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테스크
기리노 나쓰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세상은 그렇다고 말을 하면 포기한 것이 되고 세상을 바꾸고 말겠다고 말을 하면 독을 품어 무섭다고들 흔히 말을 한다. 누구나 이런 경험이 있지 않았을까. 이 작품은 첫 장부터 우리의 뇌 속에 숨어 있는 검은 잔설을 파헤친다. 아직 녹지 않고 남아 있는 부분을 드러내게 만든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숨이 막힐 듯한 답답함 속에서 헤엄치게 만든다.

기리노 나츠오란 작가의 작품은 모두 그렇다. 나는 작가에게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편이다. 이유는 작가는 작품으로 말을 하기 때문에 작가의 일상이나 과거, 삶을 알게 되면 왜곡된 시각으로 작품을 읽을 우려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가의 작품을 읽다보면 작가의 삶 자체가 궁금해진다.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작가는 도대체 어떤 삶을 산 것일까...
그리고 기리노 나츠오의 작품과 함께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읽는다면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무언가 극명한 대비점을 찾게 되지 않을까 싶다.

사람은 항상 누군가와 비교되며 살게 마련이다. 특히 가까운 형제는 그 대상이 되기 쉽고 커서는 친구들, 나중에는 직장 동료들, 그리고 결혼을 해서는 경제력이라던가 아이들의 성적이 비교 대상이 된다. 거기에서 누군가는 우월감을 갖고 누군가는 주눅이 든다. 사회는 언제나 정글이기 때문이 누군가를 본능적으로 잡아먹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늘 잡아먹힌 존재는 여자였다. 남자와 여자를 비교해서 보면 여자는 언제나 그들이 원하는 미모와 그들이 원하는 지성과 그들이 원하는 지위와 그들이 원하는 내조와 그들이 원하는 가정을 만들어내야만 했다. 그 가운데서 늘 도태되는 여자가 생기게 마련인데 그들의 삶에 대해서는 얼마나 몰인정한지 돌아보지도 않았다.

여자는 미모, 남자는 재력이라는 말이 있다. 이런 말은 왜 생기게 된 것일까. 이것이 인간의 본질을 나타내는 가장 비루하고 남루하지만 사실이 아닐까. 사실이 아니라면 왜 성형외과는 그렇게 날로 발전을 하고 남자들은 돈을 못 번다는 이유 하나로 이혼을 당하는 것일까. 사회가 인간을 만든다. 환경이 인간을 만든다. 인간은 무엇엔가 항상 지배당하게 마련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일그러진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고 있다. 화자인 ‘나’의 입을 통해서 우리는 그가 보는 시각을 그대로 따라가다가 일기장이라는 기밀 하나씩을 발견할 때마다 다른 이들의 관점에서 다시 되짚어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관점이 바뀐다고 상황이나 환경이 바뀌는 건 아니다. 사실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그 사실이 무엇일까. 작가가 전하려는 사실... 그건 언제나 착취당하고 억눌리며 살아온 여성들의 모습이다. 그 모습이 어떻든 간에.

지나치게 그로테스크한 작품이라 읽으면 조금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읽는 게 좋다. 여성인 우리들은 우리의 잔설을, 우리의 그림자를, 우리의 그늘을 우리가 치워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 누구의 손에 맞기지 말고 말이다.

이들의 일그러진 삶이야말로 우리가 직시해야 하는 근원적인 여성의 삶인 것이다. 아니라고 말하지 말기를. 아니라면 그건 피난처를 잘 만났다고 생각하며 애써 자신을 세뇌시킨 덕분은 아닐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세상은 그다지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 또한 뒤집어 보면 이건 남자들의 미래에 대한 경고도 될 수 있다. 어떤 시각으로 볼 것인가. 오목 거울로, 볼록 거울로, 아님 고밀도 현미경이라도 있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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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tty 2006-01-06 10: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굿모닝~ 그로테스크 다 읽으셨군요.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는 말씀 참 좋아요~ ^^

물만두 2006-01-06 1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아침입니다 키티님~

하늘바람 2006-01-06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로테스크도 읽고 싶네요, 음 요즘 읽을 게 많아져서 읽고픈게 많아져서 걱정입니당

물만두 2006-01-06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일이죠^^

oldhand 2006-01-06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망설이고 있는 작품인데 좋은 모양이네요.

물만두 2006-01-06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드핸드님 제 평은 접고 보시고 작가를 믿고 보세요~

비로그인 2006-01-06 16: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평도 좋고 작가도 좋고...언니 갈수록 너무 잘 쓰셔요.
달인은 달라도 뭐가 달라요.

물만두 2006-01-06 16: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따개비 아우 내가 그럼 민망하쥐~ 쑥쓰럽고로~

한솔로 2006-01-08 16: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대단한 작품인데, 아마도 많은 이의 사랑은 받기 힘들거라는 슬픈 예감이 드는 책이었어요.

물만두 2006-01-08 16: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솔로님 저는 그래도 기리노 나츠오의 이름에 한가닥 기대를 걸어봅니다만 좀 그렇죠 ㅠ,.ㅠ;;;

상복의랑데뷰 2006-02-23 2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결국 알라딘의 일본추리이벤트에도 이 작품이 빠졌군요. 모든 사람이 좋아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대단한 작품인데...

물만두 2006-02-24 1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마 팔리는 순이나 아님 취향에 의해 결정된 걸까요? 아님 이 작가 다른 작품이 포함되서 밀렸던가요. 그래도 새책을 밀어야 하는데 저도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