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로보
심포 유이치 지음, 권일영 옮김 / 민서각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내년이면 마흔이다. 흔히 마흔은 불혹이라고 한다. 부질없이 망설이거나 흔들리지 않는 나이라는 마흔... 하지만 내게 마흔이라는 나이는 이제 인생을 돌아보면 그래도 어느 정도 내가 걸어온 길이 보이는 나이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그리고 누구의 삶이든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을 떠나 인생이라는 한 사람의 삶 자체로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점, 내가 이 작품을 읽는 것은 내게 주는 의미가 크다.


돌아볼 것이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나이지만 누구나 한번쯤 생각하게 되는 거지만 바쁜 일상에서 그 시점은 각기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만이 아닌 주변을 돌아보게 되었다는 의미에서도 그 의미는 인생의 또 다른 터닝포인트가 되는 것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처럼 나이 오십에 뒤돌아볼 수도 있다.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한 남자의 인생에 대해 말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 속에는 그 남자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사진... 사진작가인 남자에게 사진을 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하지만 작가는 그것 말고도 얘기할 수 있는 것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어쩌면 그것을 이 작품 후기에서 아, 하고 나처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가장 중요한 것을 말이다.


그래서 이 작품이 미스터리인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미스터리 작품에서 살인이라든가, 추리라던가 하는 것 없이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아니 거의 모든 작품에서 미스터리적인 요소를 발견하려 애를 쓰게 되었다. 그것은 어떤 작품에건 비밀 한 가지쯤 숨어 있게 마련이고 어떤 인생이든 간과했거나 잊어버려 나중에 기억하게 되는 요소가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시간을 되돌려 사진을 다 찍은 뒤 되감듯이 거슬러 올라간다. 올라간 시점마다 그곳에는 주인공이 독자적인 삶을 살고 있다. 이것은 남자의 기억일 수도 있다. 남자의 인생 다큐일 수도 있다. 낡은 사진첩일 수도 있다. 우리는 한 남자의 인생을 어느 집 집들이에서 신혼 사진 구경하듯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한번쯤 했을 법한 말을 한다. “어머, 저기 맨 뒤에 있는 흐릿한 사람 누구야?” “어머, 얘는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이 사람 표정이 묘한데 무슨 일 있었던 거 아냐?”


다섯 편 모두에서 나는 그저 읽기만 했다. 그저 한 남자의 살아온 이야기만을 읽었다. 그만큼 작품이 편했다. 미스터리적 요소를 놓치고 지나칠 만큼. 지나치고 생각하니 작가의 기발함에 감탄하게 되었다. 그렇다. 알면서도 소품처럼 놓여진 미스터리를 그저 한 남자의 인생으로만 받아들였다. 받아들일 수 있는 미스터리, 감탄하는 것이 아닌 스며드는 미스터리, 그것은 우리가 바로 지금도 겪고 있는 인생이라는 미스터리 안에 있기 때문이다. 내 인생일 수도 있고 그 누구의 인생일 수도 있는...


그래서 더욱 잔잔한 여운이 남아 마지막까지 갔다가 다시 맨 앞으로 돌아와 빗속을 뛰어가는 남자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남자의 뒷모습은 어쩌면 내 아버지의 뒷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 아버지는 일생동안 저리 뛰어 다니셨겠구나. 빗속에서 넘어지지 않기 위해. 삶이라는 주어진 약속을 지키기 위해 참 많이 힘드셨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언젠가 낡은 사진 속 웃고 있는 젊은 남자를 발견했을 때 “누구야?” 물었더니 “아빠.”하시던 엄마의 목소리가 아련히 들리는 것 같다. 삶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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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6-06-09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어야 겠어요..

물만두 2006-06-09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꽃님 보세요^^

2006-06-09 1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만두 2006-06-09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감사^^

울보 2006-06-09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전 언제 만두님처럼 책읽는 속도가 늘어날까요,,에고,

물만두 2006-06-09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보님 백조랑 비교를 하시다니요^^;;;

건우와 연우 2006-06-09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밤, 남편과 술마시며 인생을 뒤돌아보는 문제에 대해서 얘기했었는데 ....읽어봐야겠네요.

물만두 2006-06-09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우와연우님 읽어보세요~

씩씩하니 2006-06-13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야겠어요, 꼭~
근대 마흔이 되어도 작은 일 큰 일 없이 흔들리긴 마찬가지고, 궁금한 것도 많아 이 사람 저 사람 기웃거리는 이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을 어쩔까여?

물만두 2006-06-13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씩씩하니님 저도 마찬가집니다. 철들 생각없이 그냥 이대로 살렵니다^^ 님도 나이보다는 님만의 생각속에 쭈욱 즐거운 호기심 만족시키시면서 사세요. 좋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