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겸 3만명 돌파 축하 이벤트 -
오늘은 특별한 시간을 만들어보았습니다. '네가 먹는 것이 곧 너다.'란 독일 철학자 포이어바흐의 말이 있습니다. 이곳 서재에서는 '네가 어떤 물건을 갖고 있는지 알려주면 네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준다'라고 할 수 있는 '세 가지 물건으로 나를 소개하기' 이벤트가 벌어지고 있는데요. 현장에 나가 있는 아치, 이게 무슨 소리인가요.
- 네, 방금 소개한 내용은 뽀가 3만 돌파 겸 생일 기념으로 준비한 판타스틱하고 재치있으며 유머러스한 이벤트입니다. 현재 다양한 성향의 서재인들이 모여 뽀씨의 이벤트에 도전 의지를 불사르고 있습니다.
- 아, 그렇다면 먼댓글이 사정없이 붙었겠는데요.
- 그게 아직은 아무런 소식이 없습니다. 다들 어마어마한 물건과 글을 준비중인 것으로 보입니다.
- 그렇군요.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아치가 처음으로 뻬빠질을 해서 '첫빠' 인센티브를 얻는건 어떻습니까. 어차피 내용이나 수준이 다른 서재인들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지니 꽤 괜찮은 차별화 전략 같은데요.
- 그게 너무 일찍 도전하면 '정말 할 일 없는 사람'처럼 보일까봐 준비 다 해놨으면서도 눈치를 보고 있었지 말입니다.
- 그럼 아치의 물건을 볼까요. (처음으로 올리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저보다 부지런하고 미모도 뛰어난 pjy님이 먼저. 흑)

- 좀 쑥쓰럽습니다.
- 쑥쓰럽긴요. 지난번엔 책 읽는 동영상을 올리고, 이번엔 무슨 노래 페이퍼질한다고 준비중이라면서요. 새삼스럽군요. 벌써 사진이 올라와 있네요. 저건 뭐죠?
- 테이프입니다. 제가 중학교 때 테이프 녹음하는 취미가 있었거든요.
- 가을동화, 오랜만에 봅니다. 노래 취향이, 중구난방이었군요. 저기 스티커 붙이고 한건 어떤 미적 센스라기보다는 남은 스티커를 재활용하려는 알뜰함이 돋보이는 선택같은데 좀 너저분해보이는데요.
- 역시 정확하시군요. 제가 좀 알뜰합니다.
- 말을 제대로 안 듣는군요. 나이도 한참 먹었는데 중학교 때 테이프를 갖고 있는걸로 보면 알뜰하기보단 버리기 싫어서 싸짊어지고 다니는 습성이 있는걸로 보이는데요. 듣기로는 예전 연애 편지, 자신이 썼던 잡글, 학교 다닐 때 필기했던 노트까지 갖고 있다고 하던데 정말입니까.
- 네. 제가 좀 꼼꼼해서.
- 아치네 집을 방문한 측근에 의하면 방 꼬라지가 가관이라던데 꼼꼼한 사람은 원래 정리정돈을 잘 하는거 아닙니까.
- 그래서 제가 또 다른 사진을 준비했습니다.

- 완벽하게 정리된 모습입니다.
- 정리라기 보다는 잡동사니 도가니 같은데 말이죠.
- 그건 어떤 시각을 갖느냐에 따라 달라보이는 겁니다. 아방가르드한 취향으로 저 물건들을 보면 저 배치와 색감의 조화, 일관성 없는 물건 선택에 어떤 영감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잘 모르시나본데
- 됐구요. 남들은 하나씩 선정하는걸 또 욕심껏 보여준다고 선반 위에 있는걸 죄다 찍은 모양인데 이 물건들에 대해 설명해주시겠습니까.
- 제일 왼쪽에 있는건 철분제 포장 상자입니다.
- 그 속에 담긴건 뭐죠?
- 일전에 선물로 받은 꽃나무의 꽃에 곰팡이가 생겼습니다. 꽃은 어쩔 수 없지만 나무를 버리는건 좀 아까워 가위로 잘라서 저 상자에 보관한겁니다.
- 왜요?
- (작은 목소리로 간질이며 속삭이듯) 아까워서
- 머리끈이랑 비녀도 보이네요. 화장품도 있고. 이 옆에서 주로 화장을 하는 모양이죠.
- 네, 주로 제 방에서 화장을 하죠. 화장을 너무 많이 하면 도깨비 얼굴이 되기 때문에 서서 쓱쓱 몇분 안에 해치웁니다. 제 방이 누워서 책을 볼 때 불이 너무 환해 전등에 한지를 발라놓는 바람에 좀 어둡거든요. 방에서 화장을 하면 그렇게 피부가 좋아보일 수가 없는데 다른 방이나 밖에서 거울을 보면 우에에에웹
- 네?
- 제가 촛불 없는 곳에선 꽤 괜찮은 얼굴이라구요.
- 설마 웃기려고 하는 소린 아니겠죠?
- 눈치가 빠르신데요. 웃음 참지 않으셔도 돼요.
- 흠...... 다음 물건 봅시다. 달력 같은데 맞나요?

- 정확합니다.
- 달력에 뭘 저렇게 적어놓은겁니까.
- 앞서 말했 듯이 저는 굉장히 꼼꼼한 성격의 소유자라
- 됐구요. 저기 보이는 줄이랑 동그라미 등등의 표시는 뭡니까.
- 생리 징조에서 생리할 때까지의 날과 생리하는 날 수를 표시한 겁니다. 달력엔 주로 그날 그날 뭘 했는지 적어놓습니다. 제 취향이 좀 고상한 편이에요. 가끔씩 나는 작년 이맘 때쯤에 어떤 즐거운 일과를 보냈을까 궁금해지거든요. 그때를 위해서도 그렇고 '내 생애 단 하루'인 날들을 적어놓고 기념한달까요.
- 오늘은 아치 자뻑의 날도 아닌데 좀 오버하는데요. 그럼 12일 날엔 뭘 했나요.
- 이거 밝혀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제 페이퍼를 읽는 분들이 자신들은 대중없는 사는데 아치는 너무 버라이어티하게 살고 있다는 자괴감을 갖을만한 일들이 많아서 말이죠.
- 그래도 하나만 밝혀주시겠습니까?
- 12일이라... '사장의 끊임 없는 잔소리, 호박전 만들어서 선생님이랑 같이 먹음, 사장이랑 싸움, 잘 하자고'라고 적혀있군요.
- 사장이랑 싸운겁니까.
- 그게 말이죠. 저처럼 취향이 고급스러운 사람들은 싸움의 쌍시옷 발음도 경멸하기 마련인데 사장이 제 뒤를 쫓아다니면서 잔소리를 해대니 견딜 수가 있어야죠.
- 그래서 이겼습니까.
- 그게 누가 이겼다고 밝히기 참 그렇지만...... 에, 그래도 정 궁금하다면 (개미 편도염 앓는 목소리로) 제가 이겼어요.
- 누가 이긴지 어떻게 아는겁니까.
- 사장이 전화를 걸어서 친하게 지내자고 했어요.
- 그게 꼭 이긴거라고 하긴 뭐하고, 취향도 그리 고급스럽지도 않고
- 뭐라고 하시는거에요? 이 양반이 지금 나랑 한판 붙자는거야, 응? 너 몇살이야?
지금까지 아치 방에 있는 물건으로 본 아치에 대한 인상은 참으로 '대중없다'는 거였습니다. 본인의 설명과 다르게 굉장히 더럽고, 더러움을 은폐하려고 뭔가 치장하려고 애를 쓰는데 보시다시피, '내 이럴줄 알았다' 정도였습니다. 재미 없고, 의미도 없는 페이퍼를 끝까지 읽은 분들 애쓰셨습니다. 애쓰신 분들께 심심한 결말을 대신해 책 하나 추천해드리죠.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은 이들에게 권하는,
다중 인격의 심리학
어쨌거나 저쨌거나
뽀 만세 ! 우리 할머니 될 때까지 페이퍼질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