. 나는 제주를 다녀오고선 더 단단해지고 여물어졌다. 파란 페인트로 화살표가 돼 있는 돌담을 이정표 삼아 나는 제주 올레를 걸었더랬다. 내 마음을 걷고 제주를 품었더랬다.

 제주 올레를 만든 이가 쓴 글이다. 물론 그 혼자 만들진 않았다. 세종대왕 혼자 한글을 창제하지 않았듯 말이다. 하지만 세종의 리더십과 의지를 한글 창제 논공행상의 으뜸으로 쳐야 할 테다. 그만큼 한 명의 투철한 노력과 선견지명이 중요하다. 서명숙씨도 마찬가지다. 제 몸을 유쾌히 던져 맺힌 길을 풀어냈다. 그녀는 제주에서 나고 제주에서 컸지만 서울에서 삶을 꾸렸다. 사람 냄새가 너무 짙은 서울에서 그녀는 아파했다. 시사저널 편집장으로 일했던 그녀지만 고향이 그리웠나 보다. 고향에서 핍진한 몸을 달래며 마음을 추스렸다. 덕분에 그녀의 몸은 한결 나아졌다고 한다. 제주의 보살핌을 받은 덕에 베풂의 미덕을 알았고 세상에 돌려주기로 했다. 그 결과가 제주 올레다. 그녀의 결심이 서지 않았던들 제주 올레는 차후에도 생기지 않았을 테다.

 책은 고백의 언어로 그득하다. 그녀는 올레를 만드는 일에 온전히 제 글품을 쏟아내진 않는다. 그녀의 과거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씨줄과 날줄을 이루며 예쁜 옷을 자아낸다. 이 예쁨은 여성적 아름다움이라기 보단 누이의 따스함이나 이모의 정겨움 같은 거다. 글을 따라가다 보면 올레의 탄생 비화를 알기 전에 그녀를 알게 되고 그녀를 좋아하게 된다. 그녀의 글은 마음을 사뿐히 즈려밟는 향을 내고 마음을 눅인다. 향수보단 자연에서 나는 그런 향취다. 켜켜이 쌓이는 그녀에 대한 공감과 애정은 글을 푼푼하게 만드는 힘이다. 미소가 절로 난다.

 올레를 만들기 위해 애썼던 크고 작은 시간에 대한 묘사는 큰 울림을 주진 못한다. 다만 그 길을 다시 걷고 싶게 마음을 동하게 한다. 내가 걸었던 그 길에 이런 속사정이 숨어있었냐며 반갑고 유쾌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문화유산이 아닌 자연에게도 적용될지는 몰랐다. 다시 그 길을 걸으면 또 새로운 감정이 마음을 간질일 듯하다.

 중국의 대문호 루쉰은 ‘고향’이란 단편에서 이런 말을 했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누군가 먼저 땅위를 가고 그 뒤를 쫓는 이들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라고 불리어진다. 누군가 희망이라는 길을 가면 모두가 그 길을 따라 가게 된다.-

 적당히 클리셰 하지만 언제나 일정한 아취를 풍기는 말이다. 서명숙의 올레는 루쉰의 아포리즘이 가장 아름답게 현실화된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녀가 밟았던 길을 오늘도 수많은 사람이 걸었을 테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올레가 다시 그리웠고 보고팠다. 대부분의 올레꾼들이 그럴 테다. 나을 수 없는 상사병을 안겨 준 올레를 만들어 준 서명숙에게 고맙단 말을 하고 싶다. 걸음이 주는 유쾌한 다독임이 아직도 생생하다. 다만 이 책은 올레를 갈 때마다 새롭게 읽힐 듯하다. 고전이 아닌 책이 입체적 감정을 자아낸다는 건 이 책만의 매력일 테다. 걸으멍 쉬멍 간세다리로 나는 오늘도 앞에 놓인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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