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엔 시저로 알고 있던 자.

일종의 영웅. 그가 왜 위인전에 끼여있는지 썩 이해가 되지 않던 때가 있었고 지금도 잘 모른다.

로마사는 공화정에서 제국으로 교체되는 시기를 알고 싶었는데 카이사르는 그래서 반드시 알고 넘어가야 할 인물이 됐다.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또한 알아야 하고.

왜 카이사르는 죽음을 당해야만 했던가, 그를 원로원 회의가 열리는 공회에서 수십여명이 그를 에워싼 채 스물세군데를 난자해서 죽여야만 했던가. 그를 찌른 자들은 어떤 자들인가?

카이사르를 암살한 그들은 왜 대중에게 나아가 자신들의 행위를 변명하는 웅변을 해야만 했을까. 

왜 대중들은 그들을 용서하지 않았을까. 

암살 주동자들은 사건을 벌이고 시간이 흘러도 대중의 분노가 가라앉지 않자 로마를 떠나야만 했다.  

카이사르는 애도하는 대중의 손에 화장되어 묻혔고, 카이사르를 태운 곳은 신전이 되었다. 

아우구스투스가 황제가 되었을 때 북쪽하늘에 혜성이 떴고 사람들은 그 혜성을 카이사르의 영혼이라고 믿었다. 

카이사르는 사람들에게 신으로서 존재하게 된다.

 

가브리엘 마르케스에게 카이사르는 문학으로 창조하고 싶었던 유일한 인물이었다. 

나는 이걸 어느 트윗에서 봤는데 마르케스가 실제 어느 정도까지 카이사르를 탐구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결국 마르케스는 포기한듯싶다.  카이사르는 인류역사에 있었던 모든 독재자의 짜집기로만 가능했다고 한다. 

 

카이사르는 지나친 권력과 부의 집중을 무너뜨리고 시민에게 토지분배정의와 정치를 돌려준 개혁가인가, 마르케스가 읽었듯이 독재자였던가. 오랫동안 나는 이 판단을 못했던 것 같다.

 

마이클 파렌티의 [카이사르의 죽음 (원제는 카이사르의 암살)](2003) 은 이런 궁금증에 판단근거들을 마련해주는데 저자가 어떤 결론을 내렸는지는 ........ 책 스포일러일까?

책을 읽다보면 이건 2천년도 훌쩍 넘는 그 시기가 마치 지금 현실과 너무나 닮아 있어서, 더군다나 우리의 현실분석서라고 해도 좋을만큼 우리의 지금 상황에 대입해 읽어도 유용한 관점을 얻을 수 있을 정도다. 

문재인과 대부분의 시민이 한편먹고 벌이는 반적폐청산 작업의 시작.

카이사르와 반대편에 선 키케로는 거의 홍준표로 읽힌다.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카이사르를 경멸하면서 반대했던 카토라는 인물도 있지만, 저자는 카토 보다는 키케로에 집중 포화를 쏟아붓는다. 키케로는 "특권층의 대변인"이라는 것.

키케로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진다.

 

그동안 로마사와 카이사르를 다룬 역사서들의 내노라하는 저자들, 플루타르코스, 몸젠, 에드워드 기번 등 이른바 '신사역사가들'은 기득권들의 입장에 서서 로마민중을 폄훼하는 관점을 지녔다고 깐다. 가차없다. 

이들 '신사역사가들'은 카이사르를 정확히 알지 못했고, 잘못 기술하고 있다고 마이클 파렌티는 깐다. 

카이사르 시대의 로마의 정치사회경제, 그리고 계급계층, 성문제까지를 다루고, 카이사르의 개혁내용과 한계, 반대세력들의 정체와 그들의 대항방법들.

 

카이사르의 암살자들은 로마의 공화정을 지키기 위해 황제를 꿈꿨던 독재자를 죽였다고 했지만 정작 그들이 탄생시킨 건 로마제국이고 황제였다. 그렇다고 그렇게나 카이사르를 반대하며 공화정 공화정을 외쳤던자들은 그 뒤로 '공화정에 대한 향수를 드러낸 적이 없다.' 그들은 그런 자들이다.

그러니까 이런 싸움은 그때나 지금이나 계속되고 있다는 말이다.

 

카이사르는 결국 암살당했다. 대낮에 공회에서 많은 이들에 둘러싸여 난자당해 죽었다.

 

그의 죽음을 딛고 로마제국을 열어젖힌 아우구스투스는 카이사르의 양자이다.

아우구스투스는 카이사르의 죽음으로 그의 목숨도 위태로운 시절을 보내야 했다. 결국 그가 패권을 쥐었을 때 그는 원로원을 어떻게 다루었는가. 원로원은 왜 아우구스투스를 용인할 수밖에 없었을까. 아우구스투스는 공화정을 종식시키고 군주정을 확립시켰다.

"치밀한 전제군주는 공화정의 형태로 위장된 절대 군주정을 만들었다." (에드워드 기번)

아우구스투스에 대해서는 존 윌리엄스의 [아우구스투스]를 다시한번 읽어볼까... 싶다. 다시 건질만한 게 있을까.. 시간낭비일까...

 

콜린 매컬로의 로마사 시리즈는 읽어본 게 없어서 어느 수준인지 모르지만 다들 좋다고 하니까. 기대는 해보는데,

소설이라서...

마키아벨리의 [로마사논고](1531)도 읽은지가 까마득하고, 어땠었는지 기록이라도 해뒀는지 모르겠네. 기회되면 다시 읽어보리라.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무처럼 2017-06-20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라우디오 마그리스의 다뉴브를 읽고 있는데 유럽의 역사를 모르니 곳곳에서 부딪히는군요...
올리신 책 몇 권 담아갑니다.
존 윌리엄스의 아우구스투스를 읽으면서 카이사르가 궁금하기도 했구요~
올리시는 글들이 참 재밌습니다.ㅋ
읽으신 다음에 카이사르가 누군지 꼭 알려 주세요.

포스트잇 2017-06-20 13:28   좋아요 0 | URL
재밌게 봐주시니 너무 기쁘고, 감사드립니다.ㅎㅎ
다뉴브라는 책, 덕분에 소개받았네요. 읽어보고 싶어요.
카이사르...그가 누군지 알아보려면 견적이 좀 나올거 같습니다..;;;;;;;;

oren 2017-07-01 19: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포스트잇 님께서도 ‘카이사르의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보셨군요. 저도 카이사르의 작품들도 읽어 보고 플루타르코스 영웅전도 두 번, 세 번 읽어봤는데 ‘카이사르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을 명쾌하게 풀진 못했더랬습니다. 그 후로 마키아벨리의 『로마사론』을 읽어 보니 ‘카이사르가 왜 죽어야만 했던가‘에 대해 ‘명쾌한 결론‘을 얻게 되더군요. 그리고 최근에 읽었던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를 통해서도 ‘마키아벨리의 관점‘이 옳았음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고요.

포스트잇 님께서 말씀하신 부분(카이사르를 암살한 그들은 왜 대중에게 나아가 자신들의 행위를 변명하는 웅변을 해야만 했을까. 왜 대중들은 그들을 용서하지 않았을까.에 대한 해답 또한 셰익스피어의 작품 『줄리어스 시저』에 나타난 ‘안토니우스의 연설‘을 통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던 듯합니다. ‘키케로의 애매한 행동‘에 대해서도 셰익스피어는 예리하게 포착해 놓은 듯하고요.

아무튼 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포스트잇 2017-07-01 19:59   좋아요 0 | URL
전 oren님에 못따라 갑니다;;;;
고작 파렌티의 책 한권 읽은건데요. 로마사논고도 다시 볼 기회가 있겠지요. 셰익스피어의 ‘시저‘는 이성일 역으로된 것만 가지고 있는데 얼른 읽어봐야겠습니다. 길안내 해주시니 좋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