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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말해줘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세상이 정지했다.
그녀가 앞에 선 순간, 그가 앞에 선 순간, 누군가에게는 세상의 소리가 정지하고 공기의 흐름이
정지했으며 누군가에게는 세상의 소리가 들리는 듯 했으며 세상과 놓여있던 유리가 금이가는듯했
다. 사랑의 시작은 어찌하여 다른듯하면서도 닮았고, 닮은듯하면서도 닮지 않은 것일까! 중요한 건 사랑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세상은 모놉크롭의 풍경에서 극채색으로 물들게 된다는 것.
쿄코에게는 세상 모든 것이 남몰래 다가오는 것이다. -p.24
듣지 못하는 한 여인이 있다. 그런 여인을 공원에서 보고 반한 남자가 있다. 그 남자에게 그녀가 듣지 못한다는 것은 그저 그녀가 자신과는 달리 대화를 입으로가 아닌 펜으로 혹은 얼굴로 한다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분명 읽는 독자 나조차 그들의 연애가 평탄할리 없다고 시작하자마자 말하고 있음에도 그들의 사랑은 나즈막히 조용하고 가벼우며 따뜻하다. 누군가를 향한 마음을 이어간다는 것이 나이 서른을 눈 앞에 두니 시끌벅적하지 않아도, 안달복달하지 않아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조용하고 따뜻함을 전해줄 수도 있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아가는 것, 책 속의 두 주인공이 내게 알려준 것이다.
반쯤은 같이 있는 것 같으면서, 반쯤은 거기에 없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있는데도 없다.
없는데도 있다.
혹은 있는 듯한데 없다.
없는 듯한데 있는 그 무엇...... -p.54-55
소통, 누군가와 통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소통이 잘 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하루 종일 내가 입으로 언어를 전달한 사람 중 단 한명에게라도 내 마음은 전달된걸까? 굳이 소통을 언어로만 해야한다고 생각했던 어리석음을 주인공들을 통해 깨닫게되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적어 대화하거나 얼굴 표정으로 해야하는 이들의 대화가 내게는 참으로 낯설고 귀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그들이 왜 수화를 배우지 않나라는 생각을 하다가 요시다 슈이치가 우리에게 '말이 통하지' 않는다와 '마음이 통하지 않는다' 가 다름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내가 너를 이해하고 있다고, 세상과 단절된 너를 내가 세상과 이어주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그 사람이 세상과 나를 이어주고 있음을, 그 사람 하나만 없어졌을 뿐인데 세상과 내가 분리된 기분을 알게 된다. 사랑이란 이리도 이상하리만치 신비한 것임을 이 나이에 하나 더 몸으로 배운다. 사랑을 알려주기 위해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은 상투적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의 소설답지 않음에 고개를 갸우뚱 했는데 읽고 생각하면 할수록 그의 사랑이 맛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