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 소년 1 링컨 라임 시리즈 9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 노블하우스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가 흔히 하는 말 중에 똥개도 자기 구역에서는 90%는 이기고 들어간다는 말이 있다. 그 만큼 구역이 누구에게나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특히 곤충을 좋아하는 소년과 곤충들이 많이 등장하니 이것보다 적절한 말은 없을 것이다. 또한 링컨 라임과 아멜리아 색스가 자신들의 구역인 뉴욕을 떠나 남부 지방으로 잠시 떠난 상황에서 사건을 맞게 된다는 점도 이와 똑 같다. 여기에서는 물을 떠난 고기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제 구역을 이탈한 똥개의 심정을 링컨 라임과 아멜리아 색스는 절실히 느끼게 된다.


아픈 사람, 호전될 가능성이 제로라고 선고받은 사람도 때론 희망을 가질때가 있다. 병이나 사고를 당하면 인간의 여러 단계를 거쳐 마침내 자신의 현재 모습을 받아 들이게 된다고 하지만 요즘처럼 나날이 의학이 발전하는 상황에서는 불치병에 걸린 사람도, 링컨 라임과 같은 완치 불가능한 척추 손상 장애인도 한가닥 희망을 가져보고 새로운 의료 성과에 기꺼이 자신의 몸을 실험하려 맡기게 된다. 이것은 이 상황이 아닌 사람은 아무도 알 수 없는 감정일 것이다. 그 희망이 어떤 것에 기인하던 간에 말이다. 그리고 그 희망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그 희망을 안고 도착한 남부의 소 도시에서 뜻밖의 요청을 받는다. 그 마을의 골칫거리인 소년범이 납치한 여학생을 찾아달라는 것이다. 그것도 아는 사람의 친척이라는데, 성폭행범이라면 시간을 다투는 일이라는데 마다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렇게 링컨 라임과 아멜리아 색스는 소도시에 발을 들이게 된다.


흔히 사람들은 말을 한다. 대도시는 삭막하다. 아파트 옆호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며 살지 않느냐, 사람 사는 게 그런게 아니다라고 말이다. 하지만 요즘 뉴스를 보면 그 반대로 포근하고 인심 좋을 것 같은 소도시, 작은 마을도 그다지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그들은 유달리 자신들만의 유대가 강하고 타지 사람에 대한 배척이 심하고 심지어는 범죄도 자기들끼리 감추고 피해자보다는 가해자편에 서는 면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누가 그 소도시를 장악하고 있는가가 작은 도시에서는 가장 중요한 핵심인 것이다. 어느 도시나 마찬가지로 부패는 크고 작음에 상관이 없지만 소도시이기 때문에 왕따를 당하거나 당하지 않기 위해 협력하는 면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일을 <윈터 앤 나이트>에서도 익히 봤다. 하지만 그 작품보다 이 작품이 더 긴박하게 이어지고 숨가쁘게 읽힌다. 그것은 작가 특유의 쫓고 쫓기는 상황의 연출과 독자가 이 정도에서 만족하겠다 싶을때 한번 더 숨통을 조여주는 맛에 있다. 사실 읽으면서 기분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아멜리아 색스가 처하게 되는 상황을 미루어 짐작해서 ‘아, 또 이 작가 여자를 이런 식으로 그려놓네‘ 하고 실망했기 때문이다. 내가 작가를 너무 과소평가했다. 두 작품을 읽고도 이 작가의 성향을 분석하지 못하다니 참 이래서 추리소설은 계속 읽을 맛이 나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전작 <코핀 댄서>가 스케일이 큰 작품이었다면 이 작품은 장소가 한정되어 있기도 하지만 아기자기한 맛이 일품이다. 뒤통수를 크게 한방 맞는 것과 작게 여러번 맞는 것같은 차이가 있다고나 할까.

 

알리가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았다고 했던가. 이 말이 이 작품에서는 나비를 잡으려다 사방에서 날아드는 벌에게 쏘이는 링컨 라임과 아멜리아 색스의 수난기라고 표혔하고 싶다. 한 마리 나비를, 그 나비가 범인인지 피해자인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잡아야 하는지 구해야 하는지 알 수도 없는 노릇이고 또한 날아드는 벌이 누구를 쏘려고 날아드는 건지, 벌은 건드리지 않으면 쏘지 않는다고 하는데 도대체 어느 벌집을 누가 건드린 건지도 알 수 없고 그 벌의 정체를 알 수가 없이 이 벌인가 싶으면 저 벌이 날아 들어 쏘고 하여튼 무진장 쏘인다.


이 작품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바이오필리아‘라는 단어를 알았다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모든 생명을 사랑하려는 욕구가 선천적으로 있다는 말인데 물론 반대로 ’네크로필리아‘, 즉 파괴하려는 욕구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성선설과 성악설 중 어떤 것을 믿을 것이냐의 문제로 전적으로 개인에게 달린 문제겠지만 ’바이오필리아‘를 믿고 싶다. 왜냐하면 그래야 계속 링컨 라임과 아멜리아 색스가 존재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살아 있는 한 그래도 희망이 있음을 믿고 싶은 마음도 있고...  


댓글(7)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늘바람 2006-02-21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진장 읽고 프네요

물만두 2006-02-21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으세요^^

mong 2006-02-21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월의 첫주문에 넣으려고 벼르고 있답니다 ^^

물만두 2006-02-21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몽님 읽으세요^^

바람돌이 2006-02-21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비를 잡으려다 사방에서 날아드는 벌에게 쏘이는 링컨 라임과 아멜리아 색스의 수난기...읽고싶은 마음을 막막 솟게 하는 표현이야요. ^^

돌바람 2006-02-22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꾸자꾸 좋아지는 물만두님 매력은 도대체 뭘까요. 저도 읽을래요. 조금만 천천히. 도저히 속도를 못 따라가겠어요. 흑흑...

물만두 2006-02-22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읽으세요^^
돌바람님도요^^ 백조가 할일이 뭐 있겠어요~
늘해랑님 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