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나폴리 4부작 2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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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 4부작-2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엘레나 페란테 저/김지우 역 | 한길사

| 원서 : The Story of a New Name

 

 

1나의 눈부신 친구에선 두 주인공 릴라와 레누의 유년기와 사춘기가 담겨있었다. 2부는 그녀들의 청년기가 펼쳐진다. 1부 끝 무렵에서 릴라는 결혼을 한다. 그 후 어느 날 릴라는 극도로 흥분한 상태에서 레누에게 금속으로 만든 작은 상자를 맡긴다. 상자 안에는 공책 여덟 권이 들어있었다. 남편이 읽을까봐 집에 둘 수 없다고 했다. 릴라는 레누에게 절대로 상자를 열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한다(진짜 안 열어보리라고 생각했을까?). 어쨌든 릴라는 그러겠다고 대답은 해놓고 기차에 오르자마자 공책을 꺼내 읽어 내려가기 시작한다.

 

릴라는 10세 때 푸른 요정이라는 습작 소설을 쓸 정도의 필력이 있다. 글쓰기에 대한 소질과 취향은 두 주인공의 공통점이다. 공책에는 릴라에게 일어난 일상적인 일들과 생각이 초등학교를 마칠 무렵부터 세세하게 적혀있었다. 일기라고 하기엔 좀 그렇고, 작문 연습의 흔적 같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레누에 비해 평소 말보다는 행동이 앞서는 릴라의 내면이 많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2부에선 이 공책의 내용들이 중간 중간 들어있다. 아마 3,4부에도 그럴 것

같은 예감이다.

 

2부의 큰 줄기는 삐거덕거리고 혼란스러운 릴라의 결혼생활, 그럼에도 불구하고 릴라가 먼저 결혼을 했다는 자체가 스트레스인 레누의 표현하기 싫은 열등감.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성()에 관심을 갖는 릴라의 마음이 교차된다. 작가는 이 두 여인의 행동과 내면세계를 매우 섬세하면서도 강렬하게 그려 나가고 있다. 레누가 이 소설의 화자이기도 하지만, 때론 레누조차도 바라다 보이는 존재감이다.

 

두 여주인공의 일상은 유년기에 비해 무엇이 달라졌는가? 나이가 더 들었다는 것?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관심도는 높아졌지만, 그들의 하루는 여전히 불안하다. 주변 인물들 역시 멀리하기엔 너무 가까운 존재들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만 팽배해있다. 주변에는 여전히 많은 일들이 파도가 만들어낸 거품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은 꿋꿋하게 나아간다. 주저앉는 듯 다시 일어선다.

 

시간은 더디게 흘러갔다. 빛도 잘 들어오지 않은 이 동굴 속에서 나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바깥에서는 소년소녀들이 대학이라 불리는 미지의 장소를 향해 걸어가는데 말이다.” 레누의 내면이다. “보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삶. 말하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삶. 숨기는 것도 없고 어떠한 틀에 제한도 받지 않은 삶은 무형의 삶이야.” 릴라의 말이다.

 

우여곡절 끝에 레누가 대학에 입학하면서 약 2년간 릴라와 떨어져있게 된다. 레누는 그 기간을 이렇게 표현한다. “릴라가 없는 내 삶을 이야기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시간은 평온하게 흘러갔고 중요한 사건들도 공항 컨베이어벨트 위에 실린 여행가방처럼 지나갔다. 하나씩 순서대로 들어 올려서 페이지위에 옮겨다 놓기만 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레누에게 릴라의 존재감은 거의 전부이다. 그러나 릴라의 마음에 차지하고 있는 레누는 그리 크지 않은 듯하다. 그렇다면 레누에게 릴라는 무엇인가? 무엇이라 이름 붙여야 하는가? 어쨌든 릴라의 삶은 끊임없이 레누의 삶에 투영된다. 레누의 말에선 릴라가 한 말의 메아리가 느껴지고 그녀의 결연한 행동은 릴라의 행동을 재각색한 것이다. “내 부족함은 릴라의 과함 때문이었고 내 과함은 릴라의 부족함을 보완하기 위함이었다.”

 

1부에서도 등장했지만 경계의 해체 현상을 주목한다. 릴라가 남편과의 갈등(누구 탓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암튼 복잡하다)으로 집을 나간 것을 알게 된 레누는 릴라의 경계해체현상을 떠올린다. 릴라의 내면에는 지난 날 가족 중에서 가장 사랑했던 오빠의 경계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고 기운을 잃었고, 청년기에 들어선 릴라의 약혼자가 남편으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망가지는 것을 보고서도 큰 충격을 받게 된다. 릴라는 그녀의 남편이 내면의 욕망과 분노 때문에 또는 음흉한 계획이나 비열함 때문에 남편이 기형적인 모습으로 변할까봐 두려움에 싸여 지내는 일상을 반복하게 된다. 릴라는 그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돌발적인 행동을 자주 일으키고 감정의 기복이 심해지게 되었으리라 짐작된다. ‘경계의 해체 현상은 작가의 화두인 듯하다. 이 또한 다시 만날 것 같다.

 

일어나는 사건, 사고도 많고 등장인물도 제법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템포가 빠르다. 대단한 흡인력이다. 이젠 어느 정도 레누와 릴라의 성격 파악을 마친 상태라 진행되는 상황보다 조금 앞서 가보는 재미도 있다.

 

이 소설에 대한 많은 코멘트 중 특히 공감 가는 글이 눈에 띄었다. “나 자신을 제어할 수 없다. 처음 나폴리 4부작1권을 읽었을 때 나는 책 읽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등장인물, 소리, 풍경 등 작가가 아름답게 묘사한 모든 장면에서 감정의 포로가 되었다. 결국 난 제2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를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다.” _힐러리 클린턴, 정치가

 

 

#나폴리4부작 #새로운이름의이야기 #엘레나페란테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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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눈부신 친구 나폴리 4부작 1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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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는 이탈리아의 나폴리이다. 지명이 연상해주는 아름다운 정서와는 전혀 그 분위기가 다르다. 그 이유는 시대적 배경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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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눈부신 친구 나폴리 4부작 1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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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폴리 4부작-1

나의 눈부신 친구 엘레나 페란테 저 / 김지우 역 | 한길사

         | 원서 : My Brilliant Friend

 

 

오늘 아침 리노의 전화를 받았다. 나는 그가 평소처럼 돈을 빌려달라고 할 줄 알고 안 된다고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리노가 내게 전화를 한 것은 돈 때문이 아니었다. 리노는 자기 어머니가 사라졌다고 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엘레나 그레코이다. 소설에서 레누라는 애칭을 갖고 있다. 이 소설의 화자(話者)이기도 하다. 사라진 여인은 레누의 절친 릴라이다. 두 여인의 우정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소꿉놀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릴라는 사라지기 30년 전부터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사라진 것이다. “그저 사라지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이 살아온 66년이라는 세월을 통째로 지워버리려 하고 있었다.”

 

레누는 며칠이 지나도 릴라에 관한 소식을 접하지 못하자 불현 듯 화가 치밀었다. “좋아, 이번엔 누가 이기는지 보자!” 그리고 레누는 컴퓨터 전원을 켜고 그들(레누와 릴라)의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나폴리 4부작이 시작된 것이다.

 

1나의 눈부신 친구는 레누와 릴라의 유년기와 사춘기 시절이 담겨있다. 두 사람이 주역이긴 하지만, 조역들도 매우 많이 등장한다. 무대는 이탈리아의 나폴리이다. 지명이 연상해주는 아름다운 정서와는 전혀 그 분위기가 다르다. 그 이유는 시대적 배경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1940년 히틀러 독일의 뒤를 이어 영국, 프랑스에 선전을 포고하며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1943년 무솔리니 정권이 붕괴됐다. 2차세계대전후 이탈리아의 정치는 왕제(王制)가 폐지되고 공화제 채택이 결정되어 연립내각이 탄생한다. 이 소설은 바로 이 시기 이후부터 펼쳐진다. 전쟁의 상흔이 이곳저곳에 남아있다. 치안과 공권력이 매우 미약한 상황이다. 서민들의 삶은 투쟁이다.

 

레누와 릴라는 서로 상반된 성격을 갖고 있다. 레누는 겁도 많고, 조심성이 몸에 배인 것에 비해 릴라는 거침없는 성격이다. 겁나는 것도 없다. 레누는 자존감도 낮다. 반면 가정환경이 레누에 비해 나을 것 없는 릴라는 언제 어느 곳에서나 당당하다. 레누가 릴라 곁에서 종종 열등감을 느끼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레누는 릴라 곁에 있기를 좋아한다. 릴라가 혹시 자신을 싫어할까봐 릴라가 하는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몸과 마음이 모두 오그라들 지경이지만..)따라 하기도 한다.

 

유년기 때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니, 소녀라고 부르는 것이 좋겠다. 두 소녀의 우정이야기라고 해서 달콤하고 풋풋한 이야기만 이어졌다면, 이 소설이 전 세계를 뒤흔들어놓지 못했을 것이다. 소녀들의 주변은 늘 긴장상태이다. 분노와 폭력, 죽음이 함께한다. “우리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었다. 우리가 살아온 세상은 후두염, 파상풍, 출혈성 티푸스, 가스, 전쟁, 기중기, 돌담, 노동, 폭격, 폭탄, 결핵에서 화농까지 목숨을 앗아가는 단어들로 가득 찬 그런 세상이었다. 아주 일상적인 일들로 죽음의 요인이 될 수 있었다.” 폭력은 또 어떤가? “내겐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없다. 우리의 유년기는 폭력으로 가득했다. 집에서나 밖에서나 매일매일 별의별 일들이 일어났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인생이 특별하게 기구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인생이란 원래 그런 것이고 어쩔 수 없으니까. 우리는 타인의 인생을 힘들게 할 숙명을 타고 태어났고 타인들은 우리 인생을 힘겹게 할 숙명을 타고 태어났다.” 물론 이 대목이 어린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안다. 그렇지만 작가의 마음은 비록 어려서 이런 표현을 못 했을지라도 그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살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숙명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녀들의 몸이 자라고, 마음도 자라고, 갈등도 자란다. 꿋꿋하게 앞을 보며 나아간다. 마치 가시덤불을 헤치며 숲속에서 새 길을 내며 나아가듯 그렇게 앞을 향해 간다. 후반부로 갈수록 선머슴 같은 릴라의 내면이 오히려 레누보다 더 섬세하고 복잡하다는 것을 느낀다. 작가는 두 소녀의 내면세계를 뜨거우면서도 냉정하게 그려주고 있다. 마치 커다란 얼음 덩어리에 뜨거운 불 기름을 떨어뜨리듯 그렇게...

 

현재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여성작가이자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많은 사랑과 찬사를 받고 있는 베스트셀러 저자인 엘레나 페란테. 그녀의 대해선 아직까지 완전 베일로 감춰져있다. 그 흔한 사진 한 장 없다. 엘레나 페란테도 필명이다. 나폴리에서 태어났고 일찍 고향을 떠나 오랜 세월을 외국에서 보냈다는 사실 정도만 알려져 있다. 조용히 고국으로 돌아와서 어느 곳에선가 외출도 삼가고 글만 쓰고 있는 듯하다. 은둔을 선택한 페란테는 나폴리 4부작은 자신의 우정에서 비롯되었음을 밝혔을 뿐이다.

 

책은 한 번 출간 되고나면 그 이후부터 저자는 필요 없다고 믿습니다. 만약 책에 대해 무언가 할 말이 남아있다면 저자가 독자를 찾아 나서겠지만, 남아있지 않다면 굳이 나설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페란테가 서면 인터뷰에 남긴 말이다.

 

#나의눈부신친구 #엘레나페란테 #한길사 #나폴리4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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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똑똑하다 - 유혹하고 사냥하고 방어하는 식물 과학과 인간 2
폴커 아르츠트 지음, 이광일 옮김 / 들녘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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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식물이 똑똑하냐 그렇지 않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식물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똑똑하냐 그렇지 않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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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똑똑하다 - 유혹하고 사냥하고 방어하는 식물 과학과 인간 2
폴커 아르츠트 지음, 이광일 옮김 / 들녘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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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똑똑하다 : 속이고, 공격하고, 방어하는 놀라운 식물의 세계

         _폴커 아르츠트 저/이광일 역 | 들녘

 

 

1.

식물이 동물보다 똑똑하다는 말을 들으시면 반응이 어떠실지 궁금합니다. 피상적인 생각으론 동물은 동()적이고, 식물은 정()적인데 어찌 그런 논리가 적용될까 의구심도 듭니다. 그러나 그런 편견을 없애고 식물 역시 호흡을 하며 아무리 척박한 환경에서도 살아가야 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생명체라고 받아들인다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요. 식물의 품위(?)가 격상되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실까요?

 

2.

이 책의 저자 폴커 아르츠트는 독일의 유명한 과학 저술가이자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자연과학 다큐멘터리 작가로 소개됩니다. 동물과 자연을 다룬 각종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 감독했고 책도 여러 권 썼군요. 그 중 동물도 의식이 있을까?라는 책은 스테디셀러라고 합니다.

 

3.

식물은 동물보다 하등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식물이 영양을 섭취하고 번식하는 능력은 있지만 동물과 달리 주변 환경을 지각하고 거기에 반응하는 능력은 없다고 봤습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 생각의 한계를 넘어서는 사실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4.

저자는 식물은 생명 활동에 중요한 모든 것에 반응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날씨는 물론이고 땅의 상태나 이웃한 식물들에 대해서도 반응한다고 합니다. 색깔을 구별하고, 장애물을 회피하거나 다른 대상이 접촉하는 것을 감지하기도 합니다. 인간의 손끝으로는 도저히 감지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식물은 남이 자신을 잡아먹거나 해치려 하는 것을 느끼고, 세련된 방어 전략을 응수하기도 한답니다.

 

5.

식물은 똑똑하다라는 다큐멘터리 프로가 우여곡절 끝에 제작 결정을 내려진 후 무심코 냉장고 문을 연 저자는 싱싱칸에 넣어 두었던 양파가 싹이 나기 시작하는 것을 본 후 생각의 뿌리가 자랍니다. 양파의 하얀 새싹 다발과 여린 줄기를 보며 어떻게 저렇게 위로 뻗어갔을까? 빛을 향해? 아닌데, 냉장고 안에는 빛이 없잖아.”

 

6.

이 부분(식물의 공간과 중력 감각)은 과학자들이 그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골머리를 썩고 있다고 하는군요. 전혀 밝혀지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이미 백여 년 전 식물학자들은 뿌리 끝에 있는 특정 세포에서 녹말로 된 작은 알갱이들을 발견했지요. 이를 보통 녹말립(綠末粒)이라고 부르는데 이 부분을 통해 식물들이 평형을 잡는 역할을 한다고 해서 평형석(平衡石)이라고도 합니다. 이 과정에 대한 좀 더 정밀한 관찰을 위해 물풀이 에어버스(포물선 비행을 통해 무중력 상태를 연출하는 특별한 비행기)를 타는 호강을 누리는군요.

 

7.

이어지는 이야기는 좀 더 리얼합니다. 육식식물이라고 들어보셨어요? 실제로 있답니다. 곤충이 간식거리라고 합니다. 인도네시아 보르네오 섬의 벌레잡이통풀은 한 시간 동안에 흰개미를 무려 6.000마리를 잡아먹는답니다. 대단하지요? 이 식물은 항아리 모양의 포충낭에 소화액을 채우고 먹잇감을 기다립니다. 조급할 것은 없지요. 그저 그 식물들의 어느 부분이 미끼 역할을 해서 흰개미들이 '오기만 해!'하고 기다리는 것이지요. 조급한 행위를 하는 것은 동물들뿐이지요.

 

8.

식물의 방어력 부분에선 어떤 야생 감자종이 무대에 오릅니다. 이 야생 감자는 특별한 무기로 진딧물에게 대항하는군요. 치명적인 무기는 아니지만 효과는 그만이라고 합니다. 이 감자는 이파리 표면에 작은 가시가 있는데, 분비샘과 이어져 있는 예민한 섬모로 진딧물이 그 위를 밟고 지나가면 바로 부러집니다. 그리고 진딧물은 더 이상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됩니다. 섬모에서 두 가지 물질이 솟아나와 서로 합쳐져서 끈끈액(점액)이 되기 때문이지요. 이 접착제 같은 액체가 진딧물의 발에 닿으면 진딧물은 발을 뗄 수 가 없다는 것입니다. 마치 인간이 개발해내는 전쟁무기와도 같은 기능이 이미 그들에게 있군요.

 

9.

식물의 번식. 저자는 '원격 섹스'라는 타이틀로 호기심을 유발시키는군요. 마치 식물들이 무언가 곤충을 꾀는 물질을 방사하듯이 말입니다. 식물이 섹스를 한다? 저자가 제작한 난초 관련 TV 다큐멘터리를 본 한 시청자가 외설적인 장면이 무려 96회나 나왔다고 항의했다고 합니다. 아마 대단한 난초 애호가였던 모양입니다. 그 고결한 난초에 외설 장면이 그렇게나 많이? 그 시청자 참으로 대단하군요. 그 다큐멘터리를 3번이나 보면서 문제가 되는 장면을 꼼꼼히 잡아냈다고 하네요. 이미 익히 알고 있는 사항이기도 하지만, 꽃은 식물의 생식기지요. 꽃은 수컷 성세포를 가진 꽃가루를 공급합니다. 꽃가루가 식물의 정액이라는 표현도 합니다. 바람에만 의존하기엔 생존력이 약해지니까 곤충을 이용하게 됩니다. 이 과정 중에 식물은 나름대로 잔머리를 쓰게 됩니다.

 

10.

이외에도 저자는 뿌리들의 전쟁, 식물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동물의 신경 시스템 대신 전기 신호를 발사한다던가, 씨앗이 싹을 틔우기 위해 애쓰는 과정(모험)을 매우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필체로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비록 식물이 동물보다 똑똑하지는 못할지라도, 동물만큼 똑똑하다는 이야기를 믿을 수밖에 없군요. 현대를 대표하는 식물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이언 볼드윈의 말을 옮기면서 리뷰를 마무리 합니다. “문제는 식물이 똑똑하냐 그렇지 않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식물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똑똑하냐 그렇지 않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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