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코맥 매카시 지음, 임재서 옮김 / 사피엔스21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아무도 없는 사막과도 같은 그곳에서 모스는 무엇을 찾고 있었을까? 나는 우선 그것이 궁금했다. 나이가 마흔이 다 되어 가는 남자가, 목장에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용접공이 왜 총과 망원경을 들고 산에서 평지를 내려다보고 있었을까? 모스가 그곳에 없었다면 그는 돈가방을 볼 일도 없었을 것이고 돈가방을 들고 집에 와서 다시 그곳으로 가지 않았더라면 쫓기는 신세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시거를 만나는 일도, 벨이 죄책감에 쌓이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은 언제나 그렇게 되게 되어 있는 것이었다는 듯, 시거의 말을 인정하는 듯 그렇게 시작되고 끝난다.

세명이 등장한다. 우연히 돈가방을 주운 모스, 월남전에 참전했던 남자. 돈이, 그것도 몇백만달러가 눈앞에 뚝 떨어지면 누구나 거기서 눈을 떼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 것이 아닌 것을 가지려면 그만한 댓가를 치뤄야 한다는 것도 세상 이치다. 모스의 돈가방을 쫓는 저승사자같은 시거, 그는 자신을 본 모든 사람은 일단 제거하는 인물이다. 세상에 이런 인물이 어디 있겠냐고 자신도 말을 하지만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예외없이, 마치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삶에 대한 궤변을 늘어 놓으며 유령처럼 피바다만을 남기고 사라진다. 그를 본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은 그를 본다는 것은 죽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보안관 벨이 있다. 2차대전에 참전해서 훈장까지 받고 할아버지에 이어 보안관이 된 인물이다. 그는 도무지 세상이 왜 이렇게 돌아가는 지 이해하기가 힘들다. 모든 것이 자신의 탓만 같고 전쟁도 아닌데 점점 늘어나는 범죄와 마약이 그 많은 돈의 무게로 합쳐져 사람들을 짖누르는 것만 같다.

제목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예이츠의 시 <비잔티움으로의 항해>에서 따온 말이다.

저 것은 늙은 사람들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
서로 팔짱을 낀 젊은이들과 숲속의 새들,
저 죽음의 세대들은 노래를 부르며 스스로 취해 있고
폭포에는 연어가 튀고 바다에는 고등어가 우글거리니
물고기와 짐승과 새들은 여름 내내
나고 자라서 죽는 모든 것들을 찬양한다.
모두들 저 관능의 음악에 취하여
늙지 않는 지성의 기념비를 모르는구나.

이것은 마지막에 벨이 삼촌에게 자문을 구하고 죽은 아버지에 대해 소홀했던 것을 생각하는 장면과 맞닿아 있다. 젊은이들은 늙음이 주는 삶의 풍요를 잃어버렸다. 책에도 벨은 자신들의 시대에는 스무살이면 어른이었는데 요즘은 아니라는 말을 한다. 점점 더 어른이 되기를 미루는 시대를 꼬집고 있다. 젊음과 젊음을 따라하는 사람들만 존재하고 노인에 대해서는 터부시하는 현실 속에서 살인이라는 무차별 폭력은 덜 무섭게 느껴진다. 그래서 무차별 폭력적 살인이 숨가쁘게 전개되다가 갑자기 느린 화면이 돌아가듯 벨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이어지는 것이다. 이 책이 단순한 스릴러를 표방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런 점이 오히려 작품에 대한 독자의 느낌을 반감시키고 있다. 시거와 벨, 악과 선의 대비로 무언가 기대하게 만들어 놓고 바람빠지는 풍선처럼 혼자 부풀다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고 만다. 정통 스릴러가 아니라고 해도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그것이 아니었다고 해도 뒤가 영 개운치 않다.

이 작품 속 주인공들에게는 왜?가 없다. 돈가방을 훔쳐 아내를 피신시키고 도망다니는 모스는 무엇때문에 돈가방을 훔친 것일까? 아내와의 안락한 삶을 위해서? 아니면 호기심에서? 스릴을 만끽하고 싶어서? 그 어떤 속 시원한 대답은 없다. 돈가방을 찾아 모스를 쫓으며 살인을 일삼는 시거에게도 왜 살인을 하는지, 왜 돈가방을 찾는 것인지는 없다. 심지어 돈가방의 주인이 누구인지도 애매모호하다. 그저 짐작만 할뿐. 물론 시거는 답을 내놓지만 과연 그게 살인이 삶의 방식이라는 듯 행동하는 그를 이해시킬지는 의문이다. 뭐, 이해가 문제가 아니고 애당초 왜가 관건이 아니었다면 할 말은 없지만. 마지막으로 모스와 시거를 찾으려고 하는 보안관 벨은 왜?라는 의문으로 그들을 바라보지만 정장 자신이 이 작품 속에서 왜 남아 있는 지에 대한 설득력이 약하다. 늙었다는 것이 이유가 되지는 않으니까.

인생은 동전의 앞, 뒤를 선택해서 속전속결로 정해지고 일찌감치 결말지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신이 인간의 삶을 그리 만들었다면 지금 돌아가는 세상 또한 신의 손이 만든 것일테니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어쩌면 더 이상 없는지도 모른다. 그 옛날 노인들의 엄숙하고 품위있고 경험과 지혜가 가르침을 주던 시대는, 그런 나라는 이제 없다. 신마저도 버린 듯한 핏빛 가득한 부조리한 세상에서 나이 든 그들마저 이해할 수 없어 헤매게 된다면 젊은이들에게, 아니 우리들에게 예이츠의 시처럼 늙지 않는 지성의 기념비는 영원히 존재할 수 없다. 노인들을 위한 나라가 없다는 것은 젊은이들을 위한 나라 또한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작품보다 차라리 같은 돈가방에 대한 작품이라면 <심플 플랜>이 더 낫다. 훨씬 인간적이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 더 확실하다. 인간의 존재가 그렇게 쉽게 하찮아질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린 것은 비슷한데 사설이 길어 스릴러로 영화처럼 시작했다가 노인의 잔소리처럼 끝을 맺는 이 작품보다 간단하면서 행동으로 확실하게 와닿게 보여주는 <심플 플랜>이 독자에게는 재미있으면서도 교훈적으로 읽힐 것같다. 아무리 이 작품이 플리쳐상을 수상한 작가의 작품이고 영화로 만들어져 아카데미 상의 4개부문을 수상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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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2-26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것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개부문을 받은 영화 제목과 비슷하네요.

물만두 2008-02-26 11:12   좋아요 0 | URL
바로 그 작품 원작 소설입니다^^

stella.K 2008-02-27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우리나라에 번역되서 나왔군요!
코엔 형제가 원작 그대로를 살렸다고 하던데...!^^

물만두 2008-02-26 12:07   좋아요 0 | URL
번역도 원작의 대부분을 살려서 번역했다고 합니다^^

거친아이 2008-02-26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아쉬운 부분이 있으셨군요.
원작이 있는 영화는 이상하리만치 강박적으로 일단 원작을 읽어야만 직성이 풀려요.
리뷰 보니깐 제가 예상했던 부분과 차이가 있네요. 읽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원. ^^;;

물만두 2008-02-26 19:02   좋아요 0 | URL
스릴러를 표방한 작품은 아니니 거기에 대해서는 뭐 할 말이 없지만 일단 제 맘에는 좀 그랬습니다^^:;;
그래도 읽어보시고 영화도 보시면 좋죠.
영화는 늘 원작 먼저 봐야하더라구요.

다락방 2008-02-26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이거 보관함이요!

물만두 2008-02-27 10:36   좋아요 0 | URL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