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보아야 할, 들어야 할 등의 리스트도 유행했었다. 지인들이 너의 버킷리스트는 무엇이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었다. 그런 건 없다. 남들 하는 건 다 해 봐야지 라는 식의 사고도 이해가 안 되었기에 심지어 죽기전에 꼭 해야 할 일 같은 것이 있을 리가. 그런 나를 사람들은 뭔가 의욕이 없다. 열심히 살지 않는다 라고 평가하는 듯 했다. 그, 그렇긴 하다. -_-
버킷 리스트는 결핍, 채우지 못한 욕망이나 포부, 충분한 삶을 살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을 담고 있다. 버킷 리스트의 의미는 많이 경험한 인생이 좋다는 데 있지만 그와 반대일 수 있다. 나는 버킷 리스트가 없다. 나를 위로하는 것은 내가 한 일에 대한 기억이지 내가 하지 못한 일을 아쉬워하는 갈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무엇이든 내가 하지 못한 일은 나에게 맞지 않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나의 이런 생각은 내가 이승의 강을 건널 때 갈망과 미련의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을 배의 바닥짐이 될 것이다. (p57)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내 생각을 글로 읽었다. 호주의 작가 코리 테일러는 2005년 처음 흑색종 4기 진단을 받은 후 수차례의 수술을 받고 암의 전이를 견뎌냈지만 2014년 뇌종양 수술을 받은 후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직감한다. 중국의 사이트에서 안락사약을 구해놓고 위안을 받는 그녀. 책이 출판된 후 2016년 7월에 세상을 떠났다고. 명복을 빕니다. 유서를 써놓은 건 십년 쯤 되었고 가끔 고치기도 하고 다시 쓰기도 한다. 책을 읽은 후 다시 꺼내 읽어보았다. 나도 갖고 싶다. 안락사약.