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걸 - 에드거 앨런 포 상 수상작, 블랙 캣(Black Cat) 9
T. 제퍼슨 파커 지음, 나선숙 옮김 / 영림카디널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1968년 오렌지 생산이 사양길에 접어든 캘리포니아의 작은 마을에서 한 소녀가 살해되었다. 그 소녀는 아름다웠지만 어린 시절부터 시련을 겪었던 소녀였다. 죽을 때 나이는 열아홉, 죽기에는 너무 아까운 나이였지만 남들이 한 해에 한 살씩 나이를 먹었다면 아마도 그녀는 자라면서 남보다 나이 먹는 속도가 빨랐던 것 같다. 남보다 열배정도로. 그것은 그녀가 겪은 일들과 비례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가 살해당했을 때 그녀에게 남은 것은 없었다. 모두가 그녀에게서 단물만을 빨아먹었기 때문에 더 이상 남은 것이 없었다. 그녀의 어머니처럼 그녀도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두 손으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넘쳤기 때문에 죽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어머니는 자살을 선택했지만 그녀는 피살을 선택한 것인지도...


그녀의 살인범을 잡으려고 애를 쓰는 형사와 취재하는 기자는 모두 그녀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이웃이었다. 사이좋은 이웃은 아니었지만 다섯 살짜리 꼬마 여자 아이가 한쪽 눈은 시퍼렇게 멍이 든 채 발레복을 입고 뛰어 다니던 모습을 가슴에 담고 있던 사내아이들이었다. 그들이 잃어버린 것은 그런 그들의 청춘의 추억이었고 그들이 잡으려 애썼던 것도 어쩌면 이제는 남아 있지 않은 청춘 한 조각이었는지 모른다.


이 작품은 매력적인 작품이다. 한 가족의 관점에서 1968년을 기점으로 그 시대를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시대 미국의 보통 가족은 아마도 베커 가족 같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 베트남전에 참가해서 전사한 아들 한명쯤은 있었을 것이고 공화당원이라면 보수적으로 공산주의자들을 싫어했을 것이다. 아마 조금 더 극우적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부모의 모습이 좋은 자식도 있고 싫은 자식도 있었을 것이다. 비틀즈와 엘비스 프레슬리에 열광하는 여자 아이들도 있었을 것이고 동성애자는 받아들이기 힘들어 숨겨야만 했고 마리화나 냄새와 LSD가 급속도로 히피들과 함께 번지던 시대... 왜 여기에 반전은 없을까? 그 시대 반전 여론도 들끓었다던데 말이다. 그것은 대도시에서나 일어난 일이었을 것이다. 작은 시골 마을은 반전보다는 전쟁 지지를, 지금 미국에서 이라크전을 그래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그랬을 것이다.


이런 평범함 속에서 추리소설로서의 매력은 묻혀 있는 듯 하지만 그건 결코 아니다. 그 시대에 일어났을 법한 이야기 속에서의 범인 잡기는 이런 것이었을 테니까. 픽션이 논픽션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 약간의 어설픔으로 포장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가 보여주고자 한 것은 그 시대의 이야기다. 지금도 잊혀 지지 않은, 아니 잊어서는 안 되는, 그러면서 또 다시 되풀이되는 이야기... 캘리포니아 걸은 추억 속에 남아 있는 처음 반한 연예인 같은 존재다.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죽어서도 가져갈 수밖에 없는 아련한 청춘의 한 자락...


좋은 작품이었다.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그 시대의 이야기를 읽고 싶은 독자에게 권하고 싶다. 추리소설에 선입견이 있는 분들, 추리소설에는 반드시 추리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 다양한 추리소설을 읽어보고 싶은 분들에게 권하고 싶다. 이 책을 읽을 때 60년대 팝송을 들으며 읽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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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春) 2006-04-08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번 물만두님의 리뷰를 벤치마킹해야 겠어요. ^^

물만두 2006-04-08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요? 제 리뷰는 5분 단기 속성인데요^^;; 요건 좀 수정을 했지만요~

하루(春) 2006-04-08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에 들어서요.

물만두 2006-04-08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애쉬 2006-04-08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별 다섯개~ 머뭇거렸어도 읽길 잘했단 생각이 드는 책이죠?

물만두 2006-04-08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쉬님 너무 야박한 별땜시 괜히 망설였다구요 ㅠ.ㅠ 진짜 좋은 작품입니다~

나그네 2006-06-09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괜찮기는한데 소름이나 블랙 리스트나 윈터 앤나이트 그리고 미스틱리버,LA 사부작
에비해 깊이가 없다는 느낌이들었습니다.
어느님은 작가가 지독히 보수적이라고하셨는데 보수적이기는하지만 완전히 보수적이지도 못한채 작가의태도가 애매모호해보였습니다.
극우적인냄새가 풍겨도 제임스 엘로이의작품에는 시대와 사회상에대한 날카로움이있었는데 이작가는 미국에대한 찬양과 새로운 사조에대한 반감을가지면서도 그런것들에대한 반감을 갖는 자신이 옳은지 확신하지도 못해보이는거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런 애매모호함을 청춘과 캘리포니아에대한 찬양으로 무마한 느낌입니다.
그래도 물만두님말씀대로 좋은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야박한별점이 저를 두고하신거라면 저 많이 준건데요
저는 4개가 최고거든요 ㅋㅋ(웬지 다섯개주는거에 거부감이있어서요)
그러고보면 영림카디널의 블랙 캣은 실망한책이없었어요
그런면에서 이씨리즈의 부진이 안타깝네요

물만두 2006-06-09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그네님 두고 한 얘기 아닌데요^^ 이 책에 대한 전반적인 별점이 넘 짜다는 얘기였죠. 그리고 저도 님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지금의 시대에 동조한 생각이 얕은 극우적이라는, 아니 보수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뭐 이 정도면 괜찮다 싶었습니다. 요즘은 영미권에서 그리 좋은 추리소설이 나오는 것 같지 않거든요^^
영림카디널에서 좀 더 홍보도 하고 서평단이라도 모집하고 하면 좋을텐데 그런 점이 참 아쉽습니다만 그래도 꾸준히 출판해주니 기특하게 생각합니다^^

KNOCKOUT 2006-06-20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물만두님의 멋진 리뷰에 홀려 책을 봤지만... 참 보기 힘들었던 책이었습니다. 근데... 읽고 나니 물만두님의 리뷰가 가슴에 맺히네요. 감사요..

물만두 2006-06-20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넉아웃님 아이고, 제가 호객만둔디 ㅠ.ㅠ 좀 그러셨을 것도 같네요. 저는 좋아라 읽고 좋은 책이라 생각하지만 다른 분은 다르게도 보였을테고요. 그래도 나중에 한번 더 읽어보세요. 잘 안 읽히는 책은 좀 시간이 지난 뒤 더 잘 읽힐 수도 있고 더 낫게 다른 관점에서 보게도 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