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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복의 랑데부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54
코넬 울릿치 지음, 김종휘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평점 :
품절
이 작품은 몇 번을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많이 읽었다. 처음에 읽었을 때는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고 지루했었다. 윌리엄 아이리시의 <환상의 여인>같은 작품을 원했었는데 따른 실망이었다. 하지만 두 번, 세 번 읽다 보니 윌리엄 아이리시가 좋아진 것만큼 이 작품이 좋아졌다.
처음 읽을 때와는 참 많이 다르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본명이 코넬 울리치인 윌리엄 아이리시는 참 독특한 작가다. 그는 미국 작가면서 몇 편의 작품에서는 프랑스적인 애잔함이 느껴진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죽음과의 결혼식>, <검은 옷의 신부>, 그리고 이 작품이다. 또한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 Waltz into darkness가 있다.
도서 추리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 작품은 한 남자의 복수극을 다루고 있다. 그 복수의 종착역에 무엇이 있는 지 뻔히 알면서도 그의 복수극에 동참하게 된다. 윌리엄 아이리시의 작품은 대부분 흑백 영화를 보듯 쓸쓸하고 프랑스 영화를 보는 것 같이 우울하다. 이 작품은 그의 다른 작품 <검은 옷의 신부>와 같으면서도 다른 작품이다. 비슷한 소재를 다른 방식으로 두 편을 쓴 듯한 느낌이 드는 두 작품이다.
'내 기분이 어떤지 알겠지'라는 쪽지를 남기고 차례차례 누군가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살해하는 연쇄 살인범이 나타났다. 처음 사건이 일어났을 때 형사만이 어렴풋이 짐작을 했을 뿐 아무도 몰랐다. 그것이 살인의 시작이라는 것을. 하지만 어떤 연관성을 갖는 5명의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 한 명씩 살해당하면서 알게 된다. 그것은 복수라는 것을. 이것과 유사한 영화가 있었던 것이 기억 난다.
부시맨이 하늘에서 떨어진 콜라병을 주었듯이 지나가는 비행기에서 쓰레기를 버리는 일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다행히 부시맨은 그 병에 맞지 않았지만 누군가는 그 병에 맞아 진짜 마른하늘의 날벼락처럼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걸 현실에서 인정할 수 없는 죽은 이의 연인은 처음에는 자신의 연인이 늘 만나던 장소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지만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자 복수의 화신으로 변하고 마는 것이다. '그때 내 기분도 지금의 네 기분과 같았어'라고 말하는 듯한 살인자의 복수에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아이리시 특유의 어둡고 슬픈 느낌이 가득한 수작이었다.
어떤 사람은 이 작품의 발단이 진짜 있을 만한 일인가 말을 하지만 있을 법도 하지 않을까 싶다. 아니 그것은 일종의 상징이라는 생각이 든다. 불행이라는 것은 예기치 못한 순간, 어쩌면 가장 행복하게 느끼는 순간에 찾아와 불행을 극대화시키는 것일 테니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설정이 말이 된다 싶다.
슬프고 추리 소설이라기 보다 한편의 우수 어린 프랑스 작품을 보는 듯한 느낌. 파트릭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읽을 때와 같은 느낌을 윌리엄 아이리시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받았다. 처음 이 작품을 읽었던 십 몇 년 전, 내가 아직 어렸을 느꼈던 추리 소설적인 긴박감이 없고 아가사 크리스티의 형식을 좋아했기 때문에 느꼈던 지루함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윌리엄 아이리시의 일련의 작품들은 나이가 든 뒤에 읽어야 그 느낌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지 않나 여겨진다. 누군가의 간절한 바람과 마찬가지로 윌리엄 아이리시의 전집이 출판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영화와 함께 세트로 출판되어도 좋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