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라는 영화 광고를 접했을 때 어디선가 봤던 글이 떠올랐다. '나비에게 있어 삶의 절정기가 끝에 온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사람에게도 어쩌면 인생의 절정은 20대가 아니라 60대가 넘어서 와야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비슷한 글이었을 것이다. 그런 삶이 있다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찬란하다고 부르는 20대를 보내면서 해보게 된다. 정말 그렇다면 어떨까? 애벌레처럼 긴긴 세월을 나비가 되기 위해 노력하다가, 매미가 되기 위해 노력하다가 60대가 되었을 때 내 자신이 찬란히 빛나게 된다면 나는 정녕 행복해질 수 있을까, 빛날 수 있을까.
 

 그래서, 궁금했었다. 벤자민 버튼의 삶은 어땠을까. 그는 정녕 찬란히 빛났는가? 아니면 그와는 반대인가? 이 책이 소설집인 줄 모르고 책을 봤자마자 기대를 가득안고 책을 읽어내려간다. 이런 빠른 전개라니 그렇다면 이 두꺼운 책의 뒷부분은 대체 무슨 이야기일까라며 혼자서 부끄러운 의구심을 가지고 읽어내려가니 미처 주문한 커피가 식기도 전에 벤자민 버튼의 이야기가 끝이 나버렸다. 그 다음 '젤리빈' 을 보고 나서야 띠지를 살펴본다. 분명히 나와있는 '소설집'이란 단어앞에 혼자서 흥분하다 허허, 웃음이 난다.

 

 벤자민의 이야기가 끝나고 커피 한 잔을 호호 불면서 마신다. 호호 불어 먹던 커피도 어느새 식어버리게 되면 그 때 마시는 커피가 왜 더 맛있다고 느껴지는 건지.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순간 하게 된다. 뜨겁게 달궈졌던 감정들로 살아본 적도 있고 무덤덤한 감정으로 살아본 적도 있고 초조함으로 삶을 대면한 적도 있는데 어느 한 순간인들 소중하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소중하지 않은 시간들은 없었는데 소중히 여긴 적은 얼마나 있었던가. 벤자민의 이야기로 점점 젊어지는 그가 부럽다기 보다는 삶이란 것은 어떤 모습으로 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란 생각을 해 본다. "

 

 나날이 젊어지는 벤자민을 보면서 그를 부러워한 건 그가 노인으로 태어났어도 당당한 모습으로 학교에 가고 사교회에 나가던 모습이었지 점점 젊어지면서 그가 누릴 수 있었던 젊은 모습에 숨겨진 삶의 지혜와 지식은 아니었다. 되려 안타까웠다. 그가 갖고 싶어했을 육체를 가졌을 때 그의 나이가 씁쓸했으며 그 젊은 육체 속에 숨겨진 지식과 지혜는 부러울만한데 갖고 싶을만한데 그 삶을 꿈꾸지는 않게 된다. 순리대로 살 수 없는 삶이란 이리도 슬픈 것이라고 혼자서 읊조릴 뿐이다. 그저 어린 벤자민이 어려짐과 동시에 그의 정신연령도 어려짐이 다행이라고, 그저 다행이라고.

 

 벤자민의 이야기만 하다보니 이 책의 다른 소설들의 빛남을 말하지 못할 뻔했다. F. 스콧 피츠제럴드는 <위대한 개츠비>로 이미 흔들 수 없을만큼 무수히 내 마음을 흔들었던 작가이다. 이 소설집을 읽지 않았다면 내가 몰랐을 작가의 위트나 그가 알려준 삶에 관한 비밀들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낙타 엉덩이>를 보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작가의 코멘트에서 그가 말한대로 쉽게 쓰여졌을 것 같은 소설 그럼에도 유쾌하면서 그 시대가 잘 녹아있는 작품이었다(그런데 이게 실화라니!!). 단편소설들이 자신만의 빛을 뽐내며 읽는 이로 하여금 재미를 준다. 황당무계한 것도 있지만 삶을 이야기하는 작가의 방식이 마음에 든다. 문제는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을 읽을 때면 굉장히 집중을 해야한다는 것! 한 문장을 딴 생각하며 읽게 되면 연결이 잘 되지 않아 다시 읽게 된다는 것. 이것 역시 작가의 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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