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엘 쾰마이어의 그리스 로마 신화
미하엘 쾰마이어 지음, 김시형 옮김, 이경덕 감수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2년 10월
평점 :
절판


늘 토마스 볼핀치의 신화를 읽을 때면 식상함과 남성우월적인 면을 의식하곤 했다. 그건 볼핀치의 신화에 기반을 둔 이윤기의 신화를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읽게 된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미하엘 쾰마이어의 그리스 로마 신화>.. 유려한 문체와 막힘없는 서술에 감동했고, 가끔 사견을 첨가해 그 부분에서는 나와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책과 대화할 수 있다는 건 축복받은 일이 분명했기에, 이 책에 남다른 애착이 갔다. 내가 알고 있는 신화를 약간은 다른 시각에서 표현한 책. 이 책에서 그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바는 신화는 결코 어렵지 않으며, 사실은 너무 친숙하여 생활 속에 스며들어 있어 신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신화 전문가라는 것이다. 나는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 나 역시 신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며, 생활 속에 깃들여 있는 신화를 느낄 수 있기 때문에. - 나이키, 닉스, 헤라... 상품 중 신화와 관련된 상호명이 많다.- 

이 책은 그리스 로마 신화 중 가장 유명한 12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기본적인 신들의 탄생에서부터 헤라클레스의 업적을 지나 트로이 전쟁 후 오디세우스의 방랑까지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이야기들을 식상하거나 딱딱한 투가 아닌 친근하고 유쾌하게 말하고 있다. 신화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도 어렵지 않게 신화의 큰 흐름을 파악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이 중반부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이야기는 이나코스로부터 시작되어 다나이데스의 49명의 딸들, 암피온과 제토스, 탄탈로스와 펠롭스, 안티오페, 티에스테스와 아트레우스, 클리타임네스트라, 오레스테스에 이르까지 계속된 집안의 저주이다. 모두가 잘 아는 위의 인물들은 모두 제우스와 헤라, 포세이돈이 실을 제공하여 나약한 이나코스가 실타래를 엮어 에리스가 천을 짜 버려 모두 불행해졌다. 그리스 로마 신화 중에서도 잔혹하면서 슬픈 이야기들이 모두 인간의 어리석음이 아닌 신들의 무책임함과 욕심, 변덕에 의해 일어났다면 얼마나 황당한가. 인간에게 은혜를 베풀어주기도 하고, 벌을 주기도 하는 신이 그 상벌을 결정하는 기준은 다름아닌 신의 만족도였다. 신이 만족하고자 인간에게 은혜를 베풀었고, 벌을 줬다. 탄탈로스는 자신의 아들을 죽였기 때문에 타르탈로스에 떨어진 것이 아니라 신의 권위에 도전했기 때문에 벌을 받아야 했다. 이나코스의 후손들이 계속해서 저주를 받아야 했던 까닭은 다름아닌 제우스의 바람기 때문이었다. 제우스가 이오를 유혹하지 않았더라면, 헤라로부터 지켜주었다면 결코 위의 비극적인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터였다. 게다가 나중에 만신창이가 된 이나코스를 위로한답시고 물 없는 강으로 만들어 버린 것은 제우스 자신이 만족하기 위해서였다. 그냥 이나코스가 불쌍하니까 동정하는 마음을 충족시키고자 도와준 것이다. 원인 제공자였던 자신의 행각은 전혀 생각하지도 않고 말이다. 미하엘 쾰마이어 역시 나와 같이 불합리한 신들을 비난하고, 그들의 무책임에 화를 냈다. 특히 바람둥이 제우스와 위대한 여신에서 전락해 버린 헤라는 집중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남성우월주의를 찾는 것은 쉽다. 너무나 눈에 띄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식상하기까지 하지만, 몇 군데 살펴보자. 헤라. 그녀는 대지모신이었지만, 이방신인 제우스에게 겁탈당하여 질투쟁이 여신으로 전락해 버린다. 악녀 메데이아. 그녀는 악녀라는 호칭이 앞에 붙어있지만, 사실은 이아손의 야망과 우유부단함에 희생된 가엾은 여자 아니던가. 아프로디테. 미의 여신이라 칭송받는 그녀가 어째서 그렇게 성적으로만 묘사되는가. 제우스가 건드린 모든 여성들은 하나같이 다 불행해졌다. 여자의 입장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제우스의 행각으로 얼마나 불행한 여성들이 탄생했는가. 게다가 그들이 낳은 아이들 중 남자는 영웅이 되는 경우가 많았고, 여자는 잊혀져 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제우스의 딸은 다름아닌 헬레나.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되기도 한 그녀의 이야기에서 역시 남성우월주의적 사고방식을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오레스테스. 모친살해의 주범인 그는 무죄 판정을 받았다. 여성이면서 남성이기를 바랬던 아테네에 의해서 말이다. 

읽다보면 울화통이 터지는 이야기들이 이렇게나 많은데도 자꾸 읽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신화를 보면서 현재를 살고, 미래를 예측하기 때문일까.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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