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드미르 나보코프 또한 내게는 베케트만큼이나 이름만 새기고 있지 정작 그의 작품을 읽어보지 못한 작가군에 속한다.

[롤리타]도 낄낄거릴만큼 흥미롭지만 그렇다고 그닥 재미있지는 않아서 읽기를 중단한 터다. 벌써 오래전일이다. 

 

최근 번역되어 나온 [서배스천 나이트의 진짜 인생](1938)은 그러니까 나보코프 소설로는 처음 완독한 작품이다. 

[서배스천 나이트의 진짜 인생](1941)은 분명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야기만으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군에 속한다. 

한 인물이 죽었다, 누군가 그 사람의 인생을 알고 싶어 한다. 그의 생은 무엇이었나... (만일 추리나 범죄스릴러 소설이었다면 탐정이나 수사관이 바로 이런 역할을 하겠지. 죽은 이는 왜 죽었으며, 사는 동안 그에게 무슨 일이있었나.) 

삶에 숨겨진 비의나 차마 말하지 못한, 드러내지 못한 비밀이나 회한을 발견하게 되는지... 등. 이런 이야기를 좋아한다. 

'진짜 인생'이란 말속에 평생 쓴 가면 뒤에 가려진 진짜 얼굴이 드러날 것만 같지 않은가.


이복형이자 유명한 소설가였던 서배스천 나이트가 죽은 후 나는 그의 전기를 쓰기 위해 그의 삶의 자취를 따라간다. 

그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나서는 과정은 고스란히 탐정소설을 모방하며 전개된다. 

그러나 전형적인 탐정소설류의 전기소설은 아니다.

마치 카프카의 세계처럼 나보코프의 괴상한 세계도 있다. 

리얼리티의 모호함, 서배스천 나이트는 어떤 사람이었나, 마지막에 찾아낸 건 거울을 통해 보듯 기묘하게 달라져 있는 서배스천 나이트이자 화자 자신이라는 선언. 

나보코프를 읽을 때 키워드처럼 작동하는 거울, 도플갱어, 예술가적 정체성의 탐색, 기억과 상상, 나비, 체스, 리얼리티의 확장, ... 


추리, 탐정소설로 시작해 범죄스릴러물을 좋아했던 나로서는 뚜렷한 이야기와 사건, 플롯, 흥미로운 캐릭터 등이 활약하는 이야기 선호로부터 이제는 그 분명한 이야기들을 미묘하게 비틀거나 패러디하거나 우스꽝스럽게 흐뜨려뜨리는 괴상한 이야기 나라를 탐험하는 것이 왠지 장족의 발전을 한것만 같은 대견스러움을 느낀다. 의미가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정도까지는 된 것같다.예전에는 그런 모호함이나 다가오지 않는, 좀체 좁힐 수 없는 거리감을 견딜 수 없어 했다. 

 

체스게임처럼 독자와 게임을 즐긴다는 나보코프에게서도 일단 모호한 그림속에 들어가 헤매는 듯한 느낌을 받지만 헤매고 있다 해서 불안하거나 불쾌하지는 않고 오히려 낄낄거릴만큼은 된 것 같다. 체스게임을 둬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 게임이 얼마나 재미있고 스릴 있는 줄은 모른다. 

나보코프에게서 뭘 더 느끼고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의 전작을 다 읽을 수 있을런지도 모르고. 


다음으로 집어든 게 [어둠속의 웃음소리](1932)인데 아직 초반이지만 책을 바싹 끌어당기는 흥미로움은 여전하다. 


'옛날에''독일에서' 살았던 알비누스란 이가 '어느날 어린 애인 때문에 아내를 버렸다가 '사랑은 했지만 사랑을 받지는 못해' '참담하게' 삶을 끝낸 이야기라고 첫부분에 못박고 시작한다. 알비누스는 아내 엘리자베트와 딸에게서 공통적으로 '독특한 명랑함'을 발견한다.



그것은 그저 자신의 삶에 대한 고요한 기쁨의 표현으로,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 익살맞게 놀라워하는 표정이 희미하게 묻어났다. 그래, 

그것이 그 명랑함의 핵심이었다 - 죽음을 아는 명랑함. 


 - [어둠속의 웃음소리] (18)



묘하게 이 대목을 보면서 이 작품이 흥미진진할 것 같으며, 익살맞을 것 같고, 독특하게 명랑할 것 같은 예감을 받았다. 

이런 작품을 읽을 때 아, 이건 걸작일거야,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멋진 표현을 쓸 수 있다면 걸작이 될 수밖에 없어. 

. .. 이 작품은1938년 미국에서 발표된 나보코프의 첫 소설이 되었고, 이 소설의 모티프를 훗날 [롤리타](1955)로 발전시켰다. 

저 대목은 알비누스가 결혼생활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표현이라고 나는 느꼈다. 

이런 대목에서 나는 낄낄거리게 된다. 그런데 그 낄낄거림이 마냥 가볍지는 않다.  

아내와 갓 태어난 딸에게서 '익살맞게 놀아워하는 표정'이라니, 독특한 명랑함을 느낀다니... 

뒤에 여자만 보면 사족을 못쓰고 껄떡거길 알비누스의 행태(?)가 나오는 것 같은데 내가 이 소설을 좋아하게 될지 끝까지 즐겁게 읽을 수 있을지, 그래서 나보코프의 전작을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시작은 흥미롭다. 

'롤리타' 외에 다른 걸 찾을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낄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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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7-02-11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저 나보포보 좋아하는데 나이트.. 요거 신간 나왔ㄴ;요... 헐... 얼릉 사서 봐야겠습니다...

포스트잇 2017-02-11 15:10   좋아요 0 | URL
좋아하셨군요. 저는 이번에 처음 읽어본터라.. 흥미롭긴 하지만 좋아할 수 있을런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ㅎㅎ
서배스천 나이트의 나이트가 Knight 입니다. 체스를 대놓고 알립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